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실집사

 

'''성씨'''
귀실(鬼室)
'''이름'''
집사(集斯)
'''관직'''
달솔(達率) → 좌평(佐平)[1]
소금하(小錦下) → 학직두(學職頭)
'''생몰년도'''
? ~ 688년 음력 11월 8일(양력 12월 5일)?[2]
'''국적'''
백제 → 일본

1. 개요


일본으로 망명한 백제의 유민. 귀실복신의 친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2. 생애


그가 일본으로 넘어온 시기는 확실치 않다. 정황상 663년 백제부흥군 내부의 권력다툼 끝에 그의 친족인 귀실복신이 부여풍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 사건이 영향을 줬거나 혹은 동년 9월 벌어진 백강 전투에서 백제부흥군 + 일본연합군까지 대패한 뒤 당이나 신라에 항복하지 않는 인물들은 일본으로 망명했는데 이 때 일본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이기는 한다.
665년 2월, 귀실복신의 공적으로 12위 관품인 소금하(小錦下)에 임명되었다. 이후 669년 일본조정의 명으로 여자신 등 백제인 남녀 700인과 함께 오우미국으로 옮겨살게 되었다. 671년 정월에는 여자신과 함께 대금하(大錦下)에 임명되었다.
귀실집사묘에 남아있는 금석문에 따르면, 688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기록된 금석문의 연대 상한선이 가마쿠라 시대여서 진위논란이 있다.

3. 기타


일본에 관련 유적으로 귀실신사(키시츠신사)와 그의 묘가 남아있으며, 남겨진 금석문에 따르면 후손으로 서손(庶孫)인 미성(美成)이 있다.
비슷한 시기 일본으로 망명해서 활동한 의사 귀실집신(鬼室集信)이 있으나 정확한 관계는 불명.

[1] 백제부흥운동 시기 받은 관직으로 추정된다.[2] 다만 귀실집사의 몰년이 새겨진 금석문의 상한선이 500여년 뒤인 가마쿠라 시대의 물건이라 진위논란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