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림왕
1. 개요
반파국의 왕. 사서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기록이 전무한 왕이기 때문에 업적이나 정확한 재위 기간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거꾸로 대가야의 다른 국왕의 릉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가 이진아시왕과 동일인물이라는 추정도 존재한다.'''금림왕릉(錦林王陵): 현의 서쪽 2리쯤 되는 곳에 옛 무덤[古藏]이 있는데, 금림왕릉이라고 일컫는다.'''
錦林王陵[縣西二里許有古藏俗稱錦林王陵]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9권 경상도 고령현 조 고적 편에서. 금림왕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
錦이라는 글자는 寐錦 등에서 쓰였던 글자이므로, 금림이라는 명칭은 "마립간인 림(林)"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2.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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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 고분 47호에서 출토된 금관.
주요 유물로는 호암미술관에 보관 중인 대한민국의 국보 제138호 가야 금관이 있다. 이 가야 금관의 경우 발굴 비화가 존재[1] 하는데 삼성그룹 측에서는 부정하고 있는 상황.
3. 기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현의 서쪽 2리쯤 되는 곳에 있다”라고 밝힌 금림왕릉은 1939년 부분 발굴 당시 국보 138호인 가야 금관을 비롯해 칼, 금귀걸이, 은팔찌, 금동 화살통 등 6,500여 점의 유물이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1939년에 발굴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 47호가 금림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의 왕릉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고령지역이 대가야의 중심지인 점과 지산동 고분군이 5세기경 조성된 고분군임을 감안하면 대가야의 3대 ~ 4대 왕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2]관련 링크
다른 대가야 왕들보다 인지도가 가장 낮은 편. 2017년 경상일보에서 연재된 소설인 하지태왕기에서 금림왕이 대가야 관등을 정비했다고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면 미디어나 매체에서의 등장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