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 National Museum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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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박물관
관장
민병찬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용산기지
개장
1909년제실박물관 설립연도
2005년건물 설립연도
연락처
02-2077-9000
홈페이지 소장품 검색

1. 개요
2. 역사
3. 소장품
3.1. 오타니 컬렉션
4. 관람 정보
5. 교통
6. 관련 법령
7. 국립중앙박물관장
8. 논란
9. 여담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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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한국의 대표 국립 박물관. 한국의 고미술, 유물을 중심으로 소장하고 있으며, 소장 유물 약 40만7천여 점[1]으로 한국 최대의 박물관이면서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규모이다. 한국의 현대 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담당한다. 행정조직법상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인데,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 국내 다른 박물관을 지도·지원하는 위치에 있다. 근처 가까운 곳에는 국립한글박물관이 있다.

2. 역사


국립중앙박물관은 연혁의 시작을 순종황제가 지은 제실박물관으로 상정해 놓았다. 사실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 컬렉션의 기초는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해방 후의 덕수궁미술관, 92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분리. 현재의 국립고궁박물관), 그리고 민속학의 대가 송석하가 지은 남산의 국립민족박물관 소장품을 합친 것이다. 그러나 총독부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이 모두 일제에 의하여 설립되었기 때문에 처음엔 조선총독부 박물관[2]을 인수 개편하여 1946년에 '국립박물관'이란 명칭으로 덕수궁 석조전 건물에서 개관한 것으로 역사를 설명하였다. 최광식 관장의 취임 이후 이왕가박물관이 1909년 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 주목해 박물관의 시작은 제실박물관으로 보고, 2009년을 한국박물관 100주년의 해로 선포하고 몽유도원도 등을 비롯한 유물이 전시되는 대규모 특별전과 행사를 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총독부 박물관에 조선 전국의 문화재를 모으면서 규모를 넓혔다. 일제는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처럼 식민지 유물들을 정부의 주도로 일본 본토로 마구 실어나르려 하지는 않았는데 처음에는 조선 식민지배가 오래오래 갈 것으로 착각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반 패색이 짙어졌을 때는 이미 미 해군에게 제해권을 완전히 빼앗겨서 대한해협 건너 일본 본토로 실어나를 수가 없었다.[3] 그러나 일본인으로서 개인적으로는 꽤 많은 유물을 반출했다.
광복 이후 경복궁 경내의 총독부박물관 자리에 그대로 있다가 6.25 전쟁이 터지고 유물과 박물관도 임시수도 부산으로 피난가게 되었다. 북한은 조선중앙력사박물관 문서에서 설명돼 있듯, 과거 조선왕실과 일제가 수집해뒀던 한국사 핵심 문화재들을 그대로 물려받은 남한과 달리 북한 지역에는 조그만 평양부립박물관 정도뿐이었기 때문에[4] 소장한 문화재가 많지 않았다. 침공 직후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아직 서울에 남아있는 유물을 다 북쪽으로 가져가려고 박물관 직원들을 협박해서 유물들을 포장하게까진 했는데, 북한 내부에서도 광복적인 8월 15일 통일을 거론하는 등 적화통일이 거의 눈앞이라 낙관적으로 생각해 서두르지 않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빠른 속도로 북진이 시작되자 인민군은 서둘러 도망가느라 대부분의 유물을 서울에 그냥 두고 갔다.
결국 서울이 수복되면서 아직까지 남아있던 거의 대부분의 유물을 부산으로 옮겼는데 이때 미처 옮기지 못한 대형 중국 벽화나 양나라 미라는 훼손되었다고 전한다. 1953년 휴전 이후 서울로 오면서 경복궁 경내로 돌아왔으나 그해 10월에 경복궁 부지가 구황실재산사무총국(현 문화재청)에 넘어가자 1954년 2월부터 구 남산분관 건물에 머물렀으나, 그해 6월에 남산 건물이 연합참모본부로 쓰이자 그해 11월에 덕수궁 석조전으로 옮겨 이듬해 2월에 개관하였다.
덕수궁에 자리를 틀던 1957년 12월부터 1959년 6월까지 미국 8개 도시에서 처음으로 국보급문화재 해외전시회를 열었으며, 1961년 3월부터 1962년 5월까지 영국·프랑스·네덜란드·독일·오스트리아에서 중요문화재 해외순회전시를 하여 일제 식민사관에 매몰된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폭넓고 알기 쉽게 소개하는 데 노력하였다. 1960년에 학술지 <미술자료>를 창간한 후 1968년 7월 문교부 소속에서 문화공보부 소속으로 직제가 개편된 뒤 이듬해 덕수궁미술관을 통합했다. 1972년에 현 명칭으로 변경하여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을 신축해 이전하였다. 1973년에는 공주분관을 신설하고 1975년부터 지방분관을 '지방박물관'으로 개편했다. 1976년 보존과학실을 열었다.
그러나 1982년 정부과천청사 신설로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이 비자 해당 건물을 개조해 1986년에 이전하고 그해에 중앙청 후생관 건물(1979년 건립)을 사회교육관으로 개편하였다.
중앙청에 둥지를 튼 시절에도 사회교육관 신설 외에 1990년 버스 이동박물관 '움직이는 박물관'을 개설했다. 1992년에 국립민속박물관을 독립시키고 1995년 광복절 때 문민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면서 소장품들이 임시로 근처 벙커에 들어가 있었다가 경복궁 경내의 사회교육관 건물(현 국립고궁박물관)을 개축하여 이전하였다.
이후 미군 용산기지 골프장을 돌려받아 조성된 용산가족공원 내에 크게 건물을 지어서 2005년에 개관하여 비로소 세입자 신세를 벗어났다. 신축 비용은 당시 돈으로 4100억원이며 시공/토목 등은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동부건설, SK건설, GS건설 등 5개사가 맡았다.
개관 기념으로 잠시 무료개방을 하다가 이듬해부터 입장료를 받았으나,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한시 무료개방을 하더니 모든 국립박물관의 입장료를 없애서 현재는 무료다. 현재 앞마당에 국립한글박물관이 2014년 10월 개관하였으며 차후 주변 부지도 기증 받아 국립민속박물관을 이전하고 전쟁기념관까지 연결하여 거대한 뮤지엄 파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지만... 과연 언제쯤 완성될지? 다만 현 위치가 저지대인지라 대규모 홍수가 닥치면 문화재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차관급 기관이며 산하에 지방 국립박물관 13곳으로 구체적으로는 경주, 공주, 광주, 김해, 나주, 대구, 부여, 전주, 제주, 진주, 청주, 춘천, 익산을 거느린 대규모 기관이다. 참고로 국립민속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 직속의 별도 기관이며, 국립고궁박물관은 문화재청 산하로 모두 국립중앙박물관과는 관련이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재청 산하), 대한민국역사박물관(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전쟁기념관(국방부 산하), 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 산하), 국립현대미술관(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해양박물관(해양수산부 산하)과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앞의 국립한글박물관 역시 마찬가지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별도기관이다.
건물의 모티브는 한국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볼 수도 있고 귄위적이거나 사치스럽게 느끼지 않는 성벽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중앙박물관이라는 역사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2013년에 동아일보와 건축전문지 SPACE가 국내 건축가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로 나온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에 17위로 랭크되기도 했다.
2009년에 국립중앙박물관 100주년 특별전을 했었는데 누가 한국 최고 최대 박물관 아니랄까봐 국내는 물론 국외의 여러 박물관, 미술관에서 엄청 귀한 전시물을 보내 축하했었다. 몽유도원도, 훈민정음 해례본, 천마도 등 평소에 보기 힘든 유물들도 100주년을 축하해주기 위해 보내져와서 전시했었다. 엔간하게 유명한 유물들도 쩌리로 보일 지경(...) 특히 이 특별전이 무려 무료라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었다. 전국의 역사학도, 미술학도는 물론 문화계통에 관심있는 사람은 남녀노소 몰려와서 장사진을 이루었다. 특히 몽유도원도는 1인당 1분만 볼 수 있도록 관람을 제한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었다. 국중박의 위엄 내지는 국내 박물관에서 위치를 잘 보여주었던 특별전.
2012년 이명박 정권 당시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한 국가 정상들과 만찬을 가졌는데 하필이면 그 장소가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그것도 강당이나 교육관이 아닌 유물을 전시하는 제1전시실. 박물관을 가 본 사람은 당연히 알겠지만 박물관에는 음식은커녕 음료수 한 잔도 들고 가지 못한다. 이렇게 상식에 어긋난 행동에 대해 전우용"미친 짓"이라며 까댔는데, 박물관 측은 '뉴욕이나 프랑스도 국립박물관 안에서 만찬을 즐길 수 있다.'라든가 '유물들은 모두 벽부장으로 격리되었고 온습도조절장치가 있어 피해는 없다.'고 해명했다.
2015년, 박근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콜베르 재단과 연계하여 2015년 5월부터 8월까지 전시회를 열고 싶어했다. 별 문제가 안 될 듯한데 문제가 되었다. 콜베르 재단은 카르티에, 루이비통을 비롯한 프랑스 명품업체들의 연합체로, 쉽게 말하면 명품 전시회를 이곳 국립박물관에다 열려고 했다는 것. 당시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상업성이 강한 전시는 할 수 없다.'며 완강히 반대하면서 전시회는 무산되었다. 관련기사. 그러자 치졸하게도 박근혜는 김영나 관장을 곧 해임하였다.

노태강 전 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700만~800만 원짜리 원피스 등 프랑스 명품을 전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시관 앞에서 판촉 행사까지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나친 상업성에 박물관 직원들이 나자빠졌다. ‘병인양요’에 빗대 ‘병신양요’라고들 했다”라며 “김영나 관장은 끝까지 반대하다가 잘렸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2018년 광복절에 '정부수립 70주년 및 광복 73주년 기념식'이 본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2020년 2월 25일 부터 무기한 관람이 중지 되는 임시 휴관을 시행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5월 6일부터 재개관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다시 심각해지면서 5월 29일 18시부터 6월 14일까지 다시 휴관하게 되었다.
8월 16일, 직원 중 확진자 발생으로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3.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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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6세기 후반, 미상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7세기 초반, 신라 유력

소장품 중에 당연히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많다. 그러나 유물의 수준에 비해서는 또 많은 것이 아닌데, 가끔보면 교과서에도 나오는 엄청 유명한 유물도 국보나 보물이 아닌 경우가 많다. 문화재의 지정 및 등록을 담당하는 문화재청의 공식적인 해명은 문화재의 지정 및 등록은 문화재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관리의 문제점이나 훼손의 가능성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는 것. 즉 아무리 좋은 문화재라도 한국에서 가장 안전하고 전문적인 관리를 받은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있으니 지정의 시급성이 떨어져 후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건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이가 안 좋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비슷한 일을 담당하는 두 기관이 기싸움을 하면서 서로의 조직을 늘려가고 있는데, 문화재청이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지금의 국립고궁박물관)을 만들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왕실유물을 대규모로 빼가 두 기관의 사이가 더 악화되었다는 것. 그리고 국박은 국박 소장이라는 것 만으로 소장품의 권위가 어느 정도 서기 때문에 국보니 보물이니 하는 권위를 빌려와서 소장품에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권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설기관이 좀 더 타이틀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한다. 실제로 최근 두 기관의 협력을 위해 문화재청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여기에 협력한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이건 역설적으로 두 기관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반증이 된다. #
국사책에 나오는 유물 중에서 많은 수[5]를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다. 물론 건축물 같은 건 빼야 되니 절대 다수까지는 아니지만서도, 옮길 수 있는 건 정말 많다. 내부에 도 있으며(국보 86호 경천사 10층 석탑)[6]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 등 야외에서 훼손이 될 만한 유물도 이 안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겪어서인지 박물관 내 유물들은 온전하게 원 소유주에게 있다가 온 것이 거의 없고, 국가에서 경매에 부쳐진 걸 구매해서 회수하거나 기증받은 것이 거의 대다수. 출토지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다. 당장 한국 불교미술의 정수라 불리는 위 사진의 두 유물도 마찬가지다. 6.25 전쟁 때 하마터면 잿더미가 될 뻔했으나 이걸 알아본 유엔군 장교가 귀중한 문화재라고 하여 잘 보관하여 미국에서 눈독을 들이기도 했었던 문화재들이 겨우 남은 경우도 있었다.
유물의 규모에 비해 순회전시가 잘 안 되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세계적인 박물관들은 몇 개월에서 몇 년 단위로 유물을 교체해주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재개관 이후 대표 유물이 교체된 적이 거의 없다. 예외가 있다면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부처님오신날마다 서로 교대해서 전시한다. 참고로 이 반가사유상들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것들로, 아예 작은 방에 단독으로 전시되어 있을 정도로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문화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재로서 인정받아 외국에서 한국 관련 전시를 할 때에는 거의 빼놓지 않고 초청받는다. 다만 훼손 우려 때문에 국외전시를 나가는 것은 조심스러운 편이다.[7] 현재 2020년 8월 25일부터 2021년 2월 14일까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에서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를, 상설전시관 3층 불교조각실에서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전시 중이니 두 유물을 모두 관람하고자 한다면 이 기간 내에 방문하도록 하자.
===# 주요 소장품 #===
언제든 유물의 소재를 옮길 수 있는 국립박물관의 특징상 중앙박물관과 소속 박물관의 유물 전체를 기록한다. 기간에 따라 유물이 옮겨다닐 수 있다.
지정구분
호(号)
지정명칭
소재지
비고
국보
3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중앙

국보
60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중앙

국보
61
청자 어룡형 주전자
중앙

국보
78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중앙

국보
79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중앙

국보
80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중앙

국보
81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중앙

국보
82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중앙

국보
83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중앙

국보
86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중앙

국보
89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중앙

국보
90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중앙

국보
91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중앙

국보
92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중앙

국보
93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중앙

국보
94
청자 참외모양 병
중앙

국보
95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중앙

국보
96
청자 구룡형 주전자
중앙

국보
97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중앙

국보
98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중앙

국보
99
김천 갈항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중앙

국보
100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중앙

국보
102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중앙

국보
104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중앙

국보
110
이제현 초상
중앙

국보
113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중앙

국보
114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중앙

국보
115
청자 상감당초문 완
중앙

국보
116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중앙

국보
119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중앙

국보
125
녹유골호(부 석제외함)
중앙

국보
127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중앙

국보
131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중앙
이른바 국보 호적. 태조 이성계의 개국 전 고려 호적
국보
155
무령왕비 금제 관식
중앙

국보
166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
중앙

국보
167
청자 인물형 주전자
중앙




중앙

국보
170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
중앙

국보
175
백자 상감연화당초문 대접
중앙

국보
178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중앙

국보
180
김정희세한도
중앙
손창근 기증[8]
국보
185
상지은니묘법연화경
중앙

국보
186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중앙

국보
191
황남대총 북분 금관
중앙
정작 전시되있는 방에는
벽면에 천마총 금관이라 되있다.
국보
192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중앙

국보
193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중앙

국보
194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중앙

국보
195
토우장식 장경호
중앙
두 점으로 중앙과 경주에서 나누어 보관중
국보
239
송시열 초상
중앙

국보
245
초조본 신찬일체경원품차록 권20
중앙

국보
246
초조본 대보적경 권59
중앙
송성문 기증[9]
국보
253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중앙

국보
259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중앙

국보
260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중앙

국보
271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중앙
송성문 기증
국보
27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중앙
송성문 기증
국보
273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중앙
송성문 기증
국보
280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중앙

국보
325
기사계첩
중앙

보물
2
옛 보신각 동종
중앙

보물
166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
중앙

보물
190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중앙

보물
240
백자 청화투각모란당초문 항아리
중앙

보물
269-1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
중앙
마곡사 소유. 기탁
보물
269-4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7
중앙

보물
270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6
중앙

보물
282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중앙

보물
328
금동약사여래입상
중앙

보물
329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중앙

보물
331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중앙

보물
332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
중앙

보물
333
금동보살입상
중앙

보물
338
금령총 금관
중앙

보물
340
청자 철채퇴화삼엽문 매병
중앙

보물
342
청자 음각모란 상감보자기문 유개매병
중앙

보물
343
부여 외리 문양전 일괄
중앙

보물
344
청자 양각갈대기러기문 정병
중앙

보물
345
백자 상감모란문 매병
중앙

보물
346
청자 상감동채모란문 매병
중앙

보물
347
분청사기 상감어문 매병
중앙

보물
358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중앙

보물
359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중앙

보물
360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중앙

보물
361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
중앙

보물
362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
중앙

보물
363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
중앙

보물
364
나주 서성문 안 석등
중앙

보물
365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중앙

보물
452
청자 구룡형 주전자
중앙

보물
453
도기 녹유 탁잔
중앙

보물
454
경주 노서동 금팔찌
중앙

보물
455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
중앙

보물
456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중앙

보물
515
숙신옹주 가옥허여문기
중앙

보물
522
강세황필 도산서원도
중앙

보물
527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앙

보물
547-1
김정희 종가 유물
중앙
기탁
보물
568-1
윤봉길의사 유품
중앙
선서문 및 유서
보물
569-7
안중근의사유묵-용공난용연포기재
중앙

보물
588
강민첨 초상
중앙
진주강씨 백각공파 소유, 기탁
보물
589
강현 초상
중앙
진주강씨 백각공파 소유, 기탁
보물
590
강세황 초상
중앙
진주강씨 백각공파 소유, 기탁
보물
592-1
허목 수고본
중앙

보물
648
승자총통
중앙

보물
767-4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중앙

보물
852
휴대용 앙부일구
중앙

보물
868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중앙

보물
869
성세창 제시 하관계회도
중앙

보물
870
호조낭관계회도
중앙

보물
871
연정계회도
중앙

보물
886
황자총통
중앙

보물
897
조흡 고신왕지
중앙

보물
903
청자 상감매죽학문 매병
중앙

보물
904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중앙
손기정선수 기증. 국내 유일의 서양 지정문화재
보물
928
남양주 봉인사 부도암지 사리탑 및 사리장엄구
중앙

보물
949
예념미타도량참법
중앙

보물
950
묘법연화경 권5~7
중앙

보물
953
조숭 고신왕지
중앙

보물
954
조서경 무과홍패
중앙

보물
967
상설고문진보대전전집 권7~8
중앙

보물
969
재조본 유가사지론 권64
중앙

보물
970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 1의1, 2의1~3, 권하1의1~2, 2의2~3
중앙

보물
971
묘법연화경 권5~7
중앙

보물
972
재조본 유가사지론 권55
중앙

보물
1023
신해생갑회지도
중앙

보물
1045
청자 음각‘상약국’명 운룡문 합
중앙

보물
1046
화개현구장도
중앙

보물
1054
백자 병
중앙

보물
1060
백자 철화끈무늬 병
중앙

보물
1061
백자 철채 뿔잔
중앙

보물
1067
분청사기 상감연화당초문 병
중앙

보물
1078-2
한호 필적-석봉진적첩
중앙

보물
1079
홍무예제
중앙

보물
1080
대방광원각약소주경 권상
중앙

보물
1081
묘법연화경
중앙

보물
1082
금강반야바라밀경
중앙

보물
1083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20
중앙

보물
1097
염제신 초상
중앙
기탁
보물
1124
대방광불화엄경소 권30
중앙

보물
1125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중앙

보물
1126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별행소
중앙

보물
1127
천노해 금강반야바라밀경
중앙

보물
1137
상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4
중앙

보물
1138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7
중앙

보물
1139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7
중앙

보물
1140
묘법연화경(언해) 권3
중앙

보물
1156
재조본 경률이상 권8
중앙

보물
1157-1
성리대전서절요
중앙

보물
1158
고금운회거요 권27~30
중앙

보물
1159
음주전문춘추괄례시말좌전구독직해 권62~70
중앙

보물
1160
진충귀 개국원종공신녹권
중앙

보물
1161
진충귀 고신왕지
중앙

보물
1166
여주 출토 동종
중앙

보물
1168
청자 상감매죽학문 매병
중앙

보물
1204
의겸등필 수월관음도
중앙

보물
1281-1
자치통감 권236~238
중앙

보물
1325
전 낙수정 동종
중앙

보물
1326
함창 상원사 사불회탱
중앙

보물
1327
석조지장보살좌상
중앙

보물
1328
기영회도
중앙

보물
1329
백자 청화소상팔경문 팔각연적
중앙

보물
1359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중앙

보물
1404
봉사조선창화시권
중앙

보물
1405
비해당소상팔경시첩
중앙

보물
1437
백자 달항아리
중앙

보물
1459
해동조계복암화상잡저
중앙

보물
1483
이채 초상
중앙

보물
1484
남구만 초상
중앙

보물
1485
강이오 초상
중앙

보물
1486
이광사 초상
중앙

보물
1487
서직수 초상
중앙

보물
1496
윤급 초상
중앙

보물
1499-2
이하응 초상 일괄 - 금관조복본
중앙

보물
1538
동국대지도
중앙

보물
1626
김현성 필적
중앙

보물
1628
효종어필 칠언시
중앙

보물
1632-2
정조어필-제문상정사
중앙

보물
1662
대혜보각선사서
중앙

보물
1663
대승기신론의기 권상, 하
중앙

보물
1671
윤순거 초서 무이구곡가
중앙

보물
1676
윤순 필적 고시서축
중앙

보물
1677-1
이광사 행서 화기
중앙

보물
1677-2
이광사 행서 원교법첩
중앙

보물
1679
이인상 전서 원령필
중앙

보물
1685-1
김정희 해서 묵소거사자찬
중앙

보물
1823
농경문 청동기
중앙

보물
1869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중앙

보물
1875
정선필 풍악도첩
중앙

보물
1877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중앙

보물
1878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
중앙

보물
1882-2
고려 십육나한도(제15 아벌다존자)
중앙

보물
1883
고려 오백나한도
중앙
총 6폭
보물
1887
고려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중앙

보물
1899
은제도금화형탁잔
중앙

보물
1901-7
조선왕조의궤
중앙
화성성역의궤
보물
1907
함통6년명 청동북
중앙

보물
1925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
중앙

보물
1930
청자 퇴화초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및 승반
중앙

보물
1931
청자 죽순모양 주전자
중앙

보물
1932
청자 투각연당초문 붓꽂이
중앙

보물
1975
나전경함
중앙

보물
2001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중앙

보물
2012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
중앙

보물
2018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중앙

보물
2029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중앙

국민[10]
16
방상시 탈
중앙

국민
66
구장복
중앙

국민
67
적의본 및 폐슬본
중앙

국보
28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경주

국보
29
성덕대왕신종
경주

국보
38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경주

국보
87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경주

국보
88
금관총 금제 허리띠
경주

국보
188
천마총 금관
경주

국보
189
천마총 관모
경주

국보
190
천마총 금제 허리띠
경주

국보
195
토우장식 장경호
경주
두 점으로 중앙과 경주에서 나누어 보관중
국보
207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경주
일반 비공개
국보
275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경주

보물
202
의성 관덕동 석사자
경주

보물
314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3~4
경주
광흥사 소유. 기탁
보물
315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1, 3
경주
광흥사 소유. 기탁
보물
339
서봉총 금관
경주

보물
366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경주

보물
617
천마총 금제 관식
경주

보물
618
천마총 금제 관식
경주

보물
619
천마총 목걸이
경주

보물
620
천마총 유리잔
경주

보물
621
천마총 환두대도
경주

보물
622
천마총 자루솥
경주

보물
623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경주

보물
624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경주

보물
625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경주

보물
626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경주

보물
627
황남대총 북분 은잔
경주

보물
628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경주

보물
629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경주

보물
630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경주

보물
631
황남대총 남분 은관
경주

보물
632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경주

보물
633
경주 황남동 금제 드리개
경주

보물
634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
경주

보물
635
경주 계림로 보검
경주

보물
636
도기 서수형 명기
경주

보물
884
삼안총
경주

보물
1110-1
정몽주 초상
경주
임고서원 소유, 기탁
보물
1151
청동 옻칠 발걸이
경주

보물
1152
경주 죽동리 청동기 일괄
경주

보물
1411
임신서기석
경주

보물
1474-1
경주이씨 양월문중 고문서 및 향안
경주
경주이씨 양월문중 소유, 기탁
보물
1475
안압지 출토 금동판 불상 일괄
경주

보물
1844
경주 월지 금동초심지가위
경주

보물
1870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
경주

보물
2010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경주

보물
2001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경주

보물
2028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경주

국보
108
계유명삼존천불비상
공주

국보
154
무령왕 금제 관식
공주

국보
156
무령왕 금귀걸이
공주

국보
157
무령왕비 금귀걸이
공주

국보
158
무령왕비 금목걸이
공주

국보
159
무령왕 금제 뒤꽂이
공주

국보
160
무령왕비 은팔찌
공주

국보
161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공주

국보
162
무령왕릉 석수
공주

국보
163
무령왕릉 지석
공주

국보
164
무령왕비 베개
공주
일반 비공개
국보
165
무령왕 발받침
공주
일반 비공개
국보
247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
공주

보물
148
공주 중동 석조
공주

보물
149
공주 반죽동 석조
공주

보물
979
공주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
공주

국보
103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광주

국보
143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광주

보물
587
필암서원 문적 일괄
광주
필암소원 소유, 기탁
보물
1233
현자총통
광주

보물
1488
심득경 초상
광주

보물
1874
순천 매곡동 석탑 청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
광주

보물
1937
신여량 상가교서
광주

보물
1938
신여량 밀부유서
광주

보물
1993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광주

보물
1922
부산 복천동 출토 금동관
김해

보물
2019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
김해

보물
2020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
김해

국보
143
나주 신촌리 금동관
나주

보물
660
최희량 임란관련 고문서
나주
기탁
보물
1772
총마계회도
나주
밀양박씨 지산경수공파 소유, 기탁
국보
182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대구

국보
183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대구

국보
184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대구

국보
282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대구
복장유물 일부 기탁
보물
325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
대구

보물
357
칠곡 정도사지 오층석탑
대구

보물
957
김일손 거문고
대구
기탁
보물
1237
밀성박씨 삼우정파 종중 고문
대구

보물
1410
금동 당간 용두
대구

보물
1617
이헌국 호성공신교서
대구
기탁
보물
1904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대구

보물
2017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 출토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
대구

국민
65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대구

국민
229
진주하씨 묘 출토유물
대구

국보
287
백제금동대향로
부여

국보
288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부여

국보
293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부여

국보
327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부여

보물
107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
부여

보물
194
부여 석조
부여

보물
195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
부여

보물
330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
부여

보물
1215-2
이색 초상-영모영당본
부여
한산이씨 대종회 소유, 기탁
보물
1845
부여 사택지적비
부여

국민
30-1
보부상 유품(1)
부여
기탁
국민
30-3
보부상 유품(3)
부여
기탁
국민
110
(전)박신용장군 의대
부여
기탁
국민
225
(전)고불 맹사성 유품
부여
기탁
보물
1753
익산 미륵사지 금동향로
익산

보물
1890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
익산
심곡사 소유, 기탁
보물
1991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익산

국보
12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전주

보물
718
전주이씨 고림군파 종중 문서 일괄
전주
기탁
보물
725
남원양씨 종중 문서 일괄
전주
기탁
보물
728
설씨부인 권선문
전주
고령신씨 귀래공파 소유, 기탁
보물
792
이상길 초상
전주
기탁
보물
1876
완산부지도
전주

보물
2033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
전주

보물
2034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
전주

보물
652-2
이형상 수고본-탐라순력도
제주

보물
1510
최익현 초상
제주

보물
2002
이익태 지영록
제주

국보
105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진주

국보
324
이제 개국공신교서
진주
기탁
보물
311
노인 금계일기
진주

보물
637
도기 바퀴장식 뿔잔
진주

보물
647
천자총통
진주

보물
668
권응수장군 유물
진주
기탁
보물
858
중완구
진주

보물
862
지자총통
진주

보물
885
현자총통
진주

보물
1020
김광려 삼남매 화회문기
진주
성산김씨 임계공파 소유, 기탁
보물
1078-1
한호 필적 - 한석봉증유여장서첩
진주

보물
1096
오희문 쇄미록
진주
기탁
보물
1212
이운룡 선무공신 교서 및 관련 고문서
진주

보물
1476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진주

보물
1632-1
정조어필-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
진주
기탁
보물
1864
소상팔경도
진주

국보
106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청주

보물
367
기축명아미타불비상
청주

보물
368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
청주

보물
1167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
청주

보물
1380
신경행 청난공신교서 및 관련문적
청주
영산신씨 충익공파 소유, 기탁
보물
1880
청주 명암동 출토 ‘단산오옥’명 고려 먹
청주

보물
1936
최석정 초상 및 함
청주

보물
1947
숙명신한첩
청주

국보
124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춘천

보물
1479
유숙 초상 및 관련 교지
춘천
고흥유씨 춘천종중 소유, 기탁
보물
1509
허목 초상
춘천

보물
1871
동제염거화상탑지
춘천

보물
1872
전 회양 장연리 금동관음보살좌상
춘천

보물
1873
원주 학성동 철조약사여래좌상
춘천

국민
120
청풍부원군 상여
춘천


3.1. 오타니 컬렉션


조선총독부가 조선 땅에 전시하고 있다가 패망 이후 챙기지 못하고 두고 간 중앙아시아 유물 오타니 컬렉션도 소장 중이다. 오타니 컬렉션은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西本願寺)[11]의 당주이자 주지승려였던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1876~1948)가 현 중국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베지클릭 석굴사원, 막고굴 등에서 약탈, 수집해온 벽화 및 온갖 예술품들이다. 이 오타니 컬렉션은 오타니 개인의 재정문제로 3분되어 떠도는 것 중 한 갈래가 총독부에 흘러들어와 그대로 광복으로 이어지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이 된 것. 다른 설로는 중국에서 국내로 옮겨와 다시 일본으로 반출 대기 중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그대로 주저앉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비슷한 종류의 유물이 역시 베를린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소실되었기 때문에[12][13] 세계 희귀본으로서 가치가 높다. 은연중에 현재 해당 지역에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설치하고 지배중인 중국이 반환을 바라기는 하지만, 일단은 무시하는 중. 위구르, 즉 동투르키스탄 독립 망명정부(세계 위구르 회의)도 '중국에게 돌려줘봐야 서북공정으로 써먹을 테니, 한국이 그냥 보관하길 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중국 측 입장은 다르다. 이들 주장에 의하면 오타니 컬렉션은 위구르인들이 도래하기 전 한나라~당나라 사이에 중국실크로드 도시국가문명이 남긴 유물이 대부분으로, 위구르족은 이슬람교로 집단 개종한 이후 이 유물들을 파괴한 민족[14]이지 이 유물들을 만든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15][16] 다만 이는 속지주의를 무시한 주장이다. 위구르족이 당나라 시기에야 독립된 실체로서 역사에 등장한다고는 하지만 중세 위구르 칸국이 멸망한 이후 위구르 난민들이 타림 분지 동부와 투르판 일대로 피난가면서 현지 토하라인들과 통혼했기 때문에 해당 문화 유산이 위구르인들의 문화 유산이 아니라는 근거도 없다. 투르판 분지 역시 전통적으로 토하라인들과 고창회골의 위구르인들의 주된 거주지였다. 오늘날 위구르인들은 무슬림이므로 위구르인들이 불교 유산에 대해 권리가 없다는 주장도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 중국 불교는 원래 신장 지역을 거쳐 들어왔다. 대표적으로 불경을 한역한 승려 중 가장 번역 수준이 높다고 평가받는 고승 쿠마라지바쿠처 출신이다. 불교가 유입될 당시 아직 중화문명의 중심지는 화북지방이었고 이 때문에 불교가 신장 지역을 통해 유입되는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베제클릭 벽화 등등 오타니 컬렉션 대부분은 타림분지의 실크로드 도시국가의 토하라인, 소그드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타림 분지의 원주민 토하라인들은 튀르크, 페르시아, 중국, 인도, 이슬람 또는 티베트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다. 즉, 타림 분지는 역사적으로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던 지역이며, 실크로드는 그 증거이다. 한나라당나라시절에는 타림 분지는 한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중국 통일왕조의 지배를 받지 않은 시기에도 고창국과 같은 노수호 계열 도시국가들이 존재했다.[17] 따라서 오타니 컬렉션이 한족과 완전히 관계 없는 문화유산이라는 주장 역시 논란이 있다. 해당 지역의 경제적 번영은 중국과의 중계 무역을 통해 이루어진 부분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지역은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던 지역이었으며, 실제로 중국 문화 뿐만 아니라 불교로 대표되는 인도의 문화, 조로아스터교마니교로 대표되는 이란의 문화가 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타니 컬렉션이 가치가 높은 것이다. 즉, 오타니 컬렉션과 중화문명이 무관하다거나 아니면 다 중화문명 요소이다 같은 주장은 오히려 이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주장이 된다.

4. 관람 정보


기본 관람료가 공짜인 대신 주로 기획 전시실에서 하는 특별전(혹은 기획전)은 관람료가 비싸다. 문제는 값은 비싼데 그만큼 제값을 하는 전시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게 흠. 특히 해외 박물관 협력해서 하는 전시회 쪽은 팜플렛에 있는 게 전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부실한 케이스가 있다. 성인은 세종대왕님 1장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가기 전에 할인 가능한 수단을 찾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다만, 201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는 특별전도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조금은 높아졌다. 특히 지도예찬, 대고려전, 오백나한전, 실경산수화전 같은 전시들은 평이 매우 좋았다.
호수를 끼고 계단을 올라가서 광장에 도착하면 광장계단위로 남산타워가 우뚝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이곳에 처음 방문하였거나 역사에 관하여 잘 모른다면, 1층을 둘러보면서 기본적인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 1층에서 금동대향로[18] 같은 유물 몇점만 보고 3층으로 올라가자. 3층의 조각공예관에 있는 유물이 유물사적으로 더 가치있는 것들이다. 이후에 다리와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2층 서화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날씨가 흐려서 햇빛이 강하지 않으면 야외전시장에서 염거화상 탑(국보 104호)을 비롯하여, 고려 태조 왕건이 가장 공을 들여세운 흥법사 진공대사탑과 석관(보물 365호), 개성에서 옮겨온 것으로 고려 석탑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남계원(국보 100호)과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종으로 알려진 보신각종(보물 2호) 등을 관람하는 것도 괜찮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은 매해 우리나라 고찰들에서 보관하고 있는 유명 괘불을 빌려와 2층(불교회화실)과 3층, 두 층에 걸쳐 4~6개월간 전시하고 있다. 괘불은 그 절에 가도 실물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유명 괘불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기도 하다. 불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꼭 찾아가보도록 하자. 꽤나 장엄한 맛이 있다. 2019년 현재는 공주 마곡사 괘불을 전시하고 있는 중이다.
여느 박물관 같이 가이드가 있다. 선생님의 해설을 듣고 싶다면 시간 보고 방문하도록. 그리고 굳이 가이드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3천 원에 PDP(음성 + 영상), 1천 원에 MP3(음성만 지원)를 대여하면 된다. 게다가 무료 전시안내 앱까지 있다! 구글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맨 위에 똑같은 이름의 앱 2개가 있는데 하나는 KTO에서 만들었고 하나는 애니모비에서 만들었다. 아무거나 하나 깔아서 쓰면 된다. 한때 상설전시관에 한하여 안내가 되었지만, 현재 특별전시관도 안내를 하고 있다.
방해 안 받고 조용히 관람하기 상당히 어려운 곳 중에 하나이다. 방학 시즌에는 학생들, 행락철에는 노인 관람객이 많아지고 해외 관광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까지 해서 1년 내내 시끄러운 곳이다. 조용하게 다니고 싶으면 행락철과 소풍 기간을 피한 평일, 특히 오후 9시까지 개관하는 수요일 오후~저녁 정도가 제일 좋다. 특히나 장소가 장소이기 때문에 방학 시즌만 되면 말 그대로 초딩 천국이 된다. 특별전을 보러 가는데 방학을 끼고 하는 전시회라면 방학 시작 전에 다녀 오자. 방학 기간에 끼어서 보면 난장판 사이에서 돈만 기부할 수 있다.
해외 전시로 인해서 간판급 유물들이 사라지고 안내판만 덜렁 있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잘 알아보고 가자. 특히 뉴스에 나올 정도로 해외 전시면 어지간한 네임드급은 몽땅 다 해외로 출장[19]을 가기 때문에 막상 박물관을 가도 낚일 수도 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유물이 전시돼있는 전시관이 진열된 복도로 들어가게 되는데 가기 전 왼쪽을 보면 기부함이 있다. 이 돈들은 전액 유물보존 및 해외유출문화재 환수에 사용된다고 한다.
기념품점에서 파는 기념품(굿즈) 디자인이 상당히 호평. 자칫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옛 문화재를 현대식으로 센스있게 구현했다. 특히 고양이를 메인으로 내세운 오묘한 녀석들 시리즈와 훈민정음을 테마로 한 한글과 생활은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아예 따로 온라인샵까지 운영하고 있다.
겨울에 갈 때는 반드시 든든하게 입고 갈 것. 물론 뚜벅이 관람자에 한해서지만… 이촌동한강 옆에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춥다. 아무 생각 없이 입고 나갔다가는 한강 칼바람을 맞으면서 박물관 정문 저 멀리에 보이는 본관까지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질 것이다. 2012년 12월 27일 이촌역에서 박물관으로 연결되는 지하보도 "박물관 나들길"이 완공되어 보다 쾌적한 관람이 가능해졌다.
예전에 조선총독부 청사 시절 지적 받았던 휴식 공간이 적다는 평을 의식해서인지 현재 박물관은 중간중간에 의자가 많다. 박물관 면적이 넓기 때문에 대충 둘러본다고 해도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장기전으로 갈 각오를 하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 또한 반드시 편한 복장으로 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발은 꼭 발이 편한 게 먼저다. 워낙 규모가 크기 때문에 멋낸다고 힐이나 구두 신고 보러 갔다가 얼마 보지도 않았는데 의자에 앉아서 발을 두드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박물관 피로(museum fatigue)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박물관 내에 있는 식당은 인간이 먹을 수준이기도 모호한데 값이 착하지 않다.[20] (편의점 도시락 팔고 있다.) 식당 밥 비싸다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려고 들면 낭패를 보니 주의. 이왕이면 가기 전에 미리 든든하게 먹고 가자. 참고로 옆에 있는 주한미군기지 입구에 자판기가 있는데, 여기에 달러나 센트를 가져가서 과자 등을 뽑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군기지 내부는 아니어도 그 앞이라 걸리면 내쫓길 수 있으니 가지 말자. 애초에 센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최근에는 편의점이 있는 옥외매장에 투땡 커피 프랜차이즈 직영점과 수제버거집이 들어와있다. 수제버거집 가격은 저렴하진 않은데 시중의 유명 가게들과 제법 비슷한 퀄리티로 나오는듯 하다.
이촌역 3-1 출구로 나가면 아파트 단지가 나오고 근처 상가가 있는데, 여기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을 추천. 그 유명한 동부이촌동이 여기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가격은 세지만 먹을 만하다. 신문이나 블로그에서는 맛집이 널렸다고 하나, 실제 그 정도는 아니니 낚이지 말자. 단 전반적으로 가게들이 별로 친절하지가 않다는 것은 염두에 둘 것. 단골 아니면 취급도 안 해주는 사태가 종종 발생하니 요주의.
배터리 충전 서비스도 당연히 제공하는데, 휠체어 및 대형물품보관소에 가서 말을 하면 1시간 이내 충전이 되는 고속충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건물 주변으로 탁 트인 느낌을 주는 거대한 호수와 정원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21], 2014년 10월에 개장한 국립한글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이 바로 근처에 있어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전시실 내 사진 촬영은 자유롭지만 유물 훼손 및 타인의 관람 방해를 막기 위해 플래시와 삼각대는 금지된다. 이는 일본을 제외하면[22]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코펜하겐 국립박물관 등 많은 박물관에서도 이렇게 한다. 한편 제3세계 국가에 있는 박물관들은 카메라 사용 추가요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 높은 서가가 있는 도서관 리모델링을 하였다. 중앙 계단을 올라가면 왼편으로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듯 하다. 조용하고 공부하기 좋은 곳이니 방문하길 바란다.

5. 교통


교통편이 은근 불편하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이촌역을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쉽다. 이촌역에서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주요문화재를 LED로 꾸며놓고 무빙워크를 설치한 박물관 나들길이란 지하보도 통로가 있는데 첫 방문이라면 제법 볼만하다. 지하보도가 4호선 사당방면 거의 끝쪽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4호선을 타고 갈 때는 당고개 방면 뒷쪽, 사당/오이도 방면 앞쪽에 타는 게 좋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올땐 뭐 답이 없다. 실컷 걷는 수밖에.
국립중앙박물관 앞을 지나는 시내버스는 서울 버스 400, 서울 버스 502뿐이다. 모두 용산역을 경유하므로 용산역에서 오는 것도 편하다. 추후 신분당선 용산 연장구간이 완공되면 박물관 바로 앞에도 역이 생길 예정이다.
자차를 이용할 경우 주차료는 기본 2시간에 2000원 정도로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평일에는 주차공간이 여유있는 편.

6. 관련 법령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0조(설립과 운영) ①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소속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둔다.

④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문화유산의 균형 있고 효율적인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 및 문화향유의 균형적인 증진을 꾀하기 위하여 필요한 곳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방 박물관 및 지방 미술관을 둘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29조(직무)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앙박물관"이라 한다)은 고고학·미술사학·역사학 및 인류학 분야에 속하는 문화재와 자료를 수집·보존 및 전시하여 일반 공중의 관람에 제공하며, 이에 관한 연구·조사와 전통문화의 계몽·홍보·보급 및 교류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0조 제3항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 사업 외에도 국내외 문화재, 박물관 자료를 보존 및 관리하고 국내 다른 박물관에 대해 지도·지원 및 업무 협조를 하고 국내 박물관 협력망을 구성하여 운영 하거나 그 밖에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의 기능 수행에 필요한 업무 등을 수행한다.

7. 국립중앙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으로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자리다. 같은 부처 산하인 국립현대미술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고위공무원단 나등급의 일반직 혹은 학예연구관이 임명된다. 비교하면 무려 2등급이나 높은 자리이다.
  • 역대 관장
    • 초대 김재원 (1945 ~ 1970)
    • 2대 김원룡 (1970 ~ 1971)
    • 3대 황수영 (1971 ~ 1974)
    • 4대 최순우 (1974 ~ 1984)
    • 5대 한병삼 (1985 ~ 1993): 前 국립경주박물관장.
    • 6대 정양모 (1993 ~ 1999): 정인보의 아들. 前 국립경주박물관장.
    • 7대 지건길 (2000 ~ 2003): 前 국립부여박물관장, 국립경주박물관장.
    • 8대 이건무 (2003 ~ 2006): 국사학자 이병도의 손자로, 이후 문화재청장으로 임명됨.
    • 9대 김홍남 (2006 ~ 2008):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로, 2003~2006년에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역임하고 취임하였다. 민박관장으로서든, 중박관장으로서든 최초의 여성 국립중앙박물관장이다.
    • 10대 최광식 (2008 ~ 2011)
    • 11대 김영나 (2011 ~ 2016): 초대 관장인 김재원 선생의 삼녀이다. 취임 기념 인터뷰에서 "어릴 때 박물관 앞뜰에서 뛰어놀곤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 12대 이영훈 (2016 ~ 2017): 前 국립청주박물관장, 국립부여박물관장,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경주박물관장. 부인인 김연수 씨도 이 시기에 국립고궁박물관장이 되어 부부 국립박물관장이 탄생했다.
    • 13대 배기동 (2017 ~ 2020.11):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 14대 민병찬 (2020.11~): 불교예술 전문가. 前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 연구기획부장, 학예연구실장, 前국립경주박물관장.

8. 논란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소장품이 하도 많다보니, 때로는 "없어졌다던 유물이 요기잉네?" 식의 경우도 가끔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1995년에야 찾아낸 대동여지도 목판 원본[23]이나 2010년 발견된 구 황실 관련 표피#[24] 사실 기사 후반에서 지적하듯, 그걸 다 관리하지 못하는 것도 잘하는 건 아니다.

8.1. 관람비 관련 논란


유홍준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 관람비를 더 받아야 한다면서 왜 문화재 보는 값어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냐고 비난한 바 있다. 그가 들려준 일화로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온 적이 있는데 당시 2천 원이란 관람비를 2천 엔[25]으로 듣고 한국 돈으로 10배가 넘는 돈을 내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당연히 자국 중심문화재를 보여주고 보관하니까 이 정도는 당연했다며 비싸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26] 이래야 한다면서 일본이 문화재를 아끼는 게 괜히 그런 것이냐고 일갈했었다.
유 교수가 제기한 관람비 문제는 사실 굉장히 실질적인 문제로, 이게 충당이 안 되면 운영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건 박물관 운영 비용 마련 가능/불가능의 문제지, 관점의 차이 운운하며 옹호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화 복지의 차원에서 국립박물관은 무료로 운영하는 국가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런 나라들은 대부분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의 기부로 운영된다. 대영박물관이 그런 케이스다. 박물관 운영비는 기부를 받든 관람료를 받든 세금으로 충당하든 해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의 문화 관련 재정지출이 상당히 적은 편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세금으로 충당하기엔 벅차 주요 박물관들이 적자 상태에 있고, 이 때문에 수많은 유물들이 연구되지도 못한 채 창고에서 썩어가는 지경이다. 유 교수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
그러나 이는 박물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도 바라보아야 하는 게, 근대의 박물관은 본래 지배 계층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으며, 태생적으로 갖게 되었던 권위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입장료는 개방 요일 및 시간과 더불어 박물관이 권위성을 띠게 하고, 계급 간의 차별의 선을 암시적으로 긋는 제 1의 도구라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예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평일에만 개방하다가 주말에 개방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주말 개방하면 주변 못사는 동네의 아일랜드 잡역부들이 대거 진입해서 박물관을 망쳐놓을 거라는 주장이 있었을 정도. 관람료도 마찬가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그 돈을 생활에 사용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는 사람만이 박물관에 가게 하는 도구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8.2. 가야본성 전시 임나일본부 논란


항목 참조.
'임나일본부'와 '임나' 자체[27]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권과 유사역사학자들이 얽히며 생긴 해프닝이다.

9. 여담


  • 다양한 전공자들이 자주 가는 곳으로, 애칭(?) 비슷하게 국중박, 국박, 중박 등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 넓은 공간에 정원과 숲속도서관, 산책로, 호수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소풍으로도 인기있다. 게다가, 용산가족공원도 거의 붙어있다.
  • 기념품점이 규모가 크고 알차다. 특히, 이곳에서 파는 물건은 중국산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 선물을 사려면 인사동을 가는 것보다 여기서 사는게 낫다.
  • 장소가 장소라서 이곳에서 국제 행사가 꽤 열린다. 가끔 박물관 앞 주변을 무장한 채 돌아다니는 경찰을 볼 수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립한글박물관이 있다. 한글의 발전과정이 궁금하면 한 번쯤 들러 볼 만하다.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게 쉬운 해설이 있고 한글서적도 많아 관람할 가치가 있다. 동선도 짧아서 가볍게 보기도 편하다.
  • 관람객 수가 아시아 1위, 세계 10위이었던 적도 있지만 2017년도 관람객 수는 아시아 2위, 세계 12위로 내려갔고(2017년 아시아 1위는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2018년도 관람객 수는 세계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2018년 아시아 1위는 북경 고궁박물원).[28]
  • 1990년부터 순회박물관 행사 '찾아가는 박물관'을 실시하여 버스에 유물 일부를 싣고 전국 각급 학교와 지역 문화행사 등지에서 관람객들을 받기도 한다. 차량은 현대 에어로버스나 유니시티를 쓴다.
  • [29]
  • 2020년 8월 16일 직원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잠정 휴관한다고 밝혔다. #
  • 래퍼 더콰이엇이 배기동 관장과 경천사지십층석탑 소개 영상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고 이후 다시 방문해 BENTLEY2 뮤비를 촬영했다.

10. 관련 문서


  • 산하 지방박물관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35조(지방박물관) ① 각 지방에서 제29조에 따른 사무를 관장하게 하기 위하여 중앙박물관장소속하에 지방박물관을 둔다.
>② 지방박물관은 경주박물관·광주박물관·전주박물관·부여박물관·공주박물관·진주박물관·청주박물관·대구박물관·김해박물관·제주박물관·춘천박물관·나주박물관 및 미륵사지유물전시관으로 한다.
지방에 소재한 국립박물관들은 그 지역의 문화재(매장문화재 포함)들의 수장하는 광역수장고 역할을 하며 각각의 박물관에서는 나름의 특성화(테마)를 내놓고 있다.(경주는 신라문화, 공주, 부여, 익산은 백제 문화, 김해는 가야 문화, 나주는 마한 문화, 제주는 탐라왕국 및 제주 문화, 진주는 임진왜란 특성화 및 경남 서부권의 문화, 광주는 신안해저 유물 및 전남의 문화유산, 전주는 전북의 문화유산을 포함해 요즘은 후백제 문화, 청주는 충북의 문화유산 및 중원 문화, 대구는 경북의 문화유산, 춘천은 강원의 문화유산 및 예(동예) 문화) 이렇게 지방에 소재한 국립박물관들은 지역에 소재한 역사문화에 맞게 특성화를 내놓고 있다. 영남권 4권, 호남권 4곳, 충청권 3곳, 강원, 제주에 각각 1곳씩 국립박물관이 있다.

[1] 2019년 6월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유튜브채널이 밝힌 '수장고 내' 유물 수. 전시물품을 더하면 더 많을 수 있음. [2] 이 박물관 건물은 경복궁 동궁에 위치해 있었는데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철거했다.[3] 서봉총 금관 실물을 기생에게 쓰게 하고 기념촬영까지 해서 물의를 일으켰던 일본인 학자 고이즈미 아키오(1935년 설립 때부터 해방까지 평양부립박물관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기차 2량 분량의 가야 유물을 일본으로 도망가는 연락선에 싣기 위해 보냈다는 부분이 있어 전쟁 후반 항복 직전에 한국 유물을 일본으로 빼돌리려고 일부 시도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 가야 유물은 다행히도 나중에 되찾았다고 한다.[4] 현 북한 지역에서 개성부립박물관에도 고려청자를 비롯한 많은 고려시대 문화재가 있었지만 1945년 38선 분단 당시에는 개성이 아슬아슬하게 남한 영역이었고, 개성이 접경지대다보니 남북간 국지전이 많이 나서 6.25전쟁 발발 이전에 이미 개성의 문화재는 남쪽으로 많이 피신시켜놨었다.[5] 그리고 그 많은 수를 제외한 나머지 상당수는 국립경주박물관(13점), 국립공주박물관(13), 간송미술관(12), 리움미술관(36), 호림박물관(8) 등에 있다. 고서의 경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도 7점이 존재한다.[6] 경기도 개풍군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반출되었다가 경복궁으로 환수한 탑이다. 환수 이후 심각한 손상을 입었음이 확인되어 장기적으로 탑 복원 공사를 했고, 산성비 등으로 인한 훼손을 우려하여 내부로 옮겼다.[7]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가운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2013년 신라시대 유물전시회를 기획하고 국박에 이 반가사유상도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문화재청이 반출에 난색을 표해서 한동안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결국 메트로폴리탄 측의 통사정과 정부의 설득으로 뉴욕행을 결정짓기는 했다.(당연하지만 국박에 전시 중인 건 그대로 두고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게 국외전시로 나간다.)[8] # [9] 성문영어의 저자[10] 국가민속문화재[11] 교토의 유서 깊은 [12] 베제클릭 석굴사원을 독일인 알베르트 폰 르콕이 반출하여 독일로 옮겼지만, 전시할 때 다수를 박물관 벽에 박아놓아서 옮겨 볼 생각도 못하고 연합군 폭격에 그대로 소실.[13] 해당 유물은 콘크리트로 고정했다.[14] 이슬람교 특유의 우상숭배 금지 및 우상파괴를 생각해보라.[15] 1980년대 NHK에서 만든 <실크로드>라는 다큐멘터리는 중앙아시아 유적들을 대거 보여주었는데, 불상들 상당수가 목이 잘려 있었으며, 이는 현지에서 이슬람교가 주류가 되면서 기존 불교유적들을 파괴했다는 멘트가 나온다.[16] 물론 한족들이라고 이 유물들의 가치를 알아봤던 건 아니다. 막고굴의 문서 등 대부분의 타림 분지 실크로드 유산들은 중국인들의 무지와 묵인 끝에 대부분이 약탈, 유출당했다.[17] 고창국에서 화폐를 주조할 때 한문을 쓸 줄 몰라서 한문 모양만 어설프게 베낀 문양이 발굴되어 중국 문화권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고, 반대로 복희여와도 같은 전형적인 중국 유물도 나온다. 복희여와중국 신화의 신이다.[18] 당연히 모조품. 진품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 참고로 이 모조품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안내와 함께 만져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이지만 눈이 잘 보이는 일반인도 만져보며 감상하면 보다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다. 참고로 이런 시각장애인용 모조품은 신석기시대 돌칼이나 철기시대 철검, 신라시대 오리 물병 등 여러 군데에 있다.[19] 반출하는 중박은 국위 선양이라고 하지만, 국내 관람객 입장에서는 깊은 빡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지방에 올라온 관람객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분노다.[20] 1층 식당 "나무"에서 낙지 비빔밥이 10,500원이고 파스타가 15,000원 선이다. 가장 싼 짜장면만 해도 6,000원이나 하며 양도 적게주고 맛도 떨어진다.[21] 꽃이 만발할 때에는 가족단위로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22] 입장료 무료 정책과 함께, 일본인 관광객들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관련하여 많이 놀라는 점이기도 하다. 일본은 박물관 내 사진 촬영이 금지되기 때문에 단지 박물관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수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감격(?)한다고... 구글 및 일본 포털 사이트에 '国立中央博物館 撮影'이라고 검색해 봐도 관련 여행기들이 우수수 검색된다.[23] 발견 전까지 박물관 측과 학계에선 1950년 6.25 전쟁으로 망실됐다고 했다.[24] 명성황후의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는 명성황후와는 관련이 없는 유물로 추정했다. #[25] 2018년 기준 약 2만 원.[26] 2018년 기준으로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입장료가 15유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입장료가 25달러인 것을 감안한다면 유홍준 교수가 소개한 그 일본인들의 에피소드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27] 당대에 실제로 쓰인 가야나 그 일대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28] 일본이 박물관 순위에 상위권이 아닌 부분을 의아해 할 수도 있는데, 일본 최대인 도쿄국립박물관이 11만 점대이며, 생각보다 일본의 박물관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일본은 박물관에서 보관하는 유물보다 개인, 단체 또는 유물이 원래 위치해 있던 절이나 신사 등에서 자체적으로 시설을 갖춰 전시, 보관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간송미술관처럼 애초부터 학술용으로 학자들에게만 한정적으로 공개하고 민간에는 한시적 외엔 거의 공개하지 않는 유물도 매우 많다. 또한 덴노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는 애초에 공개되지도 않고 국가에서도 관리하지 않으며 덴노 가문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몽유도원도 같은 경우도 우리나라라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했을 법한데 일본에서는 원래부터 소유하고 있던 덴리 대학 도서관에서 자체적으로 보관하고 있다.[29] 정준영 등 불법촬영물 제작 및 유포 사건으로 인해 KBS의 요청으로 정준영이 나오는 모든 회차의 VOD 서비스도 2019년 3월 18일부터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