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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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작중행적
2.1. 초반부
2.2. 중반부

'''이름'''
고영만
'''출생'''

'''사망'''
1950년 10월 20일 (평안남도 평양시)
'''복무기간'''
1950년 7월 20일~1950년 10월 20일
'''가족'''
아내, 아들 고민석[1]
'''배우'''
공형진

1. 개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등장인물. 배우는 공형진. 이진태, 이진석 형제의 든든한 동반자로 같은 소대에 배치되어 진태, 진석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게된 그는 피말리는 전투 현장에서 두 형제와 뜨거운 전우애를 나누며 전쟁 속에서 변해가는 두 형제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2. 작중행적



2.1. 초반부


진태와 진석이 처음으로 투입된 낙동강 전선에서 첫 등장. 함께 징집된 두 형제를 보며 "한 집에서 한 명만 차출하는 거 아니냐, 둘 다 죽으면 제사는 누가 치러주냐?"라며 분통을 터뜨리거나, 무슨 일만 생기면 항상 큰 소리로 투덜대는 등[2] 인간적인 면을 가장 많이 드러내는 편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신랑인 듯하며, 항상 아내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중히 지니고 다닌다. 식사할 때마다 "주먹밥이 너무 작다.", "왜 나한테만 계란을 안 주냐?"하며 불평하는 등 먹성이 좋은 듯하다.
학도병 출신이던 승철이 죽자[3] 착잡한 심정 속에서 굶어 죽든 포격 맞아 죽든 마찬가지라며 체념하나, "죽을 때 죽더라도 군인답게 죽어라"라며 쏘아붙이던 임 하사와 말다툼 끝에[4] 주먹다짐을 하는 등 전쟁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낸다. 다만 기습 작전이 성공했을 때 임 하사와 서로 부축하며 씩 웃거나, 서울 수복 후 위문 공연에서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 이후 화해한 듯.[5]

2.2. 중반부


이후 다른 전우들과 함께 평양으로 진격하고, 북한 육군 총좌[6] 생포 명령이 떨어지자 진석을 제대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 진태가 무리해서 그를 쫓아가자 진석과 함께 그를 만류하나 우격다짐으로 쫓아가는 진태를 뒤따라간다. 천신만고 끝에 진태가 총좌의 지프차를 전복시켜 그를 사로잡는 동안 뒤따라와 부관을 쏘며 총좌를 제압하려 하지만, 죽어가던 부관이 쏜 총에 가슴팍을 맞는다. 재빨리 총을 쏴 부관을 확인사살하긴 했지만 출혈이 너무 심했고, 결국 '''"나... 죽는 거야...?"''' 라는 단말마를 남기며 숨을 거둔다. 그러나 진태는 총좌를 생포하느라 영만에게는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결국 그의 죽음이 진석과 진태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결과가 되었다.

[1] 아직 갓난아기인 상태. 이름은 진석에 의해 언급.[2] 식사로 지급된 주먹밥을 가리키며 "겨우 이거 먹고 어떻게 싸우라는 거냐?"라며 투덜거리고, 인민군의 야간 포격에도 고막 터지겠다며 고함을 지른다.[3] 지뢰 매설 작전에서 인민군의 총격에 복부를 관통당하고, 쓰러져 기어가다가 지뢰를 건드려서 왼쪽 무릎이 날아갔다. 전우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본대로 돌아오지만 열악한 전황 탓에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하고 결국 공황장애에 빠져 다른 부상병들을 모조리 쏴죽인 뒤 자신도 턱에 총을 쏴 자살한다.[4] "사상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게 같은 핏줄끼리 총질할 만큼 중요한 거냐, 일제강점기 때는 나라 구하겠다고 싸우기라도 했지 이게 대체 뭐하는 거냐?"라며 내뱉었는데 그게 임 하사의 역린을 건드렸다. 임 하사는 이북에서 인민군에게 처자식을 모두 잃고 홀로 월남하느라 인민군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지니고 있었다.[5] 영만 역시 처자식을 두고 혼자 징병된 신세였기 때문에 임 하사의 속사정을 듣고 그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임 하사 역시 처자식을 걱정하는 영만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을 테고.[6] 작중에서는 대좌로 잘못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