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물
金汝岉(1548~1592)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인조반정 공신인 김류의 아버지. 실록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지략과 식견을 가진 인물이었던 듯하며, 유성룡과 신립 역시 재주를 인정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중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2. 생애
1548년에 황해도 평산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순천이고 자는 사수(士秀),호는 피구자(披裘子)•외암(畏菴)이고 시호는 장의(壯毅)이다.
1567년 진사(進士)가 되었고, 1577년에 알성문과에 장원급제 하였다. 이후 병조낭관(兵曹郞官), 충주도사(忠州都事)를 지내다가 1591년에 정철의 당인으로 몰려 파직되어 투옥되었다.
다음 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의 명을 받고 신립 밑의 종사관으로 충주방어에 나섰다. 조령의 새재를 이용하여 방어하자는 그의 건의를 신립이 묵살, 대신 어리석은 계책을 세우자 필패할 것을 예견하고 아들에게 나라를 위해 죽을 것이라는 유서를 쓰는 한편, 가족들을 피난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신립군은 탄금대 전투에서 대패하였고 김여물 역시 남한강에 투신자결하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