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돌통

 

||<-2><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a48252><tablebgcolor=#fff><tablecolor=#000><colbgcolor=#a48252><colcolor=#ece5b6> '''능연각훈신
장충공(蔣忠公)
屈突通 | 굴돌통
'''
||
[image]
'''시호'''
충(忠)
'''작호'''
장국공(蔣國公)
'''이름'''
굴돌통(屈突通)
'''부친'''
굴돌장경(屈突長卿)
'''출생'''
557년 ~ 628년
1. 개요
2. 생애
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수나라, 당나라의 인물. 능연각훈신 중 한 명.

2. 생애


장안 사람으로 597년에 친위대도독을 지내면서 수문제의 명으로 농서에 가서 군목을 검열해 말 2만여 필을 숨긴 것을 적발했으며, 이와 관련된 1천 500명을 수문제가 죽이려 하자 사형은 면하게 하도록 간하고 좌무후장군에 임명되었다. 604년에 수문제가 죽고 수양제가 즉위하자 명을 받아 양량을 부르는 편지를 전했으며, 613년에는 우후위장군을 지내면서 우문술과 함께 양현감의 반란을 토벌했다.
617년에 이연이 군사를 일으키자 굴돌통은 하동을 지키러 갔으며, 황하를 건넌 당나라의 군사가 상현화를 격파하자 굴돌통은 요군소에게 포를 지키게 하면서 자신은 동관을 막았다. 유문정을 저지했지만 상현화가 당나라에게 항복한 상황이고 당나라에서 사신을 파견해 아들 굴돌수가 항복을 권유하자 옛날에는 부자였지만 지금은 원수라면서 주변 사람을 시켜 활을 쏴서 죽였다.
그러나 결국 당나라에 항복해 장국공(蔣國公)에 봉해지고 병부상서에 임명되며, 왕세충을 공격하는 것에 종군했다. 종군하는 동안 행대 복야가 되었고 621년에 섬동도 대행대의 우복야가 되어 낙양을 진수했으며, 626년에 검교행대복야가 되어 낙양을 진수했다. 이후 낙주도독, 좌광록대부를 역임하다가 628년에는 섬동도 행대 좌복야가 되어 낙양을 진수하고 그가 사망하자 시호를 충(忠)이라 했다.

3.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