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르 소
1. 소개
그레이엄 르 소는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다. 그는 1989년 데뷔 이래 1990년대 잉글랜드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하나였다. 특히 첼시와 블랙번에서의 활약이 눈부셔서 두 팀에서는 오늘날까지 그를 레전드로 기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론 게이라는 오해를 사 선수 커리어 내내 부당한 비난을 받아 큰 심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저지 섬 토박이로 프랑스식 성을 사용하는 르 소는 건지 섬 출신인 매튜 르 티시에와 함께 가장 유명한 채널 제도 출신의 잉글랜드 대표 선수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첼시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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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소는 1968년 10월 17일 영국 해협과 프랑스의 노리망디 해안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채널 제도의 저지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7년에 19살의 나이로 저지 섬의 아마추어 축구 클럽 St Paul에 가입함으로서 축구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89년, 르 소는 채널 제도를 떠나 런던에 가서 첼시 유스팀에 입단했다. 이후 그는 1990-91 시즌 도중 포츠머스와의 경기에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다. 이후 그는 첼시에서 1993년까지 활동하며 90경기 8골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선보여 팀의 주전급 멤버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당시 첼시는 르 소의 다재다능함을 주목하고 그를 레프트백 자리에 정착시키지 않고 많은 포지션에 돌려쓰기 일쑤였고 그 나마도 벤치에서 시작할 때가 많았다.
이러한 팀의 처우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르 소는 1992년 12월 사고를 치고 만다. 이날 그는 사우스햄튼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는데 이안 포터필드 감독이 돌연 그를 조기에 교체시켜버렸다. 그러자 르 소는 격노해 그의 셔츠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그라운드 바깥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이에 첼시는 분란을 일으킨 르 소를 더 이상 데리고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하고 1993년 3월 블랙번 로버스로 7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받고 팔았다.
2.2. 블랙번 로버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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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소는 블랙번으로 이적한 뒤 당시 블랙번 감독이었던 케니 달글리쉬의 신임에 힘입어 EPL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하나로 부상했다. 그는 첫 시즌에 블랙번을 리그 2위로 이끌었고 이듬해에는 EPL 우승을 달성했다. 당시 그의 수비력과 공격 전개 및 적시에 터지는 골 감각은 당대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손꼽히고 있던 스튜어트 피어스에 필적할 만 했다. 그러나 르 소는 1995년 11월 22일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의 경기 도중 팀 동료인 데이비드 베티와 주먹다짐을 하는 바람에 팀 내 입지가 많이 좁아졌고 설상가상으로 1995년 12월에 무릎이 부러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1995-96 시즌 후반기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후 그는 블랙번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고 결국 팀을 쓸쓸히 떠나야 했다.
르 소와 베티의 주먹다짐 동영상
2.3. 첼시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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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르 소는 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첼시로 이적했다. 이는 당시 잉글랜드 축구계에서는 수비수로서 가장 많은 이적료였다. 르 소는 첼시에서 비록 많은 경기를 부상으로 결장해야 했지만 나올 때마다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고 팀이 1998년 리그 컵과 유로파 위너스컵을 우승하고 2000년에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르 소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140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했다.
2.4. 사우스햄튼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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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르 소는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했다. (이때 사우스햄튼은 르 소를 영입하는 대가로 웨인 브릿지를 첼시로 보냈다.) 르 소는 2 시즌 동안 사우스햄튼에서 뛰며 44경기 1골을 기록했다. 이후 2005년 5월 사우스햄튼이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자, 그는 선수로서의 인생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2.5.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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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소는 1994년 덴마크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로서의 데뷔전을 가졌다. 이후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었던 테리 베너블스는 그동안 잉글랜드 부동의 레프트백이었던 스튜어트 피어스를 배제하고 르 소를 주전 선수로 기용했다. 르 소는 이러한 감독의 신임에 힘입어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불행히도 1995년 12월 무릎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는 바람에 피어스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이후 르 소는 한동안 피어스에게 밀려 벤치를 지키다가 1998 월드컵에 피어스가 선발되지 않자 그를 대신해 잉글랜드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는 월드컵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잉글랜드를 16강에 진출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르 소는 대표팀에서 36경기를 출전해 1골을 기록했고 2000년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3. 은퇴 후의 삶
선수 인생을 정리한 후, 르 소는 방송계에 몸을 담았다. 그는 BBC에서 방영하는 축구 프로그램 'Match of the Day 2'에 패널로 출연했고 BBC 라디오에서도 종종 출연했다. 또한 그는 미국의 스포츠 방송국인 NBC 스포츠에도 몸을 담아 EPL 경기의 해설자로 활동했다. 2007년에는 게임 프로그램인 'Vernon Kay's Gameshow Marathon'에 출연했고 2009년엔 탤런트 쇼 'Dancing on Ice'에 출연하기도 했다. 한편, 르 소는 그의 자서전 'Left Field: A Footballer Apart'를 2007년 9월에 출판했다.
4. 게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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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소는 명백한 이성애자였다. 그는 일찌감치 아내 마리아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게이라는 소문이 커리어 내내 나돌았다. 심지어 르 소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첼시 시절 팀동료였던 켄 몽쿠르가 여름 휴가 때마다 "너 게이지?"라며 놀려댔다고 한다. 그가 이런 소문에 휩싸인 것은 그가 경기 내내 남자답지 않게 굴고 외모가 여성적이며 취미 생활도 남자답지 못하기 때문이라는데... 참으로 애매하기 짝이 없는 이유로 커리어 내내 이런 소리를 들었으니 본인은 참으로 마음 고생이 심했으리라.
이러한 르 소에 대한 루머는 종종 상대편 선수 및 팬들로부터 악용되기도 했다. 1999년 2월 27일, 첼시와 리버풀이 경기를 치뤘다. 이때 리버풀의 공격수 로비 파울러는 르 소와 여러번 경합했다. 그런데 파울러는 경기 내내 르 소가 게이라며 온갖 조롱을 퍼부었다. 이에 르 소가 "하지만 난 결혼했다고!"라고 외치자, 파울러는 "그래, 엘튼 존과 결혼한 거겠지!"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르 소 본인은 파울러에게 그런 조롱을 받으면서도 별로 화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파울러가 그런 소리를 하는 걸 기분 좋게 넘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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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는 하지만 당시 사진을 보면 르 소가 그렇게 너그럽게 넘어간 것은 아닌 듯 하다.
훗날 르 소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커리어 내내 다른 모든 것보다도 그런 루머가 나를 괴롭혔다. 파울러가 한 짓은 잘못된 것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그런 소리를 하며 비웃음을 받고 있다." 라고 밝히며 파울러에 대해 악감정이 남아 있음을 드러냈다.
5. 수상 경력
5.1. 첼시
2부리그 우승 : 1988-89 시즌
풀 맴버십 컵 우승 : 19990년
리그컵 우승 : 1998년
FA컵 우승 : 1998년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 2000년
유로파 위너스컵 우승 : 1998년
유로파 슈퍼컵 우승 : 1998년
5.2. 블랙번
EPL 우승 : 1994-95 시즌
5.3. 국가대표
Tournoi de France 우승 : 1997년
엠블로 컵 준우승 : 1995년
킹 하산 2세 인터네셔널 컵 토너먼트 준우승 : 1998년
5.4. 개인
PFA 올해의 팀 선정 : 1995년, 1998년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