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3TV

 


1. KBS 제3텔레비전
2. EBS 독립


1. KBS 제3텔레비전



'''CI 변천과정'''
[image]
[image]
'''KBS 3TV 1세대 로고 (1981년 ~ 1984년)'''
'''KBS 3TV 2세대 로고 (1984년 ~ 1990년)'''
1981년 2월 2일부터 1990년 12월 26일까지 한국방송공사 소속으로 있었던 채널. 현 EBS의 '''전신'''으로, 교양 프로그램은 KBS가 제작하고 교육프로그램 제작은 한국교육개발원 교육방송본부가 맡는 식이었다.
1980년에 KBS 및 MBC에서 '''가정고교방송'''이 KBS 3텔레비전의 일종의 파일럿 버전으로 편성했다가, 언론통폐합 이후로 개국작업에 착수하여 1981년 2월 2일부로 기존의 KBS 1TVKBS 2TV에 이어서 3번째 KBS 소속채널로 출범 및 방송을 시작했다.[1] 하지만 UHF 34번 채널로 방송을 내보냈기 때문에 난시청 지역이 많아 제대로 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많았고, 운영면에서도 KBS와 KEDI가 같이 운영하는식이었기 때문에 어쩡쩡하게 운영된데다가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 교육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교양 프로그램이라는 특성상 시청률도 한자릿수대에 머물렀기 때문에[2] KBS 입장에서도 나름대로 애물단지였다. 이로 인해서 불만을 반영해서 1987년에 VHF 13번으로 채널을 변경했다. 1980년대 전반기에는 오전방송을 하지 않으면서도 타 채널과 똑같이 오후 5시 30분에 방송을 시작했지만 시청률 확보를 위해서 1987년 5월 11일부터 방송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서 오후 4시 30분에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4시 30분부터 5시 30분에 한해서 시청률이 높아졌다. KBS3라는 독립된 방송국을 가진 뒤에도 가정고교 시리즈는 KBS3TV의 플래그쉽 프로그램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본래는 교육 및 학습 위주로 방영하게 된 채널이었으며 KBS의 소속채널이긴 하지만 KBS 1TV, KBS 2TV와는 달리 교육 및 학습 위주의 프로그램을 방영했기 때문에 독립적인 성향이 짙었으며 1, 2TV와는 달리 상업광고를 보내지 않았다.[3] 그 당시를 살아온 세대들에게는 지금의 EBS가 아닌 KBS 3TV라는 호칭이 익숙한 편. KBS3 시대를 대표했던 강사로는 이규희, 강영은 서강대 교수, 안영휘 중앙대 교수, 서한샘 한샘학원 원장, 천한신 한샘학원 강사 등이 있었는데, 주로 학원 강사나 현역 교사를 썼다.
방송프로그램 시작전후의 ID는 KBS3 로고를 넣은 사진 혹은 그림만 달랑 한장 띄우고 아무런 배경음도 없이 "KBS, 제3텔레비전입니다" 라는 나레이션만 나오는 식으로 당시 타 KBS국들에 비해 매우 무미건조했다.[4]
한편, 1988 서울 올림픽 경기를 중계했던 적도 있었는데[5] 서울 올림픽 당시 KBS가 IOC 대한민국 주관 방송사로 승인되었기 때문에 1, 2, 3TV 모두 서울 올림픽 경기방송을 보냈던 것. 이 때문에 교육채널이 왜 스포츠 중계방송을 내보냈냐는 일부 시청자들의 항의도 있었다.[6]

2. EBS 독립


1990년 12월 27일부터 KBS에서 분리되어 KEDI 교육방송본부는 '교육방송원'으로 개편된 후 완전히 KEDI 산하 방송국이 되어 EBS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1997년부터 KEDI에서 분리되어 '한국교육방송원'이 되었다가 2000년부터 기존의 EBS를 재편해 한국교육방송공사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당시에 EBS를 KBS 3TV로 재통합하는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되기도 했다. EBS가 KBS로부터 분리된 이후로 부족한 예산과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제기능을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이 당시에 재통합이 확정되었으면 EBS는 당대 방송정책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흑역사 방송국으로 이름을 남겼겠지만 이러한 논의는 KBS나 EBS나 사내에서 탐탁치 않게 여겼고 결국 재통합은 무산되어 현재까지도 KBS와 EBS는 별개의 방송국으로 운영되고 있다.



[1] 다만 KBS 3TV에서 일요일을 제외하면 오전방송은 일절 하지 않았기에, KBS 1TV와 MBC 아침시간들 이용하여 몇년간 유지되어왔으며, 가정고교방송 재방송이 폐지된 이후에도 1991년 봄개편 이전까지 아침뉴스가 시작하기전에 어학강좌 등 교육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관행이 남아있었다.[2] 이 당시의 시청률 조사방식은 전화설문조사였기는 했지만 시청률 조사방식이 달라도 어쨌든 시청률이 낮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3] 1981년 3월 7일부터 1994년 9월 30일까지는 1TV도 상업광고를 제한적이지만 편성했었다. 반면에 EBS 출범 이후에도 상업광고를 보내지 않았다가 1997년이 되어서야 상업광고를 시작하였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그런 것이고 비공식적으로 이미 90년대 중순부터 제작비 충당문제때문에 협찬광고를 내보낸다는 명목으로 상업광고 몇편씩을 내보냈었다. 이게 공식화된 것이 1997년이라는 것.[4] 물론 KBS 1TV 및 2TV도 아무런 배경음 없이 "KBS 제1텔레비전입니다", "KBS 제2텔레비전입니다" 라고 배경화면과 함께 나레이션만 나오는 식이었지만 1984년을 기점으로 1TV는 풍경영상을 내보내는 식으로, 2TV는 애니메이션을 내보내는 방식으로 변경된 반면에 KBS 3TV는 ID영상을 풍경영상으로 대체한다거나 하는 것 없이 그대로 유지했다.(다만 일부 지방국의 경우에는 KBS 1,2가 정적인 ID를 탈피했는데도 여전히 멘트와 함께 정적인 배경으로 처리하는 방식의 ID가 좀더 유지되었던듯 하다. 일례로 KBS 부산의 경우 "KBS 부산방송총국 제X텔레비전입니다" 라는 멘트가 뜨기도 했다.)이 특성은 EBS 독립후 EBS 초창기 ID 연출에도 잠깐이나마 고스란히 유지되었다.[5] 다만 상업광고 편성을 하지 않았기에 비인기 종목 위주로 중계방송했다. 단적인 예로 경기시간이 4시간 넘게 걸리는 사이클 도로경기 전체를 대한민국 방송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생중계해준 게 이곳이다.[6] 그래도 교육방송의 주 업무를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KBS 3TV는 교육방송이라는 특성상 아침 방송이 없는 대신 저녁 방송을 타 방송사보다 1시간 이른 4시 30분부터 시작했는데, 다른 방송채널들이 대부분 프로그램의 편성을 중단하던 와중에도 3TV 정규방송은 편성 중단없이 그대로 다 방송했다. 올림픽 중계는 원래 방송을 하지 않던 오전 시간대 및 낮 시간대에 방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