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현

 


성명
한태현(韓泰鉉)
족보명
한태연(韓泰淵)
자 / 호
경국(敬國) / 남사(南史)
본관
청주 한씨[1]
생몰
1878년 9월 12일 ~ 1951년 2월 21일
출생지
전라도 남원도호부 사동면 대율리
(현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대율리)
사망지
전라북도 남원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한태현은 1878년 9월 12일 전라도 남원도호부 사동면 대율리(현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대율리)에서 건릉참봉(健陵參奉)을 지낸 한찬석(韓贊錫)과 밀양 박씨 박인수(朴仁洙)의 딸 사이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8월 전협, 최익환(崔益煥) 등이 조직한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한 이후 고향인 남원 지방을 중심으로 조직활동을 벌였다. 그는 남원군 내에 청년단(靑年團)을 조직하고 단장의 일을 맡으면서 주로 청년 단원의 모집에 힘을 기울였고 자금 모금 활동도 전개했다.
그러나 1919년 11월 대동단 본부가 주도한 의친왕의 상하이 망명 계획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면서 대동단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어 동단의 전라북도 지단도 자연히 발각되었고, 이로 인해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0년 3월 15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남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1년 2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한태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참의공파 31세 연(淵)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