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131호'''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高麗末 和寧府 戶籍 關聯 古文書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분류'''
기록유산 / 문서류 / 관부문서 / 호적류
'''수량/면적'''
1축
'''지정연도'''
1969년 11월 7일
'''제작시기'''
고려 공양왕 2년(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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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국보 제131호
5. 같이보기


1. 개요


高麗末 和寧府 戶籍 關聯 古文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살아생전 간직하고 다니던 8폭의 호적 문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고려 공양왕 2년인 1390년에 영흥에서 작성된 호적으로, 당시 화령부(和寧府)에서 이성계에게 등본을 떼준 문서이다.
고려시대 양반은 3년에 한 번씩 호적을 2부 작성하여 하나는 관청에 두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보관해야 했다. 이 호적에는 이성계 가문을 포함 함경남도 영흥의 양반가구 30여호의 호적이 기재되어 있으며, 평소 이성계가 직접 간직하던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본향(本鄕) 영흥에 있을 때 발급받은 호적으로, 고려 말 양반 호적제도를 연구하는데 중요하게 사용된다. 또한 650여년전 한국의 공문서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3. 바깥고리



4. 국보 제131호


이 호적은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본향인 영흥에서 작성한 것이다. 원래 고려시대 양반은 3년에 한 번씩 호적을 작성하는데 이 때 2부를 작성한다. 1부는 관아에 보고하고 다른 1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이성계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의 내용을 보면 이성계의 관직, 식봉이 명기되어 있으며, 태종 이방원의 이름도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호주 이성계를 중심으로 동거하는 자식, 형제, 사위와 노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문서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의 기록으로 이성계의 세계(世系)를 파악하는데 참고가 될 뿐만 아니라 당시의 호적제도를 연구하는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5. 같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