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융

 

韓融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원장(元長). 한소[1]의 아들.
영천 사람으로 명사 진식의 제자. 진식이 죽자 태부령을 지내면서 순상 등과 함께 상복을 입고 장례에 참석했으며, 동탁이 정권을 잡자 공경에 임명되었다. 190년에 원소 등이 산동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한융은 대홍려를 지내고 있다가 음수, 호모반, 오순 , 왕괴 등과 함께 원소 등의 군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원술, 왕광 등에게 살해당했지만 한융 만은 명성과 덕망으로 인해 화를 면했다. 이게 생각보다 상당한 일로 호모반은 왕광의 매부로 왕광이 죽이기 싫어서 눈물을 흘렸지만 원소가 강압적으로 나가서 죽였고, 음수의 경우도 대단한 인물이었는데 얄짤없이 죽었다. 그런데 한융만 살아남은 것이다.
삼보의 난 때 10여 명의 백관들과 함께 헌제를 수종했으며, 195년에 사치와 함께 조서를 받들어 홍농에 장제에게 사신으로 파견되어 이각, 곽사 등을 화해하게 하면서 약탈한 궁인, 공경, 백관들, 승여, 거마 몇 승을 되돌려보내게 해 이들이 모두 안읍에 도착하게 된다.
이후에도 벼슬이 태복에 이르렀으며, 70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1] 영현 현령을 지냈고 후한서에 열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