풍성학려

 

'''고사성어'''
'''風'''
'''聲'''
'''鶴'''
'''唳'''
바람 '''풍'''
소리 '''성'''
두루미 '''학'''
울 '''려'''
고사성어의 하나.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싸움에 패한 병정이 바람 소리나 학의 울음소리도 적군인 줄 알고 놀라서 두려워함.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조그마한 일에도 놀람을 이르는 말.
출전은 진서(晉書), 사현재기(謝玄載記)
비수대전에서 비롯된 고사. 북조 제국을 평정한 전진(前秦)왕 부견(符堅)은 대륙을 완전히 통일할 양으로 보기 합 87만이라는 대병[1]을 이끌고 남정에 나섰다. 이에 맞서는 남조의 진(晉)은 재상 사안의 동생 사석을 정토대도독으로 삼아 병력을 전개했다. 양군은 비수에서 조우했는데, 진(晉)군은 진(秦)군에게 병력을 조금 뒤로 물려주면 강을 건널테니, 연후에 결전을 하자고 청했다. 대군을 이끌고 와 장기전으로 끌고가기엔 보급도 곤란하고, 수에서 열세인 진(晉)군이 훨씬 어려운 도강을 벌인다고 하자, 부견은 진(晉)군이 강을 건널때 군을 반전하여 공격할 생각으로 그 제안을 수락한다.
그러나 (秦)군은 태반이 망국의 항병으로 구성되어 군기가 생각보다 정예하지가 못했고, 군세가 워낙 크다보니 중앙의 명령이 끝까지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부견은 위장퇴각 명령을 전달하지도 않았다. 이.. 이뭐병.. 때문에 군령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후방에서는 전방의 후퇴를 패주라고 오인하여[2] 제멋대로 흩어져버린다. 후방의 패주는 다시 전군으로 확산되어 진(秦)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져내렸으며, 강을 건넌 진(晉)군은 혼자 붕괴하는 진(秦)군을 거저먹었다. 퇴각하는 진(秦)군은 스스로 공포에 질려 바람소리(풍성)과 학울음소리(학려)까지 자신들을 추격해오는 진(晉)군으로 생각했다한다. 이에서 연유하여 사람이 조그맣고 별것 아닌 일에도 겁을 집어먹는 일을 뜻하게 되었다.
[1] 그러나 중국 사서의 수치는 한번 걸러서 듣자..[2] 더하여 동징의 항장이 엑스맨이었다. 내부에서 애먼 명령을 전파하여 혼란을 가속했다. 자세한 사항은 비수대전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