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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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대 발렌티노

'''제101대 그레고리오 4세'''

제102대 세르지오 2세
  • 생몰년: 795년 ~ 844년 1월 25일
  • 재위기간: 827년 10월 ~ 844년 1월 25일
전임 교황 발렌티노가 사망하자, 산 마르코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 그레고리오가 로마 귀족들에게 교황직을 강권당했다. 결국 827년 10월 그레고리오는 교황의 자리를 받아들였다.[1] 하지만 당시는 프랑크 왕국의 입김이 거센 상황이라 반드시 황제가 신임 교황의 즉위에 동의해야만 정식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 따라서 828년 3월, 황제의 사절이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즉위식을 연기하였다.
루도비쿠스 1세카롤루스 대제의 아들들 중 유일하게 생존한 적자로 제국을 온전히 물려 받았으나 자기는 아들 3명에게 왕국을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넷째 샤를 2세가 태어나서 예전에 나누어준 땅을 재조정하려 하니 기존의 아들들 3명이 반기를 들고 만다. 그레고리오 4세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루도비쿠스 1세와 아들 로타리우스 1세를 중재하고자 했으나 결국 로타리우스 1세에게 이용만 당했고, 루도비쿠스 1세는 폐위된다. 하지만 이듬해 기적적으로 루도비쿠스 1세가 권좌를 되찾자, 로타리우스 1세에게 이용당한 그레고리오 4세를 추궁한다. 하지만 이내 그레고리오 4세가 고의성 없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수긍하였다.
이후 로타리우스 1세가 로마를 수탈하자 루도비쿠스 1세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에 루도비쿠스 1세는 조사단을 파견하고 교황을 돕고자 했지만, 로타리우스 1세가 방해한 데다 얼마 후 루도비쿠스 1세가 사망하여 흐지부지되었다. 이후 프랑크 제국은 차남 피핀 1세는 사망한 상태로 장남 로타리우스 1세, 삼남 루트비히 2세, 샤를 2세 세 형제간에 상속 다툼이 벌어진다. 이에 그레고리오 4세는 어떻게든 형제 사이를 중재해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결국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제국은 삼분되었다.
프랑크 왕국의 격동기를 관통한 그레고리오 4세는 베르됭 조약이 체결된 다음해인 844년 사망했으며, 유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1] 로마 귀족들이 만장일치로 그레고리오를 교황으로 선출한 다음 산 마르코 성당에 있던 그를 강제로 라테라노 궁전에 데려가 교황이 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