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만년
'''古爾萬年'''
생몰년도 미상
백제 출신의 고구려 장수. 재증걸루와 같이 원래 백제인이었으나,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쳤다.[1]
475년 9월, 고구려 장수왕이 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 수도 한성(漢城)을 공략할 때 참여했다. 이후 도주하는 개로왕을 붙잡아 아차성[2] 으로 보내는 등 군공을 세웠다.
단순한 백제인이 아닌 귀족일 가능성이 높다. 백제 출신의 장수인 만큼 고구려의 한성 함락 당시 길앞잪이 노릇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그의 성은 복성인데, 《일본서기》에서 그와 같은 성을 가진 고이해(古爾解)가 확인된다. 고이씨 가문 출자에 대해선 백제 고이왕과 연관짓기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3]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백제 출신의 고구려 장수. 재증걸루와 같이 원래 백제인이었으나, 죄를 짓고 고구려로 도망쳤다.[1]
475년 9월, 고구려 장수왕이 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 수도 한성(漢城)을 공략할 때 참여했다. 이후 도주하는 개로왕을 붙잡아 아차성[2] 으로 보내는 등 군공을 세웠다.
2. 기타
단순한 백제인이 아닌 귀족일 가능성이 높다. 백제 출신의 장수인 만큼 고구려의 한성 함락 당시 길앞잪이 노릇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그의 성은 복성인데, 《일본서기》에서 그와 같은 성을 가진 고이해(古爾解)가 확인된다. 고이씨 가문 출자에 대해선 백제 고이왕과 연관짓기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3]
[1] 고이만년과 재증걸루에 대해선 개로왕이 추진한 왕권강화 정책에 반발했다가 추방되었다는 설, 개로왕 초반에 일어난걸로 추정되는 정변의 여파로 축출되었다는 설이 있다.[2] 현재의 아차산성[3] 노중국, <백제의 성씨와 귀족가문의 출자>, <<대구사학>> 89,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