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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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설치미술가. 공공예술가.
굳이 얘기하자면 그가 하는 예술을 '참여 예술'이나 '개념 예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관심을 가진 주제나 특정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수많은 작은 캔버스 그림 타일들을 모아 이를 설치미술 형식으로 정렬하여 작품을 만들어낸다.
2. 생애
강익중은 1960년 9월 11일 충북 청원군 옥산면에서 부 강대철(1934-1989)과 모 정양자(1933- ) 사이에서 삼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강대철은 영등포에서 약국을 경영하다가 대일제약이라는 회사를 인수해 한때는 사업을 번창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강익중이 네 살 되던 무렵 회사가 부도를 내기에 이르고, 그는 사업의 부침이 이는 가운데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를 보내야 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어 대회 입선도 하고, 국전도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 주변 친구들이 너무 잘 그려서 그림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졌다고... 1984년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하였다. 아무래도 작가가 되긴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교수가 되기는 더 어려울 것 같고, 그래도 당장 필요한 생활비는 벌어야 하니까,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 무작정 뉴욕으로 떠났다.
하루 12시간 이상 온갖 일을 하다가 문득 세상을 관찰하는 일에 호기심을 가졌다. 뉴욕이 온지 3년 되던 해 학교 선배의 여행에 가이드를 했는데, 선배는 너무도 당연한 일상을 사진 찍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여행자의 눈으로 본다는 것,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그 때부터 일터와 집을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세상을 관찰하며 손바닥만 한 정사각 캔버스 위에 그림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수 천 장의 그림을 그리고 나자 곧 뉴욕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미국의 젊은 기대주들의 전시인 <라우더>전에 초대되었고 1994년에는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 다이얼로그>전을 열었다. 이후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에는 광화문 가림막 설치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3. 작품
3.1. 강익중체
3.2. 광화문 가림막
3.3. 달항아리
3.4. 꿈의 다리
3.5. 집으로 가는 길
4. 여담
- 강익중은 스스로의 작품을 '비빔밥'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