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1. 농기구
한국의 전통 농기구.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나무 손잡이에 완만한 곡선으로 꺾어지는 목이 이어지고, 목의 끝에 비대칭 삼각형 삽날이 달린 형태를 따른다. 용도는 매우 다양하여 잡초 뽑기부터 시작해서 씨앗 심기, 옮겨 심기,[1] 북돋기, 흙 파서 뒤집기 등 어지간한 농사일을 다 감당할 수 있다.
북부지역은 땅이 척박해서 잡초 뿌리가 깊게 박히지 않아 무겁고 날이 평평한 호미가 쓰였지만맨 오른쪽 참조 일반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쓰는 호미들은 중부 이남 지방에서 쓰는 날씬하고 날카로운 종류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날카로운 호미는 하고자 한다면 '''사람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2] 괭이, 낫과 함께 민란, 농민봉기 묘사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 주로 농민들의 손에 자주 들린다.
발굴용 도구로도 쓰인다. 날이 평평한 호미를 발굴현장의 지층(문화층)의 흙을 깎고 정리하는 데 사용한다.
1.1. 역사
집약농법, 그러니까 조그마한 땅에서 집중적으로 농경을 펼쳐 생산량을 늘리게 된 때에, 땅을 조금씩 파고 덮고, 모양도 잡고, 제초작업도 할 수 있게끔 말 그대로 정원 손질을 하듯이 농사를 지어야 하게 돼서 등장하게 된 농기구다. 토지의 지력이 그리 좋지 않아 넓은 땅에서 경작을 해야 할 때는 사용되지 않다가, 나중에 토지의 지력 또는 생산력이 향상됨에 따라 쓰임새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호미의 조상으로 볼 수 있는 농기구 유물은 서울 구의동 유적이나 창녕 교동 3호분 등지에서 보이지만 이때는 보습의 파생형에 가깝다. 남북국시대 안압지 유물에서 본격적으로 낫 형태를 보이기 시작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삼각형 형태를 딴 호미 유물이 실제로 출토되는 것은 빨라도 고려시대 이후부터다. 중국 강남지역의 농사법이 많이 도입되었던 시기인데, 이 무렵에 중국의 농기구를 수입하면서 같이 들여왔는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만들었는지는 농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이렇게 유래는 불명이지만 시대가 흐르고 나서는 중국과 일본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고유의 농기구가 되었다.
1.2. 농기구판 한류
의외로 개인 정원, 혹은 텃밭 쪽으로 한류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9년에 이런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며 작은 화제가 되었다. (## 올리버쌤 리뷰)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말고 다른 국가에는 호미 같은 소형 다목적 농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국가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은 농사를 지을 만한 평지가 풍부하기에 농작물 대량재배에 특화된 농기구가 많이 발달했다. 단적으로 쟁기나 방앗간 등을 보면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렇다보니 굳이 소량생산재배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여기에 특화된 농기구가 발달할 틈이 없었다.
반면에 평지가 적고 산악지대가 많아 농지가 그리 넓지 않은 한반도에서는[3] 산악지대의 좁은 땅에서도 최대한 토지를 활용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좁은 밭에서 작업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한데, 이런 작업방식은 필연적으로 많은 인력을 요구하기에[4] 여성이나 아이 등 근력이 약한 사람도 사용할 수 있도록 소량재배용 농기구가 발달한 것이다. 결국 작은 땅에서 농사짓는데 적합하며 남녀노소 쓸 수 있는, 여러가지 작업에 사용 가능한 조그마한 농기구가 자연스레 발달했다. 호미 외에 조선낫도 비슷한 경우다.
호미의 원래 목적에 맞춰 분석하자면, 호미는 '소량 생산에 알맞은 농기구'가 아니라 제초용 도구다. 한반도는 그 환경적 특성상, 제초를 하지 않으면 수확량이 0에 가깝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제초에 힘써야 했고 그 결과물이 호미다.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도 이러한 제초용 도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제초의 필요성이 한반도 만큼 높지 않아서 호미 이상의 다목적 제초 도구는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산업화가 이루어진 뒤, 한국은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농사에 종사하는 인구 비율이 줄어들면서 호미나 낫의 사용률이 많이 줄어들었다. 한편 외국에선 가드닝(gardening), 즉 마당에 텃밭을 꾸미는 취미가 퍼지면서 소량재배용 농기구의 수요가 생겼다. 문제는 상기했듯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농업이 대량재배에 특화된 방향으로만 발달한 탓에 소량재배용 농기구가 발달하질 않았다는 점이다. 앞마당에 브로콜리를 심는데 트랙터를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 정원 가꾸기용 도구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원예용이라 농사 짓기에 쓰기는 좀 불편했다. 원예할 때 주로 쓰는 모종삽은 식물을 화분에 옮겨 심거나 적당히 땅을 파기는 쉽지만 밭고랑을 갈고 잡초를 제거하기는 힘들다. 한 번 모종삽으로 잡초를 뽑으려 해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런데 이 요구사항에 호미가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앞서 설명한 '작은 땅에서 농사짓는데 적합하며 남녀노소 쓸 수 있는, 여러가지 작업에 사용 가능한 조그마한 농기구'라는 모든 조건이 일치한다.
국뽕성 과장이나 농담이 결코 아닌 게, 유튜브나 구글에서 Homi 내지는 Easy Digger 등으로 검색해보면 영어권 사람들이 호미를 정원 취미자의 필수도구라고 선전하는 영상/포스팅이 흔하게 나온다. 영상들 연도를 봐도 굉장히 오래된 것부터 최근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히 두툼한 쇳날의 거친 맛에 뒤뜰을 가꾸는 미국인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명칭도 로마자로 homi, ho-mi라고 쓰고 발음도 '호미'라고 한다. 아무래도 받침도 없고 이중모음도 없는 단어라, 서구권 사람들에게 생소한 한국어라도 발음하기 쉬운 것이 이유인 듯. 추가로 Easy Digger는 호미가 삼각날 덕에 특히 좁고 깊은 구덩이를 쉽게 파는데 매우 유용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리고 호미가 한국 말고는 구할 곳이 없다 보니 이런 나라들에서는 전량 수입을 해야 해서 '''아마존 등지에서 국내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만들기엔 노하우 같은 것도 전무하고, 오리지널 생산국인 한국에선 소규모 대장간에서 수제로 생산하여 동네 철물점 같은 곳에서나 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선 품질 좋은 호미도 비싸봐야 만 원 정도에 살 수 있는 반면 외국에서는 프리미엄에 배송비까지 붙어 하나에 30달러(대략 3만 원)가 넘게도 파는 것이다. 한국에서 수요가 낮아져 먹고 살기 힘들었던 대장간들이 해외수출로 좀 살만해졌다는 말도 나올 정도. 세계시장 주름잡는 ‘한국산 호미 영상 참조. 허영만 만화 식객에서 실제로 대장간에서 있었던 일을 취재한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말을 좀 하는 외국 백인 여성이 대장간에 파는 호미를 사갈 때 2000년대 중순 값으로 만 원 정도 달라고 하자 놀라면서 "이렇게 좋은 게 왜 이리 싸요!"라면서 오히려 두 배인 2만 원을 줬다고 한다. 2020년에는 아마존에서 유명해진 호미를 생산한 대장간에서 캐나다와 영국 수출, 미국 코스트코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
재미있는 점은 이게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 일제강점기 때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일본의 농업연구원들이 낙후된 조선의 농업 기술을 개선하겠다며 조선 농촌에 들어왔는데, 되려 호미나 조선낫 등 조선 전통 농기구의 내구도와 효율성을 보고 오히려 당황했다고 한다. 이때 일본이 가져간 농기구들도 많은 편.[5]
이쯤 되면 중국산 짝퉁이 나올 만하지만 다른 제품에 비해 그 수가 많지 않은데 그 이유는 원조가 워낙 뛰어나서다. 물론 국내에선 중국산을 싼 맛에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해외수출까지 하는 호미는 질적으로 차이가 너무 나서 충분히 메리트가 있다. 땅에 여러 번 파는 행위를 반복하는 농기구 특성상 내구도가 약하면 금방 망가져버려 좋은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많이 난다. EBS 극한직업에 나온 장인의 말에 의하면 국산 호미를 하나 쓸 때 외국산은 서너 개를 쓴다고. 품질 차이가 압도적이라 해외에서는 20~30달러를 주고서라도 써도 평생 쓸 수 있을 만큼 남는 장사인 것. 아직도 호미 대다수는 한국에서 대장간 수공업[6] 으로 만드는데, 구조 자체는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손잡이에서 이어지는 묘한 목의 곡선과 비대칭으로 이어지는 삽날을 형성할 기술력이 어느 정도 필요해 공장제로 대충 후다닥 만들어낼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덕에서 자동차용 스프링강[7] 을 가열한 다음 공압해머와 망치로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모양을 만들고, 손잡이용 목재도 좋은 것을 쓰기에 무지하게 튼튼하다.
사실 대장간에서 수제 호미를 만드는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그야말로 죽을맛이였다. 이유인 즉슨 사람들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는 이촌향도 현상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구매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 그런데 이런 상황에 외국에서 호미 붐이 벌어지는 덕에 수요가 급격히 늘어 수공업자들이 한숨 트게 되었다는 일화도 존재한다.
2. Homie
보통 Homeboy의 준말로 여겨지는 은어로, 힙합 문화가 대두된 이후로 주로 흑인 커뮤니티에서 유통되는 단어.
어원이 확실하진 않으나 과거엔 Hombre가 변형된 은어로 히스패닉 커뮤니티에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친하건 친하지 않건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동향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심슨 가족에서 마지 심슨이 호머 심슨을 부르는 애칭도 Homie다. 물론 이건 이름에서 따온 것이어서 관련없음.
이 단어 때문에 영어권에서 1번 항목의 호미를 표기할땐 Ho-mi, Ho mi로 표기한다. Homi도 아예 안 쓰진 않지만, 오해를 막기 위해 전자의 표기를 좀더 사용하는 듯하다.
3. 미루타이츠의 등장인물
항목 참조.
[1] 넓은 날 위에 작물을 얹어서 옮길 수 있다. 틈이 많은 사람 손보다는 아무래도 단단한 쇠 위가 안정적이고 흙도 덜 흘러내리기 때문.[2] 농경시대를 살아오신 주변 어르신이 있다면 호미로 사람이 다친 일이 있냐고 여쭤보자. 수많은 증언들이 쏟아질 것이다. 아마존닷컴 리뷰에도 "대장간에서 갓 나온 듯 실제로 보면 훨씬 굵고 튼튼하며 환상적으로 쉽게 화단 정리를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좀비가 덤비면 후려쳐서 목도 딸 수 있을 것 같다(...)'''"는 찰진 평도 있다.[3] 당장 전라도 지역이 '지평선이 보인다'고 한반도의 곡창지대라고 불리는데, 유럽이나 미국, 심지어 중국이나 일본 입장에서 봐도 지평선이 보이는 건 전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니다. 과장 좀 보태서 농사 좀 짓는다 하는 곳에선 지평선 안 보이기가 더 힘들 정도. 그리고 호남평야도 근현대에나 곡창지대가 되었지, 고대-중세엔 염해로 농사 짓기가 오히려 산과 산 사이 계곡보다 더 힘든 땅이었다.[4] 품앗이 같은 이웃사촌 문화가 발달한 것도 이런 농업문화와 연관이 있다. 작업을 수월하게 하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보니 이웃끼리 서로 도와주어야 했던 것이다.[5] 그렇다고 일본 포함 다른 나라가 한국보다 멍청하거나 농업 기술이 뒤떨어져서 호미같은 걸 발명하지 못했다고 해석하면 곤란한다. 그저 한국은 이런 것이 필요했기에 발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사를 보면 이렇게 필요에 따라 그 나라에서만 발달된 특유의 기술이 의외로 많다.[6] 이것이 짝퉁의 수가 많지 않은 이유의 근본이다. 지역마다, 만드는 사람마다 노하우와 기술이 다른데, 심지어 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보니(물론 장인의 숙련도가 몇십 년 단위로 높으면 이런 차이도 보기 힘들다) 제대로 된 기술이 없으면 이도저도 아니게 흉내도 못내는 것이다.[7] 혹은 레일강.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탄소 함유량이 0.6~1.5%인 '''고탄소강'''으로, 탄성한계와 취성한계가 높으나 힘을 받는 용도로 쓰는 강재인지라 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