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등

 


胡騰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자승(子升).
계양군 출신으로 젊어서 두무에게 사사받았고 164년에 호가종사를 지내면서 환제가 남양군을 순수했는데, 공경, 귀척의 거마가 1만여 대나 되어 그 비용을 청구해 다 계산할 수 없었다. 이에 호등이 천자에게는 내외가 없으니 행차하신 곳이 경사로 형주자사가 사례교위와 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에 신은 도관종사와 같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환제가 이를 수락하자 모두가 숙연해 함부로 요구하지 못했으며, 호등은 이로 인해 이름이 알려졌다.
대장군부의 연리가 되었고 168년에 두무가 환관을 몰아내려다가 실패하고 살해당하자 환관들이 두씨 일족을 몰살했는데, 이 때 호등은 홀로 두무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룬 것으로 인해 금고형을 받았다.
두무가 살해될 당시에 두무의 손자 두보가 2살로 환관 조절 등이 두보를 체포하려 했는데, 호등은 장창과 함께 두보를 데리고 영릉군에 숨었다가 나중에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중에 금고형이 풀리자 호등은 상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