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릭 세딘

 

[image]
밴쿠버 커넉스 No. 33
'''이름'''
헨릭 세딘(Henrik Sedin)
'''국적'''
스웨덴[image]
'''출생'''
1980년 9월 26일, 외른셸스비크[1]
'''종목'''
아이스하키
'''소속'''
밴쿠버 커넉스(2000년~2018년)
'''포지션'''
센터
'''신체'''
188cm,85kg
'''드래프트'''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밴쿠버 커넉스 지명
1. 소개
2. 생애
3. 선수 경력
3.1. NHL 드래프트
3.2. NHL 커리어
4.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1. 소개


NHL의 밴쿠버 커넉스 前선수이자 스웨덴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동생인 다니엘 세딘과 함께 밴쿠버에서 트레버 린든에 이어 가장 인기가 많은 선수중 하나이자, 밴쿠버 커넉스 최고의 리즈 시절(2008년~2013년)을 이끈 선봉장중 한명으로 '''NHL 역사상 유일하게 나란히 1000포인트 이상을 쌓은 형제'''이자 이제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르는 '''팀스포츠 사상 가장 독보적인 일란성 쌍둥이'''라고 부를수 있는 선수다.[2]

2. 생애


1980년 스웨덴 외른셸스비크에서 출생했다. 쌍둥이인 다니엘보다 6분 빨리 태어났다. 위로 형제가 두명이 더 있는데, 이 둘과 함께 거리 하키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스하키를 하게 되었고, 외른셸스비크의 아이스하키 클럽인 모도 하키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다니엘과 다른 라인에서 뛰었는데, 고등학교때 다니엘이 레프트윙으로 포지션을 전환하면서 같은 라인에서 뛰게 되었고, 이는 2018년 은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3. 선수 경력



3.1. NHL 드래프트


스웨덴에서 하키로 두각을 내고 있다는 쌍둥이 형제들의 소식은 NHL 각 팀들의 단장들의 귀에 들어갔다. 스카우터들은 세딘 형제들을 오랫동안 지켜보았으며, 두 선수가 같은 라인에서 뛰며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플레이들에 홀딱 빠졌다. 당연히 세딘 형제들은 99년 목 드래프트에 각각 2순위, 3순위로 예상이 되었으며 세딘 쌍둥이는 처음으로 둘이 헤어져 각각 다른 팀에서 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근데 남들보다 더 세딘 형제를 탐내고 있던 괴짜 단장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밴쿠버 커넉스의 GM이었던 브라이언 버크였다. 1999년 드래프트 직전에 있던 세계 대회에서 세딘 형제의 조국 스웨덴은 금메달을 차지하였지만 정작 세딘 형제의 활약은 미비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커넉스에서 파견된 스카우터는 세딘 형제에 푹 빠졌으며, 같이 경기를 본 단장인 브라이언 버크에게 강력하게 주장했다
"우리 쟤네 둘 다 데려와요!!"
"미쳤어? 쟤네 지금 예상 순위가 2,3순위인데 우리는 1라운드 픽도 하나밖에 없잖아"
"아 몰라요. 단장님이 어떻게 해봐요. 쟤네 둘 다 데려와야 합니다"
투정에 가까운 스카우터의 주장에 캐나다로 돌아온 버크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99년 드래프트를 착실히 준비한다.
1999년 드래프트 전 날, 3순위를 가지고 있던 커넉스는 헨릭과 다니엘 중 하나만 지명할 수 있던 상태. 버크는 시카고에 연락해 시카고가 갖고 있던 4순위를 가져오는 대신 커넉스의 수비수 브라이언 맥케이브와 2000년 혹은 2001년 중 시카고가 원하는 밴쿠버의 1라운드 픽을 트레이드 한다.[3]
이렇게 3,4번 픽을 얻었지만 버크가 원하는 건 2픽이었다.(당시 3,4픽을 보유중이다.) 이튿날인 드래프트 당일 드래프트 시작 직전, 버크는 1픽을 갖고 있던 탬파베이에 다시 연락한다. 탬파베이의 1픽을 밴쿠버의 4픽+75번픽+88번픽, 모두 3장의 드래프트 지명권을 내주며 1번 픽을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다음 목표는 애틀란타가 갖고 있던 2번이였는데, 버크는 주저않고 애틀란타에 연락을 해 밴쿠버 소유가 된 1픽을 내주는 대신 2픽과 2000년의 조건부 3라운드 픽을 받으며 1픽으로 세딘 형제들 중 누구도 지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현재 2,3픽 보유)
이 트레이드 모두가 드래프트 전날 밤과 드래프트 시작 직전까지 벌어진 일이다. 브라이언 버크는 녹초가 되었지만 드래프트 장에 입장을 하며 세딘 형제들을 향해 "갓☆챠" 라고 속삭이며 손가락으로 총을 쏴버린다. 하지만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던 세딘 형제들은 어리둥절했다.
드래프트가 시작되고 1픽이 행사 되기 전 NHL 커미셔너인 게리 베트먼이 밤새 일어났던 트레이드의 소식을 장내에 하나 하나씩 전했다. 처음의 밴쿠버-시카고의 트레이드에 어리둥절했던 관중들은 두번째 밴쿠버-탬파 와의 트레이드에 무슨일이 벌어지는 지 인지하기 시작했으며, 마지막 밴쿠버-애틀란타의 트레이드가 발표하자 감탄을 내뱉었다. 드래프트 날에 벌어진 프로 구단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기괴한 트레이드 들 중 하나였다.
당시만 해도 최고의 드래프트라는 평이였으나 결국 1라운드픽중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선수는 헨릭과 다니엘이 유일했다.(1999년 드래프트된 선수들이 넣은 모든 골중 20%가 이 둘이 만들어냈다) 1라운드 픽으로 뽑았던 애틀란타의 패트릭 스테판은 해당 년도 선수들 중 유일하게 NHL에 즉시 전력감으로 예상이 되었으나 커리어 통산 188 포인트만을 기록했고 4순위 파벨 브랜들은 커리어 통산 22 포인트, 5순위 팀 코몰리는 431 포인트, 6순위 브라이언 핀리는 0포인트만 기록하는 등 이 해 드래프트는 세딘 형제 드래프트라 불릴 정도로 세딘 형제가 독보적인 활약을 보였다.(다니엘 1,038 포인트, 헨릭 1,069포인트)

3.2. NHL 커리어


커리어 초반에는 빠르지도 않고, 몸집도 작고, 힘도 약해 파워가 강한 북미 NHL의 힘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세딘 자매"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트레버 린든-마르쿠스 나슬룬드로 이어지는 커넉스 리더쉽 아래에서 묵묵히 경력을 쌓아오면서, 힘싸움에도 밀리지 않게되고,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느린 스피드도 티키타카같이 패스 위주로 하는 쌍둥이 플레이로 보완하였다.
2009-10 시즌에는 팀 사상 첫 MVP를 수상하고 프랜차이즈 기록인 1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도 갈아치우며 득점왕도 수상하였다. 이때 세운 기록인 112 포인트는 이후로는 아직 깨진 적이 없고 21세기 기록중엔 공동 5위의 기록이다. 2010-11 시즌에는 로베르토 루옹고로부터 주장직을 이어받아 커넉스 역사상 13번째 주장이 되었으며, 2018년까지 계속 주장직을 맡아오며 2017년에 커리어 1000 공격포인트를 달성, 프랜차이즈 사상 최다 어시스트, 최다 공격포인트, 최다 경기수 기록을 갈아치운다. 2018년 4월 5일 마지막 홈경기에선 연장전에서 동생 다니엘의 연장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17년간의 NHL 커리어를 끝맺었다.[4] 사실 은퇴 시즌에서도 50포인트씩 기록하며 엄연히 주전이자 팀내 최고급 선수들이여서인지 다들 시즌 끝나기 1주일전에 발표한 은퇴에 놀랐었는데, 박수칠 때 떠나게 되어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
국가대표로써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스웨덴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금메달을 탔고, 2013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역시 금메달을 탔다. 2016년 월드컵에선 같은 드래프트 동기이자 디트로이트 레드윙즈 주장인 헨릭 제터버그가 부상을 당하자 주장으로 참가하였다. 최종 커리어 스탯은 1330경기, 230골, 830어시스트이다.
2020년 2월 12일 동생 다니엘 세딘과 함께 영구결번이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쌍둥이 기믹"하면 생각나는 콤비플레이를 현실로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NHL에서 형제나 쌍둥이가 같이 플레이한 적도 있지만, 세딘 형제만큼 '''커리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팀에서 같은 라인에서 플레이하며 한 시대를 장식한 경우는 없다'''. 애초에 이 둘은 드래프트에서 같이 뽑힐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기적에 가까운 일. 게다가 부상당한적도 그렇게 많지 않아 세딘 형제가 데뷔했을 때부터 은퇴할때까지 94%의 경기에서 같이 뛰었다. 세딘 형제보다 더 NHL 공격 포인트가 많은 형제는 서터 형제와 그레츠키 형제가 있는데, 서터는 6형제인데다가 서로 다른 팀에서 뛴 경우고, 그레츠키 형제는 웨인 그레츠키 혼자서 2800포인트 이상을 독식하고 동생은 4포인트만 올리고 거의 뛰지도 못하고 망한 케이스라 세딘 형제와는 많이 다르다. 그나마 비슷한 경우라면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의 레전드인 모리스 리샤르와 앙리 리샤르 형제가 있는데, 둘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지만 서로 15살이나 차이나 같이 뛴 것은 고작 5시즌 정도였다. 형제가 아니라도 세딘 형제보다 합작한 골이 많은 콤비는 웨인 그레츠키와 Jari Kurri밖에 없다.
헨릭과 다니엘중 더 좋은 선수를 고르자면 아주 약간 커리어 스탯이 더 좋은 헨릭을 고르지만, 둘이 같이 시너지를 내서 파괴력을 보여줬기에 언제나 같이 묶어서 평가한다. 둘이 합작한 골이 그렇지 않은 골보다 월등히 더 많아서 당연할지도. 실제로 커리어 스탯을 보면 차이가 크지 않다.원래는 헨릭이 더 많이 골을 넣던 선수였지만 어느순간부터 헨릭이 어시스트에 치중하고 데니엘이 골을 더 많이 넣게 되었다. 그들의 은퇴경기 마지막 골-어시 합작도 데니엘의 골이었다.
서로 패스를 할때 안보고 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한명이 앞으로 질주해갈때, 뒤에 있는 형제가 상대방 골 뒤의 벽에 강하게 패스하고 그 벽에 맞고 나온 퍽을 그대로 앞서 나온 형제가 슛을 하여 골을 넣는 플레이등, 창의적인 콤비플레이로 유명했다. 틱택토 플레이라고 불리우는, 브레이크에웨이 상황에서 쌍둥이나 쌍둥이+라이트윙이 같이 달려나가 질주하며 서로 패스하다가 골을 넣는 플레이로 골텐더를 자주 농락했다. 여기서 세딘 형제와 함께한 선수는 알렉산더 버로우즈로, 가장 오랫동안 세딘 형제와 합을 맞춘 라이트윙이자 "세번째 쌍둥이"라고 불리웠던 선수이다.
게다가 세딘 형제는 스피드가 빠르지 않지만 서로 패스를 하며 지속적으로 퍽을 사이클링하며 퍽 점유율로 상대를 압박하는 플레이를 많이 보여줬다. 파워로 압박하는 플레이가 많이 보이는 NHL에서 쌍둥이의 콤비플레이로 압박하는 스타일은 세딘 시대동안 밴쿠버의 팀스타일이 되었다. 아직 리그가 점유율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을 때부터 점유율 승부를 했다고 보면 되는데, 이런 스타일은 현재 NHL에서 트렌드가 되었다.
개인 통산 1000번째 공격포인트를 장식한 골. 아이러니하게도 로베르토 루옹고를 상대로 골을 넣었는데, 루옹고는 헨릭 이전 커넉스 주장이였다. 당연히 어시스트는 동생인 다니엘이였다.

5. 기타


  • 17년 간 밴쿠버 간판 스타로 있으면서 도시 발전을 위해 어마어마한 기부를 했는데, 시간만 되면 어린이 병원에 방문하여 어린이 팬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세딘 형제 재단을 만들어 병원에 지속적인 기부도 하였다. 게다가 한번도 트레이드를 한적도 없고 팬과의 불화도 없었을 뿐더러, 대부분 명예의 전당에 갈 것이라 예상하기에 팀내 최고의 레전드로 대우받으며 은퇴하였다. 특히 밴쿠버로썬 유일한 명전 선수인 파벨 뷰레와 꽤 안좋게 이별을 했었고, 나슬룬드나 트레버 린든은 명전 스탯이 모자랄 뿐만 아니라 다른 팀에서도 뛰었고, 루옹고와의 이별도 논란이 있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밴쿠버에서 레전드급 커리어를 보낸 두 선수에 대한 밴쿠버의 사랑은 엄청나다. 게다가 성격도 되게 좋아 어린팬도 많고,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절한 적도 없고, 싸움으로 유명한 NHL에서 페어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 심판이 둘을 착각하여 다니엘이 저지른 반칙 때문에 헨릭을 페널티 박스에 보내버린 적도 있었다.
[1] 스웨덴 북부에 있는 인구 3만명의 작은 소도시이지만 세딘 형제뿐만 아니라 NHL 명예의 전당 선수인 Peter Forsberg와 세딘 형제와 함께 뛴 밴쿠버 커넉스의 전주장 마르쿠스 나슬룬드도 배출해낸 하키의 명가다. 나슬룬드는 쌍둥이들이 어린 시절일 때부터 알았다.[2] 쌍둥이 둘다 프로 스포츠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게 있지만, 같은 팀에서 커리어 내내 명전급 경력을 쌓으며 결국 은퇴도 같이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3] 시카고는 2000년에 픽을 행사한다[4] 여담으로 이 경기에서 등번호 '''22'''번인 다니엘은 등번호 '''33'''번인 헨릭과 '''23'''번인 알렉스 에들러의 어시스트를 받아 2 피리어드 '''33'''초에 시즌 '''22'''호 골을, 연장전 '''2분 33초'''에 '''23'''호 골을 기록했다! 심지어 양 팀 페이스오프 수치는 '''22-33'''으로 커넉스 우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