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986년
1. 참가팀
한일은행 축구단은 축구대제전에만 참가하고 프로축구선수권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2. 리그 방식
1986시즌은 아마추어와 프로팀이 격돌하는 ‘축구대제전(기존의 수퍼리그)’과 프로팀들만 참가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로 리그를 분리해 운영했다. 축구대제전은 지난해 우승팀 럭키금성을 비롯 대우, 포항제철, 현대, 유공 등 프로 5개 팀과 한일은행이 참가했다. 춘계리그와 추계리그로 나누어 각각 30경기씩 60경기를 치렀고, 각 리그 우승팀이 챔피언결정전을 가져 종합 우승팀을 가렸다. 이와 함께 프로 5개 팀만 참가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를 신설해 프로팀의 연고지를 순회하며 경기를 가졌다.[1]
3. 클럽 순위
- 승리 시 승점 2점, 무승부는 승점 1점을 획득한다.
- K리그 1986 시즌 챔피언 결정전 진출
- 승리 시 승점 2점, 무승부는 승점 1점을 획득한다.
- K리그 1986 시즌 챔피언 결정전 진출
- ⑴ 대우 로얄즈는 동아시아 국가 소속 클럽으로는 최초로 아시아 클럽대항전 대회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회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 ⑵ 현대 호랑이는 프로 팀들만의 대회를 치르기 위해 처음으로 시행된 프로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4. 사건/사고
4.1.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1983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김종부는 각 프로팀들에게 눈독의 대상이었다. 해외의 각종 잡지에서 김종부를 86년 월드컵 대표팀의 핵심으로 간주했고 실제로 월드컵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하면서 기량을 발전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3월 21일 대표팀 전지훈련으로부터 귀국한 김종부를 놓고 현대와 대우가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대우는 이미 김종부의 작은형을 구단 경리담당으로 임명하고, 과거 2년간 김종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족까지 접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상황이었다. 현대도 만만치 않아서, 김종부의 모교인 고려대에 3억원의 시설투자를 약속했고, 고려대 측에서는 김종부에게 현대로 갈 것을 권유하게 된다.[2] 김종부는 대우로 가고 싶은 의사를 여러번 드러냈으나 학교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현대는 김종부와의 가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며 법정싸움으로 옮겨가겠다는 자세를 취했고 김종부가 대우와 현대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혼란을 빚자 여론 또한 악화해간다. 결국 체육부가 나서서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고려대가 김종부의 제명을 요구하면서 축구협회는 김종부를 월드컵 대표에서 제외하는 충격적인 일로 이어진다. 결국 축구계가 나서서 김종부 구명운동이 일어나고 김종부는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합류하여 득점도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대우와 현대는 한치도 물러섬이 없이 김종부를 두고 계속 대결을 벌였고, 이와중에 상처를 받는 것은 선수 뿐이었다. 월드컵 이후로도 계속된 싸움은 현대의 팀해체 위협과 축구계 내분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우도 현대도 아닌 포항으로 김종부는 리그 데뷔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1년간 운동을 쉰 김종부는 이전의 기량을 회복할 수 없었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다 결국 95년 그렇게 가고 싶었던 대우에서 씁쓸한 은퇴를 하게 된다.
5. 다른 시즌 보기
[1] 원래 이번 시즌부터 홈 앤드 어웨이의 지역연고에 기반한 리그를 실행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체육부는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명목아래 반대의사를 표시했으며, 경품으로 관중을 유치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인터뷰까지 했다.[2] 이러한 접촉을 안종복 당시 대우 사무국장이 등장해서 저지한다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