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옐
1. 개요
유서깊은 피아노 브랜드.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리크 쇼팽이 애호했던 브랜드로 유명하다.
오스트리아 출신 프랑스 작곡가 이그나츠 요제프 플레옐(1757 - 1831)[1] 에 의해 창안되었다.
특징은 건반이 가벼웠다는 것, 그래서 병약한 쇼팽도 무리 없이 연주할 수 있었다.
2. 역사
1807년 이그나츠 요제프 플레옐이 파리에서 플레옐 피아노를 설립했다. 1815년에는 플레옐의 장남 카미유(1788~1855)를 공동대표로 이름을 '이냐스플레옐에피스에네'로 한다.
1855년 카미유가 죽고 그의 사위인 오귀스트 볼프(1821~97)가 플레옐의 경영자가 되어 이름을 플레옐볼프사로 개칭한다. 볼프가 죽은 후에는 그의 사위인 귀스타브 리용(1857~1936)이 회사를 이끌었고 그는 다시 회사의 이름을 플레옐리용사로 바꾸었다.
2013년 경영악화로 생산중단을 선언했다.
쇼팽의 피아노 佛 플레옐 문 닫나
[1] 요제프 하이든의 제자였으며, 프랑스에 건너가서 이냐스 조셉 플레옐이라는 프랑스식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였다. 이그나츠 요제프 플레옐의 아들 카미유는 1831년 23살 연하의 피아니스트 마리 모크와 결혼하였으나 1836년 이혼하였다. 마리 모크는 하필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약혼녀였으나 모크의 어머니의 강권으로 베를리오즈와 헤어지고 카미유 플레옐과 결혼하였고, 베를리오즈는 이에 격분하여 마리 모크와 카미유 플레옐, 모크의 어머니까지 암살하기 위해 짐을 싸서 니스까지 쫓아갔으나 니스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살인 계획따위는 집어치우고 휴양하고 왔다(...). 그외에도 마리 모크는 프란츠 리스트와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했는데, 한번은 쇼팽의 집에서 (쇼팽이 부재중을 틈타) 리스트와 그런 짓을 벌이다가 쇼팽에게 들통나는 바람에 리스트와 쇼팽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