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록세라
뿌리혹벌레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진딧물과 형태나 습성이 유사하다고 한다. 농황색을 띠는데 몸 길이는 1 mm 내외로 일반적으로 날개가 없고, 기생한 뿌리 상태에 따라 색이 다르다. 1년에 6-9회 발생하여 알, 유충 상태로 땅 속, 뿌리에 기생하여 겨울을 나고 봄이 되어 10도 이상이 되면 활동을 시작한다. 유충과 성충이 뿌리와 잎에서 양분을 섭취하기 시작하면 유독성의 액을 뿜어 황갈색 혹을 만드는데, 이때부터 뿌리는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할 수 없어 생장이 정지된다. 그 때문에 나무는 영양장애로 시들해지고 개화가 안 되며 씨 없는 작은 포도알이 많이 달린다.
이런 특성으로 유럽 와인 재배 시장에 대 재앙을 초래한 농업해충이다. 포도 뿌리와 잎에 기생하는 해충으로, 이 때문에 유럽, 특히 프랑스의 포도는 씨가 마르다시피 했고 프랑스 포도원의 3/4를 파괴했다.[1]
이 해충으로 세계 주류의 역사가 뒤바뀌었다. 보르도에 퍼진 필록세라로 사람들이 스페인으로 이주, 리오하 와인이 탄생하였고, 유럽 와이너리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와인 대신 맥주를 마시게 하고 브랜디 대신 위스키를 소비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또한 이로 인해 1860년대 유럽의 기존의 포도나무들이 전멸한 반면에[2] 남미, 특히 칠레는 필록세라가 창궐하기 전인 1851년에 비니페라 품종을 수입하였기 때문에, 얄궂게도 프랑스를 비롯한 구대륙이 아니라 이들이 순수 비니페라 품종을 재배하는 셈이 되었다. 유럽이야 당연히 인정할 리 없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 프랑스에서 거액을 들이며 칠레산 비니페라 품종을 역수입한다는 카더라 이야기도 있다. 다만, 테루아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똑같다고는 하기 어렵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필록세라의 원산지는 북미대륙이다. 필록세라가 유럽에 퍼지게 된 것은 포도나무의 품종 개량을 위해 북미 자생종 포도나무(Vitis labrusca 계열의 콩코드 포도 계열)들을 유럽으로 들이는 과정에서 북미산 포도나무에 묻어서 유럽으로 유입된 것이다. 북미 자생종 포도나무들은 오랜 세월 필록세라와 전쟁(?)을 하며 필록세라 유충이 들러붙는 것을 억제하는 물질을 분비하도록 진화했지만, 유럽에 자생하던 유럽포도(Vitis vinifera)에는 당연히 저항성 따윈 없었던 탓에 필록세라에게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초토화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럽에게 있어서 미국 포도는 병 주고 약 주고의 원수 같은 존재인 셈.
성장이 왕성하고 기름지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 그리고 점토질 토양보다는 가벼운 사토에 자라는 포도나무가 좀 더 버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