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상건은 1903년 10월 3일 경상남도 진남군 춘원면(현 통영시) 명정동에서 박태범(朴兌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통영군 통영면 신정(현 통영시 서호동)에 있던 한문학당 관란재(觀瀾齋)에서 공부하던 1919년 3월 18일 동창생 20명에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쓴 독립기와 태극기를 나눠주고 그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중앙시장 일대를 행진했다. 이후 곧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되었지만 나이가 16살밖에 안 돼서 엄중한 훈계만 받고 부친에게 인도되었다. 그러나 그는 4월 2일에 통영읍 장날을 이용하여 고채주, 강윤조 등이 주동한 독립만세운동에 다시 참가해 5천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를 전개했다. 이후 경찰에 체포된 그는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1920년 김두옥(金斗玉)에게 군자금 2백원을 주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속했으며, 1927년에는 신간회 통영지회의 간사로 선임되어 청년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했다. 이후 통영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5년 6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박상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