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장재판소
조선~대한제국 시기에 존재했던 재판소.
1895년(고종 32) 5월 일제가 내정 개혁인 갑오개혁에 개입해 재판 제도의 개혁을 요구한 것을 계기로, 개혁 법률 제1호로 '재판소 구성법'이 제정, 공포되어 5월 개항장재판소 설치가 공포되었다. 이에 따라 감영·유수영 및 기타 지방 관아에서 행하던 재판 사무를 폐지하고, 개항장인 인천, 부산, 원산 등의 재판소에서 수리, 심판하게 되었지만 일반 재판소와 달리 외국인들이 조차하는 개항장에 위치하고 있기에 법무아문에서 관할하는 것을 물론이고 외무아문의 감리서에서도 개항장재판소를 관할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수도인 한성을 포함해 경흥(웅기), 무안(목포), 삼화(진남포), 창원(마산), 성진, 옥구(군산), 용천(용암포), 의주(신의주) 등 개항장이 늘거나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한 지역에 설치되었다.
주요 업무로는 민사·형사 사건을 모두 취급하였으며, 외국인과 관련된 민사사건도 처리했다. 관원으로 판사 ·검사 ·주사 ·정리 등의 관원을 두었으나 개항장의 규모에 따라 약간씩 달랐다. 판사가 유고시에는 해당 부의 참사관 또는 주사로 하여금 사무를 처리하게 한 반면, 검사가 유고시에는 해당 부의 주사 또는 총순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했고, 주사가 판사 서리가 되면 검사 서리를 겸할 수 없게 하였다.
판사의 경우 단석의 경우 단석 판사가 재판권을 가졌지만 대체로 각 재판소에 2인 이상의 판사를 둘 때에는 단석 또는 합석이 가능하나, 합석의 경우 수석 판사가 재판을 선고하고 이들 사이에 의견이 다를 때에는 수석 판사의 견해에 따르도록 하였다. 또한 검사와 마찬가지로 칙임관이나 주임관으로 칙임관은 황제의 임명에 의하고, 주임관은 법부 대신이 추천, 상주하여 임명한 것이다.
다만 판사는 대외관계 업무를 일원화하기 위해 외부에 속한 감리서에서 파견된 감리가 겸했고, 감리의 경우 개항장재판소의 판사를 겸하는 것외에도 개항장의 세워진 학교의 교장이나 부윤 등을 겸하며 개항장 내에서 최고위자로 개항장을 관리했다.
이러한 개항장재판소는 1905년 11월 일제가 통감부 설치, 외교권 박탈을 골자로 하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면서 외부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면서 소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