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코곤 덴노

 


[image]
'''시호'''
고코곤 덴노(後光厳天皇, 후광엄 천황)
''''''
이야히토(彌仁)
'''능호'''
후카쿠사북릉(深草北陵)
'''생몰'''
1336년 4월 14일 ~ 1374년 3월 12일
'''재위'''
1352년 9월 25일 ~ 1371년 4월 9일
'''연호'''
분나(文和)→엔분(延文)[1]→고안(康安)→조지(貞治)→오안(応安)
'''황거'''
교토 어소(京都御所)
1. 소개
2. 생애


1. 소개


일본 남북조시대 북조의 제4대 천황.

2. 생애


남조는 아시카가 막부의 내분을 배경으로 남조는 교토에서 퇴각하면서 북조의 고곤 덴노와 고묘, 스코 덴노를 납치했고, 아시카가 요시아키라는 북조를 살리기 위해 스코 덴노의 동생 이야히토 친왕을 고코곤 덴노로 세웠다. 고코곤 덴노는 삼종신기도 갖추지 않은 채 천황으로 즉위한 전대미문의 형태였다. 재위 기간 도중에 남조의 공격을 받고, 1353년부터 9년간 세 번이나 오미나 미노로 피난하였다. 그 후 남조가 쇠퇴하고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으로 즉위하면서 북조는 안정되었다.
천황의 재위가 약 20년이 되면서 양위할때가 되자 북조 조정 내에서는 황위계승을 둘러싼 대립이 불거졌다. 본래 북조 황통의 적자는 고곤 덴노의 장남 스코 덴노였다. 동생인 고코곤 덴노는 스코 덴노가 납치되었을때 아시카가 요시아키라가 임시로 즉위시킨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스코 덴노는 자신의 황자 요시히토의 황위 계승을 외쳤고 형제 사이의 불화는 커져갔다. 막부는 고코곤 덴노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그의 황자가 고엔유 덴노가 되었다. 고코곤 덴노는 3년간 인세이 통치를 하다가 출가한 후 사망하였다.

[1] 본 연호에서 따서 당대엔 엔분세이슈 또는 엔몬세이슈(延文聖主)라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