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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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의 유명한 만쥬계열 특산물 과자. 이름은 빵이라고 했지만 제과류다.[1] 경상북도 지정 명품, 경상북도 향토 뿌리기업, 경주시 지정 전통음식으로, 경주에 오는 관광객들이 지역 특산품으로 으레 사간다. 개발자는 최영화(1917~1995)[2] 이며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빵 자체는 코팅한 앙금덩어리라 불러도 될 만큼 겉표면의 약간을 제외하면 거의 팥앙금이라 상당히 달다. 다만 문제는 `황남빵` 마크가 찍힌 것은 제법 비싸다는 것. 한입에 집어 넣으면 꽉 차는 황남빵 하나가 1000원이다. 많이 구입해도 할인은 없다.
매장에 가서 뜨거운 걸로 달라 하면 구운 지 얼마 되지 않은 황남빵을 먹을 수 있다. 갓 나온 황남빵은 빵표면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지만, 식으면 팥에서 수분이 나와 표면이 촉촉해지고 속은 약간 굳는다.
경주빵이라는 이름은 이상복 장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장인 이상복은 유복자로 태어나 14살에 황남빵에 입문하여 남다른 성실함과 빵에대한 애착으로 황남빵 1대 장인인 최영화로부터 수제자로 인정받는다. 29살이 되던 해에 1대 장인으로부터 황남빵 간판까지 허락 받아 황남빵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였는데 그시절 스승과 제자의 구두계약으로 이루어진 부분을 최영화옹이 작고한 후 둘째아들이 상표등록을 하면서 간판을 앗아갔다. 큰 상처를 받은 그는 경주를 떠났고,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1998년 경주 엑스포에서 경주 대표로 경주빵을 전국에 알리며 제자를 양성 하였다고 한다. 경주에 그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경주빵집이 많다는 것. 그리고 이상복 장인 또한 다시 경주로 돌아와 그의 이름을 걸고 1대의 전통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곳은 많고 많은 경주빵 제조사 중에 겨우 일부의 이야기에 불과하고, 기술을 전수받지 않고 그냥 만드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경주 시민들도 황남빵이 진퉁이라고 말한다. 혈육이 이어받은 황남빵은 경주에서 가게가 단 두 곳뿐인데 형이 운영하는 『최영화빵』[3][4] 과 동생이 뒤늦게 뛰어들어 가게를 크게 키운 『황남빵』[5] . 일반적으로 황남빵하면 알려져 있는 대로변의 '큰 가게'는 동생 쪽 가게이다. 그리고, 1대 황남빵 장인 최영화로부터 황남빵 간판을 허락받았던 수제자 이상복의 『이상복명과』[본가][분점] . 이 세 곳이 경주지역 황남빵의 3대 빵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복명과의 경주빵을 제외한 경주빵은 황남빵보다 가격이 좀 싸다.[6] 예전에는 개당 500원이었는데 600원으로 올렸다가 요즘에는 700원으로 황남빵과 100원 정도 차이가 난다. 황남빵은 경주빵과 달리 가격을 올린 지가 꽤 됐고, 현재는 1000원이다. 가격 외 차이점은 황남빵의 품질이 더 낫다는 점. 안에 든 팥이 다르다. 황남빵은 팥을 한번 걸러서 팥의 밀도가 높고 촉촉하고, 경주빵은 팥을 그냥 으깨 쓰는지 조금 퍽퍽하다. 경주빵과 황남빵의 스펙 차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냉동 장기보관이다.
황남빵은 실온에서 해동하면 얼리기 전과 품질 차이가 그리 크지 않으나, 경주빵은 꽤 차이가 난다. 게다가 경주빵집 중에는 그렇지 않은 집도 있지만, 중국산 팥을 쓰는 집도 있다. 황남빵은 국산 경주산 아라리 품종을 쓴다. 이상복명과는 강원도 청정지역의 팥을 수매하여 쓴다. 품질을 무시하는 사람은 그냥 일반 경주빵이 싸서 더 높게 치고, 맛을 좀 중시하는 사람은 그래봐야 경주빵은 짝퉁이라고도 하지만 그저 취향 문제. 다만 2012년 11월 이후로 국내산 팥의 농협수매단가가 폭등함으로 인해 개당 800원이 되었고 2019년에는 1000원이다.
이렇게 나름대로 인지도가 높다보니 간혹 웃지 못할 일들이 발생하고는 한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타지에서 오는 사람이나 타지로 선물을 보낼 때 가장 선호시 되는 물품이라는 점에서 생겨나는 일이다. 일례로 경주 지역의 농협 관계자와 농민들이 농업 관련 기술 교류 문제로 한 연구소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이 때 방문 팀들은 총 7팀이었고 각각의 팀들은 관련 문제가 서로 달라 서로 간에 방문 사실만을 알 뿐 다른 팀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몰랐던 상황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에 방문했지만 그들을 맞이한 쪽은 동일했는데 나중에 경주에서 온 팀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 남아 있는 것은 각각의 팀 이름으로 되어 있는 황남빵 7상자였다.
구 '경주황남빵'이 상호와 브랜드명을 '최영화빵'으로 변경했다. 최영화는 위에서 이야기했듯 황남빵을 처음 만든 사람(1대 장인)이다. 포항에 있던 경주 황남빵은 수제자인 이상복장인이 스승으로부터 간판을 이어받아 운영하였는데 현재는 경주에서 '이상복명과' '이상복경주빵'으로 운영중이다. 최영화가 죽기 전에 맏집며느리(현 '황남빵'집 주인의 형수)를 불러 황남빵 관련 모든 기술을 전수하고, '최영화인'이란 도장도 물려주었다. 그래서인지 맛은 '황남빵' 계열 중에선 최고로 친다. 최영화가 제과 기술을 일본인에게 배웠는데, 원래 이런 장인 계통은 '의발 전수'라고 해서 정통후계자를 선대가 지정하는 식이다. 그 정통 후계자가 맏집인 구 '경주 황남빵' 현 '최영화빵'인데, 상표는 동생네가 가진 상황이 되어 상표 관련 소송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배경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여기로 가서 직접 보자. #
경주 사람 중 아는 사람은 아는데, 장조카 아버지가 원래 할아버지에게 의발을 전수받을 거였는데, 일찍 작고하였고 원래는 할아버지도 둘째집에 장사를 물려줄까 상당히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맏집 며느리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장손에게 전하기로 결정했으나, 삼촌이 가게 차려 나가면서 삼촌이 무단으로 자기명의로 '상표를 등록' 하는 흔한 상표등록해킹이 벌어지게 되어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짐. 그것 때문에 싸우고, 소송을 몇 번이나 하고 난리가 났다고. (장인 계열에서 정통후계자 지명이 되었는데 상표권을 다른 사람이 쥐었으니 문제가 안될 리가 없다.) 스승님께 물려받은 황남빵 간판을 걸고 업을 잇던 이상복 장인 또한 이 때에 유년시절과 청년기를 모두 바쳤던 황남빵, 스승님과의 애틋한 추억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순수하게 빵을 사랑하시고 애국자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혈육간의 싸움과 그 속에서 새우등 터졌던 장인 이상복까지. 욕심으로 황남빵이 얼룩졌던 때가 있었다.
하여튼,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결국 장조카가 '경주황남빵' 상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서 미봉되었지만, (아마도 최영화는 두 집이 모두 공히 '황남빵' 상표를 보유하고, 포항에 간판을 내어준 자식처럼 아꼈던 제자 상복이까지 모두 공생하는 상황을 바랐을 테지만)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위태위태하다고 느꼈을 테고, 아무런 보장 없이 버티기 보다 이번에 아예 '황남빵' 이란 상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매장에서 택배배송이 가능하지만 여름에는 부패등의 이유로 추천하지 않았었다. ExCF같이 엉뚱한 곳에서 칭송받고 있기도 하다.(…)[7]
포항에는 '''해맞이빵'''이라고 하는게 있다. 택배배송도 한다. 이 빵은 이상복 장인이 소송에서 상처받고 경주를 떠나 포항에서 만든 빵이다. 지금은 제자에게 물려주고 경주에서 업을 잇고 있는 것이다. 판매단위는 10,15,20,30,40(개). 배송료 별도라고. 예천 용궁면에서는 '''토끼 간 빵'''이라고 하는 게 있다.
2011년 8월 초의 여름휴가 성수기때 경주여행을 가서 두번 찾아간 결과 미리 돈을 낸 다음에 첫날은 2시간 둘째날은 3시간 뒤에 찾아가라고 하였다. 위에 나온 갓나온 뜨거운 빵을 받는것은 성수기엔 어림도 없는일. 아마도 성수기때는 대체로 이럴듯 하다. 근데 성수기때도 타이밍이 맞으면 따뜻한 빵 먹을수 있다.
2016년 현재의 신축된 건물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경주 특산품 전시 판매장[* 경주를 대표하는 먹거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황남빵 본점 외에서 황남빵을 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그런데 웃긴 것은 황남빵 본점이 바로 옆 건물이다(...).]으로 활용중인 바로 옆 낡은 건물에서 황남빵을 판매했었다. 2015년 가게 이전하기 전 모습. 더 옛날의 건물은 현재 최영화빵의 자리이다.
황남빵 먹다 경주빵 먹으면 못 먹는다는 말이 많다. 퀄리티가 다르기 때문. 황남빵은 수제다
서울에서 산다면 잠실 롯데월드몰 5층 쇼핑동에서 갓구운 황남빵을 먹을 수 있다. 황남빵 제빵장인들이 서울로 직접 올라와 빵을 빚는다. 그게 아니면 강남 신세계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에 있는 경주빵매장에서 황남빵의 유사품을 먹을 수 있다.동대구역에도 황남빵 판매소가 있다.
라이벌(?)인 경주빵의 그 많고 많은 제조사 중 하나였던 프라임베이커리[8] 의 강회장이 주차관리인을 폭행하고 어깨를 툭툭 치며 일진이 나빴다고 생각하라는 사과를 한 적이 있는데 시민들의 분노를 사 공개 사과하고 폐업했다.
황남빵 위에 꾹 찍혀진 도장의 문양이 일본 황실의 문장인 국화문양이라는 루머도 있다(...). 그러나 빵에 새겨진 문장은 빗살무늬 토기에서 나온 것으로 황남빵 1대 장인은 개인 소장 중인 독도관련 지도를 국가에 기증할 정도로 애국자였다.
황남빵의 인기는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손님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주문 하나 하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다.
경주 특산물 중 또 다른 빵으로는 찰보리빵이 있다. 이쪽은 단석가가 원조(최초로 발명)이다. 이후, 현재는 신라미소빵, 주령구빵, 첨성호두빵, 곤달비빵, 대릉빵, 계피빵[9] 등 경주에서 파는 빵 종류가 꽤 많아졌다. 그러나 경주빵집에서 짝퉁 찰보리빵까지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찰보리떡, 쌀빵 등도 만들기도 한다.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의 유명한 만쥬계열 특산물 과자. 이름은 빵이라고 했지만 제과류다.[1] 경상북도 지정 명품, 경상북도 향토 뿌리기업, 경주시 지정 전통음식으로, 경주에 오는 관광객들이 지역 특산품으로 으레 사간다. 개발자는 최영화(1917~1995)[2] 이며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2. 형태
빵 자체는 코팅한 앙금덩어리라 불러도 될 만큼 겉표면의 약간을 제외하면 거의 팥앙금이라 상당히 달다. 다만 문제는 `황남빵` 마크가 찍힌 것은 제법 비싸다는 것. 한입에 집어 넣으면 꽉 차는 황남빵 하나가 1000원이다. 많이 구입해도 할인은 없다.
매장에 가서 뜨거운 걸로 달라 하면 구운 지 얼마 되지 않은 황남빵을 먹을 수 있다. 갓 나온 황남빵은 빵표면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지만, 식으면 팥에서 수분이 나와 표면이 촉촉해지고 속은 약간 굳는다.
경주빵이라는 이름은 이상복 장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장인 이상복은 유복자로 태어나 14살에 황남빵에 입문하여 남다른 성실함과 빵에대한 애착으로 황남빵 1대 장인인 최영화로부터 수제자로 인정받는다. 29살이 되던 해에 1대 장인으로부터 황남빵 간판까지 허락 받아 황남빵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였는데 그시절 스승과 제자의 구두계약으로 이루어진 부분을 최영화옹이 작고한 후 둘째아들이 상표등록을 하면서 간판을 앗아갔다. 큰 상처를 받은 그는 경주를 떠났고,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1998년 경주 엑스포에서 경주 대표로 경주빵을 전국에 알리며 제자를 양성 하였다고 한다. 경주에 그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경주빵집이 많다는 것. 그리고 이상복 장인 또한 다시 경주로 돌아와 그의 이름을 걸고 1대의 전통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곳은 많고 많은 경주빵 제조사 중에 겨우 일부의 이야기에 불과하고, 기술을 전수받지 않고 그냥 만드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경주 시민들도 황남빵이 진퉁이라고 말한다. 혈육이 이어받은 황남빵은 경주에서 가게가 단 두 곳뿐인데 형이 운영하는 『최영화빵』[3][4] 과 동생이 뒤늦게 뛰어들어 가게를 크게 키운 『황남빵』[5] . 일반적으로 황남빵하면 알려져 있는 대로변의 '큰 가게'는 동생 쪽 가게이다. 그리고, 1대 황남빵 장인 최영화로부터 황남빵 간판을 허락받았던 수제자 이상복의 『이상복명과』[본가][분점] . 이 세 곳이 경주지역 황남빵의 3대 빵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복명과의 경주빵을 제외한 경주빵은 황남빵보다 가격이 좀 싸다.[6] 예전에는 개당 500원이었는데 600원으로 올렸다가 요즘에는 700원으로 황남빵과 100원 정도 차이가 난다. 황남빵은 경주빵과 달리 가격을 올린 지가 꽤 됐고, 현재는 1000원이다. 가격 외 차이점은 황남빵의 품질이 더 낫다는 점. 안에 든 팥이 다르다. 황남빵은 팥을 한번 걸러서 팥의 밀도가 높고 촉촉하고, 경주빵은 팥을 그냥 으깨 쓰는지 조금 퍽퍽하다. 경주빵과 황남빵의 스펙 차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냉동 장기보관이다.
황남빵은 실온에서 해동하면 얼리기 전과 품질 차이가 그리 크지 않으나, 경주빵은 꽤 차이가 난다. 게다가 경주빵집 중에는 그렇지 않은 집도 있지만, 중국산 팥을 쓰는 집도 있다. 황남빵은 국산 경주산 아라리 품종을 쓴다. 이상복명과는 강원도 청정지역의 팥을 수매하여 쓴다. 품질을 무시하는 사람은 그냥 일반 경주빵이 싸서 더 높게 치고, 맛을 좀 중시하는 사람은 그래봐야 경주빵은 짝퉁이라고도 하지만 그저 취향 문제. 다만 2012년 11월 이후로 국내산 팥의 농협수매단가가 폭등함으로 인해 개당 800원이 되었고 2019년에는 1000원이다.
이렇게 나름대로 인지도가 높다보니 간혹 웃지 못할 일들이 발생하고는 한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타지에서 오는 사람이나 타지로 선물을 보낼 때 가장 선호시 되는 물품이라는 점에서 생겨나는 일이다. 일례로 경주 지역의 농협 관계자와 농민들이 농업 관련 기술 교류 문제로 한 연구소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이 때 방문 팀들은 총 7팀이었고 각각의 팀들은 관련 문제가 서로 달라 서로 간에 방문 사실만을 알 뿐 다른 팀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몰랐던 상황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에 방문했지만 그들을 맞이한 쪽은 동일했는데 나중에 경주에서 온 팀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 남아 있는 것은 각각의 팀 이름으로 되어 있는 황남빵 7상자였다.
3. 최영화빵, 이상복경주빵과의 관계
구 '경주황남빵'이 상호와 브랜드명을 '최영화빵'으로 변경했다. 최영화는 위에서 이야기했듯 황남빵을 처음 만든 사람(1대 장인)이다. 포항에 있던 경주 황남빵은 수제자인 이상복장인이 스승으로부터 간판을 이어받아 운영하였는데 현재는 경주에서 '이상복명과' '이상복경주빵'으로 운영중이다. 최영화가 죽기 전에 맏집며느리(현 '황남빵'집 주인의 형수)를 불러 황남빵 관련 모든 기술을 전수하고, '최영화인'이란 도장도 물려주었다. 그래서인지 맛은 '황남빵' 계열 중에선 최고로 친다. 최영화가 제과 기술을 일본인에게 배웠는데, 원래 이런 장인 계통은 '의발 전수'라고 해서 정통후계자를 선대가 지정하는 식이다. 그 정통 후계자가 맏집인 구 '경주 황남빵' 현 '최영화빵'인데, 상표는 동생네가 가진 상황이 되어 상표 관련 소송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배경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여기로 가서 직접 보자. #
3.1. 세 집(?)간의 소송에 얽힌 뒷 이야기
경주 사람 중 아는 사람은 아는데, 장조카 아버지가 원래 할아버지에게 의발을 전수받을 거였는데, 일찍 작고하였고 원래는 할아버지도 둘째집에 장사를 물려줄까 상당히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맏집 며느리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장손에게 전하기로 결정했으나, 삼촌이 가게 차려 나가면서 삼촌이 무단으로 자기명의로 '상표를 등록' 하는 흔한 상표등록해킹이 벌어지게 되어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짐. 그것 때문에 싸우고, 소송을 몇 번이나 하고 난리가 났다고. (장인 계열에서 정통후계자 지명이 되었는데 상표권을 다른 사람이 쥐었으니 문제가 안될 리가 없다.) 스승님께 물려받은 황남빵 간판을 걸고 업을 잇던 이상복 장인 또한 이 때에 유년시절과 청년기를 모두 바쳤던 황남빵, 스승님과의 애틋한 추억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순수하게 빵을 사랑하시고 애국자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혈육간의 싸움과 그 속에서 새우등 터졌던 장인 이상복까지. 욕심으로 황남빵이 얼룩졌던 때가 있었다.
하여튼,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결국 장조카가 '경주황남빵' 상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서 미봉되었지만, (아마도 최영화는 두 집이 모두 공히 '황남빵' 상표를 보유하고, 포항에 간판을 내어준 자식처럼 아꼈던 제자 상복이까지 모두 공생하는 상황을 바랐을 테지만)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위태위태하다고 느꼈을 테고, 아무런 보장 없이 버티기 보다 이번에 아예 '황남빵' 이란 상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4. 기타
매장에서 택배배송이 가능하지만 여름에는 부패등의 이유로 추천하지 않았었다. ExCF같이 엉뚱한 곳에서 칭송받고 있기도 하다.(…)[7]
포항에는 '''해맞이빵'''이라고 하는게 있다. 택배배송도 한다. 이 빵은 이상복 장인이 소송에서 상처받고 경주를 떠나 포항에서 만든 빵이다. 지금은 제자에게 물려주고 경주에서 업을 잇고 있는 것이다. 판매단위는 10,15,20,30,40(개). 배송료 별도라고. 예천 용궁면에서는 '''토끼 간 빵'''이라고 하는 게 있다.
2011년 8월 초의 여름휴가 성수기때 경주여행을 가서 두번 찾아간 결과 미리 돈을 낸 다음에 첫날은 2시간 둘째날은 3시간 뒤에 찾아가라고 하였다. 위에 나온 갓나온 뜨거운 빵을 받는것은 성수기엔 어림도 없는일. 아마도 성수기때는 대체로 이럴듯 하다. 근데 성수기때도 타이밍이 맞으면 따뜻한 빵 먹을수 있다.
2016년 현재의 신축된 건물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경주 특산품 전시 판매장[* 경주를 대표하는 먹거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황남빵 본점 외에서 황남빵을 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그런데 웃긴 것은 황남빵 본점이 바로 옆 건물이다(...).]으로 활용중인 바로 옆 낡은 건물에서 황남빵을 판매했었다. 2015년 가게 이전하기 전 모습. 더 옛날의 건물은 현재 최영화빵의 자리이다.
황남빵 먹다 경주빵 먹으면 못 먹는다는 말이 많다. 퀄리티가 다르기 때문. 황남빵은 수제다
서울에서 산다면 잠실 롯데월드몰 5층 쇼핑동에서 갓구운 황남빵을 먹을 수 있다. 황남빵 제빵장인들이 서울로 직접 올라와 빵을 빚는다. 그게 아니면 강남 신세계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에 있는 경주빵매장에서 황남빵의 유사품을 먹을 수 있다.동대구역에도 황남빵 판매소가 있다.
라이벌(?)인 경주빵의 그 많고 많은 제조사 중 하나였던 프라임베이커리[8] 의 강회장이 주차관리인을 폭행하고 어깨를 툭툭 치며 일진이 나빴다고 생각하라는 사과를 한 적이 있는데 시민들의 분노를 사 공개 사과하고 폐업했다.
황남빵 위에 꾹 찍혀진 도장의 문양이 일본 황실의 문장인 국화문양이라는 루머도 있다(...). 그러나 빵에 새겨진 문장은 빗살무늬 토기에서 나온 것으로 황남빵 1대 장인은 개인 소장 중인 독도관련 지도를 국가에 기증할 정도로 애국자였다.
황남빵의 인기는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손님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주문 하나 하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다.
경주 특산물 중 또 다른 빵으로는 찰보리빵이 있다. 이쪽은 단석가가 원조(최초로 발명)이다. 이후, 현재는 신라미소빵, 주령구빵, 첨성호두빵, 곤달비빵, 대릉빵, 계피빵[9] 등 경주에서 파는 빵 종류가 꽤 많아졌다. 그러나 경주빵집에서 짝퉁 찰보리빵까지 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찰보리떡, 쌀빵 등도 만들기도 한다.
[1] 우리나라에서 빵이라고 생각하는 것 대다수는 사실 제과의 영역에 들어간다.[2] 최영화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경주제일교회의 창립자들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지금 황남빵을 운영하는 최영화의 후손들도 경주제일교회에 출석한다고 한다.[3] 경상북도 경주시 북정로 6-1 (황오동)[4] 과거 경주황남빵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었다. 가문의 황남빵 제조기술을 이어받은 큰며느리가 운영 중이다.[5] 경상북도 경주시 태종로 783 (황오동)[본가] 경상북도 경주시 첨성로 169 (인왕동)[분점] 경상북도 경주시 첨성로 61 (사정동)[6] 황남빵, 이상복경주빵은 100% 국산팥을 쓴다고 하니 원가가 더 나갈 수밖에 없다.[7] 이전 항목에서는 까이고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해당항목을 읽어봐도 알 수 있듯이 까이는건 경주빵이다 .[8] 코레일에 납품했었다.[9] 경주빵 반죽에 팥 앙금을 넣고 계피가루를 묻혀 고구마 모양으로 성형한 뒤 구워낸 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