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리그컵
[clearfix]
1. 개요
리그컵은 한국프로축구연맹에 가입된 구단들이 참가하는 컵 대회다. 1986년 프로축구선수권대회란 이름으로 처음 개최됐지만 이듬해 폐지되고, 1992년부터 다시 개최되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는 리그컵이 한 개 대회 추가되어 한 해에 두 개나 되는 리그컵을 소화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2001년부터는 한 개 대회가 폐지되어 다시 단일 리그컵 체제로 복귀하게 되었다. 1992년 리그컵이 다시 개최된 그 초기에는 부족한 리그의 경기 수를 채우는 장점이 뚜렷하여 그 순기능이 많았지만, 리그에 참가하는 팀이 많아지고 리그컵 자체에 동기 부여 요소가 생기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결국 리그컵은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의 주 무대란 오명을 쓰면서, 2011 시즌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대회 진행 방식은 마지막 시즌인 2011 시즌을 기준으로, K리그의 16팀 중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는 4팀은 본선 8강에 자동 출전하고, 나머지 12팀은 6팀 1조 2개조로 나뉘어 예선 조별리그를 치렀다. 각 조의 조별리그 상위 2팀이 8강에 진출하고, 8강 자동 출전 4팀과 예선 조별리그를 통과한 4팀 총 8팀이 8강부터 단판 토너먼트를 치러 승부를 가렸다.
2. 역사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1986년 창설된 프로축구선수권대회를 리그컵의 시초로 보고있다. 하지만 프로축구선수권대회의 시작 이유는 조금 특별했다. 1985년 당시 축구대제전(K리그의 옛 이름)에는 프로 구단뿐만 아니라 실업 구단까지 참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축구대제전과 다르게, 프로 구단만 참가하는 리그를 만들기 위해 별도로 창설한 것이 프로축구선수권대회였다. 하지만 1987년부터 축구대제전이 실업 구단의 참가가 불가하도록 규정이 바뀌고, 리그의 명칭을 축구대제전에서 한국프로축구대회로 변경하면서, 프로축구선수권대회는 1986 시즌 한 시즌만 열리고 1987년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그 후 1992년 아디다스가 스폰서로 나서 개최된 아디다스컵이 본격적인 리그컵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리그컵이 다시 도입된 배경은 이번엔 전과 조금 달랐다. 1991년 당시 한국프로축구대회에 참가하던 구단은 6개 구단밖에 되지 않았다. 때문에 리그의 부족한 경기 수를 채우기 위해 리그컵을 도입한 것이었다. 리그컵은 '''3월 리그컵 시작 + 5월 리그 시작'''의 형태로 대회 일정을 계획하여, 새 시즌 주전 선수들이 리그에 앞서 출전해 상대와 벌이는 전초전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 리그컵의 위상은 리그와 맞먹을 정도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1996년 대한축구협회 FA컵이 창설되었고, 1997년 리그컵에 프로스펙스컵이 추가 개최되면서 리그컵이 2개가 되었다. 그 결과, 한 해에 리그를 더해 총 4개 대회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리그컵이 재등장한 1992년부터 리그컵이 한 개 뿐이던 1996년까지, 리그컵은 3월에 시작하여 5월 리그 시작 전에 종료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1997년 리그컵이 한 개 추가 신설되면서, 3월 시작되어 5월 리그 시작 전에 종료되는 리그컵과 리그와 병행되어 주중에 치러지는 리그컵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리그컵이 리그와 병행된다는 문제점과 주중에 경기가 치러진다는 문제점 때문에, 1998년에는 리그컵 두 개가 리그에 앞서 진행되고 리그가 7월에 개막하도록 일정이 변경되었다. 그럼에도 1999년, 또 다른 문제점인 리그의 개막 시기가 너무 늦다는 점 때문에, 3월 시작되어 5월 리그 시작 전에 종료되는 리그컵과 리그 진행되는 중간에 일정을 비워 8월에 한꺼번에 치러지는 리그컵으로 일정이 다시 변경되었다. 2000년에는 리그 진행되는 중간에 일정을 비워 한꺼번에 치러지는 리그컵의 일정을 10월로 또 다시 변경하였다.
1999년에는 리그 우승팀과 FA컵 우승팀이 맞붙는 슈퍼컵까지 추가 창설되었고, 결국 컵 대회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2001년 리그컵 2개 중 1개가 폐지되었고, 3월 시작되어 리그 시작 전에 종료되는 일정의 단일 리그컵 체제가 되었다. 리그컵은 2003년 아디다스가 스폰서를 그만두고 대체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2003년 한 해 개최되지 않다가, 2004년부터 삼성전자가 스폰서를 맡게 되면서 다시 개최되었다.
2004년부터 다시 개최된 리그컵은 리그 중간에 일정을 비워 한꺼번에 치르는 일정과 리그 시작 전에 치르는 일정 등을 오락가락 하다가, 2007년부터 리그와 병행되어 주중에만 치러지는 일정으로 변경되고 이 방식으로 고착되었다. 이때부터 리그컵은 감독과 선수단, 축구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구단에서도 리그컵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서, 감독들이 리그컵 경기가 열릴 때는 2군이나 신인 선수들을 참가시키고,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테스트를 간다는 등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도 리그컵이 신인 유망주 테스트용 대회로라도 쓸모가 있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물론 감독들의 태도가 리그컵을 2군 대회 수준으로 격하시켰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2011년 7월 스포츠서울이 울산 현대 김호곤 감독과 나눈 인터뷰에서 김호곤 감독은 "뭐하러 하는 대회인지. 나는 대회에 나가지도 않고, 코치들에게 실력 발휘나 시키는 대회이자 2군 선수들 테스트나 하는 수준의 대회다."라고 대놓고 대회를 비판했다. 이런 소리가 매체와의 인터뷰에 나갔을 만큼, 당시 감독들은 리그컵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더불어 예전과 달리 리그에 참가하는 구단이 16개나 되기 때문에, 부족한 경기 수를 채울 필요가 없어 리그컵을 없애자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나왔다. 유럽에서도 프리미어 리그,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리그 앙, 분데스리가 등 일부 리그들만 리그컵을 운영하고 있는데다가, 분데스리가의 리그컵 DFL-리가포칼은 2008년부터 프리 시즌의 평가전 수준의 대회로 위상이 격하되어 사실상 폐지되었다.[2]
게다가 K리그 리그컵의 우승 상금은 고작 1억 원이었고, 대회의 위상이 점점 낮아지다 보니 스폰서를 잡지 못해 매년 애를 먹었다.[3] 우승 상금이 적으면 대회에 다른 동기 부여 요소라도 있어야 했지만, 리그컵에는 그것마저 없었다. 2008 시즌에는 리그컵 우승팀에게 팬퍼시픽 대회의 출전권을 수여했지만, 이 대회는 미국에서 여는 클럽 친선전 수준의 대회에 지나지 않았고, 이 대회마저도 2008년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2009 시즌에는 리그컵 우승팀에게 홍콩 구정컵의 출전권을 수여했지만, 이마저도 한 시즌에 그치고 말았다. 일본 J리그의 리그컵인 J리그컵은 우승하면 A3 챔피언스컵이나 코파 수다메리카나의 출전권을 수여했다. 코파 수다메리카나는 유로파 리그나 과거 아시안 컵 위너스컵처럼 남미 리그 리그컵이나 FA컵 우승팀이 나가는 대회다. 하지만 이 대회도 결국 남미와 일본의 리그컵 우승팀끼리 갖는 친선전 수준의 대회에 지나지 못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가 역사를 더해가며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일본 J리그컵도 동기 부여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J리그컵은 이미 1부 리그 팀들만 대회에 참가하고 있어, 리그컵이란 정의에 부합하지도 못하고 있다.
리그컵에 대한 동기 부여와 대회 위상 제고를 위해, 오세아니아 클럽 대항전 우승팀과 슈퍼컵 형식으로 격돌하게 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호주가 AFC로 오게 되면서, 달랑 뉴질랜드 팀들이나 나오는 수준의 대회가 되어, 친선 경기와 차이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 흐지부지 되었다. 또 리그컵 우승팀에게 리그 최종 3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주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AFC로부터 거부당하여 이 또한 무산되었다.
리그의 경기 수가 부족했을 때는 리그컵에 해당되는 컵 대회가 한 해에 두 개나 되었을 만큼 리그컵이 흥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리그에 참가하는 팀의 수가 늘어나고, 리그컵에 대한 동기 부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리그컵은 감독과 선수단, 축구팬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그러다가 리그컵은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의 주 무대가 되면서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게 되었고, 결국 2012년 대회가 폐지되면서 리그컵의 역사도 끊기게 되었다.
3. 전망
리그컵이 부활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2009년만 해도 스폰서를 구할 수 없어,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이던 곽정환[4] 이 어렵사리 장인의 인맥으로 피스컵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스폰서를 끌어왔고, 2011년에는 사채업 기업을 스폰서로 둬야 할 정도로 기업들에게 외면 받는 대회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리그의 경기 수가 과거보다 늘어난 이상 부활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게다가 해외에 리그컵을 운영하는 리그보다 운영하지 않는 리그들이 훨씬 많은데, 리그컵을 부활시킨다면 어떤 이유로 부활시켜 다시 운영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기도 쉽지 않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2013년 새로 창설되는 2부 리그와 1부 리그 간의 교류전을 위해 리그컵의 부활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단들은 탐탁찮다는 반응이었다. 리그의 경기 수 자체가 이미 많은 데다가, 리그컵 자체에 별다른 동기 부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1부와 2부 간의 교류전은 이미 FA컵에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스플릿 시스템을 수정해서 리그 일정을 줄여볼 수 있다고 답했지만, 구단들은 리그컵을 있으나 마나한 대회로 여기며 부활을 반대했다.
결국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 속에 리그컵의 부활은 꿈도 못 꾸고 있는 상황이며, 이후 부활할 가능성은 굉장히 작다. 그런 와중에 2군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준다는 명분은 2군 리그인 R리그가 2016년에 부활하면서, 어쩌면 유일했던 대체 이유마저 가져갔다.
4. 연혁
4.1. 역대 우승팀
4.2. 우승 횟수
5. 스폰서
6. 관련 문서
[1] K League Cup은 잘못 알려진 명칭이다.[2] DFL-리가포칼은 2008년부터 경기 시간이 전/후반 각각 30분이며, 우승을 거둬도 기록이 남지 않는다. 독일에서도 있으나마나한 대회라서 없애려는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남았다.[3] 잉글랜드의 카라바오컵은 우승 상금이 약 10억 원으로, 우승 상금도 적고 중계권 수익도 굉장히 적지만 UEFA 유로파 리그 출전권이 걸려 있으며, 리그컵 우승이 나름대로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에 선수진도 화려하게 나오는 편이다. 게다가 하위 리그의 선수들은 FA컵과 마찬가지로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면 상위 리그로 진출하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하위 리그의 선수들은 혼신을 다하는 대회이기도 하며 실제로 상위 리그 진출 사례도 있다.[4] 통일교 문선명의 사위.[리그전] A B C D E F G H I J 풀 리그의 리그전을 치러 우승팀을 가렸다.[5] 자료를 찾으면 삽입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