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公敎育'''
1. 개요
사교육과는 달리 국공립 및 사립 초중고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국가공인 학습교육.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공교육 입문을 하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이어지게 되는 교육을 말한다. 또한 인터넷 강의인 EBSi와 강남구청인터넷수능방송도 공교육에 포함된다.
교육부령으로 각 지방 교육청의 관리감독하에 시행하고 있으며 만 6세가 되어서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시기에서부터 공교육 입문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때부터 중3까지 국공립 및 사립 초중등학교에서 9년간 의무적인 공교육을 거치게 된다.[1]
공교육의 목적은 사회생활에 이바지하고 학습사명을 통해 국가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차원에서 시작되었으며 초등학교 1학년 ~ 중학교 3학년까지가 공교육 의무지침 세대이기도 하다.
서양사에서 공교육의 뿌리는 징병제와 종교개혁(개신교)에 있다고 한다.
2. 장단점
- 사교육에 비해 학비가 매우 저렴하다. 세금으로 거의 대다수가 충당되는 구조니 세금대신 사비로만 운영된다면 제대로 된 경쟁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그러나 공교육의 질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비판도 있다. 이는 가격의 폭리라기보단 공교육의 질이 현 시대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원인이 더 크다.
- 공교육에서 배우는 것들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쓸모 없는 것들이라는 문제가 있다. 공교육은 첫째로는 국가의 모든 미개인을 국민으로 만드는 기능과, 둘째로 이들 중 우수자를 선별해 국가에 이익이 되는 직업인으로 양성하는[3] 기능을 하는데 이런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학생은 극히 소수다. 전자인 미개인을 국민으로 만드는 교육과 달리 후자의 기능은 애초부터 우수자 몇몇에게만 필요한 커리큘럼인데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필요가 없을뿐더러, 대다수의 평범한 직업을 갖게 될 일반인들에게는 졸업 후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 및 상식이 더 중요한데 서양은 커리큘럼에 이런 것들을 포함시키고 있으나[4] 현재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이부분이 특히 취약해서 교수양성을 위한 교육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 그러나 역사적으로 '실무적이지 않은 지식'의 유무가 계층 구분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받은 교육은 성리학이었고, 중세의 콜레쥬에서는 철학이나 신학이 주로 교육되었다. 그리고 이들 지식들은 (실무적인 지식과 비교할 때) 쓸모 없는 것이었다.[2] 그리고 이러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하층계급의 사람들은 은연중에 무시당했다. 현대의 공교육은 계층간의 이러한 지식의 격차를 상당부분 해소시켰다고 볼 수 있다. 서양의 선진국들도 내용면에서는 한국의 공교육과 큰 차이가 없으며 동양이 교수양성을 위한 교육을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만일 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교수양성을 위한 특별교육(?)을 받은 한국학생들을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어떻게 쫓아갈 수 있을까?
- 수요자의 개인차를 고려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획일화된 교육에 대한 평가법만 가지고 있다. 나중에 사회에서 잘 나가는 학생도 공교육 내에서는 두각을 보이지 못할 수 있으며 모범생이 사회생활에서는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6] 그런데 그런 획일화된 교육에서 낮은 성과를 보였다고 사회생활도 잘하지 못할것이라고 예단하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다.
- 사실, 애초에 공교육은 수요자의 개인차 따위는 관심이 없다. 전술했듯 공교육의 첫 번째 목적은 미개인을 국가의 시스템에 순응하는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필요한 국민으로서의 역할만 피교육자들이 이해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는, 공교육이 정의하는 국민으로서의 역할은 시험 성적 같은 기능적 문제라기보단 왜 국민은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가, 국가가 의무(납세, 국방 등)를 지우면 그것을 왜 받아들여야 하는가, 왜 국민은 노동을 하고 결혼을 하여 자녀를 가져야 하는가등의 관념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만족하면 국가입장에서 공교육을 통해 생산한 국민을 국력으로 써먹을 수 있으므로 그 이상의 것 설령 비뚤어진 애국심에 꽉차있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5] 그런 목적에 충실한 프로이센식 공교육을 메이지 유신때 일본이 받아들이고, 한국에 심어 지금의 한국식 입시 위주 교육이 탄생한 것. 공교육의 낮은 가격은 이런 원리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3. 비판
하지만 교육열과 입시 경쟁이 높은 동아시아와 아이비리그의 입시 위주 교육에서는 사교육이라는 또 하나의 교육으로 인해서 공교육과 애증이 겹치도록 대립각까지 접하는 편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교육 및 정치인들이 제창하고 있는 '''공교육 강화책'''이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공교육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일정 이상의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기회의 평등을 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국가의 대부분은 공교육이 굉장히 활성화되어있고 교육부의 비중도 큰 편이다. 하지만 공교육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교육을 독점하는 체제로 가기 때문에 아나키즘이나 개인주의 일각에선 공교육이 국가가 아동들의 교육을 사실상 독점, 장악하여 사회 입맛과 권력자 입맛에 맞는 순응하고 획일화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도구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공교육은 그 특성상 개인차에 따른 교육 수준의 차이를 완전히 고려하여 교육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공교육의 가치에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가치와 '교육적 효율성'이라는 상반되는 가치가 교차하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입장에서 보면 1명의 학습부진학생의 지적 능력을 다른 학생과 비슷하게 하기 위해 100의 자원을 투자하는 것 보다, 5명의 우등생에게 각각 20의 자원을 투자하여 고등지식인을 양성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며 또한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를 가르치는 공교육적 커리큘럼에선 아무리 엘리트주의를 지양하고 최대한 많은 학생에게 평균적 교육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할지라도 학습부진학생에게 그에 걸맞은 교육적 서비스 제공이 아무래도 어렵다.
또, 공교육 교원의 수준이 사교육에 비해 높은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어를 가르치는 공교육 교원이 꼭 입시 시험에서 쪽집게로 좋은 성적을 내도록 가르칠 필요는 없지만, 교원이라면 적어도 '''자기 자신의 영어 실력은 좋아야 한다'''. 2014년 재판에서는 토익 415점을 제출한 영어 교사의 해임은 적법하다고 말하면서 '''교육 종사자 평균치인 토익 660점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고 판결하였다.[7] 그런데 요즘 사교육 영어 강사들은 웬만해선 토익 900점대 후반이다. 이런 실력으로 경쟁이 될 리 없다.#
영어는 그나마 공인시험이라도 있지, 다른 과목은 실력을 평가할 방법도 없고 자를 방법도 없다. 수능을 쳐서 3~4 등급 나올 실력이라도, 학생에게 오히려 배우는 수준이라도 마찬가지다.[8]
그래서 공교육의 한계점을 해결하고자 가정교사, 대안학교 같은 방법도 현대사회에서 등장하고 있다.
가난한 서민들은 사교육을 받기 어려워 그나마 공교육을 계층상승의 사다리로 여긴다. 그러나 공교육은 처음부터 쓸 만한 노동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제도였기 때문에 공교육으로 계층상승을 하는 것은 극히 소수다.
공교육과 출세의 상관계수는 1에 가깝지는 않지만 0을 넘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차 0에 가까워지고 있다. 물론 공교육의 목적은 쓸 만한 노동자를 만드는 것이므로 출세와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 당위성도, 0 이상일 당위성도 없다. 그렇지만 이 상관계수가 일정수준 미만이라면 젊은이들이 학교에 가야할 이유도, 교사들이 공부를 권유할 근거도 없어지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실용주의 교육자들은 공교육 커리큘럼을 실용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교육계 주류 교육자들은 대부분 근본주의자들이라 학생들은 평생 한 번도 써먹지도 못할 수 있는 내용을 학교에서 계속 배우고 있다.
메리츠자산운용의 존 리 대표는 한국의 공교육제도에 대해 학생을 1등으로 만들지만, 결국 학생들을 가난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상한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는 현재의 공교육이 학생들에게 노동자 계급의식을 주입하고 금융교육을 하지 않아서 부자가 될 기회를 박탈한다고 지적했고, 다른 한편으로 부자들의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금융교육을 받아서 더욱 부자가 된다고 보았다. 즉 상류층이 만들어 놓은 공교육이라는 시스템은 빈부격차를 확대재생산한다는 것.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중산층을 양성하는 데에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다양한 분야에 교양을 쌓게 함으로써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4. 기타
다수의 대상을 교육하는 공교육은 아무리 질이 높아도 결국 사교육에게 뒤쳐지며 애초 출발선이 다르다. 게다가 공교육은 의무 교육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사교육은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받는다. 때문에 학생들의 열의와 수준이 공교육과 비교했을 때 이미 앞서 있는 상태이다.[9] 게다가 사교육간 격차도 심하다.. 월 백만 원을 넘는 수강료를 받는 학원이나, 과목당 월 수백만 원을 받는 고액 과외와 대다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교육은 애초부터 경쟁에서 비교조차도 안 된다. 특히 과외는 선생이 학생의 개인 진도와 이해도를 세세하게 체크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으며 학생이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것이 매우 편하다.[10] 게다가 이렇게 비싼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집안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풍족하며 자식에 대해 투자를 할 여유가 있는 집안이다. 공부에서 가정환경이 엄청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도 없으며 풍족한 경제력의 가정은 적어도 돈문제 가지고 집안 싸움은 나지 않는다.
사교육은 강사들의 월급이 워낙 높기 때문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다른 학원 강사들에 비해 뒤쳐진다 싶으면 무섭게 도태 된다.[11] 설명이 이해가 안 된다, 최신 수능, 시험 트렌드에 뒤쳐진다 하면 바로 내년 해당 수강생들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5. 관련 문서
[1]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다.[2] 과거시험을 위해 성리학을 배울 경우 쓸모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원칙적으로 양반 가문에 3대 동안 합격자가 나오지 않으면 양인으로 강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세과 근대 초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시 신학과 철학은 지금의 정치학과 같은 위상을 가진 학문으로 엄연히 국가 운영원리였으며, 실제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신분을 뛰어넘어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 학문들을 쓸모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시대착오에 불과하다.[3] 공무원, 특히 법조인, 행정가 등은 국가의 기능관리에 역할을 하므로 그에 걸맞은 인재를 뽑아야한다. 그 과정에 공정성도 필요하므로 공시라는 제도로 엄격한 절차에 따라 선발한다.[4] 예를 들면 노동법, 세법 교육 등이 있다.[5] 사실 전술한 공교육의 두 번째 기능인 우수자 선별 후 공무원 임용 기능은, 첫 번째 기능인 국민 양성의 강화 및 보상기제로도 활용된다. 특별히 국가에 충성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고급인력에 채용해 높은 보수를 주는 것이 국민들의 동기부여에 기여하기 때문이다.[6] 물론 공교육 성적과 사회에서 출세의 상관계수는 양의 값을 나타낸다. 그 값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7] 교사가 반드시 학생들보다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법은 없다. 시험을 봐서 2등급 수준만 나와도 본인이 수업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딱히 문제는 되지 않는다. 문제는 415점이라는 점수다. 영어를 4~5등급 받는 아이들도 토익을 보면 415점은 나오는 판이니 교사가 학생들 사이에서도 평균 수준의 실력밖에 안 된다는 거다.[8] 다만 이 주장은 좀 어폐가 있는데, 교사한테 요구되어지는게 시간 맞춰 문제 푸는 능력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간 맞춰 문제 푸는 것은 교과에 대한 실력도 중요하지만 기타 잡스킬이 차지하는게 꽤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교과과정을 학생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고 학생이 좀 더 깊은 사고를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9] 학교에서 그냥 공부를 포기하고 노는 학생들 까지도 전부 싸그리 평가 대상이 되는 공교육과 처음부터 공부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평가되는 사교육을 천편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편향적인 평가 잣대이다.[10] 일부 강사들은 극단적으로 고액 쪽집게 과외 1년이면 어지간하게 학업 이해도가 부족하지 않는 이상은 정시로 인서울 중하위권 대학은 그냥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때문에 학원강사들 스스로가 돈 많은 집안 자제들이 인서울 중하위권에 들어오는 것은 고등학교 때 펑펑 놀다가 부모가 고액 쪽집게 선생 붙여가며 공부하라고 달달 볶아서 마지못해 공부했던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바라볼 정도이다.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다는 것이 왜 사람들에게 불편한 진실로 비춰질까? 대상이 비싼 사교육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검증 자체가 불가는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이 사교육을 받았다고 떠들고 다니진 않는다. 심지어 공부만 잘했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먹물 속성의 일부 사람들은 이런 사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 특별하다고 느끼질 못한다. 이들에게 있어 이런 것은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11] 때문에 이런 학원 강사들이 뒤늦게 공무원 시험을 보기도 한다. 영어나 국어 한국사는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