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황후 송씨

 


'''후한의 황후
孝靈皇后 | 효령황후
'''
<colbgcolor=#a11> '''시호'''
없음
'''별칭'''
폐후(廢后)
'''성씨'''
송(宋)
'''출생'''
불명
'''사망'''
178년
'''재위'''
'''후한의 황후'''
171년 ~ 178년
'''부군'''
영제(靈帝)
'''부친'''
송풍(宋酆)
1. 소개
2. 생애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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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후한 영제의 첫 번째 황후이자 폐위된 황후이다.
폐위된 황후라서 시호가 없고 효령황후는 시호가 아니라 존호이다.[1]
이름은 전하지 않으며 부풍 평릉 사람으로, 장제귀인 송씨의 종증손녀이다.

2. 생애


영제 건녕 3년에 간택되고 액정으로 입궁하여 귀인이 되었으며, 다음 해에 황후로 세워졌다.
아버지 송풍은 집금오(執金吾)로 임명되고 불기향후(不其鄉侯)로 봉해졌다.
황후는 영제의 총애를 받지 못해 그저 황후의 지위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고, 실제로 총애받는 여러 후궁들에게 참소를 당하고 있었다.
당초 중상시(中常侍) 왕보(王甫)가 당시 환관 중에 실세로서 황족인 발해왕(勃海王) 유리(劉悝)를 참소하여 주살한 일이 있었는데, 발해왕비 송씨도 옥중에서 죽었다. 그런데 발해왕비가 송황후의 고모였다. 이 때문에 왕보는 황후가 고모의 일로 원망을 품고 자신을 해치리라 생각해서 선수를 쳤다. 황후가 저주를 행하고 있다고 모함한 것이다.
영제는 이 모함을 신뢰하였고, 광화 원년에 책서를 내려 황후의 새수(璽綬)를 거두니 스스로 폭실(暴室;궁정 내 감옥)로 가 있다가 걱정 속에 병이 나서 사망하였고, 아버지와 형제 모두 연좌되어 주살되었다.
궁에서 황후를 가까이 시봉하였던 상시와 소황문들은 모두 송황후와 그 가문이 무고하게 희생된 것을 가련히 여겨, 십시일반으로 재물을 각출하여 장사지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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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호는 소헌황후 하씨, 효인황후 동씨, 경황후 주씨의 사례처럼 부군의 시호를 중복해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