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파울러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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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역대 득점 7위'''
리버풀의 역대급 스트라이커이자 '''안필드의 신'''으로 불린 남자
2019년부터 브리즈번 로어 FC 감독을 연임하였고 2020년부터 이스트 뱅골 FC 감독으로 부임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2.1. 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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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부터 리버풀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배워오다가 1993년 당시에 팀이 골 가뭄에 허덕이던 시절에 그레이엄 수네스의 부름을 받고 1군으로 승격[1] , 데뷔 첫 시즌에 열린 1993/94 풋볼 리그 컵(당시 코카콜라 컵)에서 1차전에서 3대 1로 득점에 공헌한 뒤 안필드에서의 2차전에서도 5-0으로 승리하는 데 도움을 주면서 점차 성장, 1994년에 부임한 로이 에반스 감독 시절에 파울러는 더 많은 출장 기회를 얻어 아스날전에서의 전광석화같은 해트트릭, 에릭 칸토나의 귀환을 무색할 만큼의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2골, 아스톤 빌라전 당시 콥 엔드에서의 터닝슛 등 팬들에게 인상적인 기억을 남겨주었고, 그는 1995년과 1996년에 올해의 젊은 선수상을 받음과 동시에 잉글랜드 대표팀에도 발탁되기도 했다. 21세되기전 무려 '''84골'''을 넣었던 시기 [2]
그러나 1997년에 부상을 당함과 동시에 당시 신인이었던 마이클 오언의 급부상으로 정체기를 겪기도 했으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골을 터뜨려 2000/01 시즌에 리버풀의 미니 트레블 달성(리그컵-FA컵-UEFA컵)에 공헌을 했으나,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2000년에 레스터 시티로부터 영입한 골잡이 에밀 헤스키를 종종 선호하는 바람에 1,200만 파운드로 리즈 유나이티드에 팔려갔다.
2.2. 리즈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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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가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한 후 팀 공격력 강화를 위해 영입한 로비 파울러는 2001-02 시즌에 마크 비두카, 앨런 스미스 등과 출장시간을 조절해가며 출장하는 와중에 22경기에 출장하며 12골로 첫 시즌에 제 몫을 해냈다.
그러나 2002-03 시즌에 엉덩이 부상이 심해지면서 파울러의 능력은 급격한 하락세를 겪게 된다. 부상으로 인해 시즌 절반을 날려먹었고, 복귀한 후의 로비 파울러는 예전보다 둔중해진 몸으로 등장했다. 예전과 같은 날카로운 골 결정력을 보여주고 싶어도 느려진 스피드는 파울러가 골 냄새를 맡고 싶어도 수비수들에게 막혀서 제대로 골문 앞을 장악하지 못해버리는 상황. 결국 두번째 시즌에는 리즈 팬들로부터는 '배나온 스트라이커'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최악의 폼을 보였다.
결국 리즈에서 보낸 2년 중 절반에 해당하는 02-03 시즌의 기록은 8경기 2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마무리. 그리고 리즈의 재정난으로 인해 파울러와 같은 고액주급을 받는 잉여는 최대한 빨리 처분해야 할 상황이 오고야 말았고, 결국 맨체스터 시티의 케빈 키건의 품에 안기게 된다.
2.3. 맨체스터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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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에서 4시즌을 보내며 80경기 20골을 기록한다. 처음 03-04 시절까지만 해도 그놈의 부상이 계속 파울러를 괴롭혀서 리즈에서 보여준 잉여다운 모습을 계속했으나 04-05 시즌에 부활하며 32경기 11골을 넣는, 준수한 EPL 중하위권 팀의 공격수다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05-06 시즌에 또다시 부상이 재발하였고, 몸을 만드는데 실패하면서 다시 03-04 시절에 리즈 때처럼 '골문 앞 배나온 스트라이커'가 재현되었고 파울러의 폼은 이 시즌 이후로 급격한 하향세를 타게 된다.
4시즌 중 30경기 이상 출장한 시즌은 두 시즌, 그 중에서도 밥값을 한 시즌은 겨우 한 시즌이기에 올드 맨시티 팬들에게 있어서는 그냥 잉여로운 공격수 하나 정도의 평.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이런 잉여에게 엄청난 주급을 지급해야 하지만, 실제로 파울러에게 주어진 주급의 상당 비율은 선수를 판 리즈가 대신 지불해줬으니.....맨시티로서는 쓸만한 공격수를 저렴하게 잘 써먹었다라고 할 수 있겠다.
2.4. 리버풀 FC로 돌아오다
그가 리즈와 맨시티를 옮겨다니며 활동하는 동안 리버풀의 팬들은 그의 눈이 고향에 머무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자 2006년 1월 겨울시장 말미에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그를 불러서 다시 파울러는 리버풀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시 리버풀의 센터포워드진은 밀란 바로스와 지브릴 시세가 주전이었으나 바로스는 팀을 떠나고 그 대체자는 피터 크라우치였으며 백업으로 완연한 하향세를 보이던 페르난도 모리엔테스가 버티던 상황. 여기서 리그 10골을 기록한 공격수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팀의 공격수 뎁스를 높이기 위한 방안 겸 팀의 레전드 복귀라는 명분으로서 파울러 영입은 팬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부진한 모리엔테스와 기복이 심한 시세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하면서 꽤 괜찮은 활약을 보이며 팬들의 환호성을 받았다. 06-07 시즌에는 11번에서 다시 9번을 받았다. 06-07시즌에는 모리엔테스나 시세 모두 떠나서 뎁스가 얇아진 리버풀에서 백업으로 출장하며 23경기 7골을 기록하였고, 06-07 시즌이 종료된 후 리버풀에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리버풀은 파울러가 떠난 자리를 메울 새로운 공격수로 페르난도 토레스와 안드리 보로닌을 영입하면서 한방에 공격수 질을 확 높였다.
2.5. 선수생활 황혼기
그 후 카디프 시티와 블랙번 등 여러 팀을 떠돌다가 2012년에 무앙통 유나이티드의 선수 겸 감독을 끝으로 은퇴했다.
3. 감독 경력
무앙통 유나이티드 FC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2019년 4월 23일, 브리즈번 로어 FC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계약기간은 2년이다.
4. 플레이 스타일
리버풀의 '''포스트 게리 리네커'''라 불릴 정도로 여러면에서 다재다능했던 스트라이커. 주발은 왼발이었지만 양발에 가까울정도로 정확한 터치와 준수한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으며, 뛰어난 퍼스트 터치와 영리한 위치선정을 보유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천부적인 피니시 능력이 돋보였던 선수. 이외에도 큰경기에 결정적인 골을 자주 넣으며 해결사 기질도 있었으며, 상술되었다시피 논란에 휘말린적도 있었지만 휘둘리지 않는 대인배 기질도 있다. 더불어 볼을 끌지 않고 연계능력이나 킬패스도 준수.
단점이라면 잦은 부상에 시달리는 선수였고, 기본적인 피지컬과 평균 정도의 체격으로 20대초반이후 위치선정과 연계에 초점을 맞추는걸로 변화했다. 경쟁자이자 후배였던 마이클 오언과 마찬가지로 부상으로 재능을 못살린 선수.
여러모로 다재다능했으며 대인배기질에 팀에는 성실하고 이타적으로 플레이, 자칫하면 커리어가 위험했던 스캔들도 웃어넘기는 스타성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리버풀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
리버풀 팬들에게 ‘신’이라 불린 선수이다. 이언 러시 이후 가장 사랑받는 스트라이커이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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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안정환, 김성주가 출연하여 축구해설시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였는데 그 와중에 이름을 말하기 껄끄러운 축구선수들이 많다며 그 명단을 공개할 때 나왔다.(?)
배나온 스트라이커 기믹(...) 때문에 묻히는 사실이지만 부상때문이지 대단히 성실하고 프로의식이 강한 선수였으며, 본인이 실수로 넘어진게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인정되자 심판에게 어필하는 페어플레이로 아직까지도 많은 리스펙을 받는다. 본인이 게을러서 체중 관리에 실패하는 류의 선수였다면 영국의 악명 높은 훌리건들이 황혼기에도 그렇게 환호를 보냈을까? 어떻게 보면 리버풀 사절인 20대 초반에 최전성기를 찍었기에 포스트 개리 리네커 급으로 기대받았으나 선수로서 이른 나잇대인 20대 중반부터 부상에 시달리면서 피지컬이 뒷받침되지 못해서 완연한 하향세를 보여주며 기대만큼 보여주지 못한 선수.
부동산 재벌이다. 베컴, 루니 등도 실패하던 부동산 재테크로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으며, 100채가 넘는 주택, 아파트 등을 소유하고 있다. 맨체스터 인근 올덤 주민들은 “우리는 모두 파울러의 집에 살고 있다.”라는 응원가를 부른다고...
한때 프리미어 리그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던 선수들의 약물 복용 스캔들이 98/99 시즌에 꽤나 규모적으로 터지면서, 무릎 부상 회복기 동안 오랜 기간 자취가 불분명 했던 파울러 또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코카인 흡입과 관련해 한동안 수사를 받아야만 했다. 단지 의혹일 뿐이었음에도 라이벌팀 에버튼 FC의 팬들이 더비전에서 도를 넘는 조롱하자, 안그래도 언론의 추측성 보도로 억울함에 악이 받쳐있던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전반 15분 페널티킥으로 골을 넣은 뒤 골라인 부근에서 아예 코를 대고 기어가며 직접 코카인 흡입 세레머니를 선보였다(.....) 경기 후 그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소가 풀 뜯어먹는 시늉'을 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그야말로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결국 4경기 출장 정지라는 징계를 먹고 말았다. 논란 속에서 고참 선수 다운 의연함을 보여주지 못한 그에게 적잖이 실망감을 느낀 울리에 감독은 그 이후로 파울러와 사이가 틀어졌고, 불화를 수습하지 못한 파울러는 끝내 2001년 리즈 유나이티드로 다소 씁쓸한 이적을 하고 만다. 은퇴 후에 나눴던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의 셀레브레이션은 자신을 믿고 동경하는 어린 아이들과 서포터들을 배려하지 않은 굉장히 어리석은 행동이었다며 스스로를 자책했다고 한다.
이언 러시 이후 인정받는 9번이기도 하다. 수아레즈나 토레스, 오언은 각각 팀 소속기간이 짧거나 팀을 통수치고 나갔지만 파울러는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