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원(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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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2. 생애
1916년 3월 5일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상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9년 3월 일본으로 유학가서 도쿄 전수대학(專修大學)에 입학해 1941년 12월에 졸업했다. 전수대학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그는 일본 유학생인 강영석, 임병학(林炳學) 등과 함께 조선학생동아연맹(朝鮮學生東亞聯盟)에 가입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비밀 조직인 "우리들"을 조직했다.
1941년 12월 전수대학을 졸업한 강수원은 하관(下關)의 제1징병보험주식회사의 보험회사원으로 근무하면서 비밀리에 김창옥(金昌沃)등 동지들과 함께 한인 교포들과 접촉하며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다가 1943년 6월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1년 이상 미결수로 모진 고문을 받았고, 1944년 10월 6일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때 피폭되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8.15 광복 직후 석방되었다.
강수원은 해방 후 국내로 귀국해 전북 익산의 남성고등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했고, 2000년 회고록 <망국인의 통한>을 출간했다. 이 책은 ‘나의 독립운동과 옥중수기’와 ‘한국 원폭피해자의 실태’, ‘핵 위험은 늘어만간다’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구성됐다. ‘나의 독립운동과 옥중수기’편은 성장배경과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경위, 그리고 히로시마 형무소에서의 생활 등을 다뤘고, 한국 원폭피해자의 실태’편에서는 원폭 피해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소외받은 한국인 피해자의 현실을 다뤘으며, '핵 위험은 늘어만간다'편에서는 핵문제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재앙 등을 서술했다. 이후 수원보훈복지타운에서 거주하다가 2003년 4월 25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강수원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3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