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식 90mm 박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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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94식 경박격포는 1934년(쇼와 9년)에 완성하고 1936년(쇼와 11년)에 제식 제정되어 일본 제국 육군 에서 운용된 박격포이다. 일반 박격포로서의 운용뿐만 아니라 독가스 전용의 가스탄 투사 박격포로도 개발되었다. 때문에 최소한 보증된 위력의 가스탄 운용을 위해 원형보다 구경이 커진 90미리 정도가 된 것.
가스탄 겸 유탄 사용의 박격포 로 스토크 블랑 식 박격포를 확대하는 형태로 연구 개발되었다. 원형에서 구경 · 중량이 증가했기 때문에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바탕판의 확대와 간단한 소형 주퇴 복좌 장치를 포신과 바탕판에 설치했지만,이 때문에 구조가 복잡해지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같은시기에 연구 개발 된 96식 중박격포 역시 주퇴 복좌 장치를 가진다.
또한 이 무기가 경 박격포라고 불리는 것은 후술하는 바와 같이 그 개발 경위에 의한 것이며, 운용 형태는 오히려 중박격포와 비슷하게 운용되었다. 당시 일본 육군 에서는 보병 대대, 중대 등이 운용하는 박격포는 "곡사보병포"라는 명칭이 부여되어 있으며, 똑같이 스토크 블랑식 박격포를 바탕으로 했지만 주퇴복좌장치를 생략한 단순화와 구경이 9mm 정도 줄어든 97식 박격포 역시 상당수 생산하였다.
2. 개발
당시 일본 육군은 이미 보병 지원용 화포로 92식 70mm 보병포를 생산해 사용하고 있었지만 야전에서 사용할 박격포 채택의 필요성 역시 느끼고 있었기에 유탄 이외에도 가스탄 역시 투사가능한 화학전 용도로 성능을 요구하고 이에 따른 개발이 진행되었다.
1932년 10월부터 설계에 착수, 이듬해 5월에 시제 포를 완성했지만, 전술 한 바와 같은 가스탄 투사 장치로서의 성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형의 스토크 블랑 포에서 사거리 연장, 구경의 증대를 요구하었기 때문에 사격 반동이 커져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바탕판을 확대시켯으나 이렇게 되자 야전에서 운반등이 불편해질 정도로 중량이 증가하였기에. 간단한 주퇴 복좌 장치를 추가하고 반동을 흡수시켜 소형화와 경량화를 도모했지만, 구조는 복잡하게되었고 총 중량도 160kg정도로 가까웠기에 별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유탄 사격시에 정확도가 낮아지는 문제점이 있기에 주퇴 복좌 장치를 추가했다고 한다.
1933년 12월, 1934년 6월, 같은 해 8월 3회에 걸쳐 각종 시험을 받았었는데 화학전 무기 테스트로서 육군 나라시노 학교와 육군 보병 학교에 위탁하고 실제 시험이 실시되었다. 포병화기 이지만 보병 학교가 심사를 실시한 이유는 곡사보병포같은 화기 경험이 풍부하고 육군 야전포병 학교 보다 적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일부 우려되었던 중량증가로 인한 운반시 기동성 저하 문제는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해당 무기가 구경과 중량이 큰 데 비해 "경박격포"라 불리게 된 것도 운반 및 방열에 차량이 필수적이지 않고 도수운반이 가능하도록 개발방향을 잡았었기 때문이다.
3. 생산 및 배치
1936년 - 1939년 (쇼와 14년)까지 450대 가량이 생산되며, 주로 중국 전선의 박격포 대대의 주요 병기로 배치되었다.
박격포 대대는 3개 중대 편제에서 1개 중대 당 12문을 장비했다.
실전에서 사용한 평가에 따르면 구조가 복잡하고 무게도 꽤 나간 점이 지적받아 생산 주퇴 복좌 장치를 생략하고 구조의 단순화 및 경량화를 도모한 97식 박격포가 후계로 개발돼 생산됐지만, 94식 역시 제2차 세계 대전 종결때까지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오사카 조병창 제일 선반의 조사에 따르면 1942년 (쇼와 17년) 10월까지 생산 수 (박격포 제조 완성 수)는 608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