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88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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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8 항쟁 당시 버마의 승려들
버마어: ၈၄လုံး 또는 ရှစ်လေးလုံး
1988년 8월 8일 ~동년 9월 16일까지 버마에서 네 윈 정권에 반대하여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다. 명칭의 기원은 1988년의 88과 8월 8일의 88을 합친것이다. 1962년 이래로 버마는 네윈 장군이 이끄는 군부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네 윈은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성립시키고 이른바 '버마식 사회주의'를 이룩하자며 경제를 국유화시키고 화교, 인도인 상인까지 추방시켜가며 경제적 자급자족정책을 펼쳤으나, 결국 버마는 세계경제에서 고립되게 되었고 대신 아편 밀거래를 묵인했다. 그에 따라 버마의 경제는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1987년에 유엔측은 버마를 '세계 최빈국'으로 지정했다.
1987년 9월에 군부는 버마의 일부 통용지폐를 회수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고, 이에 대학생은 군부의 정책에 반대한다. 그리하여 군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버마의 경제는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8월 8일에는 8888항쟁이 일어나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격렬해진다.
그러자 네 윈 정권은 한국5.18 민주화운동중국천안문 항쟁 때처럼 군대를 동원해서 잔혹하게 진압하였으며, 3000명의 시민들이 군에 의해 총에 맞아 죽었다. 특히 셰인 르 윈 대통령 때에 더 강경해져 이 참상이 세계 외신을 타고 보도되면서 네 윈 군사정권은 국제사회에서 비난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네 윈도 무사하지 못하여 소 마웅 장군 등이 조직한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 세력이 군부 내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네 윈을 강제 퇴진시켰고, 민중항쟁은 1988년 9월 18일 종료됐다. 그러나 군사정권을 퇴진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이들도 막상 총선에서 친군부 세력이 참패하자 총선결과를 무효화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며 정권을 독차지하였고, 결국 미얀마 군사정부는 26년간 정권을 연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