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더릭 모리스 윌킨스

 


'''196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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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 게오르그 폰 바케시[1]

'''프랜시스 크릭
제임스 왓슨
프레더릭 모리스 윌킨스'''

1963 -존 커루 에클스
앨런 로이드 호지킨
앤드루 헉슬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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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rice Hugh Frederick Wilkins(1916년 12월 15일~2004년 10월 5일)
뉴질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생물학자이다. 버밍엄에 있는 킹스 에드워즈 스쿨을 졸업한 후 버밍엄대학에 진학해 물리학 파트에서 J. T. 랜달(J. T. Randall)의 연구 조교가 된다. 그는 고체 발광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맨하탄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핵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러나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막대한 희생이 일어난 후 원자력 연구를 그만두게 된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영국으로 돌아간 윌킨스는 세인트 앤드류스대학에서 물리학 강의를 시작했고 1946년부터는 킹스 칼리지 런던 의학부 생물물리실에서 DNA 구조 결정과 RNA 결정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53년 DNA 이중나선모델을 프랜시스 크릭,제임스 왓슨과 함께 발표하면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3]
그 후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1963년부터 70년까지 분자생물학 교수로 재직했고, 1970년에서 81년까지는 생물물리학 교수로, 그리고 그 이후에는 명예교수로 재직했다. 함께 노벨상을 받은 프랜시스 크릭이 사망한 두 달 후인 10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1] 달팽이관 자극의 전달 기작 발견[2] 신경세포막의 이온 전달 기작 연구[3] 단 모리스 윌킨스의 수상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DNA 구조의 비밀을 밝힌 사진을 찍은 사람은 모리스 윌킨스의 동료 로잘린드 프랭클린이었기에, 그녀가 일찍 죽지만 않았더라면 수상은 그녀의 것이어야 했다는 것.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DNA 항목을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