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1880)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기홍'''
'''金基弘'''

[image]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80년 11월 12일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동리
<color=#fff> '''사망'''
1949년 7월 25일
서울특별시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기홍은 1880년 11월 12일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천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서울 상동교회에 동지들과 함께 모여 을사조약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개했다. 그들은 도끼를 메고 5명씩 연명으로 1회, 2회로 나누어 죽든지 체포될 때까지 상소운동을 하기로 결의했다.
1905년 11월 27일 제1차로 이준이 상소문을 짓고 최재학(崔在學)이 소두가 되어 대한문(大漢門) 앞에 나아가 바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5적의 처형을 요구하였다.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상소에 연명한 5명을 체포해 가자, 김기홍 등은 시민들에게 일제를 규탄하고 국권회복에 궐기할 것을 호소하는 가두연설을 했다.
이후 시민들과 함께 일제 헌병대에 대항하여 투석전을 벌이면서 격렬한 을사조약반대 시위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1907년 4월 양기탁, 안창호, 전덕기 등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로서 신민회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평안남도 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이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 후 서울로 이주했으며, 1949년 7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김기홍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