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P
1. 개요
1991년부터 2016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아이돌 그룹. 쟈니스 사무소 소속이다.'''18만명 앙케이트로 진행된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히어로 총선거] 선정, 예능 부문 1위 및 종합 1위'''
일본 역대 최고의 국민 아이돌이자 현재의 아이돌 시스템을 정립시키며 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아이돌 시스템에 큰 영향을 준 전설적인 그룹.[2] 물론 어떤 철학이 있어서 개념을 바꾼 것이 아니라 엄격한 연예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 열심히 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기획사가 방송사와 손을 잡고 막강한 힘으로 밀어 준다 해도 연예인 본인의 능력과 매력이 없다면 25년간 슈퍼스타 자리에 위치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국민MC이자 버라이어티계의 거물이 된 나카이 마사히로, 일본의 1990년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자 초거물 배우가 된 기무라 타쿠야, 기무라 못지 않은 명연기자로 평가되며 오히려 연기의 폭은 더 넓은 것으로도 인식되는 쿠사나기 츠요시, 연기자로는 물론 버라이어티, 콘서트 연출에서 보여 주는 다재다능한 재능으로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손색이 없는 카토리 싱고, 연예계를 넘어 영화 평론가 등 색다른 분야에서도 골고루 좋은 모습을 보여 준 이나가키 고로 등 5명으로서도 대단하고 1명의 연예인으로서도 연예계에서 이미 거물인 팀.
SMAP에 이어 '국민 아이돌'로 평가 받는 아라시를 비롯, 전설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칭해지는 수많은 아이돌 스타들도 이런 형태의 팀 구성과 오랜 기간의 명성, 멤버 개개인의 걸출한 활약은 누리지 못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이유로 갑작스럽게 해체가 되어 지금도 이와 관련된 멤버들의 생각과 서로에 대한 마음이 어땠는지는 미스터리가 되었다. 일본 뿐 아니라 범 아시아적으로 영향을 끼친 영원한 슈퍼 아이돌 그룹이자 레전드 연예인 집단.[3]
2019년 4월 30일자로 헤이세이 시대가 종언을 알리며 시행한 "헤이세이를 대표하는..."으로 시작되는 각종 앙케이트에서 대부분의 챠트에서 SMAP이 1위를 차지하며[4][5][6] 새삼 그룹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멤버
3. 역사
SMAP의 역사는 소속사 쟈니스에서 주니어들을 모아다 임시로 결성시킨 아이돌 그룹 스케이트 보이즈에서 시작됐다.
1988년 4월, 스케이트 보이즈가 결성된다. 그리고 같은 해 봄, 스케이트 보이즈 멤버 중에서 나카이 마사히로, 기무라 타쿠야, 이나가키 고로, 모리 카츠유키, 쿠사나기 츠요시, 카토리 싱고 이상 6명이 발탁되어 SMAP이 결성되었다.[8] SMAP은 '''Sports Music Assemble People'''의 약자로, 예능에 능한 사람들을 모은 그룹이라는 뜻이다.
팀 결성 후, SMAP은 당시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었던 히카루GENJI의 백댄서를 서거나 방송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팀을 결성한지 3년 5개월 만인 1991년 9월, 첫싱글 「Can't Stop!! -LOVING-」로 정식 데뷔를 이루었다.[9] 1991년 12월에는 「제42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데뷔 싱글이 쟈니스 역대 2번째로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하지 못한데다, 1992년 1월 1일에 발매한 앨범 「SMAP 001」이 84,030장을 판매하는 등 데뷔 성적이 영 신통치 않아 불안불안했다. 심지어 1992년 8월에 나고야 레인보우 홀에서 있었던 콘서트에는 관객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SMAP 멤버들은 사장한테 빈번하게 불려가 '너네는 대체 왜 못 뜨는 거야'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고, 설상가상으로 아이돌들의 인기와 활약상을 책임졌던 음악 프로그램이 하나 둘씩 폐지되어 방송에 출연할 기회도 줄어들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돌 전성시대가 끝이 나면서 큰 위기가 찾아온다.
이제는 팀이 해체될지도 모르는 상황. SMAP은 위기의 타개책으로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했다. 거기서 그들은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벌칙을 받거나 여장을 하는 등, 당시 '아이돌'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행동을 한다.
''''아이돌이 망가진다'''' 그리고 ''''개그를 한다''''.
이 점은 멋있고 예쁘기만 한 아이돌에게 익숙해 있던 당시의 시청자들에게(좋은 쪽으로) 어필하게 된다.[10] 덕분에 SMAP의 인지도와 호감도는 순식간에 크게 높아졌다. 쟈니즈 사무소에서는 SMAP을 어떻게서든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방송국 PD들에게 그들을 개그맨으로 써달라고 계속 오퍼를 넣었다. 아예 ''''알몸 빼고는 여장이든 뭐든 다 시켜도 된다.'''' 라고 했을 정도. 또 리더 나카이 마사히로가 ''''어떤 일이라도 시켜주십시오''''라고 PD들에게 머리를 숙인 일화는 유명하다. 일본 혹은 국내에서 떠도는 '쟈니도 SMAP을 버렸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훗날 이와 같은 전략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며, SMAP은 일본(또는 한국에까지!)의 후배 아이돌들의 롤모델로 일컬어진다.[11]
여하튼 SMAP 멤버들은 버라이어티 출연에 그치지 않고, 활약 무대를 연극, 영화, 드라마 등으로 넓혀 갔다. 그리고 그에 힘입어 1996년 4월, SMAP의 간판 프로그램 「SMAP X SMAP」가 스타트했다. 또 같은 해에 방영한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롱 베케이션」이 대히트[12] 를 기록하면서 SMAP은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다방면에서의 큰 활약으로 SMAP의 인기는 데뷔 이래로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데 1996년 5월 7일. SMAP은 최초의 위기를 맞게 된다. 바로 기무라 타쿠야와 함께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던 모리 카츠유키가 오랜 꿈이던 모터 레이서가 되기 위해 팀을 탈퇴한 것.[13] 모터레이스가아니고 오토레이스다
모리의 탈퇴로 그룹이 해체하는 것이 아니냐 말이 많았지만, SMAP은 나카이 마사히로, 기무라 타쿠야, 이나가키 고로, 쿠사나기 츠요시, 카토리 싱고 이렇게 5인 체제로 바꾸어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 그들은 모리의 탈퇴에 불구하고, 멤버 전원이 드라마 주연으로 발탁되거나 버라이어티의 레귤러로 활약하는 등, 꾸준히 좋은 성과를 올렸다.
참고로 이때 모리의 탈퇴에 불만을 품었던 자니즈는 이후 SMAP 본인들은 물론, SMAP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도 모리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영상에서는 전부 편집해버리는 등 철저하게 모리의 그림자를 지웠으나, SMAP 멤버들은 이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는지 생방송 등 편집이 불가능한 방송 등에서 간간이 모리의 언급을 하였고, 자니즈 측도 이제 포기했는지 지금의 SMAP 멤버들은 관련 방송에서 모리 이야기를 대놓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 1월. 27번째 싱글 「밤하늘의 저편(夜空ノムコウ)」가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한다. 이 곡을 계기로 SMAP은 전세대의 지지를 받게 된다. 또 2000년 8월 30일에 발매한 32번째 싱글 「라이온 하트」가 두 번째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운다. SMAP의 인기는 날로 승승장구했다. 음반 판매량도 높았고 출연하는 드라마는 고시청률을 올리는 등, SMAP은 방송계의 최고의 아이돌로 군림한다.
그런 2001년 8월 24일, 이나가키 고로가 공무집행방해와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체포되는 대사건이 발생한다. 이나가키 고로가 주차위반 딱지를 떼려는 여경에게 접촉사고를 내고 만 것이다.[14][15] 평소 깔끔하고 바른 이미지의 이나가키 고로에게 이 사고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결국 고로는 그 책임을 져 근신 생활에 들어간다.
일본 대중들은 연예인이 사적인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냉정하게 등을 돌리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고로의 복귀는 상당히 절망적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언론은 SMAP이 4인 체제로 바뀌거나 해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고로를 제외한 4명은 활동을 계속하면서 그가 방송에 복귀하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콘서트에서 고로의 얼굴이 프린트 된 티셔츠를 입고 노래를 부르거나, 방송에서 고로의 이름을 언급하는 등, 대중들이 '이나가키 고로'를 잊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고로가 없으면 SMAP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런 동료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이는 멤버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덕분에 2002년 1월 14일, 사건이 일어난 지 약 5개월 만에 이나가키 고로는 방송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3월 15일에 발매한 35번째 싱글, 「세상에 하나뿐인 꽃」이 더블 밀리언을 기록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꽃[16] 」(한국에서는 줄여서 '괴물꽃'이라고도 부른다. 오리콘차트에 근 1년간 올라있어서 붙은 별명. 실제로 일본에서는 나카시마 미카의 눈의 꽃이 괴물꽃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한다.)은 250만장 이상 팔렸으며, 1년 동안 오리콘 차트의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런 경이적인 기록은 전무후무한 것으로, SMAP은 일본의 국민 아이돌로 확실한 인정을 받게 된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멤버들이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의 성적이 신통치 않아 해체설이 심심치 않게 돌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쿠사나기 츠요시가 만취해 공원에서 알몸으로 난동을 부려 물의를 빚었다. 쿠사나기는 1개월간 근신한 후 방송에 복귀했다.(자세한 내용은 쿠사나기 츠요시 문서를 참조.)
2010년 9월 15일, 「We are SMAP! 2010」도쿄돔 공연에서 콘서트 누계 관객 동원 수 1000만명을 돌파했다.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리고 3월 21일 「SMAP X SMAP」은 긴급하게 생방송으로 편성되었다. 방송 당일 SMAP 멤버들은 '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표어로 내걸고 지진 피해자들을 위로했다. '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재해가 발생했을 당시 트위터나 라디오 방송에서 이미 언급한 말이기도 하다. 또 일본 공공광고기구(AC)가 제작한 광고에 출연하여 다같이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할 것을 호소했다.
2016년에 들어서서 해산 기사가 나오면서 위기에 다다르게 되나, 멤버들의 사과방송 및 소속사의 행동에 비추어 봐 어느정도 봉합이 된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8월 14일 쟈니스 소속사에서 공식적으로 2016년 12월 31일까지의 활동을 마지막으로 해산을 발표하였다.
4. 콘서트
국민아이돌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리게 콘서트도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있기로 유명하여 SMAP의 노래를 모른다고 해도 콘서트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관객 연령층도 다양하여 어린아기부터 어르신들까지 같이 관람하는 것을 쉽게 볼수 있으며, 일부 자리를 남성 전용석과 커플석등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콘서트 관련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은데 데뷔전 부도칸에서 콘서트가 결정되고 연습 도중 카토리 싱고가 발목골절로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앵콜때 목발 짚고 나와서 비틀즈의 Let it be 한곡만 불렀다.)
첫 오키나와 콘서트는 티켓사기사건이 일어날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이루었다. 당시 콘서트 경호를 오키나와에 주둔중인 미군들이 했는데 멤버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고 한다.
97년 콘서트 도중 싱고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다 눈물을 흘렸다. 이유는 싱고의 할머니가 콘서트장에 오기로 했지만 콘서트 전에 돌아가셔서 할머니 자리가 비어진 채로 공연을 했는데 그 자리에 할머니가 앉아계신게 보였다고 한다. 근데 다음날 신문에는 싱고가 운 것이 SMAP이 해체하기 때문이라고 기사가 났다고 한다.
2000년 도쿄돔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 기무라 타쿠야가 혼자 무대에 올라와 팬들에게 결혼하는 것을 보고했다. 그리고 콘서트가 끝난 후 멤버들 다섯이서 불고기집에서 맥주로 축하 건배를 했다고 한다.
데뷔초만 해도 1일 5회공연을 하거나 1년에 투어를 3번씩 돌기도 했다.
92년 나고야 콘서트에서 객석에 절반이 비어있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명 '나고야 쇼크'를 겪고 난 후 멤버들은 (좋은의미로) 콧대가 꺾였다고 한다.(카토리 싱고에 의하면 당일 콘서트 무대에 올라갔을때만 해도 아~피곤하다 등의 나태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97년 5인조가 되고 난 후 처음으로 도쿄돔 콘서트를 하거나 투어 요청이 쇄도하여 각 공연장에서 1회씩 추가공연을 하는 등 점차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했고, 투어가 1년에 1회로 바뀌고 콘서트에 SMAPXSMAP 캐릭터 꽁트를 집어넣는 등 변화를 하기 시작했다.
2001년 최초로 일본 최초 5대 돔 투어를 성사시키고 (투어 중간에 4명이 된건 함정)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 개최 기념으로 월드컵 경기장을 중심으로 투어를 실시하여 115만명을 동원하며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해 일본 콘서트 기록 1위, 세계 3위에 엄청난 기록이었다. 심지어는 월드컵에서 매진되지 않은 자리가 SMAP 콘서트에서는 전부 매진되었다.
2년만에 개최된 2005년 투어에서는[17] 최초로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실시했다. 국립경기장 측의 엄격한 심시기준으로 인해 약 3년간 공연 내용과 스태프 대응, 관객 매너 등을 평가받았다고 한다.
2008년 콘서트는 최초의 도쿄돔 6회 연속 공연과 2010년에 콘서트 누적관객 1000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등 콘서트를 통해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천만명을 기록한 그날 전 멤버였던 모리 카츠유키도 공연장에 와서 그 의미를 더했다고 한다.(무대에 오르진 않음)
5. 덕력
멤버 전원이 오덕 기질이 있다.
기무라 타쿠야는 원피스의 굉장한 팬으로, 방송에서 상디의 기술을 시연하는 포즈를 취한 적도 있다. 대사를 줄줄이 외울 정도로 원피스를 좋아한다. 스마스마의 코너인 '정말로 있었던 형편없는 남자[18] ' VCR에서 여자친구보다 원피스를 좋아하던 남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원피스 OST를 본래 가수와 듀엣으로 부른 후에는 기모찌이~라며 진정한 덕후의 모습을 보여줬다.[19]
이나가키 고로는 건덕후. 방송에서 게임을 할 때 자기 차례가 오면 이 구호를 외친다. '行きます!'. 스마스마에서 멤버들을 이끌고 오다이바에 있는 등신대 건담을 보러간 적이 있다. 미방송분으로 묻혀있다가 특집으로 전파를 탔다. 국민아이돌의 특권으로 현장에 아무로 코스프레를 한 후루야 토오루를 불러서 명대사를 시켰다.
그 외 다른 멤버들도 만화책을 즐겨 읽는다. 주로 북두의 권, 드래곤볼같은 소년 만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쿠사나기와 나카이는 만화보다 청바지와 야구가 더 좋은 것 같다.
멤버 전원이 세인트 세이야 뮤지컬에 참여한 적도 있다.
6. 생활밀착형 국민 아이돌
SMAP은 일본 국민의 지지를 받는 아이돌이다. 2011년을 기준으로, 전원이 30대가(2014년 7월 9일 쿠사나기 츠요시가 40세가 되면서 현재 막내 카토리 싱고를 제외한 전원이 40대 입성. 2017년 1월이면 전원 40대.) 되었음에도 여전히 예능 드라마 코미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유재석을 알듯, 일본 사람들은 초등학생부터 시작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SMAP을 안다.[20] 사람들이 SMAP 멤버 개개인의 이름을 알고, 그들의 성격, 취향, 취미를 파악하고 있다. 한국에 비유하면 유재석, 신동엽 같은 예능계 톱스타와 장동건, 원빈 같은 국민적인 미남 스타 다섯명이 한 그룹에 있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수 있다.
변덕스러운 방송계에서 영향력을 잃지 않은 점, 꾸준히 일이 들어온 점은 그들이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멤버 본인들도 자신들이 '국민 아이돌'임을 자각하고, 언행을 조심하고 있다. 그리고 한 번의 휴식기간도 없이 꾸준히 활동을 했다.
우스갯소리로 SMAP 멤버들의 스케줄은 과장섞지 않고 '''월화수목금금금'''이며 한 채널에서 쿠사나기가 물세례를 맞으며 콩트를 하고 있는데 다른 채널에서는 쿠사나기가 비련의 주인공을 연기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7. 홍백가합전
홍백가합전의 단골 멤버이기도 하다. 1991년에 처음 출전한 이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거의 매년 출전했다. 2015년까지 23회의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1년과 2004년, 2016년에만 출전하지 못했는데 2001년에는 이나가키 고로가 근신 중이라는 이유로, 2004년은 곡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전을 사양한 것. 2016년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2월 31일을 끝으로 팀이 해체되므로 출장을 거절해 라인업에서 빠졌다.
리더인 나카이 마사히로는 홍백가합전의 사회자로 활약했다. 1997, 1998, 2006, 2008, 2009년에는 백팀의 사회자로 2007년에는 홍팀의 사회자로 나섰을 정도.
홍백의 제왕이란 별칭으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어마어마한 시청률 때문이다. 아래 표는 2000년 이후 시청률을 정리한 것으로 현재까지 결장한 횟수를 제외하면 13번 중에서 8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21]
8. 사건 사고
묘하게 5년마다 큰 사고가 터진다는 징크스가 있다.
91년에는 처음으로 연 콘서트에 하필 카토리 싱고가 골절상을 입어 참여하지 못했고, 96년에는 모리 카츠유키가 탈퇴했으며, 2001년에는 이나가키 고로가 사고를 쳤고, 데뷔 15주년이 되던 2006년에는 카토리 싱고의 인플루엔자를 시작으로 기무라 타쿠야가 부비강염에, 나카이 마사히로는 유행성 눈병에 늑골 골절, 어깨 근육 파열이란 사태가 일어났다. 이를 두고 카토리 싱고는 20주년이 되는 2011년에는 쿠사나기 츠요시가 손가락이 삐는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했지만...유일하게 사고와는 무관했던 쿠사나기 츠요시가 2009년 만취 알몸 사태를 일으켜 버렸다.
8.1. 2016년 초 해산 소동과 존속 결정
해당기사 2016년 1월 13일, 기무라 타쿠야를 제외한 나카이 마사히로, 이나가키 고로, 쿠사나기 츠요시, 카토리 싱고가 모두 쟈니스에서 독립하는 것으로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 기사는 오피셜이 아니었고, 이 시점에서 스맙 측의 공식 입장은 없던 상황. 다만 SMAP을 만들어 왔고 지금까지 있게 한 치프 매니저 이이지마 미치의 퇴사는 잠정적인 사실로 보였다.
이에 관련해, 쟈니스에서 드디어 공식 입장이 떴는데, 쟈니스는 "SMAP의 일부 멤버의 독립 문제와 담당 매니저의 이사 사임 등에 관한 보도가 이루어졌습니다. 분명히, 이 건에 대해 협의・교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상세한 것에 대하여서는 문의에 답할 수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해체 소동에 대중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충격이 컸던 상황.
하지만 1월 18일, 극적으로 '''해산이 무산'''되었다. 퇴사를 선언한 4인방이 쟈니스 고위층과의 접촉을 기무라 타쿠야에게 일임했고, 그가 17일부터 쟈니스 대표인 쟈니를 비롯한 간부진과 긴밀한 접촉을 진행했다. 간부진이 4인방의 선언에 꽤나 분노한 상태였는데, 기무라 타쿠야가 적극적으로 설득한 끝에 18일 존속이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무라 타쿠야의 노력과 더불어, 팬들은 해체설이 대두된 직후에 ''''세상에 하나뿐인 꽃(世界に一つだけの花)' '''싱글 구매 운동[35] 을 벌이며 해체에 강하게 반대했고, 차기 총리 후보인 이시바 시게루 내각대신이 "스맙의 해체는 연예 산업에 피해가 클 것"이라며 "존속을 바란다"고 표명하였다. '''정치계까지''' 나서서 SMAP의 해체를 반대하는 마당에 천하의 쟈니스라고 해도 여론의 흐름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던 듯하다.
이후 1월 18일에 생방송으로 멤버 전원이 본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방송이 나갔다. 이전과 달리 리더인 나카이가 외곽에 자리잡고 센터에 잔류파 기무라가 사과멘트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사과문이 나갔으며 기무라 타쿠야-이나가키 고로-카토리 싱고-나카이 마사히로-쿠사나기 츠요시 순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사과 멘트가 나왔다. 특히 기무라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탈퇴파들이 표정이 아주 안 좋은 것이 한 눈에 봐도 역력한 모습. 사실상 4명이 쟈니스에 항복선언을 하고 굽히고 들어갔다는 것이 중론인 듯하다. 카토리 싱고가 "앞으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가고 싶다"라고 말한 데다가 쿠사나기 츠요시가 "'''쟈니스 사장에게''' 기무라가 사과할 기회를 마련해 주어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라는 말을 해 쟈니스의 갑질로 인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해체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잠시나마 기뻤던 팬들은 이 방송을 보고 충격에 사로잡혔다. 게다가 다른 멤버들의 넥타이는 검은색인데 반해 유일한 잔류파인 기무라의 넥타이만 하얀색(또는 밝은 회색)이어서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이 방송의 '''시청률이 무려 31%, 순간 최고 시청률은 37%'''였다고 한다. 여러모로 스맙의 힘.
다만 이 사과 기자회견 생방송에 대해 일본 시청자들의 여론은 상당히 싸늘한 상황이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 중 많은 수가 전술된 바와 같이 4명이 쟈니스에 항복선언을 했다는 의견을 주로 내놓고 있고, 전반적으로는 쟈니스가 4명에게 갑질[36] 을 한 것 아니냐, 심지어는 이 기자회견 자체가 SMAP에 대한 '''공개처형'''이나 다름 없는 게 아니냐는 다소 과격한 여론도 나오고 있는 상황. 이 때문에 한국의 방심위에 해당하는 기구인 BPO에 민원을 제기한 시청자들도 적지 않은 듯하며,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심의가 들어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이 오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후지테레비의 SMAP 사죄 기자회견이 갑질 의혹으로 논란(일본어)[37]
1월 20일, 4명에 대한 패널티는 없을것이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과 방송 이후 첫 스마스마 녹화분은 2월 8일 정상적으로 방영되었다. SMAP LOVE(スマラブ)[38] 라는 코너가 신설되었는데, 쿠사나기 츠요시가 선택한 <눈물의 키스>를 함께 불렀다. 사과 방송 이후 3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현장 분위기가 어두웠는데, 츠요시가 기타를 튜닝한답시고 딩딩거리는 바람에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고 한다. 물론, 가장 마음고생이 심했을 나카이의 표정이 어둡고 목소리도 잠긴 걸 보면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해체 소동이 끝나고 스맙이 돌아온 것이니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같은 날 셔플 비스트로도 방영[39] 되었다. 오너는 기무라 타쿠야. 게스트는 이나가키 고로.
1월 21일 해체 소동이 벌어진 후 진행된 첫 스마스마 녹화를 마치고, 멤버들은 쟈니스 관계자들 및 선후배들과 함께 식사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아라시도 참석했다고 한다. 기사의 내용을 어느정도 걸러서 본다하더라도, 식사 모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해체 소동이 일단락 되긴 했지만, 앞으로도 불안 요소가 남아있는 것이 9월의 재계약 문제라고 한다. 현재로서는 그럭저럭 봉합을 한 모양새지만, 9월 재계약 시기가 더 큰 산이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의외로 무난하게 재계약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재 할 수는 없다.
9. 해산
'''25년 만에 해산'''
2016년 8월 13일, 사이조를 위시한 각종 찌라시 언론들에서 해산기사가 나오더니 다음날인 8월 14일 오전 0시 45분을 기점으로 스포니치 등 각종 언론사에서 해산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소속사인 쟈니스에서 각 언론사로 보낸 팩스 전문이 보도되었고, 쟈니스 패밀리 클럽 등 팬 클럽 사이트에서도 해산 공지가 나왔다. 25년 만에 해산, 데뷔 전 주니어 기간까지 합치면 28년만에 해산이다.
스포니치 기사상으로는 멤버들은 모두 쟈니스에 남아 있고, SMAP 그룹 자체만 해산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해산 발표 직후 쟈니스 소속사 팬클럽 홈페이지상에서도 SMAP의 이름이 사라졌다. 이젠 정말로 역사 속의 한 그룹이 되었다. 기사상으로는 해산에 찬성한 강경파는 카토리 싱고, 쿠사나기 츠요시이며 반대파는 기무라 타쿠야이다. 그 외 나머지 두 멤버는 강경까지는 아니지만 다소 찬성에 무게를 실은 모양이다.
멤버별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나카이 마사히로
「팬 여러분, 관계자 여러분, '''저희들 SMAP이 해산하는 것을 보고하겠습니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했습니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했습니다. 신세를 졌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에 이른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면목… 없습니다…」
기무라 타쿠야
「이번 ‘그룹 해체’ 에 대해 솔직히 매우 유감입니다.
하지만 25주년 라이브도 그룹 활동도 5명 모두가 모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커다란 마음으로 지지해 주신 팬 분들, 스태프 여러분을 무시하고 ‘해산’이라는 정말 한심한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나가키 고로
「팬 여러분, 스태프 관계자 여러분, 이번에는 걱정과 불편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다섯 명으로의 활동은 어렵다고 생각해서 괴로운 결정이었지만 해산이라고 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저희들의 의지를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8년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쿠사나기 츠요시
「'''이번에 우리들 SMAP은 해산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 지지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 그룹 결성으로부터 28년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정진할 것이므로 계속 따뜻하게 지켜봐 주신다면 기쁠 거라고 생각합니다.」
카토리 싱고
「팬 여러분, 그리고 직원 관계자 여러분. '''저희들 SMAP은 해산하겠습니다.'''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갑작스레 소식을 전해드린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리우올림픽 경기 생중계 도중 NHK 속보로 전국에 전파되었다.
이 때를 시점으로 아마존에서 1위~60위까지 모두 SMAP의 CD가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오리콘차트에서도 SMAP의 싱글들이 급상승할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역시 SMAP의 해체를 바라지 않는 팬들이 보이는 놀라운 현상이다.
2016년 8월 18일, 멤버 중 한명인 이나가키 고로가 진행하는 라디오 'STOP the SMAP' 앞에 짧은 코멘트가 방송 되었다.
2016년 8월 19일, 멤버 중 한명인 기무라 타쿠야가 진행하는 라디오 'What's UP SMAP!' 앞에 짧은 코멘트가 방송 되었다.안녕하세요. 이나가키 고로입니다.
이미 보도로 여러분 아시겠지만 SMAP은 해산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팬 여러분에게는 갑작스러운 보도로 놀라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 이나가키 고로는 앞으로도 열심히 해나가겠으니
STOP the SMAP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2016년 12월 9일 싱글 世界に一つだけの花의 누적판매량이 300만장을 달성했다.[40]여러분 안녕하세요. 기무라 타쿠야입니다.
이번 SMAP의 일로 여러분에게 괴로운 기분이 들게 해서 정말로 죄송한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생활의 일부, 인생의 일부로서 SMAP과 같이 해준 팬 여러분에게 지금, 정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SMAP 팬에게 그저 정말 죄송하다는 마음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미안(本当に.. ごめん...)
2016년 12월 26일 SMAP×SMAP 마지막회가 방영되고 엔딩에서 世界に一つだけの花를 불렀고 이것은 SMAP의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41]
12월 31일 쟈니스 홈페이지에서 공식 해산을 알리는 소식이 올라왔고,
나카이는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Some girl' SMAP[42] 에서 남긴 마지막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오랫동안 SMAP에게 따뜻한 성원을 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각 멤버들의 활동을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Johnny's net에서는, 준비가 되는 대로, 각각의 페이지를 공개하겠습니다.
그 때까지는, 이쪽 페이지에서 계속 정보를 게재하겠으므로, 확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카이 마사히로, 기무라 타쿠야, 이나가키 고로, 쿠사나기 츠요시, 카토리 싱고에 대한,
팬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을 잘 부탁드립니다.
이로서 SMAP은 결성으로부터 28년, 데뷔로부터 25년의 역사의 마침표를 찍었다.[43]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싱고!!!!! 츠요시!!!!! 고로!!!!! 기무라!!!!! SMAP!!!!! 그럼!!!!! 바이바이!!!!!
도쿄돔에서 개최된 쟈니스 카운트다운 라이브 2016-2017의 무대 마지막에는 쟈니스의 후배들과 팬들이 약 25초간 SMAP을 위한 박수를 치는 시간을 가졌다.(생방송 종료후였기 때문에 방송에 나오지는 않았다.)[44]
2017년 1월 3일 멤버 5명의 자필메시지가 홈페이지에 올라왔으며 각 멤버별 개인 홈페이지가 개설되었다.
'신세졌습니다...'겠네
"안녕"이네요...
'그럼 또 봐!'겠네...
-나카이 마사히로
모두가 있어줬으니까,
원해(찾아)주고, 기다려줬으니까,
계속 해올 수 있었다는 기분이 듭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기무라 타쿠야
지금까지 SMAP을 지탱하고 소중히 생각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제일 소중한 것은, 여러분입니다.
-감사를 담아서 이나가키 고로
지금까지 응원 감사했습니다.
재미없을 때도, 즐거울 때도, 여러분과
함께예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쿠사나기 츠요시
[image]SMAP을 응원해준 여러분을
사랑해요
고마워요
-카토리 싱고
2016년 12월 26일 SMAPxSMAP 마지막 방송분 클라이막스에서는 SMAP 멤버들이 마지막으로 최대의 히트곡인 世界に一つだけの花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노래가 끝나고 커튼 콜이 내리면서 나카이는 눈물을 훔쳤고, 해산 소동과 관련해서 가장 격렬하게 대립했다고 알려진 카토리 싱고와 기무라 타쿠야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SMAP 멤버들이 스태프 한명 한명과 기념 사진을 다 찍어주는 모습이 엔딩 크레딧으로 실렸다.
10. 해산 후
SMAP으로서의 활동은 모두 종료되었지만, 이미 멤버 한명 한명이 최고의 엔터테이너로 인정받았고, 해산 전부터 개인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향후 활동은 큰 지장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기무라 타쿠야를 제외한 멤버 4명은 계약종료 후 쟈니스를 떠날것으로 예상되었다.[45]
2017년 1월 10일 25주년 베스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SMAP 25 YEARS"가 발매 3주만에 100만장을 돌파했으며, 1월 31일 쟈니스 홈페이지에서 SMAP 공식사이트가 폐쇄되었다.[46]
2017년 6월 18일 드디어 멤버들의 계약여부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는데 기무라 타쿠야와 나카이 마사히로는 쟈니스에 잔류, 이나가키 고로, 쿠사나기 츠요시, 카토리 싱고가 쟈니스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퇴소하는 것을 알렸다.
9월 8일 세 사람의 쟈니스 퇴소와 동시에 개인 홈페이지가 폐쇄되었다.
9월 22일 이나가키 고로, 쿠사나기 츠요시, 카토리 싱고 공동의 공식 팬사이트 "새로운 지도"(NEWSMAP)의 개설을 알렸으며[47] , 향후 활동은 주식회사 CULEN(카렌)[48] 과 함께 전개해 나간다는 것을 발표했다.
그리고 모리 카츠유키가 21년만에 카토리, 이나가키, 쿠사나기 셋과 함께 AbemaTV에서 방송을 했고, 모리도 JKA 소속 오토레이서 신분으로 산토리의 CM을 따냈다.
2019년 7월 17일 NHK 뉴스 보도를 통해 '''쟈니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퇴사한 전 SMAP 멤버 3명의 방송 출연에 대해 압박 가한 혐의로 주의를 받았다'''는게 알려졌다.[49]
2020년 2월 21일, SMAP 해산 뒤에도 쟈니스 사무소에 잔류한 2명 중 한명이자 리더인 나카이 마사히로도 기자회견을 통해 2020년 3월 부로 쟈니스 사무소를 퇴소하여 1인 기획사를 설립하는 것을 발표하였다. 해당 기자회견에서 나카이는 SMAP 재결합 가능성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100% 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11. 연기하는 아이돌
멤버 전원이 탤런트로 활동 중이다. 리더인 나카이 마사히로는 영화나 드라마 출연이 드문 편이지만[50] , 나머지 멤버들의 본업이 '배우'라고 생각될 만큼 자주 영화 혹은 드라마, 연극 등에 출연했다. 특히 기무라 타쿠야, 쿠사나기 츠요시는 SMAP 데뷔 시절부터 '드라마 반'으로 분류됐다.
그들이 출연하는 드라마는 대부분 고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영화에서도 일본침몰과 환생같은 대히트작이 존재한다. 또 미타니 코키, 노지마 신지, 츠카 코우헤이, 하시다 스가코 등의 대 각본가들과도 호흡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연기 경력을 가늠해볼 수가 있다.
멤버들의 연기 스타일은 5명 다 제각각이며, 그들이 출연했던 드라마 혹은 영화의 내용이나 분위기도 거의 겹치는 게 없다. 다섯 명의 스타일과 이미지가 서로 겹치지 않았기에 그런 듯하다.
2001년 일본 옴니버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서는 '엑스트라'에 카토리 싱고, '13번째 손님'에 쿠사나기 츠요시, 'BLACK ROOM'에 기무라 타쿠야, '나는 여행을 한다'에서는 이나카기 고로, '어른 수험'에서는 나카이 마사히로가 등장했으며, 이중 기무라 타쿠야는 이 작품 이외에도 화장실 낙서, 연재소설 등 작품에 많아 참여했다.
5명 모두 연기력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연기 스타일(혹은 이미지)에 대한 찬반양론은 존재한다. 특히 기무라 타쿠야는 '어떤 역을 연기해도 기무라 타쿠야 같다'는 비판을 듣고 있으며, 쿠사나기 츠요시는 임협헬퍼와 발라드에서 거칠고 남자다운 캐릭터를 맡아 호연을 펼치기 전까진 '무엇을 해도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SMAP 멤버들 연기력 순위 매기기'는 일드갤의 좋은 떡밥이기도 하다. 특히 한 분기에 2명의 멤버가 드라마를 찍을 경우, 두 사람의 연기 실력을 비교하는 글이 종종 게시판에 올라온다. 멤버들의 연기 스타일을 자주 비교할 때도 있다. 이는 2ch도 마찬가지.
11.1. SMAP의 연인?
SMAP 멤버들이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해온 만큼 수많은 여배우들을 상대했었는데, 그중 가장 많은 4명의 멤버와 호흡을 맞췄던 여배우가 바로 다케우치 유코. 단순히 많은 작품에서 함께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한 작품들이 대부분 대박이 났다. 기무라 타쿠야의 경우 그 유명한 프라이드, 나카이 마사히로의 경우엔 하얀 그림자, 카토리 싱고는 장미 없는 꽃집, 그리고 쿠사나기 츠요시의 경우 좋은사람, 환생과 나와 아내의 1778가지 이야기에 함께 출연하였다.
하지만 '''이나가키 고로와는 단 한번도 함께 연기한 적이 없으며''', 이걸 가지고 다른 멤버들이 놀리기도 한다.[51]
쿠사나기 츠요시의 경우 함께 작품을 찍을 때 다케우치 유코를 연모하게 되어 카토리 싱고에게 진지하게 상담했었다고. 하지만 싱고가 "그건 일일 뿐이야"라며 접으라 말했다고 한다. 만약 싱고가 말리지 않았다면 대시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까지.
12. 음반
다만 스맙의 경우 국내에서는 음반은 물론이거니와 음원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벅스, 멜론 등 여러 음원 사이트에 SMAP의 음악이 등록되어 있으나 막혀 있어 다운은 커녕 스트리밍도 할 수 없다. 네이버 뮤직도 이와 마찬가지인데, 지난 2015년 음반 두 개[52] 가 풀려 유일하게 SMAP 뮤직을 서비스하는 곳이 되었다. 가사 정보가 제공되는 곡은 <freebird>, <song for your love>, <kiss me touch me>뿐이다. 하지만 음반 정보는 2005년 이후로 업데이트 되고있지 않다. 쿠사나기 츠요시가 초난강이란 이름으로 낸 <정말 사랑해요> 또한 서비스되지 않는다.
그런데 2016년 2월 26일 기준, 네이버 뮤직이 서비스하던 두 음반마저 막혀버렸다.[53] 이제 국내에서 스맙의 음악을 정식으로 들을 수 있는 곳은 없다.
12.1. 싱글
12.2. 앨범
12.3. 베스트 앨범
13. SMAPxSMAP
항목 참조
14. 참고
14.1. 그 외
쿠사나기 츠요시가 신화멤버들과 친하다. 츠요시가 엠넷에서 한국 데뷔무대를 가졌을 때 츠요시에게 먼저 다가온 게 신혜성이었고, 그 길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또한 초난강 시즌 2에서 신혜성에게 초난강이 SMAP의 정규 16집을 주었다가 신혜성이 웬일인지 2장을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나머지 한 장을 부탁한 사람이 알고보니 이민우였던 적이 있었고, 신혜성의 일본 데뷔를 다룬 다큐에서도 츠요시가 나레이션을 맡았다. 또한 에릭은 SMAP 멤버들이 리메이크한 사와다 켄지의 'Tokio'에 피쳐링을 해주는 등 사이가 좋았으나, 2012년부터 신화가 컴백을 선언하고 바쁘게 활동하다 보니 예전만큼은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은 모양.
사실 국내에서 기무라 타쿠야와 쿠사나기 츠요시(초난강)을 제외하면 인지도가 희박하다. 리더인 나카이가 말하길, 자신이 한국 등에 가면 '''"혹시 기무라 타쿠야 만나봤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그럴 때 "뭐...깊은 대화를 나눠 본 사이죠."라고 대답하면 대단해!!!!! 하는 반응이 되돌아온다고 한다. 일본에선 엄청난 연예인이지만 한국에선 그저 일본 사람...사실 기무라 타쿠야가 아이돌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