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채주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고채주는 1861년 6월 21일 경상남도 통영군 산양면 당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1901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1906년 6월 4일 교포인 송건, 홍정표, 이묵원 등과 함께 자강회(自强會)를 조직하여 총회장으로 송건을 선임하고 월보를 발행하는 등, 교포의 단결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했다. 또한 1907년 9월 2일에는 하와이 지방에 24개의 교포 단체가 난립하는 것을 보고 각 단체의 대표들과 함께 호놀룰루에 모여 하와이 한인협성협회(韓人協成協會)를 발기하고 월보를 발행했다. 1908년 하와이와 미주의 한일협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이를 국민회로 응집시키는 발기문을 초안했고, 1909년 2월 1일 국민회를 창립시켜 미주지역 동포의 단합체를 만드는 산파역으로 활동하는 등 민족의식을 함양하는데 노력했다.
이후 특별 임무를 띠고 귀국하여 미주의 국민회 국내 연락책을 맡아 지하활동을 전개했으며,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4월 2일 오후 3시 30분에 강윤조, 박상건과 함께 통영면 부도정 시장에서 시위를 전개했다. 이때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소방차의 물펌프로 물을 뿌리며 제지하였으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모자를 벗어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남은 500명의 군중을 지휘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심한 고문을 받은 후유증에 시달린 끝에 병보석 석방되었지만 끝내 쇙하지 못하고 1920년 6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고채주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