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광

 



1. 후한 말의 인물



王匡
(? ~ ?)
후한 말의 군벌. 자는 공절(公節). 태산군 봉고현 사람.

1.1. 정사


의협심으로 명망이 높았으며 당대의 명사 채옹에게도 높게 평가받았다. 자기 재산을 가벼이 여기며 남을 돕는데 힘썼다고 한다. 하진이 집권할 무렵 대장군부의 부관으로 있었는데, 하진이 환관을 주살하기 위해 외지의 군사를 소집하자 고향으로 가서 5백의 강노수를 이끌고 돌아와 낙양 근처에 주둔했다. 하진이 살해당할 때는 원소와 합류해 환관들을 쳐죽였다. 이때 원소는 중상시 고망을 비롯한 3명을 주먹으로 쳐죽였다고 한다.
189년에 동탁#s-1이 권력을 잡자 고향으로 낙향해 있던 중 이내 하내 태수로 임명되는데, 190년에 곧바로 반동탁연합군에 가담했다. 위서 상림전에 따르면 이때 유생들을 소속 현에 파견했다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해당하는 돈과 곡식을 내야 용서해주는 특이한 방법으로 물자를 조달했다. 그런데 왕광은 거기서 자신의 위엄을 세운다면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종족을 없애버린다. 이후 하양진에 주둔했다가 거짓퇴각을 하던 동탁군을 추격하다 배후를 찔려 동탁군과의 교전에서 참패했다.
또 동탁에 의해 원소를 설득하기 위해 조서를 가지고 파견된 호모반, 오수, 왕괴 등을 원소의 명령으로 붙잡아 죽였다. 호모반은 왕광의 매부였기 때문에 호모반은 왕광에게 편지를 보내 왕광이 자신에게 하는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성토한다. 호모반의 편지를 읽은 왕광은 호모반의 어린 두 딸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하지만, 왕광은 결국 원소의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고 호모반 등을 공개처형한다.[1] 이후 다시 고향인 태산으로 돌아가 다시 수천 명의 정예병을 모았고 장막#s-2과 서로 세력을 합치려고 계획했지만 호모반의 친족들과 손잡은 조조에게 살해당했다.
의로운 호걸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다지만 어째 원소한테 이용만 당하고 산 것 같다. 장막이 훗날 여포진궁을 끌어들여 조조에게 반기를 든 것으로 보아 194년 무렵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나, 조조가 왕광을 왜 죽였는지, 조조에게 살해당한 시점이 언제인지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서 자세하게 알려진 게 없다.

1.2.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호로관 공략에 참전하여 휘하 중 가장 맹장이라는 방열을 앞세워 여포를 상대하지만 연의이므로 여포에게 방열이 순식간에 끔살당하고 여포가 왕광의 진을 공격하면서 군사들이 흩어지자 크게 패해 간신히 목숨만 구원 받는 걸로 나온다.

1.3. 미디어 믹스



1.3.1.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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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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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2삼국지 3에 출연하고 등장하지 않았다가 삼국지 6에서 다시 복귀했다. 그 이전작까지는 하내라는 도시가 등장하지 않아서 타 세력의 부하 장수로 있다가 삼국지 10부터 본격적으로 군주로 등장하게 된다.[2]
삼국지 8에서는 군주가 아닌 하진이나 상당 태수 장양#s-1의 부하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통솔력 58/무력 60/지력 71/정치력 66.
삼국지 9에서는 이상하게도 노병계 최고 병법인 '''연노'''를 가지고 있다. 무력이 낮긴 해도 다른 장수에게 연노를 가르칠 수 있으므로 나쁘지 않다. 능력치는 통솔력 64/무력 50/지력 61/정치력 71. 연노 외에는 정란, 혼란, 배반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4/무력 57/지력 64/정치력 67/매력 79에 특기는 상업, 화시, 반목, 명사 4개. 정치력이 67이라 상업 특기는 큰 도움은 안 되고 명사 특기가 있다는 것과, 등용셔틀로 쓰는 데에 의의를 두자. 군주로 플레이하기엔 수하 장수가 쓸 만한 놈이 없어서 하드코어하다. 그리고 영웅집결에서는 영웅집결 신등장 세력인 사마의의 거점이 왕광이 있던 하내라서 하진의 부하장수로 신분이 떨어지면서 삼국지 10 등장 세력 중 영웅집결에 등장하지 못하는 유일한 세력[3]이 되고 말았다.
삼국지 11에서는 매력이 80으로 하진군에서는 노식(81)을 제외하고는 최고의 매력이기는 한데 하필이면 특기가 잉여#s-2 특기인 위압이다.
게다가 반동탁 시나리오 때는 병주가 진양 하나로 통합되어서 독립군주가 아닌 장양의 부하로 나온다.
삼국지 12에서는 더 대우가 안 좋아져 짤렸다.
삼국지 13에서 다시 복귀했는데 반동탁연합과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 군주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통솔력 65/무력 55/지력 61/정치력 70이며 중신특성은 없다. 병과적성은 창병 C/기병 B/궁병 B이며 전법은 궁병공격진이다. 특기는 상업 2, 문화 2 밖에 없고 전수특기는 상업이다. 군웅할거 이후의 시나리오에는 사망해서 등장하지 않으나,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군주로 등장한다. 사망년도가 190년도로 설정되었으나 병사는 아니라 사망년도보다 좀 더 오래 사는 경우가는 많다. 부하로는 방열밖에 없으나 반동탁연합(189년) 시나리오에는 방열 외에 한호도 있고 재야에 학맹, 사마랑, 노식 등이 있어서 이들을 활용하면 그나마 해볼 만한 하드코어급 군주. 특별한 재야가 없는 영웅집결이 오히려 더 어렵다. 일러스트는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5, 무력 57, 지력 61, 정치 70, 매력 80로 전작에 비해 무력이 2 상승했다. 개성은 운반, 위무, 여망, 주의는 할거, 정책은 학익강화 Lv 3, 진형은 어린, 학익, 전법은 분전, 격려, 매성, 친애무장은 채옹, 하진, 혐오무장은 동탁이다.

1.3.2. 고우영 삼국지


2권에서 반동탁연합군의 주요 제후로 반페이지나마 임팩트 있게 등장한다. 리더가 없는 연합군은 감독이나 코치가 없는 축구팀(!)과 같다면서 원소를 총사령관으로 추대하는 인물. 그걸로 끝이다.

1.3.3. 영웅조조


유대에게서 동군태수에 임명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교모를 찾아가 유대가 자신의 군영을 포위했다면서 도와달라고 하며, 교모가 유대를 찾아가려고 하자 그 틈을 노려 살해한다.

1.3.4. 레전드히어로 삼국전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에서는 하진의 영웅패로 등장. 2화에서 유비와 관우에게 패배해서 결국 소멸한다. 다만 이름과 달리 사실 유성추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위나라의 장수인 왕쌍과 비슷하다. 같은 '왕'자로 시작하는 하진 수하 장수여서 모티브를 따온 듯.

1.3.5. 토탈 워: 삼국


삼탈워에서는 마이너 세력 수장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왕광 본인보다 왕광의 아내 이건여정이 더 유명하다. Make Them Unique 참조.

2.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王廣
(? ~ 251년)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 자는 공연(公淵). 왕릉의 장남, 왕비효, 왕금호, 왕명산의 형.
249년에 왕릉이 영호우 등과 함께 초왕 조표를 옹립하고자 해서 낙양에 사신을 파견하자 천자의 폐립은 중대한 일이니 재난의 징조로 삼지 말라고 해서 말렸으며, 한진춘추에 따르면 조상 일파는 민심이 없었지만 사마의 일파는 민심이 있다면서 이를 말렸다.
그러나 왕릉은 이를 따르지 않고 251년에 궐기하려다가 황화와 양홍의 밀고로 발각되었는데, 이 때 왕광은 상서를 지내면서 사마의의 지시로 동쪽으로 가 왕릉을 편지로 항복시켰다. 왕광은 뜻이 있고 학문, 덕행이 숭상되었지만 40여 세에 사망했으며, 위지에 따르면 왕릉이 주살당했을 때 함께 죽었다고 한다.
장제가 사마의와 대화를 통해 왕광에 대해서 문무를 견줄만한 자가 없고 아버지 왕릉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했다.

2.1. 미디어 믹스


진삼국무쌍 6에서는 왕릉의 난 때 등장해 동생인 왕비효, 왕명산, 왕금호 등을 설득하려고 해서 왕비효, 왕명산, 왕금호 등의 군단을 혼란시키는 역할로 나온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왕릉이 조표를 옹립하려고 하자 삼족 멸할 일 있냐면서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니라 했고 조상 일파가 하도 난리를 쳐서 사마의가 권력을 잡아 백성들이 사마의에게 있다고 말렸다.
진삼국무쌍 8에서는 제12장인 조위 정변의 왕릉의 난에서 왕광의 수색이라는 임무로 찾아서 격파해야 할 대상이며,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무장과 만나면 들켰다면서 죽이러 온 것으로 오해하고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공격한다.
왕광이 격파되면 죽이러 온 것이 아닌 것을 깨닫고 아버지인 왕릉을 설득하기로 하며, 수춘성 이동 후에는 왕릉에게 반란을 그만두라면서 혼자의 힘으로 하는 것이 진심이냐고 물어보지만 왕릉은 폐를 끼쳤다면서 사과하고 이미 늦었음을 알린다.
[1] 왕광이 동탁군에게 참패한것과 사신으로 온 매부등을 원소의 명령으로 잡아죽인것의 선후관계는 논란이 있다. 만약 참패후에 동탁의 사신들을 죽인거라면 참패이후에 분개해서 했을거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동탁의 사신들을 먼저 죽이고 난뒤에 참패를 당한거라면 자신의 사신들을 죽인 왕광에게 동탁이 크게 분노한 이유로 왕광군을 공격해 대승을 거둔거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왕광이 매부의 두딸을 끌어안고 펑펑운거라던지 호모반의 편지등을 감안하면 동탁이 먼저 왕광을 회유하기 위해 매부 호모반등을 사신으로 보냈다가 죽임을 당하자 동탁이 분노해서 왕광군을 공격했을거란쪽이 좀더 이치에 맞긴 하다.[2] 다만 삼국지6에서 군주로 등장하기는 했다.[3] 이후 사마의의 영웅집결 거점은 11에서 낙양을 거쳐 12 이후로는 장안으로 옮겨가게 된다. 10 당시에는 하진이 장안에서 거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