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오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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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Ἀναστάσιος Β΄
1. 개요
2. 생애


1. 개요


동로마 제국의 황제. 무능한 황제 필리피코스가 옵시키온 군대에게 살해된 후 황위에 올라 이슬람 군대의 침략에 대비하는 등 유능한 면모를 보였으나 재위 2년만에 옵시키온 테마의 부대에게 살해되었다.

2. 생애


아나스타시오스의 본래 이름은 아르테미우스였으며, 전임 황제 필리피코스의 비서장이었다. 713년 6월 3일 필리피코스가 옵시키온 군대에 의해 폐위된 뒤, 원로원은 아르테미우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아르테미우스는 이름을 아나스타시오스로 변경하고 6월 4일 황위에 오른 뒤 필리피코스를 실명시킨 병사들을 처형했다. 이후 그는 제6차 세계 공의회의 결정을 지지했고, 전임 황제가 임명했던 단의론 성향의 대주교를 정통파인 게르마누스로 교체했다. 또한 필리피코스와 갈등을 빛었던 로마 교황 콘스탄티누스와 화해했다.
이렇듯 전임 황제로 인해 소란스러웠던 국내 문제를 정리한 아나스타시오스 2세의 다음 문제는 외세의 침략이었다. 앞서 동로마 제국을 침략했던 불가르족은 옵시키온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자 자기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나스타시오스 2세는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왈리드 1세의 활발한 정복 활동(이베리아 반도(구 서고트 왕국) & 중앙 아시아)을 지켜보면서 다음 원정 대상이 동로마 제국이 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사절단을 파견해 평화를 원한다고 하며 한편으로는 염탐을 할 것을 명령했다.
사절단이 복귀하여 이슬람 군대의 다음 목표는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보고하자, 황제는 그에 대한 대비를 시작했다. 제국의 수도를 지키는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전면 보수되었고, 금각만에서 함선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식량의 대대적인 비축도 진행되었다. 황제는 시민들에게 각자 3년치의 식량을 저장해 놓을 것을 하달하였고 그럴 역량이 못되는 사람들은 포위 동안 도시를 떠나 피난해 있을 것을 권고하였다. 715년, 원정을 준비하던 왈리드가 죽고 젊은 칼리파 술레이만이 즉위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황제는 이슬람 세력이 새 칼리파 즉위로 어수선한 틈을 타 선제 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715년 초, 아나스타시오스 2세는 로고테테스 장군 요안니스를 로도스 섬으로 파견해 원정군을 조직하게 했다. 그런데 옵시키온 군대는 지난날 필리피코스를 폐위한 동료들을 처형한 황제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요안니스 장군을 곤봉으로 때려 죽이고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하면서 평범한 징세관이었던 테오도시오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테오도시오스는 틈을 봐서 산으로 도주했지만 병사들이 추격해 도로 잡혔다. 결국 그는 병사들이 칼을 들이대며 협박하자 어쩔 수 없이 황제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아나스타시오스 2세는 수도에 도착한 반란군과 몇달 동안 격렬한 전투를 벌였으나 끝내 패배했고 니케아로 도망쳤다가 716년에 항복하고 테살로니카의 한 수도원에 감금되었다. 719년, 아나스타시오스 2세는 테오도시오스 3세를 쫓아내고[1] 제위에 오른 레온 3세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의 군대는 그해 11월에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했으나 레온 3세의 진압군에게 궤멸되었고, 아나스타시오스 2세는 체포된 뒤 사형에 처해졌다.

[1] 사실상 안전하게 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