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오

 

[image]
성명
김관오(金冠五)
이명
김관오(金官五)

우당(愚堂)
생몰
1901년 3월 4일 ~ 1965년 1월 31일
출생지
한성부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김관오는 1901년 3월 4일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보성중학교 졸업반에 재학하던 중 서울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참가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선전물을 비밀리에 배부하다가 같은 해 3월 23일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뒤 경성지방검사국으로 이송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따. 이후 평강에 있는 친척집에 피신했다가 1921년 10월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는 운남(雲南) 강무당(講武堂)에서 이준식 등 10여 명과 함께 훈련을 받고 1924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광저우로 가서 중국의 국민혁명군 제43군 및 중앙훈련단에서 보병학교 고등군사반을 수료하였으며, 중국 국민혁명 제43군 및 중앙훈련단에서 장교로 근무하였고, 중국보병학교 고등군사반을 수료하였다.
1941년 한국독립당 충칭 지구 위원장에 취임했으며, 광복군 총사령부 고급부관 겸 임시정부 내무부 경위대 대장에 임명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여성 독립운동가 방순희와 결혼했다. 1942년 6월 그를 비롯한 14명의 선전위원이 선임되어 대내외적인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1942년 10월에는 임시의정원 강원도 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43년 8월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고급참모로 그리고 1945년 6월에는 광복군 참모처 제2과장에 임명되었다. 8.15 광복 후에는 광복군 훈련 담당 간부로 주항지대장(駐杭支隊長)에 임명되어 광복군 사병 훈련을 맡았다.
그 후 국내로 돌아와서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하여 활동하다 육군 준장으로 예편되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고 1965년 1월 31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