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수학올림피아드

 



International Mathematical Olympiad (IMO) / 국제수학올림피아드
<colbgcolor=#003768><colcolor=#fff>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어 명칭'''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영문 명칭'''
International Mathematical Olympiad
'''약어'''
IMO
'''개최년도'''
1959년
'''링크'''
홈페이지
1. 개요
2. 성적과 시상
3. 형식
3.1. 출제분야
3.2. 출제과정
3.3. 시험과정
3.4. 채점 및 시상과정
4. 이모저모
5. 한국의 역대 수상자 목록 및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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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제수학올림피아드는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만 20세 미만의 학생을 대상으로 열리는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의 하나이다. 국제 과학올림피아드들 가운데 가장 큰 규모와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1959년 7개국이 참가한 루마니아의 1회 대회를 시작으로 2015년 태국에서 56회[1]째가 열린 이 대회에 무려 114개국이 참가한다. 41회 IMO는 대한민국의 대전에서 개최되었다. 초창기에는 동구권 국가들만 참가했으나 갈수록 참가국이 늘고 있다.
대회 자체의 분위기는 축제에 가깝고, 축제기간 동안 시험이 이틀 껴있다 생각하면 오히려 정확하다. 대회로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의 '''훌륭한 인재'''들을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사교 기회'''이기 때문. 즉, 평범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대한민국, 중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 러시아 등은 이 대회의 성적에 특히 국가적인 관심사를 두고 있지만, 꼭 그렇다고 수학 강국이라는 뜻은 아니다. 결국은 고등학생 대회니까... 프랑스와 같은 수학 강국도 IMO 2014 순위가 45위이다. 우리나라 수학자들이 예전에 비해 실적을 확실히 많이 내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수학강국은 아니다. 즉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 후에 수학적 역량이 얼마나 느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IMO 참가자들은 대부분 수학자나 관련 연구자가 되며, IMO 수상 이후 필즈상을 수상한 참가자들도 여러명 있다. '''필즈상 수상자 중 무려 16명이 IMO 출신자들'''이다. 유명한 인물로는 1982년 소련 대표로 IMO 만점을 획득하고, 2006년 필즈상을 수상한 그리고리 페렐만, 1988년 호주대표로 역대 최연소 금메달을 획득하고, 역시 2006년에 필즈상을 수상한 테렌스 타오[3]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필즈상 수상자들이 IMO 출신이다. 국제물리올림피아드, 국제화학올림피아드, 국제생물올림피아드 수상자가 노벨과학상을 획득한 적이 있는 지와 비교해본다면 실감이 날 것이다.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정리한 IMO 참가자

2. 성적과 시상


공식적으로 개인 대항 대회이다. 그러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각 나라의 합산 점수에 근거한 등수를 매겨 준다. 한편 이 순위는 순전히 합산 점수로 매기고 메달의 개수와는 무관한데[4] 올림픽식 메달로 순위를 매기는 다른 국제 과학올림피아드들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1975년 IMO에서 헝가리와 동독은 참가자들 중 아무도 금메달을 수상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종합 순위 1, 2위를 하는 특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헝가리는 5은 3동, 동독은 4은 4동. 당시에는 국가당 8명이 출전했다.
위의 순위 결정법대로 하였을 때 최다 우승국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공동우승 2회 포함 21회로 가장 많다. 가끔씩 미국, 러시아가 1위를 하기도 한다. 2017년 한국이 1위를 기록하며 한국은 1위를 2번 기록하게 되었다. 2016년에 한국대표 6명 중 3명이 만점을 받았다. 그전까지 한국대표로 만점을 받은 사람은 1995년의 신석우 단 한 명이었다. 한국국적으로 42점 만점을 받아낸 사람은 2016년부터 이제 4명이 되었다. 2016년에 전 세계에서 6명이 만점을 받았는데 그중 3명이 한국대표였으나 아쉽게 국가성적은 2위를 기록했지만 이것 역시 기록적인 성과. 2016년에는 중국이 정말 오랜만에 무려 3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후 2019년에 조영준이 42점 만점을 득점하면서 한국국적으로 만점을 받아낸 사람은 5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금메달 수보다 어떻게 보면 더 가치가 있는 것은 42점 만점으로 받은 금메달이다. 금메달은 해마다 어느 정도 수를 주지만 (물론 받기는 어렵다.) IMO는 3번과 6번 난이도가 금메달 받는 사람들 간을 변별할 난이도를 갖기에 그걸 다 시험시간 내에 증명해낸다는 것은 보통 인간이 할 게 못된다. 괜히 IMO가 아니다. 실제로 한국은 금메달을 많이 받아오지만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만점자는 2019년까지 5명뿐이었다. 즉 금메달 개수는 각국 학생의 수학적 역량을 측정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점자는 적게는 해마다 지구에서 1~3명 가량, 많아도 10명이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요 근래에는 거의 대개 3명 이내 쪽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IMO는 가끔 문제가 극단적으로 어렵게 나오면 만점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기도 한다. 당연히 내로라하는 수학자들 중에서도 IMO 만점 한 번 받지 못한 자들이 수두룩하다. 이렇게 만점으로 받은 금메달을 한국에서 수학하는 친구들은 '앱골' (Absolute gold의 준말), 외국에서는 perfect scorer라고 하거나 perfect paper (완벽한 답지)로 수상한 금메달이다 등의 표현을 쓴다. 1990년대 후반 루마니아 대표 Ciprian Manolescu가 3회 연속 출전(1995년, 1996년, 1997년), 3회 모두 42점 만점의 완벽한 답지를 제출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5]
한 국가에서 출전한 참가자 전원이 42점 만점을 획득한 사례는 IMO 역사상 '''딱 두 번''' 있었다. 그 중 하나의 사례가 1994년의 미국이었다. 이 때의 대표단은 '드림 팀(Dream Team)'이라고 불렸으며 이 성과는 타임지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나머지 하나의 사례는 1981년의 룩셈부르크로, 1명만이 대표로 출전하여 만점을 획득했다.
여성 대표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한 참가자는 소련 대표였던 Eugenia Malinnikova로 1989년, 1990년, 1991년에 IMO에 출전하여 3번 모두 금메달을 수상했다. 점수는 1989년 4'''1'''점, 1990년 42점 만점, 1991년 42점 만점으로 Ciprian Manolescu의 기록에서 1점이 부족했다.

3. 형식


오래된 역사에 걸맞게 대회의 형식도 오래된 전통을 지니고 있다.

3.1. 출제분야


현재 IMO의 출제분야는 크게 네 분야(대수, 조합, 기하, 정수) [6] 로 나뉘며 대학수학, 특히 미적분학은 제외된다. [7] 각 분야에 대한 설명은 KMO 항목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므로 해당 항목 참조. 다만 어느 정도 나오는 문제의 틀이 정해진 KMO와 달리 IMO에서는 정형화되지 않은 문제가 꽤 자주 등장한다. 네 분야를 총 6문제 출제되는 만큼 당연히 각 분야의 분포는 균일하지 '''않은데''' 근 몇 년의 추세는 기하 2문제, 정수 1문제가 출제되며, 대수와 조합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3.2. 출제과정


먼저 개최국에서 대회가 열리기 몇 달 전에 문제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각 나라로부터 IMO에 출제될 만한 좋은 문제를 접수한다.[8] 이 문제들을 모아놓은 리스트를 longlist라 부르며 문제선정위원회는 이 longlist에서 20~30개 정도의 문제를 추리고 이를 shortlist라 부른다 시험에 출제될 6문제는 이 shortlist에서 단장회의를 통해 정해지는데 이 과정에서 각 나라 단장들의 의견[9]을 수렴해 투표[10]로 정한다. longlist는 철저히 비공개에 부치며 shortlist는 다음 대회가 열릴 때까지 1년간 공개되지 않는다. 이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팀대표 선발시 전년도 shortlist문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엠바고가 지난 쇼트리스트 문제와 풀이는 imo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문제 유출을 막기 위해 단장은 학생들과 격리된다(개회식 때 각국의 단장과 학생들이 모두 참석은 하지만 떨어진 자리에 있어서 대화가 불가능하다.). 현재 시험 문제에서 사용되는 공식 언어는 총 5개(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로 문제가 확정되면 먼저 영어권 국가들의 단장단이 IMO 출제가 확정된 문제들의 문구를 윤문하여 영어판 문제의 문구를 최종 확정한다. 윤문을 하는 이유는 쇼트리스트에 나온 문제들은 비영어권에서 제출할 수도 있어서, 영어 원어민 수학자들이 뜻은 이해하겠지만 어색하다고 느끼는 표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쇼트리스트 문제 중 출제가 결정된 문제와 실제 학생들에게 배부되는 영어판 문제지의 문구를 대조해 보면 같은 것을 묻고는 있지만 문장은 확실히 다르다.
이후 불어, 독어, 노어, 서어권 단장단이 언어권별로 소위원회를 조직하여 회의, 번역 과정을 거쳐 해당 언어판 문제를 확정한다. 이후 기타 국가의 단장은 필요하다면 확정된 문제를 자국 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고 (이 과정은 번안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 번역 문제지가 그 나라 학생들에게 배부된다(학생은 본인이 원하는 경우 공식 언어판 문제지도 함께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5개 언어가 아닌 것 중 두 나라 이상에서 쓰이는 것은 그 나라들의 단장들이 합의하여 공동 번역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두 가지 이상의 번역판이 있다. 반대로 한 나라에서 두 가지 이상 언어가 쓰이는 경우는 그 나라 참가 학생의 모어가 서로 다른 경우 번역판을 두 가지 이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스리랑카의 경우 단장이 자국어 번역판을 만들지 않고 자국 학생들에게 영어판 문제지를 주되 단어 번역만 추가로 제공하는 방식을 쓰는 중이다. 또한 컴퓨터가 널리 쓰이기 전에는 활판 또는 프린터로 인쇄하지 않고 타자기나 펜으로 써서 복사한 번역 문제지가 대회에서 사용된 경우도 꽤 있었다.

3.3. 시험과정


4시간 30분씩 이틀에 걸쳐 시험을 보며 (시험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 30분까지) 하루에 3문제, 총 6문제가 출제된다. 각 문제당 7점 만점씩으로 총 42점 만점이 된다.[11] 모든 문제에서 계산기는 사용할 수 없다.[12]
문제의 형식은 전통적으로 1일차와 2일차 모두 가볍게 풀 수 있는 쉬운 문제(1, 4번) - 조금 난이도 있고 까다로운 문제(2, 5번) - 엄청 어렵고 신기한 문제(3, 6번) 순으로 되어 있다.
정해진 답안지에 답안을 작성할 필요가 없고 시험장에서 제공하는 A4용지에 작성한 모든 내용은 답안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설령 학생이 답안을 논리정연하게 작성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학생이 끄적인 필기내용이 이 학생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점수가 부여될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참가자는 해당 문제를 전혀 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십 장의 필기 속에 풀이의 단서가 적혀 있어 이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은 사례도 있다.

3.4. 채점 및 시상과정


채점은 크게 단장단과 개최국에서 꾸린 코디네이터 사이의 '''협상'''[13]으로 이루어진다. 단장단과 코디네이터는 정해진 시간에 대표단 학생들의 답안지를 놓고 몇 점을 매길 것인지를 논하는데 이 과정은 짧게 끝날 수도 있고 몇 시간 동안 길어지다 못해 다음날에서야 끝을 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코디네이터들이 모든 나라의 답안지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단장단은 해당 답안지를 번역해서 코디네이터에게 그 내용을 전달한다. [14][15] 개최국 학생들의 답안지는 각 문제가 출제된 국가 측의 채점위원들이 담당한다. 한편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학생들은 관광 일정(excursion)을 소화한다.
채점이 끝난 뒤에는 각 메달의 커트라인을 정하는데 메달 수여의 내규는 전체 메달 수상자가 참가자의 절반을 넘지 않도록 하고 금:은:동이 1:2:3의 비율이 되게 하는 것인데 간혹 학생들의 점수분포가 곤란한 경우 단장 투표를 통해 내규를 깰 수 있다. 동점자가 다른 메달을 수여하게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한편 메달을 받지 못한 참가자 중 한 문제라도 7점을 획득한 학생은 명예상(Honorable Mention)을 받게 된다.
그리고 시험의 모범 답안 외에 제시된 풀이 중 모범풀이보다 훨씬 나은 풀이이거나 굉장히 우아한 풀이를 제시할 경우 등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특별상(Special Prize)이 수여된다. 참고로 특별상은 대회 전체를 기준으로 수여하지 않고, 문제를 기준으로 수여하기 때문에 한 대회에서 2개의 특별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존재한다. 그 악명높은 1988년 IMO 6번 문제를 Vieta Jumping이라는 기발한 방식으로 손쉽게 풀어낸 것이 가장 유명한 특별상 수상 사례이다.[16] 근래에는 2005년 IMO 3번 문제에서 3변수 부등식 문제를 n변수 문제로 확장시켜서 풀었던 학생에게 특별상이 주어졌다.

4. 이모저모


  • 예산의 부족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회의 일정(coordinating과 excursion)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안습.
  •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구글의 후원을 받았다.
  • 앞서 가장 오래된 '국제'올림피아드라고 소개했지만 IMO는 가장 오래된 수학올림피아드는 아니다. 가장 오래된 수학올림피아드는 1910년 이후로 헝가리에서 개최되고 있는 Kürschák 수학경시대회(초창기 이름은 Eötvös 수학경시대회)이다.
  • 중국계 캐나다인인 Alex Song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 연속 IMO대표로 출전했고, 2011년부터 연속 5회 금메달을 받아 세계 IMO 명예의 전당 단독 1위(5금 1동)가 되었다.
  • 제57 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한 북한 대표중 한 명인 16세 소년이 대열에서 이탈해 홍콩 한국총영사관으로 탈북했다. 현지 언론이 이 소식을 보도한 이후 총영사관 주변은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 2016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의 경우에는 한국 대표팀의 한 학생의 점수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다른 문제들은 이견없이 7점 만점을 주는 것으로 합의되었는데, 어떤 문제[17]의 풀이 과정에서 증명은 완벽하게 했지만, n이 9의 배수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에서 두 숫자를 바꿔 쓰는(즉, 9|n을 n|9로 쓰는) 사소한 실수를 한 것. IMO 채점단 측은 1점을 감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국 대표단 측은 몰라서 틀린 것이 아니므로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틀간의 점수 협상으로도 결론이 나지 않아 각국 단장 회의로 넘어가게 되었고, 투표 결과 7점 만점을 주자는 의견이 많아서 결국 감점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42점 만점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관련기사
  • 위와 비슷한 일은 2012년 IMO에서도 있었다. $$ 1600 (1.995^k) < 1.99^k $$ 가 적당히 큰 $$ k $$에 대해 성립한다고 적은 경우가 있었는데 1.99와 1.995를 바꿔적은 경우로 상식적으로 지수가 커질수록 1600 따위는 가볍게 그 존재감이 작아지기에 잘못 표기한 것일 뿐이다. 위의 경우도 그렇고 이 경우도 IMO에 나가는 수준인 학생의 답지인데 이런 표기 오류를 범한 것을 논리적인 사고가 잘못되었거나 생각을 해내지 못해서 수학적인 증명 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개 학문에 대한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이런 표기상의 실수에 대해서 점수를 깎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즉, 일반적인 중고등학생이라면 몰라서 그렇게 썼을리가 없다는 말이다.
  • 일본의 타카야 유타(高谷悠太)라는 학생은 2017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국제정보올림피아드에서 개인 성적 1위를 차지하여 조선일보, 연합뉴스 등 일부 한국 언론에까지 기사로 알려졌다. 당연하지만 국제과학올림피아드는 세계급 인재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자리이다. 때문에 국가대표로 선출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험난하며, 한 분야에서 국가대표로 선출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두 분야에서 국가대표로 선출되고 심지어 두 분야 모두 개인 성적 1위라는 건... 그 전까지 IMO와 IOI에서 모두 개인 성적 1위를 차지한 학생은 2001년 미국의 리드 바튼(Reid Barton)이 유일했다. 참고로 이 학생은 IMO 사상 최초로 금메달 4개(1998, 1999, 2000, 2001)를 수상한 학생이기도 하다.][18]
  • 중화민국은 1992년에 처음 참가하였고 현재 Chinese Taipei가 아닌 Taiwan으로 참가하며[19], 대회장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는 다른 나라 국기와 동등한 자격으로 사용된다. 대륙 수학자들이 다른 분야 사람들과는 달리 시비를 걸지 않는 모양이다. 다른 대회에서 중화민국이 참가하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들을 밀어내는 것이 보통인데 오히려 이 대회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먼저 참가(1985년)를 시작했는데도 그렇다. 단 타이베이에서 개최된 1998년 대회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본토가 불참했다. 1985년 이후 유일한 불참 대회이다.
  • 북키프로스는 터키가 개최한 1993년에 딱 한 번 한 명이 참가했다.
  • 1980년 대회는 몽골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대회가 취소되었다. 1980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의한 정치적 재제로 취소되었다는 설과, 당시 몽골 내부 사정이 좋지 않아 취소되었다는 설이 있다.
  • 2020년 대회는 러시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하여 학생들이 자국에서 온라인으로 시험을 봤다.
  • 개최국과 관련된 최초는 다음과 같다.
    •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 개최 대회: 1976 오스트리아
    • 최초의 북미 국가 개최 대회: 1981 미국
    • 최초의 오세아니아 국가 개최 대회: 1988 호주
    • 최초의 아시아 국가 개최 대회: 1990 중화인민공화국
    • 최초의 남미 국가 개최 대회: 1997 아르헨티나
    • 최초의 아프리카 국가 개최 대회: 2014 남아공

5. 한국의 역대 수상자 목록 및 현황


여기에 한국의 역대 모든 수학 대표단의 소속, 성적 및 현황을 정리해 놓았다.
[1] 1980년 대회(개최국 몽골로 예정)가 취소되었다. 따라서 1980년대 이후 횟수가 하나씩 당겨졌다.[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유일하게''', 또 '''두 번씩'''(1991, 2010)이나 반칙을 저질렀다.[3] 참고로 테렌스 타오는 역대 최연소 은메달, 동메살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4] 한 나라에서 최대 6명이 참가할 수 있다(잠시 4명, 8명였던 적도 있었다). 따라서 사정상 6명 미만이 참가한 나라는 순위가 떨어진다.[5] 만 26세에 박사학위를 받은 후 스탠포드 수학과 교수로 재직중.[6] 원래 초창기에는 이러한 분류를 명시하지 않았으나 1993년 IMO shortlist에서 문제들을 나누기 시작한 이후로 전통이 되었다. 분야를 '''대수(Algebra), 조합(Combinatorics), 기하(Geometry), 정수(Number Theory)''' 순으로 기재하는 것 또한 일종의 전통이다.[7] 대학수학이 제외되는 것은 현재까지도 잘 지켜지는 전통이지만 가끔씩 눈가리고 아웅 식의 문제가 출제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면 '''적당히 큰 n에 대하여''' 등의 문구는 고등학교 범위의 수학에서는 매우 생소한 표현이지만 이따금씩...[8] 한 국가당 최대 6문제까지 제출할 수 있으며 개최국은 제출할 수 없다.[9] 각 문제의 난이도와 '''예술성'''을 평가한다.[10] 각 나라 단장이 모두 똑같이 1표씩 행사하는 시스템. IMO의 규모가 거대해짐에 따라 모든 나라가 동일한 권리를 행사하는 이 시스템이 정말 좋은 문제를 걸러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11] 6문제에 각 문제당 7점 만점으로 총점 42점 만점인 현재의 형식은 1981년 제 22회 대회부터 적용되었다. 그 전까지는 문제당 배점이 일정하지 않았고 총점도 42점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문제수는 7문제가 출제되었던 1960년 2회 대회와 1962년 4회 대회만 제외하고 모두 6문제가 출제되었다.[12]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계산기의 지참을 허용하는 올림피아드들도 꽤 많다. 그 예시는 Tournament of Towns[13] 실제로 협상능력에 따라 학생의 답안지의 점수가 정말 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자국어로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14] 코디네이터 측에서 영어로 답안지를 번역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구두로 이뤄지기도 한다.[15] 이 과정에서 그 나라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의역이 개입할 여지가 있기도 한데 이 여부가 점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어차피 수학에서 사용하는 수식과 기호는 만국 공통이고, 자국어 문자열이 개입할 여지는 매우 적기 때문이다.[16] 참고로 이 문제가 얼마나 악명이 높냐면, 대회 이전 예행연습격으로 교수들에게 이 문제를 풀게 했는데, 6시간 동안 단 한 명도 풀지 못했다고 한다. 상술했던 테렌스 타오마저도 1점밖에 못 얻은 문제.[17] 몇 번 문제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아마 2번 문제였을 것이다.[18] 1등까지는 아니어도 여러 올림피아드에서 동시 수상하는 학생은 원래 흔하긴 했다. 심지어 비록 국내이긴 하지만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천문 올림피아드에서 5과목 모두 입상한 학생도 있다.#[19] 다만 1990년대의 중국어 번체 문제지는 Chinese Taipei, Taiwan, ROC가 혼용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과거의 중국어 번체 문제를 볼 수 있는데,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중국어 번체 문제지를 스캔한 것도 있고, 단순히 문제만 중국어로 번역한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