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인민소비품
1. 개요
'''8.3 인민소비품''', 줄여서 '''8.3 제품'''이란 북한에서 직장 내 부산물이나 폐기물 등을 재활용하여 국가계획과는 별도로 추가 생산하는 제품을 일컫는다. 남한으로 치면 부업벌이를 장려한것이지만 북한의 부족한 소비재 공급을 그나마 채워줌과 동시에, 원시적인 시장경제의 싹을 틔웠다고 평가받는다.
2. 기원
8.3제품의 기원은 김정일이 1984년 8월 3일 평양의 전국경공업제품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생산 부산물과 폐기물을 활용해 생활필수품을 많이 만들라"고 지시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미 북한은 만성적인 소비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조금이라도 타개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지시에 따라 ‘8.3 인민소비품창조운동’이 조직되어 북한 전국의 사업소에서 각종 8.3제품들(주로 생활잡화나 식료품 따위)이 생산되어지기 시작했다.
3. 상세
초창기 8.3제품은 대개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부녀자나 노인들에 의해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생산되는 조악한 품질의 것들로서, 심지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긴 했지만 이를 직접 판매할 수도 있었다.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채택 이후 처음으로 국가계획에 잡히지 않는 상품의 생산과 유통 경로가 생겨난 것이다.[1] 여기서도 손재주 좋은 사람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알음알음 부수입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빈부격차라는것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김정일은 이에 대해 딱히 단속은 하지 않았는데 아러한 조치가 북한이 고난의 행군 이후 사회복지제도가 붕괴된 이후의 시장경제 적응을 할수있게 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8.3제품의 생산은 북한 인민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되었다. 북한 당국이 사회통제를 이유로 가동을 멈춘 직장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출근을 강요하였기에(!), 차라리 직장에 8.3생산을 위한 자재 수집을 명목으로 돈을 내고 그 시간에 부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지로 떠오른 것이다. 이렇게 직장에서 빠져나간 노동자들을 8.3노동자, 이들이 대신 고인 뇌물은 8.3돈, 이렇게 돈을 주고 하는 장사를 8.3장사라고 부른다(...). 그렇게 불어난 생산단위를 갖추게 된 8.3제품들의 생산이 크게 확대된 바, 이 시기부터는 정품 못지않은 양과 질을 자랑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왜 국영 공장기업소 입장에서 8.3 생산이 사민들에게 돈을 받아먹는 신세로 전락했는가? 원칙적으로 8.3운동은 폐품 및 폐자재를 이용하여 재생산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정품 자재는 당연히 국가의 생산계획 및 공급망에 의하여 조달,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폐품 및 폐자재 재활용이라는 게 '''엄청나게 비효율적'''이라는 것. 특히 폐금속자재의 재활용은 원래의 철광석제품을 녹여 쓰는 것 이상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데, 김일성 동상 밝힐 전기도 간당간당한 판에 일선 공장기업소에서 그런 한가한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시장경제체제라면 원자재가격과 폐자재가격, 에너지비용 등을 금전적으로 측정하여 높은 전기요금을 저렴한 폐자재가격으로 보완함으로써 경쟁력을 얻을 수 있으나 사회주의체제인 북한은 이런 금전적인 상호보완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하도 자재 공급이 안되다보니 이젠 공식 경제부문에서 공식 생산계획을 수행하는 것조차 폐자재를 어떻게든 써먹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단적으로 북한 내에서 생산되는 철근의 상당수는 각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파철을 뽑아내 조달하는 상황이고, 아예 공식적으로 주민들에게 폐자재 수집을 시킨다.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서술 중심이었던 90년대 교과서에서는 북한 학생들이 '''꼬마계획'''이라는 폐자재 수집을 다녀야 한다고 설명했는데, 이게 2020년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1~2개월에 한번씩 각 시도단위로 파철을 수집해 총력을 기울여 철강부문에 실어나르는 게 당당히 로동신문과 조선중앙TV의 지면을 장식하고 김정은이 파철용광로 제작현장을 현지지도할 지경이니 말 다했다. 최근에는 숫제 '절약이자 증산'이라는 구호 아래 폐설물, 폐자재 재활용을 국가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외국으로부터 쓰레기 수입을 안해온것은 아니고 실제로도 1990년대에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일본 등으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재활용 쓰레기를 다량 수입했었다. 이 당시에 물자가 한창 귀했던 시절인지라 외국 쓰레기 가운데서도 쓸만한것들은 알뜰살뜰하게 써먹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 즈음해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터져나오고 북한이 일단 굶어죽지는 않는 수준이 되면서 이런 재활용 쓰레기의 수입을 중단했다. 그렇지만 중국제 쓰레기는 일부는 수입하고 있기는 있다고.
4. 기타
8.3제품들의 질이 좀 떨어지다 보니, 북한 내에서 "8.3"이란 표현은 "가짜", "야매", "모자르다" 등의 뜻으로 변질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1] 1960년대까지는 북한에도 국유화되지 않은 개인 소상공이 존재했다. 농산물은 이미 1960년대부터 농민시장에서의 개인거래가 허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