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형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지형은 1881년생이며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정교리 출신이다. 1919년 3.1 운동 이후 국내에 있던 이헌교(李憲敎)·이민태(李敏台)·한남수(韓南洙)·이규갑(李奎甲)·김사국(金思國) 등이 서울 시내 내자동에 소재한 한성오(韓聖五)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임시정부 및 국민대회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토의하고 국민대회 취지를 작성했다. 이때 강지형도 13도 대표 25인 가운데 1인으로 참가했다. 이후 만주로 망명한 그는 1919년 12월 지린성 관전현에서 대한독립단에 가입했으며, 박장호 총재로부터 경기도 지단을 조직하라는 밀명을 받고 1920년 1월 경기도 도시찰 전권위원에 임명되어 서울로 잠입해 상왕십리에 거주했다.
그는 서울에서 중앙본부를 조직하고 각 도, 군에 지단을 설치하기 위해 임명장, 사령서, 격고문, 경고 경향 각 부호문, 경고 동포 왜관리문, 임시통칙, 군자금 영수증 등 수천 매의 유인물을 제작했다. 이어 단원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독립군의 국내 진입시 일제히 호응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게 발각된 그는 곧 체포되었고, 1921년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1년 4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강지형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