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where at the end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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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은 2016년 9월 22일 영국의 음악가 The Caretaker(본명 James Leyland Kirby)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6차례에 걸쳐서 공개한 연작 앨범의 이름이다. 앞글자만 따서 EATEOT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체로 1920~40년대에 유행했던 영국 무도회 음악(British Dance Band #) 스타일의 음악을 변형시켜 믹싱한 느낌을 준다.
앨범 커버는 모두 Ivan Seal이 담당했다.
2. 상세
이 앨범은 기억상실, 특히 '''치매'''의 진행과 그에 따른 경험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처음에는 향수를 일으킬 만한 분위기의 음악으로 시작해서 회고를 묘사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주제 자체가 어둡고 무서운 것인 만큼, 평범하게 시작했던 앨범은 곡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로 바뀐다. 특히 일부 곡은 노이즈가 더 끼거나 악기 또는 음이 빠지는 등의 변형을 거쳐서 다시 나오기 때문에 기시감과 괴리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When work began on this series it was difficult to predict how the music would unravel itself. Dementia is an emotive subject for many and always a subject I have treated with maximum respect.
Stages have all been artistic reflections of specific symptoms which can be common with the progression and advancement of the different forms of Alzheimer's."
"이 시리즈에 작업을 시작했을 때, 음악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 지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치매란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감정을 일으키는 주제이며, 저에게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주제였죠.
각 스테이지는 다양한 종류의 알츠하이머 병이 진행됨에 따라 흔히 발생하는 각각의 질병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The Caretaker, 작가 코멘트. 출처
참고로 작가 본인은 치매를 앓고 있지 않다고 한다. #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The Caretaker"란 프로젝트에게 치매를 준 것이라고. 1999년부터 시작한 The Caretaker란 프로젝트는 사람의 기억과 추억, 상실과 그에 대한 슬픔을 소재로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 바로 이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
어느 순간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로 전환하는 앨범이니만큼, 음악을 들을 때 주의하도록 하자. 기분이 안 좋거나 우울하다면 가급적 듣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하 STAGE 1부터 STAGE 6은 각 앨범의 수록곡과 분위기를 설명한다.
2.1. STAGE 1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의 처음을 장식하는 앨범. 작가가 "아름다운 몽상"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곡들은 향수를 자극할 만한 재즈풍 음악에, 레코드판에서 플레이할 때 날 법한 약간의 노이즈가 추가되어 있다."Here we experience the first signs of memory loss. This stage is most like a beautiful daydream. The glory of old age and recollection. The last of the great days."
"우리는 여기서 기억상실의 첫 증상을 경험합니다. 이 단계는 아름다운 몽상에 가장 가깝습니다. 과거의 영광과 회상, 최고의 순간의 마지막."
- 작가 코멘트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곡들과는 달리, 그 제목들은 무언가 불길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후술할 테지만, 앨범의 첫 번째 곡인 "It's just a burning memory"는 1931년 곡인 알 보울리의 Heartaches란 곡의 믹스이다. 제목도 곡의 가사 중 하나인 "I can't believe it's just a burning memory" (그저 불타는 기억일 뿐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에서 따온 것이다. 원곡인 Heartaches에서 이 앨범의 It's just a burning memory로 건너 오면서 곡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는지 눈치채는 일부 감상자들은 이 첫 곡에서부터 소름이 돋는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2.2. STAGE 2
전체적으로 1단계와 비슷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에 약간의 노이즈가 추가된 형태이다. 다만 전에 비해서 노이즈가 약간 더 강해졌으며, 곡 분위기의 변형 역시 바로 눈치챌 정도는 아니지만 다소 강해졌다. 일부 트랙은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 초반에 노이즈나 음산한 효과음만이 10초 가량 지속된다."The second stage is the self realisation[3]
and awareness that something is wrong with a refusal to accept that. More effort is made to remember so memories can be more long form with a little more deterioration in quality. The overall personal mood is generally lower than the first stage and at a point before confusion starts setting in.""둘째 단계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깨달음과, 그것을 부정하려는 시도입니다. 기억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며, 그 과정에서 기억이 조금 더 망가집니다. 전체적 기분은 첫째 단계보다 더 낮은 편이며, 혼란이 들어앉기 전의 지점에 있습니다."
- 작가 코멘트
이전보다 분위기가 가라앉음과 동시에 약간 불길한 느낌이 들지만, 이런 점들을 애써 무시한다면 여기까지는 잔잔한 힐링 음악이 될 수 있다. ''여기까지는.''
2.3. STAGE 3
2단계까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느끼기 힘들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여기서는 이상함을 바로 눈치를 챌 것이다. 이전까지는 배경음이나 노이즈 정도에서 변형이 일어났다면 이제는 주 멜로디에서의 뒤틀림을 감지할 수 있게 될 정도. 악기들이 중간중간 아무런 소리를 안 내거나, 노이즈가 악기 소리를 덮어 버리거나 잘 진행되던 음악이 중간에 '''툭 끊기고''' 다음 음악으로 곧바로 넘어가 버릴 때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음색을 내는 것이 무슨 악기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이다."Here we are presented with some of the last coherent memories before confusion fully rolls in and the grey mists form and fade away. Finest moments have been remembered, the musical flow in places is more confused and tangled. As we progress some singular memories become more disturbed, isolated, broken and distant. These are the last embers of awareness before we enter the post awareness stages."
"여기서 우리는 혼란이 온전히 자리앉고, 회색 안개가 만들어지고 흩어지기 전의 마지막 형용 가능한 기억들을 보게 됩니다. 가장 소중한 순간들이 기억되고, 음악적 흐름이 군데군데 뒤틀리고 엉켜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외딴 기억들이 더 교란되고, 격리되고, 부서지고, 동떨어집니다. 이 모든 것은 탈인식 단계에 진입하기 이전의 인식의 마지막 불씨입니다."
- 작가 코멘트
이 단계에서는 E와 F 넘버링 사이에서의 차이도 꽤 크다. E까지는 그래도 형용할 수 있는 음악이 들리지만 F부터는 슬슬 음악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의 심한 음색과 박자의 뒤틀림, 또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노이즈가 짙게 깔리는 등의 효과가 곡을 묻어버릴 정도로 변형되어서 재생된다.
그렇게 "인식의 마지막 불씨"마저 꺼지면서 3단계가 끝이 난다. 이 이상 나아가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여담으로, 이 스테이지에서 등장하는 인명인 Benjamin과 Libet은 인간의 의식을 연구하던 미국의 신경과학자 벤자민 리벳을 일컫는 것으로 추정된다.
2.4. STAGE 4
'''탈인식 단계의 시작.''' 3단계까지는 조금 많이 왜곡된 기억도 하나의 기억으로 특정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수많은 기억들이 하나로 합쳐져 어느 것 하나 특정해 낼 수 없을 정도로 얽혀 버린 것을 표현하듯, 짙게 깔린 기계적 잡음 너머로 왜곡되고 뒤죽박죽된 악기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인지 여기서부터는 곡 하나 당 20분 이상 질질 끈다."Post-Awareness Stage 4 is where serenity and the ability to recall singular memories gives way to confusions and horror. It's the beginning of an eventual process where all memories begin to become more fluid through entanglements, repetition and rupture."
"탈인식 4단계는 평온함과 단발적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능력이 혼란과 공포에게 자리를 내주는 순간입니다. 모든 기억이 얽힘과 반복, 부서짐으로 인해 흐르기 시작하는 작용의 시작입니다."
- 작가 코멘트
중간에 "일시적 행복의 순간"에서는, 음악이라고 불러주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오르골인지 모를 소리가 노이즈 사이로 들리면서 일시적으로 행복한 느낌을 주긴 한다. 그러나 이 순간도 곡 중반쯤 넘어가서는 노이즈에 파묻히기 시작하고, 후반에는 노이즈가 너무 짙어서 이외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작가의 넘버링은 계속 알파벳만 바꾸기 시작한다. 각 알파벳이 치매의 진행도를 상징한다면, 여기서부터는 상태 악화가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할 지도.[7]
2.5. STAGE 5
4단계에서 경험한 것 이상의 더욱 격렬한 변조와 꼬임이 기다리고 있다. 혼란을 나타내는 듯한 엉망진창의 악기 소리가 페이드 아웃 하더니 "평온한 순간"을 나타내듯 탁한 노이즈만이 남는 순간도 존재한다. 잔뜩 꼬인 악기 소리와 짙은 노이즈를 반복하지만, 후반에 갈수록 복잡하게 꼬인 음색마저 사그라들고 노이즈만 남게 된다."Post-Awareness Stage 5 confusions and horror. More extreme entanglements, repetition and rupture can give way to calmer moments. The unfamiliar may sound and feel familiar. Time is often spent only in the moment leading to isolation."
"탈인식 5단계 혼란과 공포. 더욱 격렬한 얽힘, 반복과 부서짐이 가끔 평온한 순간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낮선 것이 익숙하게 들리거나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간은 오로지 그 순간에만 할애되며 이는 고립으로 이어집니다."
- 작가 코멘트
특이하게도 이 단계의 제목은 다른 단계의 시적 느낌의 단어 선택과는 다르게 치매로 인해 발현하는 증상을 노골적으로 제목에 채용했다.
2.6. STAGE 6
마지막 단계."Post-Awareness Stage 6 Is without description."
"탈인식 6단계는 설명이 없습니다."
- 작가 코멘트
여기서는 더 이상 소리의 꼬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끔찍하게 자욱히 깔린 잡음과 길게 깔린 톤 일부만이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 노이즈 너머로 어떤 음색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런 것을 생각해 봤자... 47번 트랙 제목처럼 "잊는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망가진 정신은 이미 음색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생각은 불가능하다.
더 이상 기억할 것이 남아 있지 않는 의식, 아니, 탈의식 속에서 울려 퍼지는 공허한 소리만이 이 앨범의 마지막 단계를 가득 채울 뿐이다.
[ 스포일러 ]
4분 동안 한 줄기 구원 같은, 장송곡 같은 슬픈 멜로디가 기억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노이즈도, 선율도 모두 페이드 아웃하며, 남은 1분 동안 기다리는 것은 캐릭터 The Caretaker의 사망을 상징하는 정적뿐이다. 그렇게 앨범이 끝이 난다.}}}
3. 유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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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경, 틱톡의 한 유저 ech0nic가 슬픈 분위기의 곡을 듣고 싶다면 이 앨범을 찾아서 들어 보라는 영상을 올렸다. 틱톡발 인기는 곧 "한 자리에 앉아서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기 챌린지"로 뻗어 나갔고,[10] 그렇게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은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관련 기사
유명세 발원지가 좀 문제가 있다 보니 "진지한 질병을 진지하게 다루는 앨범 가지고 챌린지나 만들고 있냐"라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은 어찌 되었건 치매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 공감을 젊은층에서 이끌어낸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전했다고.
다만 이 유명세는 서양권 중심, 특히 북미와 호주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을 벗어나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음악으로 치매를 표현한다"는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그 느낌을 훌륭히 소화해낸 대단한 실험 작품이라는 평이 중론.
4. 기타
- 자매 앨범(?)으로 Everywhere, an empty bliss가 있다. 본작인 Everywhere at the end of time에서 수록되지 않은 임시 작품들을 컴파일해서 업로드한 것으로 보인다. ("Compiled from unreleased archival works by Leyland Kirby")
- 이전 작품 중 An empty bliss beyond this world가 있다. 이 앨범은 2011년 6월 1일에 만들어졌고, 소재는 본작과 마찬가지로 치매지만, 이쪽은 치매 환자들이 음악을 기억하고, 음악을 매개로 해서 장소, 사람과 기분을 기억해 낸다는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동명의 곡이 본작 36번(F6)에 있기도 한다.
4.1. "STAGE 0"
흔히 사용되는 치매의 척도는 Global Deterioration Scale(GDS)를 기반으로 한다.#[11] GDS는 치매의 진행도를 총 7단계로 나누는데, 이 중 1단계는 무증상(No cognitive decline)이다.
이와 같은 문맥에서 일부는 비록 The Caretaker가 무증상 단계인 STAGE 0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전혀 왜곡되지 않은 원곡 소스들이 그것이다. 특히 이 앨범의 처음을 장식하는 곡의 원곡인 Heartaches가 0단계의 상징으로 가장 많이 지목된다. 0단계는 무증상 -> 왜곡되지 않은 기억을 의미하므로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다른 원곡 소스들도 0단계를 상징할 수 있는데, 문제는 Heartaches만 알려져 있고 나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