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정

 



<colcolor=#ece5b6> '''당나라의 대신
노국공(魯國公)
劉文靜 | 유문정
'''

'''작호'''
노국공(魯國公)
'''이름'''
유문정(劉文靜)
''''''
조인(肇仁)
'''부친'''
유소(劉韶)
'''출생'''
568년 ~ 619년
'''국적'''
수(隋) → 당(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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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동삼사(儀同三司)→진양현령(晉陽縣令)
→대장군부 사마(大將軍府司馬)→대승상부 사마(大丞相府司馬)
→광록대부(光祿大夫)
''''''
납언(納言)
→민부상서(民部尙書) 겸 섬동도행대좌복야(陝東道行台左僕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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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나라의 인물로 자는 조인(肇仁).

2. 생애


유문정은 568년에 유소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소는 수나라에서 상의동삼사로 추증되었다. 아버지인 유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유문정은 의동삼사 직위를 이어받았다. 대업 말에, 유문정은 진양현령으로 부임하였는데, 때마침 배적이 진양궁감(晉陽宮監)으로 있어서, 이로 인해 배적과 교우하였다.
수나라는 대업 연간에 들어서며 점점 혼란해졌는데, 때마침 수나라의 당공 이연이 태원에 진수하였다. 유문정은 고조에게 원대한 포부가 있음을 보고 그와 교우하였다. 또한 이연의 아들인 이세민을 보고는, 배적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이세민은 보통내기가 아니오. 그의 큰 도량은 한나라고제에 비견되고, 뛰어난 용맹은 위나라태조와 비견되오. 그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그가 가진 재능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았소.

뒤에 이밀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유문정은 이밀과 인척 관계였기 때문에 태원의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세민은 유문정은 그가 시국을 논의할 적절한 인물이라고 보고 비밀리에 그의 면회를 가, 시국에 대해 논의하였고, 그를 빈객으로 삼았다. 거병에 앞서, 이연은 거병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유문정은 이연에게 진양에서 거병할 것을 제안하여 이연이 여기에 동의한다.
이세민은 유문정에게 양제의 조서를 빙자하여 고구려 원정을 벌일 것이라고 포고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태원 일대가 동요하였다. 한편 유무주왕인공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켜 태원을 침공하려 하자, 유문정은 유무주를 토벌하라는 거짓 칙서를 만들었고 장손순덕과 함께 군대를 모집한다. 이 과정에서 유문정은 왕위와 고군아로부터 시기를 받았지만, 선수를 쳐서 이들을 붙잡았다.
이연은 마침내 거병하여 대장군부를 열었고, 유문정을 군사마로 삼았다. 유문정은 돌궐과의 동맹을 이연에게 제안하였고, 이연이 여기에 동의하면서 유문정이 시필가한에게 사신으로 가서 돌궐과 동맹을 맺게 된다. 유문정은 동관에서 굴돌통과 대치하였고, 굴돌통의 전술에 고전하면서도 굴돌통의 부하인 상현화를 물리쳤다. 굴돌통이 퇴각하자, 유문정은 굴돌통을 추격하여 붙잡았고 신안군 이서 지역을 평정하였다. 유문정은 대승상부 사마, 광록대부로 승진하였고 노국공으로 책봉된다.
618년 이연이 공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당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이가 바로 당나라의 초대 황제인 고조이다. 고조가 즉위하면서 유문정은 납언으로 임명되었다.
설거가 경주(涇州)를 침범하자, 진왕 이세민이 설거를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유문정은 원수부 장사가 되어 은개산과 함께 이세민에게 종군하였는데, 이때 이세민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지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세민은 유문정과 은개산에게 지휘를 위임하며 자신의 병에 차도가 보이기를 기다리라고 하였지만, 유문정은 은개산의 계책을 이용해 설거를 공격하려다가 대패하였다. 이때의 대패로 유문정은 관작을 잃어버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설거가 급사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고, 설인고 토벌에 종군하면서 다시 관작을 되찾는다.
유문정은 민부상서, 섬동대행대좌복야로 임명되었고, 무덕 2년(619년)에 이세민과 함께 장춘궁(長春宮)에 진수하였다. 하지만 유문정은 자신의 재능이 배적보다 뛰어남을 자부하였고 또한 군공도 세웠음에도, 자신의 지위가 배적보다 낮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유문정과 배적의 대립은 조정에서도 나타나며 이 둘의 관계는 점점 험악해진다. 유문정은 아우인 유문기와 집에서 술을 마실 때, 배적과 자신을 차별하는 고조에게 불만을 품고 칼을 뽑아 기둥을 치면서 "배적을 반드시 죽이겠다!"라면서 배적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때마침 유문정의 집에 괴이한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나, 유문기가 여기에 대해 두려움을 품었는데, 유문정은 무당을 불러 머리를 자르고 칼을 물어 불제하였다. 유문정의 첩이 유문정에게 총애를 잃고 집을 나가 오빠에게 유문정이 불제를 한 것을 알리고, 오빠가 다시 고조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이강과 소우, 이세민은 유문정이 반란을 일으킬 인물이 아니라며 그를 변호하였지만, 고조는 본래 유문정을 싫어하였고 배적이 유문정을 처형해야 한다고 부추기면서, 결국 유무주는 상술한 행위가 괘씸죄가 되어 유문기와 함께 처형된다. 유문정은 처형되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높이 나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도 광에 감춘다는 말은 옛날부터 공허한 말이 아니었구나.

유문정이 처형 직전에 남긴 유언.

유문정이 죽고 10년 뒤인 629년, 이세민이 태종으로 즉위하면서, 유문정은 관작을 회복하고 아들인 유수의(劉樹義)는 공주와 결혼한다. 하지만, 유수의는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모반하였다가 태종에 의해 처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