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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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형갑수(邢甲洙)
본관
진주 형씨
생몰
1892년 10월 9일 ~ 1973년 7월 10일
출생지
전라도 남원도호부
(현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 대산마을)[1]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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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형갑수는 1892년 10월 9일 전라도 남원도호부(현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 대산마을)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남원면 장날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후 그해 8월, 전협·최익환(崔益煥) 등이 전 조선 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하고 서울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여 전라북도지단 총무부장으로서 김재구(金在九)·강경진 등과 함께 남원 지방을 중심으로 단의 조직 확대에 힘을 쏟는 한편 각종 선전물의 배포를 통하여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그가 활약한 남원 소재 전라북도지단에서는 주로 청년 단원을 근간으로 조직 활동을 벌였고, 이들은 자금을 수합하여 서울의 대동단 본부를 지원하기도 했다. 형갑수는 당시 군자금 200원을 납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1919년 11월 대동단 본부가 주도한 의친왕상하이 망명계획이 일본 경찰에 발각됨으로써 대동단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고, 이에 전라북도 지단도 자연히 발각되었다.
그는 곧 체포되어 구금되었다가 1920년 9월 21일 전주지검 남원지청에서 전주지방법원으로 이송되었으며#, 1922년 3월 1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이후 1973년 7월 10일 별세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 진주 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