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피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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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Φιλιππικός
1. 개요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참수하고 황위에 올랐으나 무능한 모습으로 일관하다가 2년 만에 폐위되었다.
2. 생애
2.1. 유배자, 황제에 오르다
필리피코스의 본래 이름은 바르다네스다. 그는 페르가뭄의 귀족이었던 니키포로스의 아들이었다. 그의 전반적인 생애는 알려진 바 없지만 나름 유력한 귀족 가문이었던 것 같다. 티베리오스 3세에 의해 세팔로니아로 유배되었던 그는 706년 복위한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 의해 케르손으로 쫓겨났다. 바르다네스는 케르손에서 이름을 필리피코스로 변경하고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 의해 도시 유력자들이 살해되고 도시가 약탈당한 것에 분노한 시민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키게 했다. 이후 그는 반란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진군해 마침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아르메니아의 반란을 진압하러 수도를 비운 틈을 타 황궁에 도착했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달아나다가 붙들려 참수되었고 그의 아들 티베리오스 역시 주살되었다. 이리하여 필리피코스는 711년 12월 11일 황위에 올랐다.
2.2. 무능한 황제
황위에 오른 필리피코스는 예전에 끝났던 신학 논쟁을 부활시키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단의론 신봉자임을 밝히고 제6차 세계 공의회의 결정, 즉 단의론 폐기를 거부하는 칙령을 반포했으며, 공의회의 회의 장면을 묘사한 황궁의 그림을 치우고 밀리온 성문에 부착된 공의회의 장식판을 떼어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유스티니아노스 2세와 친분이 있었던 로마 교황 콘스탄티누스는[1] 격분해 필리피코스의 칙령을 거부하고 새 황제의 초상을 주화에 찍는 것, 황제의 치세로 문서의 날짜를 정하는 것, 교회 기도자의 명단에 그의 이름을 넣는 것을 금지했다. 또한 교황은 황궁의 그림을 없앤 것에 대한 보복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2] 의 벽을 제1차에서 제5차 세계공의회 전부를 그린 그림들로 특별히 장식하라고 명령했다.
712년, 불가르 족의 왕 테르벨은 자신이 후원했던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죽음을 빌미로 삼아 동로마 제국을 침략했다. 이전에, 그는 복위를 도운 공로로 유스티니아노스 2세로부터 제국의 부제로 인정받고, 황제의 자의를 착용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부제로서 찬탈자를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여러 촌락들을 파괴하고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에 들이닥쳤다. 필리피코스는 마르마라 해 건너편에 있는 옵시키온 테마에 주둔한 제국군에게 당장 콘스탄티노플로 와서 침략자들을 격퇴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 요청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옵시키온 군대는 필리피코스에 대한 충성심이 전혀 없었고 제국을 위기에 빠뜨린 그를 폐위시키고 새 황제를 옹립하기로 결정했다. 713년 6월 3일, 병사들은 황궁을 습격하여 오전 연회를 즐기고 낮잠을 자고 있던 황제를 끌어내 원형 경기장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녹색당 소속 전차 경주 선수들의 탈의실로 데리고 가서 황제의 두 눈을 뽑았다. 이후 원로원은 전 황제의 비서장이었던 아르테미우스를 황제로 추대했고, 아르테미우스는 이름을 아나스타시오스로 개명한 후 제위에 올랐다. 필리피코스가 언제 죽었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아마도 713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