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농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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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농촌진흥청 어린이 체험관 홈페이지
흙을 뜨고 파는 데 쓰는 농기구.
가래는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워 만든 것이다.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각각 한두 사람이 줄을 당기어 흙을 던진다.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
화가래라는 것도 있는데, 사실 괭이의 일종으로, 날의 모습은 가래와 같으나 일반 가래와 달리 날이 직각으로 붙어 있어 생긴 게 괭이랑 비슷하다. 쓰임새도 괭이랑 같다.
삽을 변형시켜 만든 것으로 넓죽한 삽날에 긴 나무자루를 박고, 삽날 윗부분 좌우측에 각각 줄을 매어 사용한다. 보통 3∼5인이 사용하는데, 한 사람은 자루를 잡고, 2∼4인이 양쪽에서 줄을 잡아 당기며 작업을 한다. 삽보다 작업 능률이 높고 여러 사람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
속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할 때 가래가 바로 이거. 현대에는 굴삭기라는 기계가 가래가 하던 일을 대신한다.
일본어로는 すき라고 발음하기 때문에 가래입니다(鋤です) = 스키데스 = 좋아합니다(好きです)라는 말장난도 가능하다.
스키야키의 명칭 어원 중 하나로 가장 널리 퍼져있는 이야기로 말 그대로 고기를 가래에 올려 구워먹었기에 스키야키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있다.[1] 이러한 이야기에서는 가축의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던 시절 농민들이 고기를 먹을 때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 자체를 부정하게[2] 여겼기 때문에 조리도구에 부정 탄다고 대용품으로 농기구를 썼기 때문이라고도 하나, 육식이 해금되기 전의 기록에 남아있는 스키야키는 쇠고기가 아닌 오리, 기러기, 어패류 혹은 고래고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3] 구이에 사용할 철판이 거의 없었던 당시 여건 때문에 그나마 넓적한 모양새의 농기구인 가래를 썼던 것으로 추측된다.[4][5] 실제로 고래고기 스키야키에 대한 1832년의 기록에는 딱히 가래가 아니어도 그냥 많이 써서 잘 닳은 깨끗한 철기를 쓰면 된다고 적혀있다. 현대에도 비슷하게 삽날에 고기를 올려서 숯 가마나 전통적인 방식의 장작불 찜질방 등지에서 이러한 고기 구이를 하는 것이 남아있다.
출처: 농촌진흥청 어린이 체험관 홈페이지
1. 개요
흙을 뜨고 파는 데 쓰는 농기구.
2. 형태
가래는 생나무를 자루와 몸이 하나가 되도록 깎고 둥글넓적한 몸 끝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끼워 만든 것이다. 몸 양쪽에 구멍을 뚫고 줄을 꿰었으며, 한 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양쪽에서 각각 한두 사람이 줄을 당기어 흙을 던진다. 줄의 길이는 대체로 자루의 길이와 비슷하다.
화가래라는 것도 있는데, 사실 괭이의 일종으로, 날의 모습은 가래와 같으나 일반 가래와 달리 날이 직각으로 붙어 있어 생긴 게 괭이랑 비슷하다. 쓰임새도 괭이랑 같다.
3. 특징
삽을 변형시켜 만든 것으로 넓죽한 삽날에 긴 나무자루를 박고, 삽날 윗부분 좌우측에 각각 줄을 매어 사용한다. 보통 3∼5인이 사용하는데, 한 사람은 자루를 잡고, 2∼4인이 양쪽에서 줄을 잡아 당기며 작업을 한다. 삽보다 작업 능률이 높고 여러 사람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
4. 기타
속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할 때 가래가 바로 이거. 현대에는 굴삭기라는 기계가 가래가 하던 일을 대신한다.
일본어로는 すき라고 발음하기 때문에 가래입니다(鋤です) = 스키데스 = 좋아합니다(好きです)라는 말장난도 가능하다.
스키야키의 명칭 어원 중 하나로 가장 널리 퍼져있는 이야기로 말 그대로 고기를 가래에 올려 구워먹었기에 스키야키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있다.[1] 이러한 이야기에서는 가축의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던 시절 농민들이 고기를 먹을 때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 자체를 부정하게[2] 여겼기 때문에 조리도구에 부정 탄다고 대용품으로 농기구를 썼기 때문이라고도 하나, 육식이 해금되기 전의 기록에 남아있는 스키야키는 쇠고기가 아닌 오리, 기러기, 어패류 혹은 고래고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3] 구이에 사용할 철판이 거의 없었던 당시 여건 때문에 그나마 넓적한 모양새의 농기구인 가래를 썼던 것으로 추측된다.[4][5] 실제로 고래고기 스키야키에 대한 1832년의 기록에는 딱히 가래가 아니어도 그냥 많이 써서 잘 닳은 깨끗한 철기를 쓰면 된다고 적혀있다. 현대에도 비슷하게 삽날에 고기를 올려서 숯 가마나 전통적인 방식의 장작불 찜질방 등지에서 이러한 고기 구이를 하는 것이 남아있다.
[1] 이 경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매사냥에서 돌아오다가 새고기를 가래에 구워먹었단 식의 이야기가 덧붙여지기도 한다.[2] 불교에서 단 한 번도 육식을 부정한 적은 없다. 스님 항목 참조[3] 살생금단령으로 먹는 것이 금지된 고기는 소, 말, 개, 원숭이, 닭으로 메이지 유신 이전에도 멧돼지, 사슴, 오리, 기러기 등의 고기는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살생금단령 자체도 그렇게 엄격하게 지켜진 것은 아니어서, 보약이니 모란이니 하는 은어를 써가며 고기를 먹어댔고, 심지어 쇼군조차도 붉은 반점이 있는 소는 먹어도 부정을 타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그 고기를 먹곤 했다. 쇠고기를 사용한 스키야키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69년이다.[4] 가래를 실제로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넓어서 고기 한 근쯤은 올릴 수 있다. 게다가 자루가 길어서 대충 들판에 아무렇게나 짚으로 불을 피운 뒤에 고기를 굽기가 편하다. 짚불은 순간 화력도 강하고 이리저리 날리는지라, 넓직한 곳에 피우면 가까이가서 뭘 굽기가 힘들다.[5] 그리고 일본은 사철이 많다보니 제대로 된 철기 식재를 구하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