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무
1. 개요
竇武
(? ~ 168년)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유평(游平). 부풍군 평릉현 사람.
2. 상세
진번, 유숙 등과 함께 삼군(三君)으로 불린 인물이며, 165년에 장녀 두묘가 궁으로 들어가 환제의 귀인으로 책봉되자 낭중에 임명되었다. 겨울에 두묘가 황후가 되자 월기교위에 올라 괴리후에 봉해졌다가 166년 겨울에 성문교위가 되었으며, 악인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뇌물을 받지 않았다.
청렴하고 강직해 가족이 겨우 먹고 입을 정도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줬다. 167년에 환관들이 권력을 휘둘러 이응, 두밀 등을 체포해 고문하자 환관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당인들과 이응을 석방하는 것에 도움을 줬으며, 같은 해에 환제가 붕어하자 딸인 두묘(환사황후)와 상의해서 해독정후 유굉을 황제로 세우니 그가 영제이다.
영제가 즉위하자 대장군으로 임명되면서 6월 17일에 문희후에 봉해졌으며, 168년에 진번과 환관세력 제거를 모의해 중상시 관패와 소강을 죽였지만 섭정이었던(영제는 당시 13세) 태후의 동의를 얻지 못하자 (장락궁의)태후의 문서를 관장하는 환관세력인 장락상서 정삽을 체포, 고문해 조절, 왕보와 내통하고 있다는 진술을 얻어내었다. 하지만 두무가 잠시 휴가로 집으로 가자 장락궁 오관사 주우가 이를 다른 환관들에게 알렸고 조절과 왕보는 무리를 모아 궁문을 봉쇄하고 영제를 속여 피신시키고 두태후를 구금한 후 인수를 뺐었다.
두무는 조카인 보병교위 두소에게 달아났고 진번은 80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왕보를 꾸짖으며 승명문을 향해 돌격했다가 잡혀 살해됐다. 환관세력은 마침 흉노의 사자로 파견되었다 돌아온 장환을 속여 군사를 내주고 두무를 공격하게 했다. 두무의 병사들은 달아나거나 항복했고 두무와 두소는 자결했다. 두씨 일가 중 벼슬을 하던 이들은 모두 사형되었고 남은 일족들은 모두 교주 일남으로 유배가게 되었다. 두무와 연루된 호분중랑장 유숙, 전 상서 위랑, 시중 유유, 둔기교위 풍술 등도 죽었다.
그의 가족들 대부분은 죽었지만 당시 두 살이던 손자 두보는 두무의 문하생인 호등의 보호 아래에서 살아남았다.
섭정이던 태후의 동의를 얻지 못 한 상태에서 섣불리 중상시 둘을 제거했다가 환관세력의 경계심만 올리고 시간만 끌리다가 휴가로 집에 가는 틈을 보여 환관들의 역습에 죽은 건 하진과 별 차이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반환관의 우두머리인데다가 외척에 대장군으로 조정을 장악했음에도 청렴했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삼군으로 칭송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