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s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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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데야마 토시미츠(出山 利三)
'''예명'''
토시(Toshl[1])
'''출생'''
1965년 10월 10일(58세)
일본 치바현 타테야마시
'''국적'''
일본 [image]
'''소속 그룹'''
X JAPAN
'''직업'''
가수
'''악기'''
보컬, 기타, 피아노
'''공식 사이트'''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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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메탈 밴드 X JAPAN의 보컬리스트. 특유의 록 보컬이면서도 짙은 감성을 가진 목소리로 메탈 곡뿐만 아니라 발라드 곡도 잘 소화해낸다. 전성기 시절에는 초고음의 보컬리스트로 유명했다. 최근에는 엔카 가수처럼 보이는 경향도 있다.

2. 생애


  • 본명은 데야마 토시미츠(出山利三).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X의 원년 멤버로서 요시키와는 유치원에 다닐 무렵부터의[2] 오랜 친구였다. 요시키는 중고등학생 시절 폭주족 양아치였지만, 토시는 매우 평범하고 얌전한 학생이었다. 요시키가 비행을 저지를 때 토시는 선도부로써 그런 행동을 단속했다고 한다. 둘은 노는 세계가 전혀 달랐지만 후에 X 결성을 할 만큼 절친으로 지냈다.
  • 어릴 때부터 맑고 깨끗하면서도 특색이 강한 미성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데 처음 소년기에 요시키와 밴드를 결성하던 시절에 담당하던 포지션은 기타리스트였지만 중학교 재학 중 본래 보컬을 담당하던 멤버가 사정이 생겨 밴드를 나가게 되어, 이를 계기로 요시키의 권유를 통해 보컬로 전향하였다.[3]
  • 1987년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특유의 맑고 깨끗하면서도 특색이 강한 미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동년 가을경 X가 본격적인 밴드 활동에 앞서 팀의 재정비에 돌입한 뒤 1987년 겨울 X의 활동이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기존의 맑은 미성에 허스키함을 가미하는 쪽으로 변화를 주게 되었다. 본인은 다양한 창법을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 또한 밴드 활동을 위해 생목을 사용하였다.
  •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와 더불어 X의 음악, 특히 요시키의 요청에 따라 토시는 그가 만족할 때까지 레코딩에서도 라이브에서도 있는 대로 목을 혹사해야 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활동 양상으로 말미암아 토시의 목에는 심대한 무리가 작용하였고 결국, 1995년 겨울 달리아 투어를 통해 X JAPAN으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하던 시점에 이르러서는 음역의 하락과 동시에 과거 컨디션이 호조일 시에 보이던 특유의 시원시원하던 매력 역시도 상당 부분 상실하기에 이른다(이미 1993년 미국 진출 과정에서 신곡 ART OF LIFE 발표 등 무리한 스케줄 때문에 성대결절이 온 적이 있다.).
  • 성대 부상 후 94년도부터 조금씩 허스키를 뺀 부드러운 스타일로 창법을 바꿔가다가 96년 달리아 투어 즈음엔 그런 스타일을 완성시켜 무시무시한 보컬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는 등 연도마다 기복이 심한 편.
  • 이후 1997년 라스트 라이브와 뮤직 스테이션 및 홍백가합전에서의 마지막 무대 그리고 1998년 히데의 장례식에서 연주한 마지막 진혼가를 끝으로 X JAPAN 과는 결별,[4] 이후 사이비 종교 HOH(Home of Heart)의 교주 MASAYA의 주도하에 본격적으로 사이비 종교 HOH의 광고탑으로서의 활동을 개시, 이때 HOH에 몸담던 시기에 힐링 음악을 하는 바람에 보컬로서의 기량은 점차적으로 쇠퇴하게 된다. 이런 시기, 2000년 한국 창원에서 열린 창원 록 페스티벌에 La'Cryma Christi와 함께 일본 측 헤드 라이너로 참가하기도 했다.
  • 당시 HOH에 빠지게 된 계기가 좀 특이한데, 1994년경 어느 뮤지컬 오디션에 그가 심사위원으로 있었는데, 이때 오디션에 참가한 여자인 모리타니 카오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사람이 바로 현재 이혼한 전처, 그러니까 당시 여자친구였다는 거다. 그리고 1997년에 결혼했을 당시의 전처가 하필 HOH의 신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2009년경 자신이 힐링 음악 연습 중에 만성 스트레스로 쓰러지면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가 쓰러진 걸 발견하여 병원까지 데려간 한 기획사의 사장의 도움으로 영화처럼 HOH 탈주에 성공했고, 이듬해 2월 11일에 HOH를 심판하는 첫 단계로 당시 아내와도 13년 만에 이혼했고, 같은 해 4월 23일 HOH와 MASAYA를 법정에 세워 심판하고 해체시키는데 성공한다. 당시 전처에 의해 HOH 세미나에서 교주의 명령으로 고통 속에서 소리를 지른 건 물론이고 신도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기까지 했을 정도라고 하며, 사이비 종교에 빠졌을 당시 전처가 자신이 번 돈을 관리했을 정도로 갈취[5]와 폭행 피해는 더 심해졌고 급기야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급거 입원하기까지 하고도 사람을 보고도 낯을 가릴 정도로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자신을 구해 준 그 기획사 사장은 물론이고 요시키에게도 고맙다고 하니 오히려 신의 한 수가 된 셈.
  • 그러다가 X JAPAN의 해체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 토시는 X JAPAN을 재결합하여 더 많은 돈을 바치라는 교주의 명령을 받고 요시키에게 연락하여 X JAPAN을 재결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의 도움으로 교주를 심판해내는데 성공하고 상술한 한 기획사 사장은 물론이고 거기에 요시키의 도움으로 세뇌에서 완전히 벗어나오게 된다.
  • X JAPAN의 재결합 이후 2008년 3월에 있었던 도쿄 돔 3 Days 공연이나 동년 5월의 히데 추모 공연에서는 지난 10년에 이르는 공백으로 말미암아 생긴 기량의 쇠퇴로 인하여 X JAPAN 시절의 곡들은 부르는 것조차도 버거워 할 정도의 처참한 모습을 보였지만 2008년 3월 도쿄 돔 라이브에서의 쿠레나이[6] 1년이 지난 2009년에 이르러서는 일단 마구 질러대는 식으로나마 어찌 저찌 X JAPAN 시절의 곡들을 부를 수는 있게 되었고,[7] 2008년 12월 31일 아카사카 블리츠 라이브에서의 쿠레나이 2010년 후반기 이후, 2011년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온전한 자신의 본 기량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8] 2011년 8월 서머소닉 페스티벌 라이브에서의 쿠레나이
  • 최근 들어서는 창법을 기존의 쏘아붙이는 식이 아닌 고음에서의 공명감 등을 잘 살리는 편으로 변화해가고 있으며 전성기 때에도 잘 시도하지 않던 고음에서의 샤우팅을 라이브에서 심심찮게 하는 등 비록 전성기 때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컨디션이 많이 나아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2017년 2월 영국 웸블리 아레나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부른 ART OF LIFE, 6분대부터 부르는 마지막 파트가 인상적이다. 현재 50대가 넘어서도 기존 엑스의 고난이도 곡들을 대부분 원키로 부르는 등 꾸준히 나아지는 목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방송 등에서 활발히 커버곡을 부르기도 하는 등 나이에 맞지 않는 굉장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 토시의 이런 독특한 음색은 많은 사람들을 X JAPAN의 팬으로 이끌기도 하였다. 타이지가 LOUDNESS 탈퇴 후 결성한 D.T.R 의 보컬들은 토시에 비해 테크닉으로는 오히려 꿇릴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토시 같은 음색을 기대했던 팬들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또한 토시의 탈퇴선언으로 인해, 토시를 대신할 보컬리스트를 찾으려다 결국 해체를 결정한 것도 결국 토시 특유의 음색 때문.[9]
  • 후배들이 토시의 노래를 부른 영상들에서도 대부분 '잘 부르지만 역시 토시의 목소리로 불러야 한다.' 라는 평들이 자주 보인다.
  • 2014년 8월에는 SMAP나카이 마사히로가 담당하는 프로그램인 킨스마(金スマ)에 출연, 지상파 방송을 통해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이자 한편으론 가해자이기도 했던 자신의 지난 과거에 대해 상세히 밝히기도 하였는데 사이비의 종교의 위험성과 그로서 말미암은 고난의 세월들이[10] 여실히 방송을 통해 전달이 되었는 바 시간이 남아도는 위키러들이라면 한 번쯤은 진득하니 시간을 내 해당 영상을 보도록 하자. 여기에는 전처와의 만남부터 결혼, 그리고 이혼까지 모두 담겨져 있다. 관련 영상.
  • 우리나라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토시하면 잘 발달된 특유의 턱이 트레이드 마크처럼 종종 언급되고는 한다.
  • 예전 X JAPAN 활동땐 장발과 진한 화장, 현재 재결합 후엔 선글라스를 자주 쓰고 다니느라 몰라보기 십상이지만 실제론 굉장히 순박하게 생겼다.[11] 또한 얼굴 역시 은근히 동안이다.
  • 2006년 한일 평화 콘서트에 참여했을 때 공연 수익금 가운데 일부를 기부금으로 일본군 성폭력 피해 할머니들께 전달한 적이 있다. 물론 시기를 따져보면 당시 한창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던 때라서 실상은 교단의 프로파간다 차원에서 교주 MASAYA의 지령을 받고 내한했을 공산이 매우 크고, 실제로 내한 당시 한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속한 HOH의 힐링 음악을 찬양하고 X 시절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등 석연치 않은 언동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일거수 일투족 대중에게 행보가 노출된 유명 록 그룹의 보컬 출신으로서, 특히 식민지배 및 전쟁범죄에 대한 죄의식이 별로 없는 Toshl 연령대 일본인들[12]의 평균적인 정서를 감안한다면 그 자체로서 대단히 파격적이고 훌륭한 행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13]이다. 또한 2008년에는 내한콘서트 수익을 기름 유출로 고통받고 있는 태안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전액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2008년 파워콘서트에서 Earth in the dark를 한국어로 부르기도 하였다. 한국어를 못하는 상태에서 한국어를 가타카나로 표기 한 것을 보고 불렀다. 약간 어색한 발음도 좀 있으나 (사랑을 사라-은~이라고 한다든가) 나름대로 잘 소화해냈다. #
  • 2018년 11월 21일자에 キャッToshlテレビ(캿토시테레비) 라는 이름으로 유튜버를 시작하였다. # 컨텐츠는 놀랍게도 디저트 만들기... 본인이 하고 싶어서 직접 시작한 것은 아니고 메이지 식품에서 자신들의 신제품 홍보를 위해 토시를 섭외해서 제품 홍보 유튜버를 시작했다. 스스로도 첫 영상에서 기간 한정으로 제품 홍보를 위해 개설했다고 소개한다. 물론 재미들려서 이후에도 계속 하게될 지도 모른다... 현재 홍보하는 제품은 메이지 식품에서 새로 나온 생크림으로 이 생크림으로 여러가지 디저트를 만들어 먹으며 홍보 중. 유튜브 제목 처럼 고양이 흉내를 낸다든가(냥!) 본인이 만든 디저트를 맛보고 나 천재 아니냐며 감탄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귀여운 리액션을 하고 있다. 팬들은 토시의 리액션에 충공깽하기도 하고(50대 아저씨가 디저트 만들어 먹으며 애교를 부리니...) 이런 식으로 가까운 곳에서 토시를 볼 수 있어서 좋다는 반응. 현재 개설 후 3달여만에 3만 5천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2019년 3월 이후 정전 상태…였는데 2020년 4월부터 해당 채널에 팝송, J-POP 커버 영상을 게시 중이다.
[1] 2010년까지는 TOSHI라는 명의를 사용했으나 이후 개명. 참고로 Toshl의 마지막 알파벳은 대문자 I가 아니라 소문자 L이다.[2] 4살 때 유치원에서 같은 스미레구미(제비꽃반)에 속한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요시키와 토시를 묶어 '스미레구미' 라고 부르는 것을 밀고 있는 듯.[3] 여담이지만, 이 당시 요시키는 교내에서 안 좋은 소문이 자자해, 토시의 부모님은 그와 친해지지 말라면서 '그가 너의 인생을 망칠 것이다.'라고 했다고. 그러나 오히려 엑스가 잘되고 나서 이 부모라는 작자들이 토시의 돈과 유명세를 빌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팬들에게 토시의 어린 시절 사진을 돈 받고 파는 일까지 해서, 상처받은 토시가 사이비 종교에 가입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된다. 직접적인 계기는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We Are X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공과 명예로 인하여 온 가족이 무너졌다고 했다.[4] 사실 그전부터 멤버들과의 사이가 이전 같지 않다는 징조는 있었다. 1996년 멤버들이 모두 출연한 라디오에서 '이 곡에 대해 설명을 좀 해달라'라는 질문에 대놓고 '그 곡의 가사는 요시키가 쓴 것이다. 난 요시키의 보컬 머신일 뿐이니 요시키에게 물어봐라'라고 대놓고 얘기한다든가... 멤버들이 토시의 결혼 사실을 기사로 알게 됐다든가... 당시 미국에 있던 히데는 일본에 돌아가면 결혼 축하 파티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일본에 가서 만나자마자 토시가 밴드 탈퇴 문제를 얘기했다고 한다.[5] 교주가 갈취한 돈만 10만 엔(한화 = 100억 원) 정도 된다고 한다.[6] 발라드 곡을 부른 예로서는 이 영상을 볼 것.[7] 길었던 공백으로 말미암아 쇠퇴된 기량과는 반대로 목에 가해지던 부담 역시도 줄어 있었던 바 목의 상태 자체는 매우 좋아져 한순간이나마 질러대는 고음의 음역대나 파워만큼은 87~88 인디 시절이나 앨범 젤러시의 발매 직후였던 1991년, 토시 본인의 최전성기 시절과도 견줄 만한 수준으로 돌아와 있었다.[8]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은 것이 2008년 재결성 이후 2017년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저음부 쪽에서의 문제는 여전히 개선이 잘 되어지지가 않고 있고 고음부 쪽에 있어서는 현재 밀고 있는 세트 리스트의 주요 곡들 중에서는 ENDLESS RAIN, Silent Jealousy, 紅, Forever Love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곡들은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가 가능하며 ART OF LIFE는 목 상태에 따라 완창이 가능할 때가 있고 불가능할 때가 있는 정도이지만 X의 경우 만큼은 부르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최근에 들어서는 썩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9] 만약 토시를 대신한 보컬리스트로 락커만 찾아다녔다면 당연하게도 팬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X JAPAN의 노래 스타일은 다른 메탈 밴드에 비해 멜로디가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다. 거기다 성대결절을 겪은 후의 토시 음색은 오히려 발라드에 더 어울리는데다 요시키가 만든 후기 메탈곡들(Rusty Nail, Dahlia, Jade 등)도 발라드 성향이 매우 짙다. 그러므로 거친 샤우팅을 구사하는 락커보다는 MC the Max의 이수나 KCM 같은 고음역대 발라더를 찾는게 더 현명할 것이다.[10] 장장 12년에 걸친 세뇌와 착취로 인한 정신적 피해와 한화 100억 원 이상에 달하는 금전의 손실(당시 토시는 이 재산 피해로 인하여 2009년에 파산 신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X JAPAN Toshl의 이름을 빌어 사이비 종교의 광고탑으로서 활동하며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양산하는데 일조했던 명백한 과오와 그로 인한 명예의 실추 등.[11] 실제로 성격또한 굉장히 순진무구한 편인데다 성격또한 소심해 요시키한테 꽤 많이 휘둘림을 당했으며 불만이 있어도 워낙 순하다보니 화도 제대로 못낼정도였다. 이러한 성격때문에 사이비한테 제대로 걸려들어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온갖 고생을 다했으며 참고로 토시가 한창 사이비에 빠져들어서 X JAPAN을 탈퇴한다고 선언하자 그동안 토시의 자기 주장도 못세우고 자신의 말만 따르는 모습을 봐왔던 요시키는 이때 토시가 거의 처음으로 단호하게 자기의 주장을 펼치자 큰 충격을 받아 토시의 탈퇴를 제대로 말리지도 못했다고 한다.[12] 비슷한 연령대의 메탈 보컬들인 니이하라 미노루, 오노 마사토시의 경우를 생각해보자.[13] 2008년 두 번째 내한 때 한국의 불우이웃에게 공연 수익금을 또 기부#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Toshl가 한국에 상당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