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color=#fff> '''Anarchism
아나키즘'''
아나키즘의 대표적 상징인 Circle-A
<colcolor=#fff><colbgcolor=#000> '''한국어'''
아나키즘
'''영어'''
Anarchism
'''프랑스어'''
Anarchisme
'''독일어'''
Anarchismus
'''중국어'''
无政府主义
'''스페인어'''
Anarquismo

영어: '''No gods, no masters'''[1]

프랑스어: '''Ni dieu ni maître!'''[2]

'''신도, 주인도 없다.'''[3]

[4]

Imagine there's no countries

국가가 없는 걸 상상해봐요

It isn't hard to do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Nothing to kill or die for

무언가를 위해 죽이거나 죽을 필요 없고

No religion too

종교도 필요하지 않겠죠

Imagine all the people

상상해봐요 모든 사람들이

living life in peace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걸

You may say I'm a dreamer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말하겠지만

but I'm not the only one

난 혼자가 아니에요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요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거에요'''

존 레논, -Imagine-

1. 정의
2. 내용
2.1. 딜레마와 사회 혁명
3. 탄생 배경과 영향
4. 허무주의와 다른 점
5. 또 다른 용어 리버테리언
5.1. 미국의 리버테리언과 아나키즘
7. 소련 붕괴의 파장
8. 상징
8.1. 서클 A
8.2. 검은 깃발
8.4. Bisected Flag
10.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11. 비판
11.1. 사유체계의 비과학성
11.2. 영웅주의적 사고관
11.3. 공동체 지향 아나키즘의 모순점
11.4. 아나키즘 운동의 문제점
12. 다른 사상과 관련된 사항
13. 창작물
14. 바깥고리
15.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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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아나키즘(Anarchism)[5]Anarchy+ism으로 구성된 조어로, 고대 그리스어 ἄναρχος(ánarchos)에서 유래하였다.[6] 어원상으로는 ἀν(án, "없는")과 άρχος(árchos, "지도자")가 합쳐진 단어이다.[7] 한자 음차로는 '안나기주의(安那其主義)'라고도 한다. 아나키즘을 간단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존 레논Imagine을 들어보자.#
'무정부상태'를 뜻하는 아나키(Anarchy)에서 연상해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나, 어원만 같고 의미는 '''전혀 다르다.'''[8]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아나키는 지배자가 없는 상태, 아나키즘은 지배(권위)가 없는 상태다. 아나키즘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권력을 부정하는 의미에서 정부의 권력을 부정하는 것이지, 정부의 권력'''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나키즘이 부정하는 권력은 정부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 자본, 문화단체 등 강압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권력에도 해당될 수 있다. '무정부주의'라는 번역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정부가 필요없는 (혹은 그 정도로 자유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것 정도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민중을 구성하는 개인들은 서로 다른 견해와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결코 어떤 질문이나 문제에 대해서도 모두 일치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민중의 정부”는 기껏해야 다수파의 정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주의안정자이든 그렇지 않든 민주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소수파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점을 추가할 것이다. 그러나 권리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다수파이기 때문에 소수파는 다수파가 원하고 허락하는 권리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수의 의지에 대한 유일한 제한은 소수파가 내세우는 저항일 것이다. 이것은 비록 다수파가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권리가 있지만, 모든 사람의 노력을 그 자신의 목적에 맞추려는 투쟁이 항상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무력을 통하여 법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할 권리를 의미한다.''' 경찰력이 없다면 정부 또한 없을 것이다.

정의상 다수파는 후진적이고 보수적이며 새로운 것의 적이자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 게으르며, 동시에 충동적이고 절제가 없으며 선동당하기 쉽고 자신의 광신과 비합리적인 공포에 쉽게 사로잡힌다.[9]

한 명 혹은 소수의 개인들에게서 비롯된 아이디어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욕구에 의해 대체되어 이미 구식이 되고 진보의 장애물이 된 이후에야 다수파에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수파의 정부를 원해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다수파가 소수를 억압하고 진보를 방해하는 것이 부당하고 해롭듯이 그들이 선한 존재일지라도 소수파가 무력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는 것은 강요라는 그 사실 자체로 인하여 혐오감과 반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더욱 부당하고 해롭다.

여러 종류의 소수파가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기적인 소수파가 있고, 절대진리를 알고 있다고 믿는 광신자가 있으며, 단순한 어리석음 일지라도 구원의 길로 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선한 의도로 타인에게 강요하길 바라는 이들도 있다. 역사를 되돌리고자 하는 반동적 소수파도 있으며 혁명적 소수파 존재한다.

어떤 소수파가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가?

합법적이든 불법적으로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선, 사람은 그의 이데올로기적 짐을 상당 부분 버려야 할 것이며 도덕적 양심을 내던져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권력을 잡은 이후의 문제는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국가의 공통된 관심사를 만들어낼 것이며, 정부의 구성원들에게 특권을 부여할 것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반대를 압살할 것이다. 아마 이것은 국가의 이익을 말할테지만, 언제나 자유의 파괴가 동반될 것이다.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자신의 원칙과 동지들을 배반한 것을 떠올려보라.

이것이 우리가 다수파도 소수파의 정부도 원하지 않는 이유다. 민주주의도 아니고 독재도 아닌 것이다.

우린 공권력을 제거하길 원한다. 우린 모든 사람의 자유와 자유로운 협약을 바라며, 이것은 아무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고 모두가 바람직한 사회의 운영에 동참할 때 나타날 것이다. 우린 '''아나키'''를 바란다.

에리코 말라테스타 - Neither Democrats, nor Dictators: Anarchists[10]

여기서 말라테스타의 주장은 정부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에도 상당히 부정적인데, 아나키스트들은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실제로는 자신을 지배할 인간("대통령"이든 의회이든 간에)을 뽑는 행위에 불과함에도 그것을 자유와 평등이라고 사기치는 기만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매우 냉소적이다.[11] 아나키스트들은 "개인의 주권자는 그 자신이다"라는 개념을 조직적 차원까지 확대시키기 때문에, 자유 없는 평등, 노동자 통제[12] 없는 사회주의, 자율권을 억압하는 공의 같은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입장을 좀 더 간결하게 표현한 문구가 바쿠닌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다. "'''사람들이 몽둥이로 맞고 있을 때, 그 몽둥이가 “민중의 지팡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행복해하진 않을 것이다.'''"[13]
아나키즘이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나키즘의 의미를 완전히 포괄하지 않기 때문이지, 아나키즘이 무정부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아나키즘은 근본적으로 무정부(반국가주의)'''에[14]기반하는데 이는 아나키즘의 이데올로기적 분석에 의하면 국가는 경제적으로는 기성 기득권 자본가 세력의 특권을 유지하고, 사회·정치적으론 '''폭력의 합법성을 독점해서 개인의 자율권을 범죄화'''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본질과 가장 밀접한 도덕성을 천명한다. 이 점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사람은 안정된 사업과 정직한 거래를 수행하며 도덕적 삶을 영위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기꾼, 매춘부, 도둑, 강도와 살인자, 도박꾼, 무일푼의 실업자, 무모한자는 모두 부덕하다. 선량한 부르주아 시민은 저런 "부도덕한" 이들에 대하여 자신의 가장 깊은 분노를 표현한다. 그들 모두는 안정된 주거와 사업, 안정되고 존경받을만한 삶, 일정한 수입이 결여된 자들이다. 요컨대, 그들의 존재는 안정된 기반 위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위험한 개인들이나 외로운 유랑자들, 즉 위험한 프롤레타리아트인 것이다. 이들은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 "개별적인 트러블메이커들"이자 "잃을 것이 없기에"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를테면 가족관계의 형성은 서약서에 사람을 속박하는 행위지만, 매춘부는 그렇지 않다. 도박꾼은 게임에서 모든것을 걸고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지만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시민에게 의심스럽고 적대적이며, 위험해 보이는 자들은 모두 “방랑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수 있다. 모든 방랑자들의 삶의 방식은 부르주아를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들 중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제한된 공간에 기꺼이 만족하기에는 그것을 너무 비좁고 억압적인 것으로 파악하기 시작하는 지적인 방랑자들(Intellectual Vagabonds)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에게 침해할 수 없는 진리로 표명되며 위안과 안도감을 주는 안전한 사고방식과 사상의 경계 안에 머무르는 대신, 이 괴팍한 방랑자들은 모든 전통의 경계를 뛰어 넘고서 무례한 비판과 길들여지지 않는 회의론과 함께 그들의 반역의 정신을 드러낸다. 그들이 유량하고, 격정적이며, 변덕스러운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형성하며,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불안정한 본질의 목소리를 낼 때, 이들은 “통제할 수 없는 자들”이라 불리운다.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빈곤 퇴치를 바란다는 것을 믿는다면 실수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부르주아는 “재화는 지금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으며, 하느님의 현명한 결정에 따라 언제나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라는 비교할바 없이 불편하지 않는 믿음에 따라 자신을 돕는다. 골목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빈곤은 기껏해야 몇 푼의 구호금을 주거나 “근면하고 쓸만한” 청년에게 일과 식량을 제공하는 한, 참된 부르주아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빈곤층이 더 이상 조용히 행동하지 않고 동요하며 혁신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조용한 즐거움이 방해받게 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방랑자들은 잡아서 가장 어두운 감옥에 가둬라! 저자는 “불만을 불러일으켜 사람들이 기존의 법률에 반하도록” 하길 원한다. 돌로 쳐라! 돌로 쳐라!

시대가 모순으로 가득찬다면 어떤 이들은 이득을 얻지만 다른 이들은 고통받게 된다. 중세 시대에는 교회가 지상에서 모든 권력과 패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인들 사이의 일반적인 오류였다. 지배계급 역시 평민들 만큼 이 진리를 믿었으며 동일한 오류에 홀려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지배계급은 권력의 이점을 가지고 있었고, 평민들은 복종의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고난이 사람을 현명하게 만든다”는 속담이 있듯이 결국 평민들은 현명하게 성장했고 더 이상 중세의 “진리를” 믿지 않게 되었다. 이와 동일한 관계가 부르주아와 노동계급 사이에 발견된다.

막스 슈티르너 - The Unique and Its Property, p 129-131[15]

여기서 경제적인 면에서 국가주의 비판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아나키즘적인 성향을 보인 이유와 같다. 이건 그냥 비슷한게 아니라 마르크스가 초기에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 막스 슈티르너의 자유주의 국가 비판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16] 그래서 아나키스트 입장에서 권위주의의 끝판왕(합법성의 독점[17])인 국가는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아나키즘을 책이나 운동으로 배우지 않고, 서브컬처로 배워서 패션 코드로 사용하는 인간들 중엔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지만[18], 주류인 공산주의적 아나키스트부터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자칭 하는 미국의 자유지상주의자들(아나코 캐피탈리스트)까지 어떤 아나키스트도 아나키즘의 반국가주의(anti-statism)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게 아나키즘의 핵심 정의'''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소리가, 아나키즘의 '''핵심 정의를 버려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한국에서는 내전과 독재정권으로 인해 급진 사상의 씨가 말랐고,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민족주의의 건국서사로 이용당해온 상황이라 이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19] 한국에서는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자칭하면서 정부, 경찰, 합법, 불법[20]의 기준 가르기 좋아(그게 국가주의다)하는 인간들이 널렸는데 아나키스트 입장에서는 '''이적행위다.''' 미국의 해커인 목시 말린스파이크(Moxie Marlinspike)라는 인물은 이점에 대해서 다음 처럼 언급(2013년)하기도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CO와 WA주에서의 마리화나 합법화와 더불어 점점 많은 수의 주들이 동성 결혼을 법제화하는 등의 많은 법률적 변화가 미국에서 일어났다.

그 주들의 과반수 이상이 그런 변화를 바랐기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은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유를 제공할 수 있는 법적인 승리로써 으로 이것을 인용한다. 이건 물론 사실이고 그런 법안이 통과 됐다.

이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은 그런 법적 승리들은 '''법을 어길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 했으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네소타의 경우 올해에 동성 결혼이 법제화 되었지만, 소도미 법에따라 2001년 까지 동성애가 범죄였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변화로 인해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CO와 WA에서는 개인적인 용도의 사용도 분명 범죄였다.

법집행이 100% 효율적인 대안적 디스토피아를 상상해 보라, 그곳에서는 모든 잠재적 범죄자들이 즉시 식별되고 체포돼서 감옥에 갇힐 것이다. 미시시피, 코네티컷, 워싱턴 같은 주들이 생겨난 1850년대 이래로 이처럼 완벽히 효율적인 법 집행이 이루어졌다면, 그런 세계에서는 우리가 경험한 최근의 변화를 이루어낼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면 마리화나는 합법이어야 한다고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 누구도 동성 섹스를 하거나 보지 않았다면 동성 결혼이 법제화 되어야 한다고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21]

주류 아나키스트나 미국의 아나코 캐피탈리스트(자유주의자 코스프레 하는 대안우파 제외[22])나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주장하는 바가 유사하다. 아나키스트들이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찬양하고 역사를 왜곡하기 때문이지 자유를 강조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정치 전략상으로 "좌파 단결", "우파 단결" 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유지상주의자 단결"[23]이라는 개념도 존재한다. 그나마 예외적인 사례라면 자유지상주의적 가능주의(libertarian possibilism)란게 있는데, 미국의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자유당을 중심으로 의회활동을 하는 것 처럼 아나키즘 운동에서도 스페인에서 유사한 개량주의적 의회참여 활동[24]이 존재했고, 물론 비타협적 아나키스트들에게 사이비라고 비판받았다. 하지만 프랑코의 쿠데타 이후 아나키스트들에게 사실상 망한 이론 취급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아나키즘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하승우 박사가 아나키즘은 무정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아나키즘은 정당활동 의회정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상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자칭하면서 사민주의자[25]라고 주장하는 중2병들이 대거 양산되는 계기가 된다. 이게 하도 어이가 없었는지 스탈린주의 조직인 노사과연에서 직접 고전 아나키스트들의 글을 인용하며 아나키즘은 ''''그런 거 아니다.''' 라고 하박사를 비판하기도 했다. 다른식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리버테리어니즘을 개인주의 번역한다면 많은 리버테리언은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주의라는 번역이 리버테리어니즘을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오역이기 때문이지 리버테리어니즘이 개인주의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
극좌 사상이지만, 우파아나키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경우도 넓게 봐야 아나코 캐피탈리즘까지 이지, 내셔널 아나키즘의 경우 근본 자체가 나치인 놈들이다.
프루동 때는 집권자들이 자신들에게 하는 '혼돈+주의자+놈들(아나키스트)'라는 비난에 대한 "그래 우리를 아나키스트라고 불러라.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식의 반항과 도발의 의미로 처음 쓰였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때도 아나키스트라는 말이 '사회 혼란을 유발하는 반혁명주의자들'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2. 내용


[image]

'''Las formas cambian, los sometidos somos siempre los mismos'''

형태 이지, '''우리를 핍박하는건 변치 않는다'''


'''Mismo perro - Distinto collar'''

목줄은 달라도 '''는 같다'''[26]

아나키스트들이 가지는 다른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파시즘, 자본주의(혹은 민주주의), 레닌주의적 공산주의 등)에 대한 역사적, 사상적 인식과 비판을 한방에 깔끔하게 표현한 짤방. 해당 이미지는 전국 노동 연맹 소속의 한 스페인 네티즌이 편집한 것이다.[27]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적 억압의 문제는 '''권위주의적 체제 자체의 문제'''이지, 입으로 우리 당은 민주주의, 저쪽 당은 공산주의 따위 갑론을박은 지배 계급 내의 무의미한 부차적인 차이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한자 역어인 '무정부주의'라는 단어가 얼핏 보면 무질서를 숭배하며 정부를 없애 세상이 혼돈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상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완벽한 오해'''다. 아나키즘 소개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들
진정한(주류) 아나키즘은 '''개인이 권력, 권위, 통제기관으로부터 억압되지 않고 상호부조와 상호이해로 무장하게 되면 대동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도덕, 철학적 관점에 기반하여, 인간 사회의 조직은 수평적인 동료 관계에 기반한 해당 공동체의 직접적인 구성원들의 전적인 자치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사상이다. 일견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이론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체주의, 자본주의, 권위주의, 공산주의 등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꿈꾸던 인간들을 핍박할 때 그들의 위안이 되고 방패가 되었던 것이 바로 아나키즘이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이 아나키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아나키스트가 된 다수의 사람들은 제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치던 시절,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 후 공산주의를 가장한 전체주의와 그로 인한 반공 권위주의가 판을 치던 냉전 시절에도 여러 곳에서 반핵반전 운동을 지원했다.
그런 점에서 아나키즘은 상당히 '열린' 개념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자신의 사상을 아나키즘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두 부류로 나뉜다.
  • 반조직적 아나키즘: (다 개인을 억압, 착취하게 되므로)그 어떤 기관, 조직도 용납해선 안된다.
  • 조직적 아나키즘: 개인이 자율적으로 결성한 자치기관, 조직은 괜찮다.
첫번째 경우가 반조직, 비조직적 아나키스트고, 두번째 경우가 조직주의적 아나키스트라고 볼수 있는데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갈등이다. 조직적 아나키스트들은 변화를 위해선 제대로된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비조직적 아나키스트들은 조직에 대한 강조가 국가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직적 아나키즘의 대표적인 주장은 아나코 생디칼리슴과 정강주의 등이있으며, 비조직적 아나키스트는 반드시 그런건 아니지만 조직적 아나키스트에 비해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성향이 강하다. 조직에 대한 문제는 아나코 생디칼리슴(이 사람들도 이데올로기적으론 공산주의자다)과 아나코 코뮤니즘이 굳이 나누어 분류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라테스타는 마흐노가 정강주의를 주장했을 때 중앙에서 제어되는 조직에 대한 강조는 정부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28] 조직주의냐, 반조직이냐 하는 문제는 특정한 분파의 아나키즘에만 연관된 문제(생디칼리슴과 정강주의는 근본적으로 조직주의지만)가 아니며 모든 경향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다.
이념적 지향성과 철학적 기반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체주의, 국가주의권위주의에서 파생 된 이념과 상극이고, 같은 좌파라고 쉴드 쳐주고 할 것 없이 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마오이즘 등의 국가주의적 좌파 사상 또한 '''국가자본주의 체제'''[29]라고 부르며, 권위주의적인 수직적 권력 구조에 혁명의 기치를 걸었던 것 자체가 인식적 오류라며 비판적이다.
전제군주정, 신권 정치국가, 파시즘 같은 노골적인 반동적 사상들과는 말할 것도 없이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이며, 사민주의민주사회주의 같은 온건 좌파 노선과도 프롤레타리아의 자발적인 혁명적 역량을 (근본 자체가 결국 착취적이며 권력의 생존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국가란 수직적 권력 체계가 "옛다 먹어라" 하며 던져주는 사탕발림으로 말살하려고 드는 이념이라며 상대적이지만 회의적으로 본다. 좋게 말하면 지금까지 실존해 왔던 주류 정치 이데올로기 전반의 한계를 비판하며 이를 뛰어넘는 차원의 시민-노동 사회 조직을 요구해 왔고, 반대로 아나키스트들에게 까인 진영, 특히 마르크스-레닌주의 현실사회주의 계통에게서는 '''막상 지들이 역사적 순간에 중요한 일은 거의 안해봤으면서 입만 산 모두까기 인형'''이란 식으로 질시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사회주의권의 비판은 사실 러시아든, 스페인이든, 쿠바든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서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스-레닌주의 계통 조직들이 공존했던 곳에서는 크론슈타트 봉기에서든, 마흐노 자유령과 바르셀로나 5월 사태에서의 통수짓이든 레닌주의 진영에서 '''좌파 내 지분 독점'''을 위해 통수 치고 오히려 우익 반동들이 눈 앞에 시퍼런데도 제 살 깎아가며 아나키스트들부터 때려잡으려고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적 좌파 진영에서 할 말은 아니다.

2.1. 딜레마와 사회 혁명


아나키즘 정신이란 모든 사람의 선,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유와 정의, 인민사이의 연대와 사랑을 지향하는 깊은 인간의 정서를 의미한다. 이는 아나키스트만의 베타적 특성이 아닌 관대한 마음과 열린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By anarchist spirit I mean that deeply human sentiment, which aims at the good of all, freedom and justice for all, solidarity and love among the people; which is not an exclusive characteristic only of self-declared anarchists, but inspires all people who have a generous heart and an open mind

에리코 말라테스타

아나키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정부, 군대, 경찰과 같은 기관들의 역할과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나키스트들이 원하는 건 결코 혼란과 무질서가 아니다. 이것은 허무주의자들이 바라는 것. 주의할 점은 허무주의자들이 결코 혼란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본질 혹은 진리가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허무주의이지만, 지향성에 따라 수용적이냐 능동적이냐로 나뉘는데, 수동적 허무주의의 경우 모든 것은 헛된 일이니 어떤 가치를 세우거나 욕구에 지배를 받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 이야기 하지만, 능동적 허무주의의 경우 어떠한 본질 선악도 없으므로 창조자로서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후자의 경우 매우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경우가 많다. 아나키즘도 조화로운 질서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참된 질서는 소공동체의 자치적 질서이지 국가권력, 시장이 강요하는 질서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민중을 착취하는 질서이므로 이는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이 점은 소국과민을 주장한 노자의 사상과도 매우 유사하다. 사실 도가 사상 중에서도 장자의 사상은 아나키즘과 흡사한 점이 많다고 평하는 학자도 많다.[30] 여튼 돌아와서 보자면 이런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사상은 동서양, 고중근현대를 막론하고 있어온 보편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도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고 민중을 착취하는 세력으로 국가만을 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적 혼란과 외국, 외적 등 대외적 요인도 든다. 일반적인 정치학에서는 이런 점을 들어 경찰이나 군대의 필요성을 말하는데 아나키즘은 현실에서 경찰과 군대를 위에서 설명된 '집중된 권력이 강요하는 질서'와 착취세력의 권력유지수단으로 보니 아나키스트의 주장에 앞뒤 모순되는 점이 있다. 물론 아나키스트들에 따라 경찰은 되지만, 군대는 안된다는 경우도 있고(현실적으로 훨씬 폭력적이고 비인권적인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론적으론 경찰은 민간 사회의 자치 공동체 내에서도 충분히 필요성 자체는 공감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군대, 즉 특정 정부에게 절대 충성하는 관군은 빼도박도 못하게 억압적인 관료제에 기반한 근대 국가의 산물 뿐만 아니라 그 상징 자체라는 논리이다) 의견은 다양하다. 군대 무용론 참고. 이런 류의 아나키스트들 다수의 의견은 주로 특정 사회 내에선 자체적인 치안 유지 수단(자경단, 민병대 등)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민병대로 외국 정규군을 막을 순 없으니 전시 체제에서만 군대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고, 실례로 코스타리카 같은 몇몇 국가들의 경우엔 평시 군대가 폐지된 상태이다. 그래도 어찌됐든 전시엔 역시 군대가 필요하고 또 현실의 군사 분쟁 지역 등에선 자경단이나 민병대 같은 중앙 통제가 없는 물리력이 폐해를 일으키고 있으므로 아나키스트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다는 비판도 있는 바, 궁극적 아나키스트들은 기존 억압들의 혁파를 세계규모급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아나키스트들이 아나키즘의 핵심적인 필수요소로 주장하는 '사회 혁명' 개념이 등장한다. 단순히 기존 정부를 없앤다고 사회 구성원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누리는 진정한 아나키즘이 실현되는 게 아니라 공동체가 위에서 강요되는 질서를 거부하고 상호부조 정신으로 무장하는 '''내부적 변화'''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의 설명에 따르면 소말리아이라크는 사회 변화가 없이 정치 체제의 공백만 발생했으므로 혼란과 갈등, 폭력이 지배하는 악성 사회가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중앙 권력이 없어도 사회가 구성원의 자율적 합의에 기반하여 유지되려면 '''기존의 사회 구조와 의식 자체가 변화'''해야 하며 이 핵심적인 변화를 단순히 윗사람들이 바뀌는 것일 뿐인 정치적 혁명(political revolution)보다 차원 높은 혁명인 사회 혁명(social revolution)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모두가 법 없이도 살 도덕적인 사람이 되면, 행동을 강제하는 법 같은 거 필요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이러한 의식개조를 집단적으로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전세계 인류급은 고사하고 아나키즘을 가치로 내건 소규모급의 국가조차도 찾기 어려운 상태니 아직까지 실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한낱 짐승에 불과했던 인류가 도구를 쓰고 말을 하고 윤리를 정립하면서 인간으로 거듭나고, 부족과 국가를 설립하기 시작한 석기-청동기 시대처럼 의식변화를 맞이함으로써 다시 한번 단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진보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로선 조선시대 사람이 지금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듯 허황되게 들리겠지만.
중요한 건 질서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강요 자체를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3. 탄생 배경과 영향


그 탄생 배경상 사회주의, 공산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반민족주의 심지어 자본주의(머리 로스바드, 라이산더 스푸너 등을 필두로 한 북미 오스트리아 학파) 등의 사상 집단과 활동을 함께 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며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4. 허무주의와 다른 점


니힐리스트는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아무리 존경받는 원칙이라도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정치 운동에서 니힐리즘이란 용어는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서 바자로프가 자신을 니힐리스트라고 규정한 이후, 러시아 급진파들이 그용어를 택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들 입장에서 당시 러시아의 후진적인 문명은 모든것이 무가치한 쓰레기로 여겨졌기 때문에 니힐리즘이라는 용어를 택한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역사에서 아나키즘과 니힐리즘을 구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크로포트킨 또한 니힐리즘 성향의 단체인 차이코프스키단의 일원이었다. 러시아의 니힐리즘은 그지역의 자생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에 발생 계보상으로는 니체 등의 고전 니힐리즘 사상가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바쿠닌의 독일에서의 반동이라는 글에서는 "파괴의 열정은 또한 창조의 열정이다"라는 이후 니힐리스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것으로 간주되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글은 니체가 태어나기 2년 전(1842)에 작성되었다. 이후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니힐리스트라는 용어는 희망과 무관하게 반란과 투쟁을 강조하는 아나키스트들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되는데, 오늘날에는 2008년의 국제적인 경제위기 이후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아나키스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이들은 근본적으로 반사회적인 마인드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사회적 아나키스트들과 사이가 좋지는 않다. 여기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serafinski라는 아나키스트의 blessed is the flame이라는 글을 참고하라.[31] 굳이 서로 구분하여 정리하려고 시도해보자면 러시아 니힐리즘은 하나의 구체적인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라기 보단 '창조를 위한 파괴'란 관념 자체를 철학적 뿐만 아니라 도덕적, 미학적 관점에서도 긍정하고 이를 적극 추구하는 문화적 태도, 사조에 가깝다.

5. 또 다른 용어 리버테리언


가끔씩 아나키스트들은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리버테리언 소셜리즘' 또는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을 아나키즘의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하며, 아나키즘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아나키즘의 목적이 '''자유'''와 권리를 위해 '''모든 권위적''' 체계, 사회적 기관, 사회 관계를 끝내는 것인 이상, 이러한 용법이 특이한건 아니다.
현대적 용례와는 다르게 70년대 이전까지 레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자본주의 지지자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었으나, 70년대 이후 미국을 기점으로 의미 변형이 발생하였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머레이 북친은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현대 미국 우익 프로프라이테리언[32]이 아니라, 19세기 유럽 아나키스트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었다."[33]
최초로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아나키스트 저널은 Le Libertaire, Journal du Mouvement Social[34][35]이다.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미국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것은 미국 뉴욕에서 1858년 설립되어 1861년까지 프랑스 아나코-코뮤니스트[36][37] 조셉 데쟉크(Joseph Dejacque)에 의하여 출판되었다. 용어에 대한 다음 기록은 유럽에 나타났다. 프랑스 르 아브르 지역 아나키스트 의회에서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이라는 형태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1880년, 11월 16-22일). 다음해 1월 프랑스어 선언문 "Libertarian or Anarchist Communism"이 발간되었다. 마침내 1895년, 주요한 아나키스트인 세바스티앙 포르(Sebastien Faure)와 루이즈 미셸에 의하여 Le Libertaire가 프랑스에 출판되었다.[38]
네틀라우(Nettlau)의 책이 1932년에 쓰여져 1934년에 수정된 것에 유의해야 한다. 조지 우드콕(George Woodcock)은 그의 저서에서 데쟉크와 포르에 관련하여 동일한 사실을 보고했다.[39] 중요한 것은, 우드콕의 저술은 1962년이 쓰여졌지만 우익이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더욱 최근에, 로버트 그레이엄(Robert Graham)은 데쟉크의 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그는 최초로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를 아나키스트와 동일한 용어로 사용한 인물이였다. 그동안 포르와 미셸은 아나키스트의 동의어로 리버테리언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대중화 했다."[40]
무슨 말이냐면, 루이즈 미셸은 아나키스트들이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우리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또다른 용어로 사용하도록 연관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우리의 상징이 되는 검은 깃발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깃발은 루이즈 미셸에 의하여 대중화 됐다. 포르는 이후 1903년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미국에서의 용례를 보자면 벤자민 터커[41](Benjamin Tucker, 주요한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가 1897년 2월에 논의한 토지 사용에 대한 "리버테리언적 해결책[42]"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 역시 자본주의자(즉 우익 리버테리언)를 공격한다.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은 "토지 독점권"이다. 좀 더 이후로 가면 "토지 보유에 대한 리버테리언적 원칙[43]"이 있다. 여기에도 아나키스트의 토지의 사적 소유에 대한 생각이 확실하게 적용되어 있다. [Liberty[* 벤자민 터커가 간행한 아나키스트 주간지], no. 350, p. 5]
1920년대 아나코 코뮤니스트 바르톨로메오 반제티의 주장에서도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사회주의자다. 다른 사회주의자들 이를테면 사민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I.W.W[44]

가 사회주의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주의자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단한가지 주요한 차이는 그들이 권위주의자인 반면 우리는 리버테리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국가와 정부를 믿지만, 우리는 믿지 않는다. [Nicola Sacco and Bartolomeo Vanzetti, The Letters of Sacco and Vanzetti, p. 274]

흥미롭게도 루돌프 로커(Rudolf Rocker)가 1949년 LA에서 출간한 책에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 스테판 P. 앤드류스(Stephan P. Andrews)가 "가장 대재다능하고 중요한 리버테리언 소셜리즘의 주창자"라고 저술되어 있다.[45] 이것은[46] 1909년 영어로 변역된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서에서도 등장한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아나키즘의 원칙... 그것은 기원했다... 위대한 프랑스 혁명의 행위에 안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여 있다. "오늘날의 리버테리언 역시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47]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의 가장 유명한 사용,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아나키스트 운동은, 스페인의 아나코-생디칼리스트 CNT에 의한 것이였다. 1919년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에 대한 목적을 선언한 이후, CNT는 1936년 5월 사라고사에서 전국대회를 개최했고, 여기에는 982개의 노동조합과 55만명의 노조원을 대표하는 649명의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여기서 결의된 것중 한가지는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연방에 대한 개념(The Confederal Conception of Libertarian Communism)"이였다. 이것은 Isaac Puente을 중심으로 4년 전에 출판되어, 여러 언어로 널리 번역되고 재간된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에 대한 동명의 팜플릿과 관련된 결의안 이였다. 그 팜플릿이 발간된 해, 즉 1932년 Federacion Iberica de Juventudes Libertarias(Iberian Federation of libertarian Youth, 이베리아 리버테리언 청년 연합)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설립되었는데, 여기서도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찾아 볼 수 있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단지 아나키스트를 자처 하는 사람들 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된다. 그러나 스스로를 리베테리언이라고 묘사하는 좌파의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은 아나키즘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안 모리스 브린톤(Maurice Brinton)와 그가 멤버로 소속되어 있던 Solidarity이라는 그룹은,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리버테리언으로 설명했으며, 그들이 주장한 사회주의의 형태인 분산화와 자주관리는 아나키즘과 구별하기 어렵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가 아나키즘보다 더욱 방대한 용례로 사용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전히 사회주의에 초점을 맞춘 좌파들에 의하여 사용되었었다.
잘 알려져 있고 잘 문서화 되어 있는 '리버테리언'이라는 단어의 사용례는 본래 아나키스트들(그리고 좌파에 가까운 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었고, 현대와는 달리 기록에 의하면 70년대 이전까지는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이 자신을 가리키는 이명에 가까웠다.
요약하자면 우리의 정치적 관점에서 사회와 경제를 볼때 아나키스트들이 150여년이 넘도록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현실 정치, 운동판에서도 스페인이나 그리스 같이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주류 정치권의 관점에서도 아나키스트들이 상당한 세력을 유지 하고 있는 곳에 가면 거리낌 없이 '아나키스트'와 '리버테리언'이란 단어를 번갈아 쓴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쎄네띠스따나[48] 아테네의 엑사르케이아의 아나키스트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친자본주의적 리버테리언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저 미국에서 자본가애들도 리버테리언이라고 부르는거 어떻게 생각하심?'하고 물어보면 친절하고도 간단하게 "미국 친구들이 먹은 햄버거 중 몇개가 상해서 뇌까지 파고 든거겠지"라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자기들은 저작권법에 지적재산이라고 더럽게 따지면서 지들이 남의 상표 도명해 가는 건 괜찮다는거지. 자본가들다운 발상이잖아?"라는 식의 대답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이걸 미국측에서 원래 유럽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던 단어를 도용해갔다고 하기도 뭣한게, 현대 거대 자본주의 세계제국의 맹주인 미국을 보면 상상도 하기 힘들지만 20세기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아나키즘 세력이 강성했던 나라 중 하나였다. 20세기 초반 미국 급진 노동운동계를 주도했던 IWW만 하더라도 아나코생디칼리스트 성향 혁명 노동조합이었고, 엠마 골드먼, 알렉산드르 베르크만, 루돌프 로커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유수의 아나키스트 지식인, 혁명가들이 미국을 거점으로 두고 활동했으며, 헤이마켓 사건, 사코와 반제티 사건 처럼 미국 노동운동사의 굶직한 노동 쟁의 사건의 중심에도 아나키스트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상당수가 아예 유럽에서 나고 자라다가 망명, 이민의 형태로 미국으로 온 경우였거나,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나키스트들도 저런 이민자 사회의 노동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졌기 때문에 이 당시 아나키즘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조금 나중에 CNT를 통한 커넥션이 생긴후 스페인과 중남미까지 오가며 상당히 유기적인 국제적 발전을 보였다. 다만 이 와중에 미국의 아나키즘 조류 중에는 전통적인 좌파적 관점의 노동 문제보다 윤리 철학적, 사회학적,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아나키즘의 가능성에 집중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벤자민 터커등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긴 했는데, 이들도 딱히 저런 계급, 경제적 의미의 좌파로서 아나키즘을 딱히 배격한 것도 아니다.
리버테리언이란 단어가 원래 반권위주의 좌파진영의 단어에서 영미 자본주의 지식인들이 호칭이 되는건 60년대~70년대 미국의 우파 경제학, 정치학 지식인들 중 머레이 로스바드를 필두로 한 자유주의적 인사들이 비록 기원은 좌파이긴 하나 굶직한 혁명적 역사를 남긴, 이 시점에서는 이미 2차대전과 냉전의 피바람을 겪은 후 세력이 현격하게 줄어든 한세대 이전의 리버테리언들을 주목하고, 이들의 혁명적 자유주의를 자유시장과 접목하려는 중에서 의미가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나코-자본주의의 대부격인 인물이며 저 리버테리언이란 단어가 변화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머레이 로스바드의 경우 실재로 정치적인 이념과는 별개로 반전, 반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동시대 제3세계 민족 해방 운동과 전세대 혁명가들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며, 체게바라가 죽었을때도 '''미하일 바쿠닌 이후 가장 순수했던 혁명가이자 양키 제국주의에 맞선 위대한 영웅이 죽었다'''며 조문을 표하기도 했다[49]. 현대 미국에서 사용하는 의미로 리버테리언이란 단어가 굳은건 이렇게 경제적으로는 좌우익 스펙트럼 양쪽에 분포하던 급진적, 혁명적 자유주의 전통 중에서 원래 주류였던 좌파가 2차대전, 메카시즘, 냉전, 신자유주의를 연달아 겪으며 대중 정치판에서 싸그리 쓸려 나가면서 애초에 주로 학계나 지식인 사회에서만 활동하던 우익의 버전만이 남아 생긴 현상이다.
게다가 이런 미국에서 '리버테리안'이란 단어가 가지는 특성으로 인해 마치 우파적 리버테리안이 미국판 아나키스트인양 호도되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상술한 IWW도 정규 회원을 만 단위로 굴리던 20세기 초반에 비해서야 형편없이 작아졌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트럼프 시대의 안티파 운동이 보여주듯 그냥 보편적인 의미에서 반권위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인 아나키스트들도 미국에서 충분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리버테리안' 용어 논쟁에 관해서도 '그냥 시대 물결 잘만난 힙스터 경제학자들이 도용해간거임'이란 유럽쪽의 인식도 공유하고.
이 문단은 영국의 아나키스트 저널 Freedom press의 vol. 69, No. 23-4 부분을 참고하여 작성한 것이다.

5.1. 미국의 리버테리언과 아나키즘



여기서 론 폴은 1935년생이며, 미 공화당 하원의원 출신으로 공화당내 자유지상주의자들을 대표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세에 밀려 당선되진 못했지만. 랜드 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자유지상주의라는 사상이 아나키즘과 동의어라고 보긴 애매한 점[50]이 있지만, 실제로 흔히 리버테리어니즘(자유지상주의)의 본고장으로서 간주되는 미국의 대다수 리버테리언들도 로버트 노직이나 하이에크 등을 필두로 한 (흔히 우파 성향으로 간주되는) 최소국가주의자이기는 하나, 원론적 혹은 이론적 측면에서 넓게 보자면 미국의 리버테리어니즘 또한 이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상술한 벤자민 터커가 있으며, 미국 리버테리어니즘의 아버지인 라이샌더 스푸너 또한 강도국가론(...)[51]을 주장한 전형적인 아나키스트다.
아나코 캐피탈리즘 부분 참고.

6. 역사


아니키즘/역사

7. 소련 붕괴의 파장


90년대 전후로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자 혼란에 빠진 권위주의 좌익진영 과는 반대로,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사회주의를 근본에서 부정했기 때문에 뒷짐지고 있었지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아나키스트 운동에 자칭 아나키스트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아나키스트라고 자처하면서 공산국가와 레닌주의 혁명가들에 대한 변명을 일삼거나, 투표나 선거 및 의회주의를 주장하거나[52] 온갖 사이비 이론을 섞어 제3의 위치 같은 주장을 했기 때문에 전 세대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를테면 아나코 캐피탈리즘과 내셔널 아나키즘에 대하여 그들은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주장하지만,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그들 자신을 제외하면 어떤 아나키스트도 저들을 아나키스트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나키스트들한테 저런 소리 하면 사회주의 서클에 가서 민족 사회주의를 사회주의라고 주장한 것과 같은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사실 멀리갈 필요도 없이 포털사이트에 아나키즘이나 아나키스트라는 용어를 쳐보면, 대중적 차원에서 아나키즘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지극히 피상적인, 대중 매체를 통해 형성된 폭력적 허무주의만 강조하는게 주류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아나키즘과 관련된 독립 운동가들의 영화가 개봉될 때 그경우가 심한데, 이 때문에 북미 아나키스트 조직인 crimethinc에서 비평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 시대 당시 '''국외의 상해, 일본, 만주 등에서''' 독립 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나, '''막상 해방 이후에 국내에선 남북한 모두 주요 정치, 여론 형성 집단으로''' 아나키스트들이 영향을 미쳤던 역사가 없는 한국에선 상술한 피상적인 이해+이런 근대사적 자취가 결합되어 아나키스트들을 무슨 조금 더 과격했던 일제강점기의 민족주의적 독립 투사로 오해 하는 경향이 강하다.[53]

"반공주의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아나키스트의 국가 공산주의(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한 명백한 반대는 그들이 일반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는 또한 건국 서사 통합될 표적이 되기도 했다. 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일반적으로 국가와 사회에서 존경 받으며, 국가를 위한 영웅이자 순교자로서 교과서와 공공 기념물에 등장했다. 영화 박열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역시 그들 중의 하나다... 아나키스트가 건국 서사를 대표하게 될때, 그들의 아나키즘은 민족주의에 찬동하며 누그러지며, 이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에 대한 암묵적인 승인을 조장하는데 사용된다... 그럼에도 박열과 후미코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민족주의자들을 분노하게할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저작의 일부는 모든 이데올로기와 국가를 부정하면서 니힐리즘을 명백하게 표현했다. 두번째로, 그들은 저항에서 소수파의 일부였다. 동아시아에서 1920년대 중반까지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의 지배적인 흐름이였고, 이후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종류의 권위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고립되고 잊혀지게 되었다. 이런 일은 세계의 여러 곳에서 똑같이 이루어졌다.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도 공산주의 경향이 더욱 주요 했지만, 박열과 후미코는 소수파인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이자 니힐리스트였다."

아나키스트와 다른 좌파의 갈등은 스탈린도 아니고, 레닌도 아니고, 그들이 스승으로 삼는 마르크스의 결정론과 바쿠닌의 자유의지론(Libertarianism)이 충돌 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아무 사회주의 이론을 말하면서 아나키즘이라는 말만 붙이면 아나키즘이 되는게 아니다. 아나키즘의 사회주의는 특정한 형태의 사회주의를 의미하며(리버테리언 스펙트럼의) 이것은 성평등 같은 다른 문제에 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의지론자는 환경이 아무리 적대적일 지라도 그의 자유의지는 현실이며 중대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의 행동이 깨어있는 우리가 보기에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며 그 자유의지에 의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주장될 수도 있다. 이 후자의 입장이 바로 레닌주의의 전위당론(Vanguardism)이라고 불리는 것이며 자유의지론과는 전면적으로 대립되는 주장이다.
한국의 자칭 아나키스트 전문가들은 세바스티앙 포르의 "권위에 대항하는 자는 모두 아나키스트다"라는 주장을 남발하는데, 이 주장 자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은 결코 모든 권위에 대항하지 않고, 자신이 싫어하는 권위 그리고 거부했을때 위험하지 않은 권위만 거부하면서 나머지 권위는 찬양하는 것[54]을 합리화 하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권위에 대항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를 들어 보자면, 일반인들에겐 충격적이겠지만 아나키스트 운동에는 '''감옥폐지론(prison abolition)'''이라는게 존재한다.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인 알프레도 보나노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감옥은 권력의 야만성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며, 다른 권력의 체계와 마찬가지로 파괴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점진적으로 사라질 수 없다. 미래에 이것을 폐지하기 위해서 점진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이는 누구든지 이를 영구히 영속시킬 것이다. 아나키스트의 혁명의 계획은 착취 받는 자들의 투쟁과 함께하며, 그들을 모든 학대와 억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며, 이는 감옥에 맞서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을 행동하게 하는 힘은 경제와 정치의 지배가 파괴된 더 나은 세계와 존엄한 삶에 대한 갈망이다. 그런 세계엔 감옥이 존재할 수 없다."[55]

실제로 서구권에서는 아나키스트 단체나 아나키즘 성향이 있는 노동운동 단체들이 감옥의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감옥 노조를 설립하기도 하며, 이들의 '''감옥 파업(prison strike)'''을 지지하기도 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환경속에 가둬놓고 강제로 무언가를 시키는 것을 일종의 '''노예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 의회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나, 자연인 같은 사람들이 아나키스트 코스프레하는 현상은 기초적인 아나키즘 서적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상태에, 미디어에서 가볍에 표현되는 아나키스트의 이미지를 보고 말로만 아나키즘을 외치니까 발생하는 부작용인 것이다. 한국엔 현대 아나키즘은 물론이거니와 고전 아나키즘의 서적들 자체가 번역이 안되있고, 자칭 전문가들의 서적들은 해외의 글들을 인용하기 보단 한국에서 연구된 글들을 인용한다.
이런 사건은 여러 반응을 일으켰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2가지 대응 방안이 나타났다.
하나는 아나키스트 이데올로기를 그 근본에서 명확히 하려는 시도였는데 그 결과가 Anarchist FAQ라는 글이다. 이글은 영미권 아나키스트들의 주도로 작성되었고 지금도 조금씩 업데이트 되고 있는 아나키즘에 대한 가장 거대한 설명글이다.저자들의 블로그 아나키스트 라이브러리의 아나키스 FAQ
또 다른 대응은 포스트 레프트(post-left)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쪽 사람들은 좌파를 미친듯이 까대면서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권위주의 좌익 이데올로기와 리버럴 이데올로기를 밀어 내면서 순수한 아나키즘을 유지하려고 시도했다. 포스트 레프트는 매우 포괄적인 용어로 단일한 입장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머레이 북친은 이들을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로 분류했다. 포스트 레프티즘에 속한 아나키스트들은 다른 아나키스트들이 보기에 뭔가를 하기 보단, 까대는걸 중시하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불쾌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존재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아나키스트 운동에서 적지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서구 아나키스트들의 운동을 보면 나타나는 블랙 블록을 비롯한 여러 전술적 입장은 본래 포스트 레프트 계열의 주장이다. 포스트 레프트 운동에서 가장 대중적인 프로파간다로 알려진 조직은 대표적으로 crimethinc가 있다.

8. 상징



8.1. 서클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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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심볼인 서클 A가 언제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9세기 고전 아나키스트 그룹이 사용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20세기에 탄생한 심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확실한 이미지로서 남아있는 기록은 스페인 내전에서 활동한 종군기자 게르다 타로(gerda taro)[56][57]가 남긴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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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다 타로(1910~1937)
기록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서클A[58][59]
이후 1956년 11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결성된 아나키스트 그룹 AOA(Alliance Ouvriere Anarchiste)가 사용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64년 프랑스의 단체 '리버테리언 청년'[60]이 문서에 사용한 기록이 있고 1968년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탄생한 펑크문화는 서클A가 전세계로 퍼지는데 기여한다.
A와 O가 결합된 이 심볼은 일반적으로 프루동이 남긴 말에서 비롯됐다고 여겨진다. 그의 저서인 '어느 혁명가의 고백(The Confessions of a Revolutionary)'에 기록된, "'''Anarchy is Order''' Without Power"(아나키[61]는 권력없는 질서다.) 혹은 "anarchy is the mother of order"(아나키[62]는 질서의 어머니다.)가 이 심볼의 의미라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유럽언어에서 Anarchy는 A로 시작하는 단어로, Order는 O로 시작되는 단어로 번역된다. 아나키의 A와 오더의 O가 결합된 모노그램인 이 심볼은 아나키스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그것은 아나키즘이 말하는 것은 결코 무질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놈 촘스키는 아나키는 결코 무질서한 사회가 아닌 가능한 작은 통치와 제어로 작동되는 잘 조직된 사회에 대한 개념이라고 이야기한바 있다.

8.2. 검은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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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의 깃발은 검은색인가? 이것은 거부라는 그림자의 색이다.[63]

검은 깃발은 모든 깃발에 대한 거부이다. 이것은 인류의 화합을 가로막고 대립 시키는 국민성에 대한 거부이다. 검은색은 국가와 집단에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에 자행되는 끔찍한 범죄에 대한 분노이자 울분이다. 이것은 가식과 위선, 그리고 정부의 비열한 속임수에 은밀하게 모욕되는 인간 지성의 분노이자 울분이다. 검은색은 또한 비탄이다. 검은 깃발은 안정과 위대한 영광을 위해 기꺼이 피를 마신 조국에 대한 거부이며, 국가의 안과 밖에서, 그리고 전쟁에서 살해된 샐 수 없는 희생자들의 비탄이다. 이것은 노동의 결과가 강탈되어, 또 다른 인간을 도살하고 억압하는데 쓰이게 되는 현실에 대한 비탄이다. 이것은 폭압적인 계층 사회 안에서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마저 병들어 버린 현실에 대한 비탄이며, 세계를 밝힐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꺼져버린 수많은 이성의 눈물이다. 이것은 위로할 길 없는 슬픔의 색이다.

"Why the Black Flag?", Howard Ehrlich (ed.), Reinventing Anarchy, Again, pp. 31-2

아울러 아나키스트들은 '''검은색'''을 자신들의 고유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검은색이 노동을 상징했고 국가들의 국기가 화려한 색들로 채워진 반면 이를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검은 깃발은 19세기 후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널리 쓰였다. 그리고 항복에 대한 반대, 깃발 자체에 대한 반대의 의미에서도 검은 깃발은 널리 쓰였다. 실제로 검은 깃발은 과거 산업사회 이전부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고 조직화된 노동자로서 존재해 왔던 집단은 다름아닌 광산광부들인데 이들이 종종 검은 깃발을 광산 표식으로 쓰곤 했다.
덧붙여 프랑스 혁명 이후 붉은 깃발이 혁명을 상징했고 붉은 깃발이 공산주의사회주의의 상징으로 쓰이게 되자 19세기 중엽부터 사회주의와 확연히 다른 노선을 걷게 된 아나키스트들은 붉은 깃발을 사용하기 좀 뭐한 감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붉은 깃발도 자주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주의 계열과는 다른 상징을 필요로 하게 되자 아나키스트들이 검은 깃발을 사용하는 빈도 또한 늘어났다고 한다. 이때 굳이 혁명의 상징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끝까지 붉은 깃발을 사용한 표트르 크로포트킨 같은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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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 Monde illustré지의 사건에 대한 삽화[64]
검은 깃발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최초로 등장했는지는 불명확하나, 아나키스트들이 어째서 그것을 널리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유명한 참가자였던 루이즈 미셸[65][66]이 아나키스트들에게 검은 깃발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다. 1882년 3월 18일 파리 코뮌을 기념하기 위한 공개 회의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붉은 깃발은 더이상 적절하지 않다. 고통의 검은 깃발을 들어 올리자."[67] 다음 해 그녀는 그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아나키스트 역사가 조지 우드콕(George Woodcock)에 따르면 1883년 3월 9일 프랑스 파리 실업자들의 시위에서 그녀는 검은 깃발을 들고 등장했다. 실업자들의 야외 시위는 500여명의 규모였고, 미셸은 검은 깃발을 들고 "빵과 일이 아니면 총알을!"[68]이라고 외치며 생제르망 도로를 시위대의 가장 앞에 서서 행진했다. 그리고 군중은 경찰에게 공격 당하기 전에 3개의 빵집을 공격했다. 그녀는 구속되어 6년의 독방 감금형을 선고 받았으나, 공공의 압력에 의해 곧 사면되었다.[69] 같은 해 8월 출판된 리옹 지역 아나키스트 신문 Le Drapeau Noir[70]은 검은 깃발은 아나키스트 그룹 사이에서 유명한 심볼이 되었다고 보고했다.[71]
한편 러시아에서는 1905년 Chernoe Znamia[72] 무브먼트가 등장하기 이전 까지는 검은 깃발이 쓰이지 않은 걸로 보인다. 그 해의 혁명이 좌절된 이후 아나키즘은 또 다시 지하로 숨어들어 가야 했다. 1917년의 혁명 동안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은 재등장하게 되었다. 그 해 2월, 페트로그라드의 차리즘 타도 시위에서 아나키스트들은 검은 깃발에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새기고서 참여했다. "권위와 자본주의를 타도하자!" 활동의 일환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임시정부의 반혁명 시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에 무장 분견대를 결성했고 이들은 '검은 수비대'[73]로 불렸다. 그리고 조금 암울한 기록이 있는데, 1921년 2월에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이 소련에 나타났다. 그 달엔 크로포트킨의 장례식이 모스크바에서 열렸었다. 2만여명의 참석자들이 그의 명예를 위해 검은 깃발을 들고서 행진 했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소련 아나키즘 최후의 기록들

Where there is authority, there is no freedom.

'''권위가 있는 곳에 자유는 없다.'''

크로포트킨의 장례식으로 부터 '고작' 2주만이 지나서 크론시타트 반란이 실패로 돌아갔고, 아나키즘은 소련에서 삭제되었다.[74]
일제강점기의 한국 아나키스트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검은 깃발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아나키스트 단체들은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검은색을 자신들의 단체의 이름이나 상징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제하 한국 아나키스트 단체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흑기동맹, 흑색공포단, 흑풍회 등이 되었다.

8.3. 졸리 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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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혁명적 반란군의 깃발[75][76]
네스토르 마흐노[77], 1888년 10월 26일 ~ 1934년 7월 6일
아나키스트들은 해적을 상징하는 졸리 로저를 자신들의 심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해적기의 바탕이 검은색 이기도 하고, 해적 이라는 용어가 현대 정보화 시대에 벌어지는 특정한 사이버 운동과도 연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78]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커다란 이유는 적백내전 당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활동한 아나키스트 혁명가 네스토르 마흐노의 영향이 크다.

"승리 혹은 죽음. 이것이 역사의 순간에서 우크라이나 농민이 직면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수는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류애'''라는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수많은 승리가 결국에는 '''새로운 주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맞김으로써 끝나게 된 위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부여잡고, 우리 자신의 의지와 우리 자신의 진리에 따라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Manifesto of the Makhnovists, written in 1918 by Nestor Makhno]#

1918년 초 새로운 볼셰비키 정부는 동맹국[79]과의 정전을 위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서명한다. 그러나 거기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광활한 영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에 대항하여 각지에서 파르티잔이 결성되었고, 독일제국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였다. 네스토르 마흐노가 결성한 '우크라이나 혁명적 반란군', 즉 '검은 군대'는 가장 주요한 파르티잔이였다. '검은 군대'는 남부 우크라이나에 권위를 부과하려는 '''모든''' 세력과 맞섰다. 즉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80] 내셔널리스트들, 조약으로 들어온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점령자들, 친독 보수파의 헤트만 국가[81], 포그롬[82] 그리고 러시아 제국 잔존세력의 '하얀 군대'와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 아타만[83]이 이끄는 작은 군벌 세력들까지 모두에 맞섰다. 검은 군대가 다른 모든 세력들과 대립했던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은 1918-1921년 동안 '자유구역'[84]이 만들어졌다.[85] 이곳에선 'Nabat'이라는 이름 아래에 최초로 열린 아나키스트 그룹의 회의에서 회자된 5가지 요소가 적용되었다.
1. 모든 정당 중지
2. 모든 독재 거부
3. 모든 국가적 개념 부정
4. 모든 '일시적 기간[86]프롤레타리아 독재 부정
5. '자유 소비에트'에 의한 노동자 자주관리#
자유구역의 거주민들은[87] 숙고집회를[88] 열어 국가와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자유 소비에트[89]와, 리버테리언 코뮌[90]을 만들었다. 토지와 공장은 몰수되어 노동자 자주관리가[91] 구현되었고, 크로포트킨의 이론에 따라 농촌과 도시간의 자유 교역[92]에 기반을 둔 경제가 형성되었다.#
자유구역은 1920년 까지 제국의 남부 러시아 정부[93]안톤 데니킨(Anton Denikin)이 이끄는 하얀 군대와 대치 했으나, 1920년 11월 검은 군대와 붉은 군대가 동맹하여 최종적으로 하얀 군대를 격퇴했다. 페트로그라드의 볼셰비키 정부는 처음에는 자유구역의 독립을 약속으로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성장하는 검은 군대와 아나키즘의 영향력이 확대 되는 것을 우려했다.[94] 볼셰비키는 자유구역은 네스토르 마흐노군벌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수작이라고 거짓 선전을 하기 시작했다.[95] 볼셰비키 신문은 자유지구의 지도자들은 민주적이 아니라 마흐노의 군벌에 의해 선출되었다고 선전했다. 그리고 소비에트의 철도원과 전신 기사에게 음식 제공을 거부했고, 마흐노 헌법엔 체제를 위한 특별한 부분이 있어 고문과 비밀 처형이 자행 된다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장했다. 마흐노의 군은 보급을 위해 붉은 군대의 호송대를 약탈했고, 브랸스크에서 장갑차를 강탈했다고 선전했다. 또한 Nabat은 잔혹한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볼셰비키는 협정을 파기하고 1920년 11월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대규모 군사 점령이 감행되었다. 마흐노비스트와 비볼셰비키의 활동은 억제되었고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설 되었다. 마흐노는 1921년 8월 루마니아의 국경을 넘어 파리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목수로 일하다가 1934년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자유구역의 형식적인 지도자로 소련에 의해 임명된 레프 아흐마니노프가 1921년 9월 17일 합병 조약에 공식적으로 서명하며 우크라이나 자유구역은 사라졌다.

8.4. Bisected F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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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은 어느 사상보다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기로 유명한데 이 다양한 분파들이 서로 자신들의 사상을 잘 나타내기 위해 아나키즘에는 '''Bisected Flag'''라고 불리는 2등분 깃발이 존재한다.
아나키스트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깃발들.
워낙 다양해서 설명하기 복잡한데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 흑적기는 아나코 공산주의(무권위 공산주의)이나 아나코 생디칼리슴(혁명적 조합주의)[97][98]을 상징한다.
이 외에는 몇가지 빼면 대부분 누군가가 임의로 만든 팬아트에 가깝기 때문에(...) 실제로 운동에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흑황기는 아나코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아나키즘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크고 아름답고 넓어서 소위 말하는 무정부 자본주의[99]까지 존재한다! 물론 이들이 여타 혁명적 아나키스트들과 사이가 좋을 리 만무하다.
  • 흑녹기는 녹색 아나키즘[100]이나 아나코 원시주의(Anarcho Primitivism)을 상징한다.

  • 흑자기는 아나코 페미니즘을 상징한다.
  • 흑분홍기는 아나코 퀴어라 불리는 동성애자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사용된다.[101]
  • 흑백기는 아나코 평화주의를 상징한다.
  • 흑주황기는 상호주의적 아나키즘을 상징한다.
  • 흑회기는 아고리즘[102]을 상징한다.
  • 흑청기는 아나코 트랜스휴머니즘[103]을 상징한다.
  • 흑청록기는 이기주의적 아나키즘을 상징한다.
  • 검정색-하늘색 깃발은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을 상징한다.

9. 아나키즘의 분파들


아나키즘/분파 문서 참조. 사실 아나키즘의 분파는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렇다보니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주의적 사회주의자들로부터 '기회주의자', '모험주의자'라는 평가를 듣곤 하며[104]

10.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국내의 경우 시기상으로 일제강점기 시대와 맞물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아나키즘 노선을 취했다.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의열단이 한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집단으로 꼽히며, 의열단 지도자 약산 김원봉 역시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였다.[105] 한국사에 여러 의미로 큰 영향을 끼친 신채호 역시 민족주의자였다가 말년에 아나키스트로 전향했다.[106]
덴노 폭사 기도사건의 주인공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도 아나키스트였다.[107] 해당 문서 참조.
광복 직전까지는 그래도 아나키즘이 비교적 접하기 쉬운 사상이었는지라 단주 유림 선생도 임시정부 요원이었고 임시정부 요원들이 환국할 때 함께 환국했었다. 이 계통은 한국 자주인 연맹으로 계승된다.
그 외 더 자세한 사례는 아나키스트 문서 참조.

11. 비판


아나키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아나키스트라고 스스로를 밝히는 개인들 또한 다양한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아나키즘을 하나로 정의하고 비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몇 가지 공통된 비판을 받아왔으며 지금도 받고 있다. 특히 '아나키즘이 사회의 변화를 위한 사상일 수 있느냐'는 점에서 많은 비판이 개진되어왔다. 아나키즘의 영향력이 크게 확장되지 못했던 이유를 단지 '권위주의자'들의 억압으로 칭하기에는 아나키즘 자체에도 몇 가지 한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비판들은 매우 추상적인 것이며 상당한 일반화를 거친 것이다. 아나키즘은 '''아나키즘들'''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기에 구체적인 비판은 개개인의 사유체계나 사상적 조류 각각을 통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아나키즘을 접하는 이라면 비록 일반적인 비판일지언정 이와 같은 지적들을 고심해본다면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나키스트 진영 내부의 담론의 발전 또한 이러한 비판들과 역사적 경험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진보해왔다.

11.1. 사유체계의 비과학성


아나키즘은 사유체계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상대주의적 사유를 많이 받아들였다는 점에 기인한다. 아나키즘의 역사는 매우 길기에 상대주의로부터 아나키즘이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죽은 이성보다도 살아있는 생명을 강조하는 식의 낭만주의적 사고[108]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현대사회에 들어서며 지적 권위에 대한 부정 역시 권위주의에 대한 부정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왔다.
특히 60년대 이후 '부활'했다고 볼 수 있는 아나키즘 조류들이 아나키즘이라는 이름하에 묶이는 것도 보통 상대주의 가치관에 근거한 사회운동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낭만주의, 상대주의 자체가 과학적 사유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며 수많은 사회주의자·과학자 ·철학자·역사학자 등이 상대주의적 사유체계의 한계를 지적해왔다.[109] 단순히 비판을 넘어 학문적으로도 이 낭만주의적, '반이성적' 사상적 태도가 아나키즘과 마르크스 등을 비롯한 다른 좌파 이론과 근본적으로 계보를 달리 하는 점이다.
마르크스에서 비롯된 주류 좌파 이론은 현실 세상에서는 아무리 척을 지었어도 지적 계보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통한 궁극을 향한 인간 본성의 개선이란 측면에서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 경제학과 같은 18세기 계몽주의의 후손이다. 반면에 아나키즘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 능력 자체를 회의하고 순간순간의 역사적, 지역적 상황에 따라 행동 개체의 내면적이고 본능적인 선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계몽주의가 아니라 잠바티스타 비코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등의 사상과 통하고 있다.[110]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 반계몽주의 철학에서 비롯 된 다른 아주 악질의 이데올로기가 있는데, 바로 파시즘이다. 아나키스트들은 파시즘과 달리 철학적 기반은 반계몽주의에 두고 있지만 정치적 이상은 보편인권, (직접) 민주주의, 사회 정의 등 계몽주의의 목표를 지향하기 때문에 파시스트들과 달리 존재 자체가 그 해당 사회의 독약이 되는 암적인 성격은 없고, 오히려 저런 가치관들의 존립과 존엄함이 걸린 역사적 순간에서 이를 위해 투신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이성에 대한 신봉'''에 기반하여 철저한 통제, 소위 '''군기'''를 중시하는 이념과 집단들 보다 충동적이고, 작위적인 성격이 두드러질 때가 종종 있다.[111][112]
20세기 초반 유럽 대륙과 남북아메리카에서 아나키스트 단체들이 분명히 인민 대중 중 많은 수의 지지를 받으며 큰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 많은 수가 고립된 막가파식 반정부 무장 테러 노선을 고집하다가 집중적으로 때려 잡혀 망한 사례도 이런 성격과 상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와중에서 우크라이나 자유령의 혁명이나 스페인 내전 당시 CNT 주도 혁명이 국제 아나키즘 역사에서 가장 비중이 큰 굵직한 사례로 자리잡은 것도 저 두 역사적 사례에서는 아나키스트들이 이전의 행동적 작위성을 극복하고 하나의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며 일반 거시정치학적 관점에서도 '권력'이라 부를 만한 영향력을 유지했기 때문에 고평가받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반이성적'이란 서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 사상사적인 측면에서는 당장 프루동, 고드윈 같은 초창기 아나키스트들부터 공산주의적 아나키즘 전성기의 레클뤼 형제, 크로포트킨, 에스꾸엘라 모데르나[113] 계열의 교육학자[114], 역사학자들, 현대의 아나키스트 사회학자들 까지 아나키즘이란 기치를 내걸고 각자 해당 분야에서 학계 내부 관점에서도 높게 평가 받는 성과를 이룩한 지식인 전통은 항상 존재해 왔으며, 아나키스트 이념과 지향점은 이들의 연구와 성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사자들은 서로 인정하기 싫은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관점에 따라 2차대전 이후 미국 경제학계 중심으로 이루어진 우파 아나키즘 담론의 형성 또한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반권위주의적 자유조합 사상을 자본주의 시장 경제이론에 접목시킨 결과라 평가할 수도 있다.[115]
이렇듯 아나키스트들은 어떤 방식, 방향으로든 아나키스트 사상과 이념을 '합리적, 이성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며 다른 이데올로기들과 소통하는 과정 자체를 포기한 적은 결코 없다. 다만 그 발전의 방향이 대표적 라이벌 이념 마르크스주의에 비해 개개인 아나키스트 사상가에 따라 다방면으로 튀며 한 이론이나 논쟁에 집중 된 적이 없고, 아나키즘을 직접적으로 표방하는 정치 세력이 국가 단위의 권력을 장기적으로 잡아 본 적이 없으니 국제정세를 비롯한 이데올로기 외적 관점에서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굶직한 담론과도 동떨어진 역사를 가지게 된 점이 큰 차이를 낳은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상사적으로 반계몽주의의 후손으로 뒤틀린 의미에서 이복형제...라 할 수 있는 파시즘과는 확연히 다르다. 상술한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 전통을 반계몽주의적 유산의 문맥에서 설명하자면 아나키스트들은 '''인간의 비이성적 자발성을 긍정하되''' 계몽주의적 담론도 받아 들여 '''저런 집단적 자발성을 인본주의적 이상향의 방향으로 갈고 닦자'''는 관점이라 정리할 수 있다. 반면, 파시즘은 애초에 체계적인 이론이 있었던 운동, 사상이라고 보기도 힘들거니와, 그나마 '파시스트 사상가'를 자처하며 이에 대한 글을 남긴 죠반니 겐틸레, 필리포 마리네티 등의 저술에 따르면 '''어차피 인간은 그리 비이성적이고 순간을 사는 생물이니 그 순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발휘하는 힘을 통해 다스리고 지배하는게 당연하다'''는 다분히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관점을 표방하고 있고, 역사적 경험의 영역에서 이런 파시스트적 허무주의는 정치적 폭력의 페티쉬화와 사회다윈주의, 우생학적 관점에서 권력과 위계 질서 그 자체의 숭배로 이어졌다. 아나키스트들이 내부적으로도 이론적 합의가 없음에도 끝임없이 다른 사상 체계를 포함한 '객관적, 실체적 세계'와의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파시즘은 사상적으로 설득하기 보단 오히려 지식인, 사상적 소통, 정치적 논의 자체를 경멸하며 '''독재자와 군대의 주먹이나 믿으면 된다'''는 자세를 취했다.[116] 이러한 면에서 미국의 역사학자, 역사 철학자인 헤이든 화이트 (Hayden White, 1928-2018)는 근대 유럽의 역사학자들의 사관 형성 과정에 있어서 자유주의, 보수주의, 급진주의[117]와 더불어 아나키스트 사관은 존재하나, '''파시즘은 본질적으로 인식론적 원(epistemological circle)이 닫혀 있는 사상'''이기 때문에 파시스트 사관, 지식인 전통이란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고 평하였다.[118]

11.2. 영웅주의적 사고관


아나키즘은 종종 생각보다 더 영웅주의·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옘마 골드만은 "대중은 어리석다", "개인은 대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대중이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독립해 나와야 한다고 보거나 사람이 개인으로서 움직일 때와 군중으로서 행동할 때 확연히 다른 행동패턴을 보이기 때문에 개인이 주체로서 주변의 의사에 휘둘리지 말고 행동하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119][120] 골드만 이전·후의 많은 아나키스트들 또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대중을 아직 깨어나지 못한 계몽의 대상이나 소시민으로서 파악하는데 이는 사회 분석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진보적 변화 과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관점이라 지적할 수 있다.[121]
이러한 측면은 아나키즘이[122] 생산 수단의 공유라는 경제적 측면 못지않게 인습, 체제, 법률 등의 억압적 기구에서 해방된 개인주의적 성향 또한 그만큼 강조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개개인 아나키스트들은 사상적으로 각성된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충돌하는 것이다. 여기다 위에 언급된 낭만주의적 태도까지 겹쳐 이론적으로 아나키즘은 극단적인 대중 기반의 공동체 형성을 추구하면서도 역설적으로는 미하일 바쿠닌, 네스토르 마흐노, 사코와 반제티,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등의 몇몇 서사시적인 영웅적 인물들을 지나치게 우러러 보며 숭상하는 경향이 있다. 대체로 다른 좌파들이 현수막에 내거는 인물들은 마르크스, 엥겔스, 블라디미르 레닌, 트로츠키, 마오쩌둥 등 아예 전업 이론가였던가, 아니면 적어도 이론에도 큰 기여를 했던 인물들인 반면 아나키스트들이 내세우는 영웅들은 바쿠닌처럼 이론적 활동은 걍 부업이었던가, 아예 관심 자체도 없이 전업 혁명가로 활동했거나,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혁명가보다 순교자로서 더 유명한 점도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11.3. 공동체 지향 아나키즘의 모순점


'개인'을 사회 변화의 주체로 삼는 이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공동체를 이상으로 삼는 경우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인류학의 연구성과들이 냉담하게 보여주듯이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23]이 지적하듯이 공동체는 구성원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타자와 끊임없이 경계 지으려 시도한다. 친족 공동체가 여성을 주고 받으며 남성간의 공동체적 연대를 강고히 해왔다는 연구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타자에 대한 배타성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들은 타자들에 대한 공포와 질투가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고통의 전시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또한 한국의 공동체 운동들의 험난한 역사가 말해주듯 공동체는 보통 아나키스트들이 그렇게 꺼리는 시장, 국가 등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그 존립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작은 배가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버리듯 공동체가 사회 구조의 흐름에 좌초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공동체적 이상이 전사회적 구성요소로 등장하기 이전에 공동체를 강조하는 아나키즘적 사상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아나키스트들이 원하는 자생적이고 자치적인 사회의 모습은 결코 폐쇄적인 공동체가 무슨 짓이든 그 공동체 안에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작은 사회가 아닌데, 아직까지 주요 아나키스트 사상들은 위의 사회학적 연구의 성과들과 묶어서 본다면 작은 사회 아니면 아나키즘이 극도로 혐오하는, 저 멀리 있는 국가든, 교회든 누군가가 나서서 간섭을 하는 사회공학 둘 중 하나의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또한 사상적 기원은 반계몽주의에 두고 있는데, 그 지향점은 계몽주의에 기반한 보편 인권, 직접민주주의 등을 추구하다 보니 생겨나는 모순이다. 관념적으로 주류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바는 '''계몽주의적 이상향에 기반한 근대적 보편 인권 담론이 뭔가 더 적극적인 플러스 알파'''이지, 전혀 전근대적인 '''보편적 인간 존엄성의 담론은 없고, 온갖 억압적 악습, 구폐습을 포함한 그 동네 사회 문화에 따른 상태의 지역적 자치'''가 아닌데, 이를 추구하는 방법론은 저런 계몽주의적 '''통제'''를 배격하는 '''전근대적 자치'''를 지향하다 보니 생기는 내부 충돌이라 할 수 있다.

11.4. 아나키즘 운동의 문제점


아나키즘과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채택하고 있는 사회운동의 구체적 방식이나 그 효과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특히 문화적인 도구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선호하며 '조직적 운동' 보다는 '네트워크적 운동'을 펼쳐나가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이들이 다들 사회운동에 어느 정도 단련된 이들로서 충분한 책임감과 지식,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 네트워크 운동은 쉽게 무너진다. 더 나아가 문화적 운동의 경우 그 파급력은 클 수 있으나 영향력은 단기간에 일부분에 걸쳐서만 미치는 경우가 많다. 아나키즘적 문화운동이 국가나 시장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라도 소위 일부 '프레카리아트'를 넘어선 노동자대중 전체와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68혁명러시아 혁명을 되돌아보며 러시아 혁명 당시에도 문화적 전위들은 존재했고 아나키스트들은 많았지만 혁명(대중)의 권위는 이들을 최소한으로 억제했다고 기술한 바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12. 다른 사상과 관련된 사항


역사적으로 보면 사상적, 이념적 폭과 깊이는 넓은데 막상 현실에서는 기원상 사촌이나 배다른 형제격인 공산주의, 특히 레닌주의에게 안습하게 밀린다.[124] 권위주의의 정점인 국가나 정부, 기타 단체를 부정하기만 하면 다 아나키즘으로 포섭되지만 그 개념의 광범위함 때문에 다양한 세력이 다시 아나키즘의 이름하에서 백가쟁명하다 보니 서로간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125]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가 착근에 성공한 경우는 러시아 혁명 당시 혁명가 네스토르 마흐노가 이끌던 우크라이나 자유령과 스페인의 아나키스트 노조 전국 노동 연맹[126]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의 쿠데타를 막으며 역혁명을 일으켜 카탈로니아 지역에 세운 해방지 정도 뿐이다. 둘 다 한때 성공하는 듯 했지만 공산주의자들에게 뒤통수를 맞아 큰 타격을 입었다.[127] 하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해서 중국 혁명 때도 공산당보다 먼저 들어와 많은 혁명가들을 배출하며 손문의 이념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2008년 그리스 반정부 시위가 보여주듯 서구의 사회 운동가들에게도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의 아나키즘은 사회생태주의[128], 반전사상, 징집거부 운동, 대안학교 운동, 소비조합 생산조합 운동, 농촌공동체 운동 등으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공산주의도 궁극적으론 아나키즘을 지향하는데 마르크스 본인도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가 궁극적으로 완성되면 군대도 국가도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공산주의 중 국가주의적인 레닌주의는 아나키 단계에 이르기 전엔 반혁명세력을 격퇴하고 인민을 이념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여 아나키스트들과 대립하게 된다. 아나키스트들은 레닌주의를 비판하며 한시적이라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결국 권력의 생명연장본능 때문에 영구독재화되고 그로 인해 반대세력을 탄압하며 민중을 말살하는 괴물로 변해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129] 그리고 역사는 현실사회주의에서 나타난 모습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 결국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가 현재와 같은 모습(평준화된 대학 등)을 갖게 된 것도 아나키즘의 영향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68혁명 혹은 5월 혁명(정식 명칭: Revolution de Mai)을 찾아보기 바란다. '''단''', 국내 자료를 찾기보다 영어로 구글링하기를 바란다. 혹은 지식채널e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으니 그쪽을 찾아보길 바란다.

13. 창작물



14. 바깥고리


아나키스트들의 전자 도서관으로 어지간한 아나키즘 관련 글들은 (영어로)아카이빙 되어있다. 다만 다른 아나키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아나코 캐피탈리즘과 내셔널 아나키즘 등을 사이비로 취급 하기 때문에 그에 관련된 글은(비판하는것 외에는) 없다.
주로 전통적 사회적 아나키즘, 리버테리언 마르크스주의(좌파 공산주의 등의)과 관련된 웹사이트.
90년대부터 북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나키스트 조직, 한국에서 이들의 글을 번역한 적도 있다.
미국에서 2015년도부터 활동하고 있는 아나키스트 플랫폼. 아나키즘 자체에 대한 사상적 연구도 없는건 아니지만 사이트의 중점은 사실 언제 어디서 이런 집회가 있으니 올 사람 와라 하는 식의 현실에서 하는 안티파 활동 웹사이트에 가깝다.
아나키스트 프로파간다 영상을 만드는 캐나다 아나키스트들, 반민족주의 문서에 올라가있는 동영상을 만든 이들이다.
미국의 좌익 시장 아나키스트(상호주의 아나키즘, 아고리즘) 웹사이트, 레프트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때 좁은 의미에선 이사람들을 의미한다.
레딧의 /r/Anarchism.
/r/Anarchism과 연결된 서브 레딧으로 진지한 토론을 하기 보단 아나키스트들이 개드립을 치거나 밈을 만들며[131] 노는곳이다.

15. 같이보기


  • 아나키즘/분파
  • 아나키스트
  • 그놈이 그놈
  • 자유지상주의[132]
  • 상대주의
  • 스페인 내전
  • EZLN
  • 공산주의
  • 무방비도시
  • 무법지대
  • 무주지
  • 사회주의
  • 전국 노동 연맹
  • 바리케이드를 향해
  • 안티파
  • 의열단
  • 반민족주의[133]
  • 운동권
  • 정치 외교 관련 정보
  • 파리코뮌

[1] 국가를 넣는 바리에이션도 많이 쓰인다. 이경우 국가는 실체화된 권력을 의미한다. No Gods, No Country, No Masters.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2] 1880년 프랑스 사회주의자 루이스 오귀스트 블랑키(Louis Auguste Blanqui)의 동명의 저널를 통해 첫 등장.[3] 각각 정신적 해방, 물질적 해방.[4] 바쿠닌이 신과 국가에서 천상에 주인이 있다면 우리는 지상에서 노예가 될 것이라고 했듯이, 종교권력은 역사적으로 국가권력과 결합해서 노동, 민권 운동을 탄압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의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관점이다. 무신론(또는 과학만능주의)이 권력 및 이데올로기와 결합하기도 하고, 자본주의가 종교의 위치마저 대체하여 최고 위치에 선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가 꼭 적용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유신론자이거나 종교인인 아나키스트도 많으며, 종교를 기반으로 삼아 현실을 뛰어넘어 한차원 더 나아간 급진성을 추구한다고 하는 아나키스트들도 있다. 아나키즘은 그 본질에 다양성과 자유 존중의 정신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나키즘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견해는 일치하지 않으며 다수파라고 해서 소수파를 억압하거나 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5] 영어 발음은 ʹănər'kĭzəm\(아너키즘)이나 ˈænəɹˌkɪzəm(애너키즘)에 가깝다.[6] 접사에 해당하는 -ism 역시 고대 그리스어 접사 -ισμός(ismós)에서 유래한다.[7] 고대 그리스어 동사 ἄρχω(árchō)는 "통치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때문에 군주제는 단독(μόνος, mónos) 통치하는 형태로 'μοναρχία(monarchía)'라고 부른다.[8] 다만, 영어를 비롯한 유럽언어에서는 정부(government)를 지배(govern)하는 기구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무정부상태(아나키)를 지배기구(government)가 없는(無) 상태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즉, 무정부주의(아나키즘)라는 번역이 잘못 되었다기보다는 동양의 정부(政府)와 서양의 정부(government)의 어원•인식 차이로 인해 번역을 통한 뜻의 전달이 매끄럽게 되지 못한 것이다.[9] 이 글은 이탈리아에 세계 최초로 파시즘이 등장한 이후인 1926년에 작성되었다.[10]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errico-malatesta-neither-democrats-nor-dictators-anarchists[11] From Democracy to Freedom[12] 노동자가 산업과 직장을 제어한다는 의미다.[13]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ichail-bakunin-statism-and-anarchy[14] 그러나 해석에 따라서 반국가와 반정부를 다르게 볼수도 있다. 예컨데 아나르코공산주의의 지방 코뮌이나 아나르코생디칼리슴의 노조평의회를 정부로 볼수도 있기때문. 따지자면 아나키즘은 국가의 정부를 반대하는거지 정부라는 형태를 반대한다고 보기엔 애매하다고 볼수있다.[15] https://libcom.org/library/unique-its-property[16] 슈티르너는 독립적인 정당성을 가진 현상이란 존재하지 않고 현상의 실체는 그 뒤에서 그들을 지탱하고 있는 '''힘'''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주의 국가 또한 자유, 평등, 박애 같은 관념적 이상향이 아니라 문명 발전에 의한 재산의 축적과 부르주아의 소유욕이 그 실체라고 주장한다. 이에 더하여 부르주아의 체제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노동계급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견한다.[17]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michail-bakunin-the-immorality-of-the-state#toc16 바쿠닌은 범죄를 저지른 인간은 국가의 가장 귀중한 특권(합법성의 독점)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유죄가 된다고 말했다.[18] 대체로 펑크 음악 듣고, 서클에이 그려진 티셔츠 입으면 그게 아나키즘이라고 생각하면서 바쿠닌, 국가주의, 개인의 자율권 같은게 뭔지 모르는 인간들 혹은 하는 소리는 적당히 국가주의적인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인데 힙해보이고 싶어서 아나키스트 자칭하는 인간들[19] 물론 이중에 진짜로 변절한 인간(대표적으로 박열)들도 있는데, 이 경우엔 이미 아나키스트가 아니라 친정부 국가주의자에 불과한 것이다.[20] 가장 정석적인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인 슈티르너의 철학에 따르면 모든 범죄는 기본적으로 '''사상범죄'''다. 이런 맥락에 따라 후대의 이탈리아 아나키스트인 알프레도 보나노는 감옥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이건 모든 아나키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시각)했고, "교화정책 자체도" 인간을 정신의 감옥에 가둬서 반역의 본능을 억누르려는 제도로 보아 부정했으며, 일반인들이 듯기엔 미친 소리 같지만 국가와 사회의 통제에 저항하는 그런 범죄적 인간들이 자유를 창조한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스트 조직 중 CrimethInc라는 곳도 범죄 사상을 퍼트리는 세포조직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자처하는 것이다.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alfredo-m-bonanno-locked-up[21] https://moxie.org/blog/we-should-all-have-something-to-hide/[22] 이들은 사람을 개인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종, 성별등 집단으로 파악한다.[23] [image]"'''좌하(전통적인 아나키스트 포지션)'''", "'''좌상(마르크스-레닌주의)''': 우린 정치적 억압의 체제를 만들거야, 근데 적어도 경제적 억압은 없을 거라고. 어서 "좌파 단결"을 하자!", "'''우하(아나코 캐피탈리스트)''': 우린 경제적 억압의 체제를 만들거야, 근데 우린 국가를 원하지 않는다고. 어서 자유지상주의자 단결을 하자!" 정치 스펙트럼상 하단에 위치해서 바텀 유니티(Bottom unity)라고도 하는데, 자본주의자, 사회주의자로서의 근본적인 반감 때문에 별 호응은 없다.[24] syndicalist party. 인민전선에 가입했다.[25] 사회민주주의국가주의에 속하며, 사회주의 이념상 아나키즘과 정반대에 위치한다. 실제 현실 사회에서 사민주의자들은 대충 주류적 온건좌파 노선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아 서로 비현실적인 급진주의자, 수정주의자라 욕은 해도 직접적으로 충돌할 일은 별로 없지만 이데올로기 자체로보면 어쩌면 최소한 제도 외에서 체제 전복이란 혁명주의는 공유하는 볼셰비키보다 더 양립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를 해체하고 싶어하는 반면, 사민주의자들은 의회 정치와 민족국가의 틀 내에서 그것도 생산수단의 직접적인 사회화도 아니고, 계급간 '타협'과 복지제도를 통해 오히려 그 국가를 더 공고하게 만드는게 이상향이니 말이다.[26] 직역하면 '같은 개 - 다른 목줄'에 가깝다.[27] CNT의 해석대로라면 왼쪽은 주적인 팔랑헤와 그 후예인 보수정당인 인민당을, 중간은 공산당에게 자신들을 팔아넘긴 PSOE를 비롯한 온건 사회주의자들, 오른쪽은 자신들을 배신한 공산당으로 볼 수 있다.[28] https://theanarchistlibrary.org/library/errico-malatesta-and-nestor-makhno-about-the-platform[29] 깔쌈하게 말로만 사회주의를 표방했지, 기본적으로 국가 권력이란 구조 자체가 지니는 기득권과 권력자들을 비호할 수 밖에 없는 본능 때문에 '''당이 인민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 처럼 착취하고, 결국 국가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 하의 사기업처럼 작동한다'''라는 현실사회주의권에 대한 비판이다.[30] 다만 노자의 사상은 완벽한 아나키즘 사상과는 좀 다르다. 이런 점에서 장자와 노자를 같은 도가로 묶는데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다.[31] https://archive.org/details/BlessedIsTheFlameAnIntroductionToConcentrationCampResistanceAndAnarchoNihilism[32] proprietarian, proprietary + -an[33] The Ecology of Freedom, p. 57[34] 살펴볼 수 있는 곳[35] 위키피디아 [36] 다른 말로 코뮤니스트-아나키스트,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 리버테리언 코뮤니스트[37] 아나키스트들은 이 기다란 용어들어 짧게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Libertarian communism은 줄여서 Libcom으로, 마찬가지로 Anarcho-communism은 Ancom으로, Anarcho-capitalism은 Ancap으로 축약된다.[38] Max Nettlau, A Short History of Anarchism, pp. 75-6, p. 145 and p. 162[39] Anarchism: A History of libertarian ideas and movements, p. 233[40] Robert Graham (Ed.), Anarchism: A Documentary History of Libertarian Ideas, p. 60 and p. 231[41] 저 아래에 언급된, 자유시장 아나키즘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42] libertarian solutions[43] the libertarian principle to the tenure of land[44]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45] Pioneers of American Freedom, p. 85[46] 즉 아나키스트와 리버테리언을 동일시 하는 것.[47] The Great French Revolution, vol. 1, p. 204 and p. 206[48] cenetista, 즉 CNT 소속 노동운동가[49] 물론 이것도 삐딱하게 보자면 무슨 대단한 사상적 접점이 아니라 그냥 68혁명 시절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 전체를 강타했던 신좌파 조류와 운동권 학생 문화의 조류를 타려고 했던 기회주의적 행보일 뿐이라고 냉소짓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이전까진 '우린 경제적 우파라도 기존 보수주의자들과는 다르다'라고 어필했던 우파적 리버테리언들이 트럼프 시대에 들어서면서 인종, 성별, 이민 정책 같은 부분에선 갈수록 그냥 극우, 우파와 접점이 많아지고, 이에 따라 로스바드 뿐만 아니라 이쪽 진영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종종 했던 엘리트 선민사상에 기반한 반유대주의,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발언들이 재발굴 되면서 로스바드 같은 사람들의 아나키즘 '기믹'은 말 그대로 기믹일 뿐이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50] 우파적 자유지상주의는 경제분야에서 아나키즘과 대비되다. 그래서 아나코 캐피탈리즘을 우파 아나키즘이라고 한다.[51] "왜 세금을 가져가느냐!"(...)[52] 한국에선 국가주의를 파시즘 비스무리한 용어로 오용되어 사용하지만, 국가 권력이 경제와 사회에 강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믿음 자체가 국가주의다. 이건 내셔널리즘스테이티즘이 모두 국가주의로 번역 되면서 생긴 오해다.[53] 이는 사실 대중적 차원에서 인지도도 있고 아나키즘 관련 연구자이기도 했던 이덕일의 영향력도 간과할 수 없다.[54] 아나키스트라면서 법에 호소한다던가, 아나키스트라면서 사회민주주의자(국가가 주도하는 제도적 사회주의)라고 자칭한다던가[55] #[56] 최초의 종군 여기자라 여겨지며 스페인 내전에서 사망했다.[57] 똑같이 종군기자였던 로버트 카파의 연인이었다.[58] 공화파측의 병사다.# 영상의 53분 25초 쯤에서도 나온다.[59] 영상에서 해당 병사의 투구를 자세히 보면 어두운색으로 FAI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맹(Federación Anarquista Ibérica, Iberian Anarchist Federation)의 약자이다. 그 오른쪽에 있는 병사의 모자에는 CNT라고 쓰여진게 보인다.[60] Jeunesse Libertaire, Libertarian Youth[61] 아나키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무질서 내지는 무정부지만, 아나키즘을 줄인 표현이기도 하다.[62] 아나키즘적 의미에서 저항 내지는 불복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저항이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것[63] 누군가 자랑스럽게 어떤 국가나, 조직의 깃발을 치켜든다면, 찬란한 태양빛을 받아 펄럭이는 깃발 뒤엔, '깃발의 검은 그림자'가 생기며, 그것은 어떤 깃발일지라도 마찬가지다.[64] 흑백 원본에 채색한 버전이다.[65] Louise Michel, 가명 클레망스(Clémence) [66] '몽마르뜨의 붉은 처녀'(the red virgin of Montmartre)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67] Edith Thomas, Louise Michel, p. 191[68] Bread, work, or lead[69] Anarchism, pp. 251-2[70] The Black Flag[71] "Sur la Symbolique anarchiste", Bulletin du CIRA, no. 62, p. 2[72] black banner[73] Black Guards[74] Paul Avrich, The Russian Anarchists, p. 44, p. 124, p. 183 and p. 227[75] Revolutionary Insurrectionary Army of Ukraine, 마흐노비스트(Makhnovists), 마흐노프시나(Makhnovshchina), '검은 군대'로 불리기도 한다.[76] 우크라이나어:Смерть всім, хто стоїть на перешкоді здобуття вільності трудовому люду!,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의 자유를 방해하는 모두에게 죽음을! 큰 글씨가 '죽음' 부분이다.[77] 영어: Nestor Ivanovych Makhno, 우크라이나어: Нестор Іванович Махно, 러시아어: Не́стор Ива́нович Махно́[78] 특히 어나니머스나 핵티비즘과(hacktivism) 관련된 아나키스트들이 쓰는 경우가 많다.[79] 1차 대전 당시 독일, 오스만, 오스트리아의 연합을 말함[80] Ukrainian People's Republic[81] Hetmanate Republic, Ukrainian State[82] pogrom, 선동에 의한 제노사이드, 동유럽에서는 주로 유대인 학살를 의미했다.[83] Ataman, 카자크의 지도자를 말함[84] Free Territory[85] Peter Marshall, Demanding the Impossible, PM Press (2010), p. 473[86] 오늘의 사슬은 내일의 자유를 위해... 이런걸 말함[87] 자유구역의 인구는 700만 가량이었다.[88] Deliberative assembly[89] free soviets[90] libertarian communes[91] workers' self-management, 참고 [92] free exchange[93] South Russian Government[94] Skirda, Alexandre, Nestor Makhno: Anarchy's Cossack. AK Press, 2004, p. 236[95] Skirda, Alexandre, Nestor Makhno: Anarchy's Cossack. AK Press, 2004, p. 238[96] 대각선이 반대로 그어지기도 한다.[97] 이는 19세기 후반 사회주의 정당이 의회주의와 타협노선을 걷게 되자 노동조합을 혁명의 주체로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상인데 출발부터 아나키즘적 색채가 강했다. 쉽게 말하면 다른 노동운동과 달리 정당의 지도를 거부하고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정치투쟁을 배제한 총파업으로 혁명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어느 사상들보다 더 급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모험주의나 기회주의로 평가된 바도 없지 않아 있고 훗날 파시즘에 의해 중요한 부분은 빼버리고 산업조합/자본가조합/친자본노동조합에 의한 전체주의 국가 건설에 협력하는 조합주의(앞서 말한 생디칼리슴을 조합주의라고 번역하는 사람들은 혼동을 막기 위해 협동주의(corporatism)라고도 부른다)의 모태가 되기도 하는 좀 안습한 결과를 낳기도 하다. [98] 이런 이유에 의해 스페인의 CNT는 흑적기를 사용한다. 흑적기를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단체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99] 정부가 자본 흐름에 절대 개입해선 안된다는 입장. 고전적 자유방임주의와 흡사하다.[100] 흔히들 환경운동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진 녹색당의 그 녹색 맞다.[101] 아나키스트인 동성애자가 집회나 시위에 참여할 때 지참하는 것으로 보인다.[102] agorism[103] 영어 위키백과의 리버테리언-트랜스휴머니즘을 말하는게 아니다. 참고 2 3[104] 특히 블라디미르 레닌이 그의 저서에서 좌익 소아병이라며 줄창 깠다.[105] 그러나 윤세주 사후 조선의용대가 임정과 분리된 뒤 장안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좌경화되며 김원봉도 이후 월북문제 때문에 공산주의자 취급을 받고 만다.[106] 사실 어느정도 짬뽕된 케이스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전통적인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보자면 민족주의는 아나키즘과 안어울린다.[107] 후미코는 옥사했고 박열은 감옥에서 반공주의자로 전향하여 22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해방 후 풀려난다. 다만, 이때 아나키즘까지 버렸는지는 불분명. 해방 후엔 민단 단장을 맡다가 한국에 돌아온 뒤 한국전쟁 중 납북된다. 북한에서 1974년 사망한다. 참고로 조소앙, 김약수(역시 아나키스트였다가 훗날 사회주의로 전향) 등도 같은 단체에서 활동을 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숙청되거나 산간 오지로 추방된 데 비해 박열은 사망시에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장을 맡은 것으로 봐서 북한 당국의 눈에 날 짓은 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일부 보도에 의하면 북한에서 "저 사람은 원래 무정부주의자라 말이 안 통한다"며 왕따를 당했다는 안습한 이야기도 있다(...).[108] 당시에 이미 낭만주의적 사고를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었음을 상기해볼 때 낭만주의합리주의를 배격하는 사상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109] 고전적 아나키스트라 할 수 있는 프루동빈곤의 철학에 대해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으로 반박한 일은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110] 영국의 지식사학자 이사야 벌린이 '반계몽주의'라 칭한 그 사상 체계 맞다.[111] 물론 위의 철학적인 기원은 사상적 계보의 차원에서만 파시즘과 모태를 공유한다는 거지, 실제로 저렇다고 해서 현실의 아나키스트들 면전에서 아나키즘이 파시즘과 연관 있다 따위의 드립을 치면 영혼이 분자 단위로 분해될 때까지 까일 것이다.[112] 애초에 각각 아나키즘과 파시즘의 모태가 되는 좌파 반계몽주의와 우파 반계몽주의의 분화는 19세기 초중반에 조속하게 이루어졌고, 이후 역사적 아나키스트들은 오히려 전체주의가 고개를 처드는 곳 어떤 곳에서든 이에 대항하여 초개같이 목숨을 내던진 투사들을 대거 배출했다. 심지어 입만 열면 반파시즘, 대조국전쟁 선전하기 바쁜 '''소련의 정통 볼셰비키 공산주의자들은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나치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을 때도''' 아나키스트들은 코민테른의 지령 따위 들은 척도 안하고 대파시즘 투쟁에 몰두했다.[113] escuela moderna[114] 프란시스코 페레[115] 물론 전통적인 좌파 아나키스트적 관점에서는 이는 자유조합주의적 측면이 기존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먹혀 버린 결과라 비판 할 수도 있지만, 어쨋든 사상사의 계보에서 이런 관계성이 존재한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116] 독일 나치의 사이비과학적 인종주의, 스페인 프랑코 정권의 사이비역사학적 민족 이론가, 야마토 민족의 우수함과 이에 따른 황인 해방의 첨병 운운했던 일본의 파시스트 사상가들은 사실 이런 원초적인 힘과 위계 질서 그 자체의 숭배와 이를 통한 폭력적, 근본적 국가/인종 '개량'이란 담론에 해당 국가만의 특수한 집착 요소를 가미한 거라 볼 수 있다.[117] 책의 문맥에서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19세기 radicalism, 즉 공화주의, 사회주의 진영을 표방한 급진 세력을 의미한다.[118] 풀어 말하자면 다른 사상 체계들은 전부 다 나름 논리적 '설득 체계'라는 것에 기반하여 주장을하고, 여기에 기반해 끊임없이 서로 갑론을박하는 지식인 전통이란게 존재하는데, 애초에 주장 자체가 '''지식인 따윈 나약한 퇴폐적 부르주아다. 눈 앞에 실존하는 권력만 믿으면 되고 여기 의문 제기하는 새끼들은 불순분자니깐 오함마가 답이다'''인 파시즘은 저런 사상적 비판, 담론 자체를 배격하는걸 강령으로 삼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말이 안 통하고, 또 이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체성인 작자들'''이란 말이다.[119] 이는 여러 사회 실험에서도 나타나며 화이트의 '집단의 도덕성은 집단의 구성원의 도덕성보다 떨어진다'라는 말로도 표현된다.[120] 이런 개인에 대한 집중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군중은 무조건 우매하고 오직 깨우친 개인만이 옳다는 식의 영웅주의적·엘리트주의의 결론으로 치닫기도 한다.[121] 더욱 자세한 논지는 최세진내가 춤 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중 사이버 공간의 아나키즘 부분 참고. 아나키즘이 지닌 소영웅주의, 엘리트주의는 세계적으로 많은 곳에서 비판받고 있다.[122] 적어도 주류인 좌파 아나키즘에 한하여[123] 액체근대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대의 사회학 고전으로 꼽힌다.[124] 소련 초기에는 아나키스트들이 많이 활동했으나, 아무런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아나키스트답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하여 축출당했다.[125] 대신 이념적으로 경직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프루동, 바쿠닌 같은 핵심적인 아나키스트 이론가가 어떤 주장을 했던간에 교조적으로 이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유연성은 장점. 현대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라 보아도 무방하지만 아나키스트라고 해서 바쿠닌주의자, 크로폿킨주의자는 아니다.[126]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공산당 소속 CCOO, 사회주의 노동자당 소속 UGT에 다음가는 3번째로 큰 노조다.[127] CNT 자체의 군사조직이야 바르셀로나 5월 사건 이후로 점차적으로 공화국 정부군 전체 조직에 통합되어 갔지만 아라곤과 카탈루냐, 그리고 카스티야 라 누에바 지방의 자치 공동체들은 많으 수가 국가군에게 함락 될 때 까지 조직을 유지했으니 뒷통수 맞아서 바로 '망했다'라는 건 틀린 표현이다. 아무리 소련이란 물주를 등 뒤에 두고 있어도 스페인 공산당은 자생적 거대 정당으로서 급진 혁명파와 온건 사민주의 계열 모두를 포용했던 사회주의 노동당과 대중적 기반이 굳건했던 CNT를 아예 민간 사회 차원에서 때려 잡을 만큼의 세력이 없었다. 괜히 공산당이 PSOE를 반강제로 잡아 먹으려고 했던게 아니다. CNT가 좌파 진영 내부에서든, 스페인 국가 전체에서든 대중적인 규모의 독자적인 영향력을 상실한건 프랑코 시대의 탄압에서 그 사후 민주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탄압과 내분을 여러 차례 거치며 점차적으로 약해진 것이다. 그리고 CNT의 비중과 규모가 크게 줄어든 건 맞지만 스페인 내에서 아나키즘 전체가 이제 죽어 없는 역사의 유물로 처분 하기에는 2000년대 후반의 경제 위기 이후 다시 스페인 정국을 뒤흔들며 부상하는 좌파 세력 내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영향력도 여전히 상당하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의 어필이 죽었다기 보다는 굳이 CNT 같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서도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보는게 맞다.[128] 생태계 보존을 위해선 궁극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회체제, 즉 국가의 지배, 시장의 지배를 타파하고 소공동체의 자연친화적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129] 조지 오웰동물농장, 1984의 주제의식이 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조지 오웰 또한 공산주의자였으며 이 작품들에서 비판한 대상은 소련의 스탈린주의였다.[130] 작중 등장인물인 스페어 11 타블로이드가 아나키스트인데 에필로그에서 타블로이드가 바랐던 형태의 사회가 난민보호구역에 형성되었다는 에이브릴 미드의 언급이 있다.[131] 소위 말하는 Shitposting[132] 아나키즘보다 좀 더 넓은 개념이다.[133] 의외지만 아나키즘이 식민지 민족과 만난다면 되려 민족주의적 성향을 띄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단적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아나키즘으로 사상적 지평을 넒힌 단주 유림, 하기락, 신채호 등의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첨언으로 이런 식민 치하 조선의 민족주의적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국제 아나키스트들의 평가는 '식민지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입장' VS '동기야 어쨋든 권력 체계와 이의 근간인 민족주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체 아나키즘의 탈을 썼던 다른 좌파 민족주의의 유형' 두 입장으로 나누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